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The Hurt Locker, 2009)

영화 속 군인정신 #1

by 남보람

* 대한민국 국군장병 정신교육용 칼럼입니다. 월1회 국방일보와 정신교육 교재에 실리고 있습니다.


“허트 로커(The Hurt Locker)”의 광고 문구,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에 맞서다”


영화와 드라마를 광고하는 문구는 대개 과장과 비약을 앞세운다. 이를테면 2009년 개봉한 영화 “허트 로커(The Hurt Locker)”의 한국판 포스터는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에 맞서다”, “심장이 터질 듯한 전율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얼핏 생각해보면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란 것은 영화에서나 쓰이는 과장일 것 같다. 죽음은 인간이 대면할 수 있는 최고의 절망이다. 두려움은 죽음에 비하면 찰나의 감정상태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두려움은 반복 학습, 타고난 용기, 고양된 감정 등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이것이 죽음과 두려움에 대한 우리의 일반 상식이다.


보호해야할 사람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데 일반과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는 전장에서는 어떨까? 전쟁사 연구자 존 키건(John Keegan)의 설명에 따르면 전장의 전투원은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보호해야할 사람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전장 속에서 장병들이 죽음의 공포를 감내하며 총탄이 빗발치는 적진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전우, 가족, 국민의 삶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존 키건은 이렇게 설명했다. “전투원은 죽음의 공포 그리고 보호해야할 사람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둘을 놓고 저울질한다.” 후자의 두려움이 더 클 때 장병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등에 지고 포탄이 떨어지는 평원을 지나 적 방향으로 전진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급조폭발물(IED)을 해체하는 전문가 역시 생과 사의 경계선에 기꺼이 선다.


실전과 체험에서 오는 군인 가치관과 생사관


“허트 로커” 속에서 이라크 현지 저항세력이 설치한 타이머형 급조폭발물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폭발물처리반(EOD) 요원은,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기꺼이 감내한다. 감내의 실체가 참전자 인터뷰, 퇴역 노병의 수기 등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전장 속 장병은 사방에 퍼진 포연, 둔중한 울림, 날카로운 폭발음을 생생히 오감으로 느끼면서 손이 떨리거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등의 신체적 부작용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내가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팀, 전우 혹은 가족, 국민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상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 신념을 위해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이론과 교육이 아닌, 실전과 체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군인의 가치관, 생사관이다.


현대전에서 부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방식 : 비판적 사고와 전략적 사고


오늘날 전투지역에 파병하는 많은 국가는 장병들에게 실전과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가치관, 생사관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현대의 군사강국은 ‘명령에 복종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포화 속을 전진하라’든가 ‘용기를 가지고 적의 기관총 진지를 향하여 돌격하라’는 식으로 생사관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왜 죽음의 가능성에 다가서고, 생의 경계 끝에 와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구체적으로 답하게 한다. 평시, 작전 투입 전에 부상의 공포,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 신념과 군인의 생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국가급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여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사례와 인문사회과학 서적, 영화, 음악 등의 도구 등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런 교육 방법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장병 스스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더 나아가서 ‘전략적 사고(straightigical thinking)’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 합동참모대학에서 정의내리길 현대 전장이 전투원에게 요구하는 최우선은,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의 틀을 규정하는 능력’이다. 과거 전장에서 장병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complex and unpredictable) 현대 전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해법이 주어지기는커녕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각개 장병이 전략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환경과 위협을 분석한 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분석의 틀을 마련하여 해법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허트 로커”를 미 합동참모대학이 시청각 교재로 선택한 이유


“허트 로커”는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개봉 당시 당대 유명 비평가 협회의 극찬과 함께 상을 휩쓸었고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고 작품, 감독을 포함한 6개 부문의 상을 가져갔다. 동시에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군대와 그들의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도 하고, ‘전술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전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 합동참모대학에서는 “허트 로커”를 ‘현대전의 이론과 실제’ 강의의 참고자료로 한동안 활용했다. “허트 로커”가 묘사하는 전장환경과 위협, 전투원의 인식과 행동이 실제 미군이 처한 그것과 매우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트 로커”는 미 합동참모대학이 요구하는 전투원의 실제 모습을 화면 속에 잘 구현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이라크 바그다드의 낯선 도로 위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 분), 샌본 하사(앤서니 매키 분) 등에게 그 누구도 도상에 놓인 불상의 장애물이 그저 타다 남은 차량의 잔해인지 포탄을 개조한 급조폭발물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주변에 모이거나 흩어지는 불특정 민간인들이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 누군가 원격격발기를 누르는 것 같은 의심이 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급조폭발물의 신관을 찾아서 해체해야 하는지 그대로 두고 관찰해야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의 틀을 규정해야 하며 해법을 만들어낸 후 스스로 용기를 내어 급조폭발물을 해체한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보면 “허트 로커”는 분명 불편한 지점도 있지만, 전장의 실상과 전투원의 심리를 간접체험하기에 좋은 수작이다. 파병 경험이 있거나 폭발물 해체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전술 고증 부분이 영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의 솔직한 후일담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산과 시간 부족 때문이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YTN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