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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l 19. 2024

목침

인간이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꿉꿉한 문자 위에 누워있던 나는, 그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머리 위엔 또 꿉꿉한 종이가 내려와 있었다.


오늘도 인간이 시를 썼나 보다.

그건 인간의 마음이 오늘도 아파서일 거다.


때마침 구멍 사이로 자그마한 빛이 들어왔다. 우선 머리 위에 내려진 종이를 밟고 올라서야 했다. 무언가 적혀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내 소원은 다음 생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개미가 아닌, 글을 볼 수 있는 동물로 태어날 거다. (그러나 인간이고 싶진 않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와 인간이 쓴 시를 단 한 편이라도 읽어보고 싶다.


빛이 들어오는 구멍으로 바깥 구경을 했다. 밖이라 해봤자 인간에게는 방 안일뿐이지만. 

그곳에서 인간이 흘리고 간 음식물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는 다시 구멍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목침 앞에 다다랐을 때 즈음. 나는 망설였다. 꿉꿉한 서랍 안에 바로 들어가긴 싫었기 때문이다.


문득 인간이 베고 자는 서랍 위 세상이 궁금해졌다.


나는 처음으로 그곳에 올라가 봤다.

힘들게 올라선 그곳은 서랍 안처럼 넓었다. 그러나 밝고 트여 있었다.


이 넓은 세상에 머리 하나밖에 누이지 못할 인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가 왜 시를 쓰는지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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