더 느리게 느려터지게 살기로 했다
오늘은 제가 연재하고 있는 [오래가는 콘텐츠의 비밀]의 여섯 번째 글을 올려 보려고 합니다. 지난 5화에서는 제가 엄마 사업가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초심자 마인드'에 대해 말씀드렸다면 오늘은 사업을 하면서 제가 해왔던 '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지나고 나니 결정은 콘텐츠 생산자에게도 사업가에게도 참 중요한 문제이더군요.
2013년. 블로그 일상 포스팅 사진에 자주 등장했던 팔찌 겸 머리끈, 헤어타이가 발단이 되면서 나는 쇼핑몰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만 해왔던 나에게, 상사의 지시와 칭찬 때론 문책(?)이 익숙했던 나에게 어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내가 결정해가며 일을 한다는 것은 짜릿하면서도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쇼핑몰을 오픈한다는 것은 블로그에서 공구를 오픈하고 마감이 되면 제품을 준비 배송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왔다. 블로그 공구가 나를 아는 사람을 기반으로 조금 시일이 더 걸려도, 조금 품절이 빨라도 이해와 양해가 통용되는 세계였다면, 쇼핑몰은 달랐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오로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들어와 결제를 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 업무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랴? 대학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당시 잘 나갔던) 광고대행사에 스카우트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광고대행사란 어떤 회사냐? 그 당시 대기업들은 거의 하나씩 '인하우스 에이전시'라는 이름으로 광고대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동기들은 부서에 따라서 '갑'이 될 수 있지만 광고대행사 직원은 언제나 '을'이었다. 같은 연차 대비 연봉을 좀 더 받는. 그렇지만 '광고주'님의 말씀에 늘 마음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하는 뼛속까지 '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 있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맞춰 줄 수 있다는 자신. 하지만 이것도 훗날 알게 된다. 쇼핑몰 운영이라는 것은 또 다른, 전혀 다른 차원이 일이라는 것을.
당시 내가 병했했었던, 글을 쓰고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인 콘텐츠 생산자의 일과는 또 다른 업종이었다.
그때 나는 그것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다시 깊게 하기로 하고 오늘은 쇼핑몰 오픈을 준비 과정 이야기부터 해보자.
쇼핑몰을 오픈하려면 우선, 어디에 둥지를 틀지 정해야 한다. 2013년, 2014년 당시에는 카페24 등 독립 도메인 호스팅 업체가 인기였다. 블로그를 통해 유명세를 타고 영향력을 키운 파워 셀러 블로거들은 대게 카페24와 같은 전문 호스팅 업체에서 쇼핑몰을 오픈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점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저런 전문 쇼핑몰 호스팅 업체가 활황이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앞으로는 어떤 쇼핑몰 호스팅 업체가 뜰까? 나는 내 쇼핑몰을 단타로 생각할 마음이 없는데, 호스팅 업체가 바뀌지 않으면서 롱런하려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오늘은 결정했어?"
퇴근하고 저녁을 먹던 남편이 물었다. 곧 쇼핑몰을 오픈할 거라 요즘 바쁘다 힘들다 했더니 결과가 궁금했나 보았다.
"응 아니~ 카페24 같은 독립 호스팅 업체에서 시작할지, 네이버 쇼핑에 입점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어!"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거 결정하려고 2주나 보냈어? 에궁. 당신 좋은 걸로 아무데서나 시작하지 그래?"
우리 부부의 대화는 소재만 다를 뿐 비슷했다. 세심한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내 입장과 그런 건 대세에 영향 안 미치니 아무거나 결정해도 된다는 건, 그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말이 나온 김에 나는 그날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카페24는 자체에서 쇼핑몰 사례로 홍보도 해주고 하니 이런저런 혜택이 있겠지? 그런데 저 붐이 언제까지 갈까? 과연 5년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독립 도메인 주소를 기억했다가 들어올까? 도메인 유지비는 또 어떻고. 지금이야 쇼핑몰이 호황이니까 몇십에서 백만 원 단위의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늘 호황일 것 같진 않은데...그냥 정해진 선택 말고 뭐, 다른 건 없을까?
그때 떠오른 것이 네이버의 쇼핑몰 서비스 '스토어팜'이었다. 지금은 '스마트스토어'로 바뀐. 네이버에서 호스팅 하는 쇼핑몰 입점 서비스 말이다. 지금이야 유명 유튜버의 월 천만 원 버는 법의 소재로 '누구나 스마트스토어 하나쯤 가지고 싶어하는,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입점 업체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에 '나 스토어팜에서 오픈하려고' 하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었다. '그게 뭔데?"
그런데, 나에게는 예전부터 남들은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골몰해서 생각하면 길이 보였고, 그렇게 선택한 길은 영 승률이 낮은 편은 아니었던.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에 입점을 결심한 것도 이런 내 촉이라면 촉 때문이었다.
네이버인데... 네이버가 키우는 쇼핑몰 입점 서비스라니, 앞으로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겠어? 게다가 독립 도메인은 결국 결제 수단 신뢰라는 문제점에 봉착하게 될 것 같아. 앞으로는 카드가 대부분의 결제수단이 될 텐데 작은 호스팅의 결제 서비스를 사람들이 신뢰하겠어, 종합 포털의 결제 서비스를 신뢰하겠어...?
게다가 획기적으로 낮은 수수료율까지! 이런 논리라면 네이버가 어느 날 갑자기 수수료를 확 올리기야 하겠어? 그래 결심했어! 장기적으로 보면 네이버 쇼핑에 입점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지금 독립 호스팅이 이렇게 핫해도 말이야.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어디에 쇼핑몰 둥지를 틀지 결정하지 못해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남편은 허탈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었다. '거봐, 이러나저러나 별 차이 없는데 뭐하러 그렇게 오래 고민했어?' 이 사람아 그게 아니래도!
9여 년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해보니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쇼핑몰 생태계도 많이 변했다. 독립 호스팅 서비스는 지고,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쇼핑 입점 서비스는 호황을 넘어서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남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너무 뜸 들이는 것 아니냐고' '과도하게 신중한 것 아니냐고' 그런 물음에 예전에 나는 일일이 설명을 했던 것도 같다. '내가 그런가? 단순하게 생각할까?' 나, 좀 내려놓을까?'
그런데 지금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내 이런 성향을 스스로 질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한 번 정하면 쉽사리 바꾸기 어렵고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는 계속 신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결심하고 나면 얼마나 후회가 없는지
콘텐츠로, 쇼핑몰로 밥벌이 한지 9여 년 차가 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촉'은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뭔가를 알고자 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나의 오랜 ‘초심’에서 비롯된 무기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심드렁하게, 그저 주어진 것 외에는 궁금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그런 무기.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세상이라는 무대에 뛰어들어갈 때, 난 뭘 배울 수 있을까? 저 사람에겐 어떤 걸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그들 눈에만 보이는 땅에 떨어진 작고 가는 바늘 같은 그런 무기.
그 무기는 결국 늦게 결정해 버릇해서 골든 타임을 놓치는 거 아니냐는 주위의 말에도 흔들림 없이 내가 한 선택을 믿고 그때부터는 후회 없이 담대하게 나가는, 그런 느려터진 느림보가 결국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게 도와주는 무기였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문제라면 앞으로도 더 느리게, 느려터지게 결정하기로요.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 것들에는 앞으로도 쿨하게 후회하지 않을 것을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칼럼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작가 드림
* 브런치에 연재하는 모든 콘텐츠(글, 사진 포함)의 저작권은 생산자(원작자)인 엘작가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저마다의 소중한 저작권 보호에 동참해주세요! Copyright2020.엘슈가.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