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현대인의 죽음 인식과 삶의 태도 변화

by 서휘 진은정

죽음은 우리 삶에서 가장 확실한 일이면서도

가장 말하기 어려운 주제다.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 고립되고,

미디어의 장면으로만 남겨진 죽음은

점점 실감 없는 사건이 되어간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죽음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


그중에서도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 켈레비치

죽음을 존재론적이며 관계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죽음을 ‘3인칭·2인칭·1인칭’으로 구분하며

그 위치에 따라 죽음의 의미와 영향이 전혀 달라진다고 보았다.


죽음을 연구하고 말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억 속 ‘죽음의 조각’들이었다.
그 조각들은 처음엔 흐릿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삶의 중요한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1. 3인칭의 죽음 _ '그의 죽음'


3인칭 죽음은 타인의 죽음이다.

뉴스 속 이름, 병실 속 환자,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이별이다.

우리는 그런 죽음에 감정을 쉽게 이입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다음 뉴스로 넘어간다.


켈레비치는 이 죽음을

“관찰자의 시선에 머문 죽음”이라고 했다.

죽음은 존재하지만 나의 실존을 흔들지 않는 거리감 속에 있다.

이는 감정적 방어다.


지속적으로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기 위한

현대인의 생존 방식이다.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던 나는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부터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그리고 내가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2. 2인칭의 죽음 _ '너의 죽음'


2인칭 죽음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 '나'와 '너'의 관계에서 '너의 죽음'이다.

부모, 배우자, 자녀, 친구…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일상이 무너지는 사건이 된다.


켈레비치는 이 죽음을

“슬픔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표현했다.

관계 안에서 맺어진 죽음은

존재론적 충격이자, 감정적 지진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죽음은

효(孝)와 의무, 죄책감이 얽힌

복합적 애도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애도는 종종

사회적 지지 없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감정으로 남는다.



죽음학은 애도의 감정이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계기임을 알려준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나의 정체성과 존재방식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장례식장의 냄새, 사람들의 목소리, 눈빛…


나는 22살이 되서야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감정으로서 다가왔다.




3. 1인칭의 죽음 _ '나의 죽음'


1인칭 죽음에서 "내가 없어진다면?"이라는 생각은 모든 걸 다시 보게 만든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대신 체험해줄 수 없다.


죽음학에서는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것이 삶의 우선순위를 재구성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나 자신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가능하게 만든다.


1인칭 관점에서의 죽음은 “철저히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라 말한다.

이 죽음은 타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언제나 무경험적인 유일한 체험으로 남는다.


이 죽음을 깊이 인식할 때,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게 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는

바로 이 1인칭 죽음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성찰하게 한다.




죽음을 대면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삶은 더 선명해진다.


죽음학은 죽음을 자각하는 일이 곧 '현존의 강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현재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삶을 더 느리게,

더 깊이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 준다.


어떤 선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고,

어떤 감정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은 삶을 조급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에 집중하고 싶게 만들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면에서 봤을 때 죽음은 삶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선명하게' 비추는 조명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방식으로 ‘지금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외면했던 나는 하루를 흘려보냈고,
죽음을 마주한 나는 하루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瑞輝 진은정-




[핵심용어]


1.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 존재(Dasein)가 본질적으로 죽음(der Tod)을 향해 존재한다는 실존적 구조를 뜻한다.

● "zum"은 ~를 향하여, ~쪽으로 라는 뜻. 독일어 전치사 "zu + dem"의 축약형


2. 현존 (existence)

현존(現存)은 단순히 지금 여기 있다는 뜻을 넘어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실존적 상태.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에서 ‘현존재’는 인간을 지칭하는 존재론적 명칭으로, 이 존재는 단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질문하고 해석하는 개별적 주체다.


● 죽음학은 이 철학적 개념을 삶과 죽음의 교육에 적용하여, “나는 왜 사는가?”,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의 과정을 살아가는 것을 ‘현존’이라 부른다.
이러한 현존은 단순한 존재가 아닌, ‘자각된 실존’, 다시 말해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지금을 더욱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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