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넨도 디자인 이야기
2017년 첫 포스팅이네요. 최근 몇 개월간 여러 복잡한 일과 운명을 달리한 노트북 때문에 포스팅이 뜸했습니다. 산만한 머릿속을 정돈하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빗도 없는 만큼 꾸준히 트랙을 남겨보려구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도 볼 수 있는 《넨도 디자인 이야기》 는 도쿄 베이비 카페, 루이비통의 서페이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완수한 글로벌 에이전시 넨도의 10가지 발상과 4가지 경영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환경에 관심이 있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드시는 분들, 독창적인 아이데이션을 거친 프로젝트가 실제로 어떤 결과물을 낳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책으로, 풍부한 이미지와 삽화 덕분에 난이도와 진입장벽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자켓 속주머니에 딱 들어가는 아이패드 미니만한 판형은 장소 구애 없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가지 아이디어 발상법은 균형을 비틀어보고, 최대한 줄여보고, 원하는 것을 일부러 숨겨보기도 하는 것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제품에 조성한 위화감이 카피 제품조차 따돌리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책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포인트이자 넨도라는 회사를 이해하는데 핵심 키워드입니다.
솔직히 초기에는 오역인가 싶을 정도로 이 '위화감'이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에 위화감이란 컵처럼 보여야 하는데 어쩐지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경우, 왜 얼굴처럼 보였는지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얼굴을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늘은 이 10가지 발상법 중 '사물의 휴식시간을 고려하는 발상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무엇이 있나요? 글을 쓰고 있는 제 주위에는 책, 수성펜, 몰스킨, 양키캔들, 무드램프, 서로 뒤엉킨 옷걸이, 칼리타 호소구치 포트처럼 일일히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물들이 존재합니다.
이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이기에 더욱, 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에 앞서 주위에 이미 널려있는 사물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일상'의 기분을 리디자인하자는 것이 이 발상법의 주요 내용입니다.
시제품 개발 전 제작하는 대다수의 프로토타입을 보면 제품이 '사용 중'인 상태 위주로 디자인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제품이 위치하게 될 환경과 상황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고 설사 고려되었다 하더라도 시제품 생산의 효율과 편의성을 위해 조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다 보면 쓸만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는 거치적거리는 그저 그런 제품이 되고 맙니다.(거실에 있는 청소기만 보더라도...)
넨도는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사용 중인 시간보다 더 긴 만큼, 본연의 기능 자체는 유지하면서 쓰지 않을 때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게 디자인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불경기의 만성화로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초심을 깨워주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라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는 자세를 갖춰야한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있지만 성공이라는 중압감과 조바심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책은 다른 책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편집 부분에서 디테일이 떨어지는 큰 실수를 범한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건전한 균[사진]형은 필요에 맞게 변화[사진]할 수 있는 유기적인 환경을 말한다. 넨[삽화]도의 디자인 수업은 기업의 자발적인 발전을 위[사진]한 가능성을 다[사진]양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토는 기업 스[사진]스로가 필요할 때[사진]마다 최적의 균형[사진]을 찾을 수 있는 체질로 만들[사진]어주는 것을 디자[사진]인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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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례와 적절한 삽화를 곁들여 깊은 향을 잘 우려낸 책이지만 영양가를 떨어뜨리는 재료 하나 때문이 의식의 흐름이 방해받는 부분이 크게 아쉽습니다. 책을 한번 독파한 이상, 이미 전체적인 맥락을 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읽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아 애증의 책으로 남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어서 개정본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