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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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카메라 초점이 흔들려서 라일락이 라일락이라는 것만 알아챌 정도로 흐릿하게 나왔다.

그러나 사진이 흔들려도 꽃의 이름은 변함없이 라일락이다. 그것이 '락일라'가 되지도 '라아이일라아악'이 되지도 않는다. 이름이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안 되니까.


2023년에 맡은 라일락 향기와 2024년에 맡은 라일락 향기는 다르다. 그것을 똑같은 자리에서 맡았음에도. 아, 똑같은 자리라고 할 수도 없겠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까? 대략 이쯤이다 싶은 거지.

같은 곳이 아닌 비슷한 곳에서 작년과 같지 않은 비슷한 향을 맡더라도 그것이 그때와 변함없는 것이라 믿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매년'이라는 말을 붙여 게시하기도 하는데.

이만큼 같다는 걸 말하려는 건지 이만큼 변했다는 걸 말하려는 건지 모르지만,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조건이 부합하지 않아 긴 설명은 더 붙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초점이 흔들려도 그것을 라일락이라 적고

변함없음, 변해감 어느 쪽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남기고 보는 것

그것도 나는 '기록'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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