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Sevilla)에서 출발하는 길, via de la Plata
2022년 9월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스페인 세비야(Seviila)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0km를 걸어가는 순례길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2012년 북쪽 길을 걷고 난 이후 대학에서의 새로운 직장생활이 시작되면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이상 시간을 낼 수 있는 방학에는 계절적으로 까미노를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2019년 5월 나는 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을 떠났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레온에 도착한 다음 포르투칼 포르투로 이동하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였다. 그 해는 프랑스 길과 포르투갈 길 일부 구간을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해 겨울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전염병은 세계를 한순간에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의 네 번째 순례길 걷기는 그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2022년 한동안 퍼붓던 여름 무더위가 지나갈 즈음 초 가을에 다시 시작되었다.
하루에 25km씩 약 40일 동안 걸어 도착한다는 까미노, 은의 길(Via de la Plata. Silver Way)을 염두에 두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동안 은의 길 가이드북은 아마존을 통해 직구하고 까미노 카페에서 구간별 거리와 숙박 시설 정보를 수집하여 일정을 수립하였다.
세비야(Sevilla)는 잘 알려진 대로 훌륭한 사적을 많이 갖고 있는 역사적 도시이며 안달 루시아 지방의 열정적인 춤 플라밍고로 널리 알려진 도시였다. 그러나 8월 말 출발하는 나의 일정은 고온의 기후에 자외선도 강하고 마르고 거친 땅을 걸어야 하는 악 조건 때문에 염려를 안고 시작해야 했었다.
9월의 첫날 나는 스페인의 남서부, 안달 루시아 지방에 있는 은의 길(via de la Plata)의 출발지 세비아(Sevilla)로 날아갔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 도보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까미노 ‘은의 길'의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제국의 히스파니아 속주 시절 주요 도시였던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와 살만티카,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를 잇는 로마 가도에서 기원했다고 했다. 세비아에서 출발하여 사모라(Zamora) 이후 그랑하 데 모레루엘라(Granja de Moreruela)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하나는 아스토르가(Astroga)로 향하여 까미노 프랑세스에 합류하는 길, 또 하나는 사나브리아(Sanabria) 산악지대와 온천 휴양지인 갈리시아 오우렌세(Ourense)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사나브리아 길(Camino Sanabres)을 걸어야 했다.
파생된 루트로는 안달루시아주 알메리아, 그라나다, 코르도바를 지나 메리다에서 합류하는 모사라베 길(Camino Mozárabe), 항구도시 카디스(Cádiz)에서 세비야까지 구간을 더 걷는 아우구스타 길(Via Augusta) 등이 있다.
기원이 고대 로마의 군사·무역로인 만큼 역사가 깊고 유적 등의 볼거리도 많다. 순례길의 시작점인 세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메리다(Merida)는 로마 극장, 수도교, 디아나 신전 등 유적이 유명하다. 또한 스페인 최초의 대학인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는 살라망카, 로마 성벽과 가우디 주교궁이 있는 아스토르가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야고보 사도에 관한 그리스도교 전승도 사도의 선교활동이 이 로마 가도를 따라 이루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역사가 오랜 길인 만큼 스페인 N630 국도가 이 은의 길을 따라 나 있어 순례 도중에 큰 도로를 자주 만날 수 있으므로 보행 중 차가 지나가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나무위키에서 퍼 옴)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오느라 나의 무디어진 몸과 나약해진 정신을 회복할 결심으로 '은의 길’을 선택하고 바르셀로나를 거쳐 알함브라의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제 세비야(Sevilla)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젊은 순례자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트리아나 백페커스(Triana Bagpackers) 호스텔에 도착하여 배낭을 풀고 프론트에서 순례자 여권(Credencial Pass Port)을 구입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위해 웅장하고 화려한 세비야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도시 세비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고딕 양식의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이 있으며 세계 10번째 규모의 대성당인 이곳에는 15세기 신 항로 개척을 위해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묻혀 있는 곳이다. 대성당은 스페인 지방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던 시절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직후, 무어 양식으로 지어진 옛 이슬람 모스크는 곧바로 성당으로 그 용도가 전환되었고 모스크의 내부는 성당의 용도에 맞게 제단이 설치되고 기독교 성물들이 모셔지는 등 크게 고딕 양식으로 리모델링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고 세비야의 또 다른 명소인 웅장한 에스파냐 광장은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항상 단체 관광객들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 장소로 내가 도착했을 때는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으며 성당의 내부는 웅장하고 엄격한 느낌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입구에서 제단까지 깔려 있었다.
성당을 나와 이제 에스파냐 광장을 찾아갔다. 세비야의 대표적 광장 에스파냐에는 넓은 호수를 두고 건물을 따라 길게 나 있는 회랑이 있었으며 공연 장소에는 두 명의 무희가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열정적인 춤이 끝나자 구경꾼들이 너도 나도 앞에 놓인 모자에 동전을 던지며 즐거워했었다.
까미노 카페에서 회원들이 언급한 은의 길에 대한 소회는 초반에는 지루하고 척박한 땅을 걷는 날이 많아 그다지 매력이 없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아무튼 루트의 중간을 훨씬 지난 지점의 사나브레스(Sanabres)에 이르러서야 순례길은 깊은 숲과 계곡과 강과 호수가 있으며 그럴듯한 자연 풍경에 매료되어 걷다 보면 은의 길은 목적지에 다다른다고 적혀 있었다.
8월말의 스페인 아침은 천천히 나타났다. 서머타임(summer time) 때문인지 아침 8시가 다 되어야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다. 무더운 날씨가 앞으로 한 달 이상은 지속될 거라는 기상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야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아침 6시에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아직 어둠 컴컴한 호스텔 골목을 빠져나와 잔뜩 긴장을 하며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넓은 길로 들어가 거리의 희미한 가로등이 줄지어 비추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는 어디론 가 떠나는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며 지나다니고 가끔 골목에서는 술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워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거친 소행에 부딪힐까 봐 나는 순례길 상징인 노란 화살표를 단단히 확인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도시를 벗어나려 노력했다.
까미노 루트를 표시하는 노란 화실표는 전봇대와 담벼락, 가끔은 길바닥에도 금속으로 제조된 순례길 가리비 표식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감사하며 걸어갔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승객들을 태운 세비야의 대중교통 수단인 트램이 지나가고 있고 거리에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부산한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났다. 까미노 루트는 이제 우측의 이사벨 2세 다리 입구를 지나 알폰소 13세 운하를 바라보며 걸어가도록 유도했다.
아침의 청량한 공기가 긴장을 계속해야 하는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도시의 외곽에 들어선 듯 주변은 건물들이 낮아지고 자동차 행렬은 잦아들었다. 보도블록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 서서 시선을 주변에 두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확실히 줄어들고 아직도 어둑한 길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며 걸었다. 그러나 나의 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노란 화살표만 찾아보고 걷는 중이라 근처의 거리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세비야 시내를 지나가는 길과 함께 운하가 있고 그곳에는 시민들을 위한 놀이터 광장이 여러 곳에 있었다. 이때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은의 길(Via de la Palta), 1,000km 표지석을 발견했다.
이제 세비야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고가 도로 아래 교각을 지나 회전교차로 옆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세비야 시내를 흘러가는 과탈기비르(Guadalquivir) 강을 만나 돌로 건설된 다리를 건너고 나는 처음 만나는 마을인 산티폰세(Santiponce)로 가는 두 갈래 길에 들어섰다. 여기서 자동차 도로를 피해 억새와 높게 자란 나무들이 가득한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을 선택하고 우측으로 들어섰다.
가이드북에서는 강변을 걷는 길과 또 하나는 자동차 갓길을 소개한다. 까미노 카페에 올라온 글에는 강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자동차 길을 따라가면 가깝지만 위험하니 순례자의 정서상 조용하고 강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길을 추천한다는 글이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이었다.
강변을 지나가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길이라 헤드 랜턴에서 비치는 불빛을 따라 걸어갔다. 강변을 따라 넓게 키가 작은 나무들과 높게 자란 풀들이 아침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강물은 아직 아침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흘러갔다. 헤드랜턴을 켜야 해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배낭 사이드 포켓에 넣어둔 랜턴을 꺼냈다. 어두컴컴한 길에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자연속으로 들어와 있음을 직감했다.
한동안 이어지던 강변 길은 갑자기 왼쪽 방향으로 이어졌다. 산티폰세(Santiponce)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나타났다. 높게 자란 풀 사이로 좁은 길이 보였으며 이때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의 어둠속에서 꽤 낮 설은 광경이 나타났다. 걸음을 멈추고 건너편 상황을 살펴보자 나는 멈칫 머리가 쭈뼛할 정도로 호흡이 정지되었다. 자동차 도로가 지나가는 높은 교각 아래에 헤드램프가 켜진 두대의 자동차가 있고 남녀 젊은이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주변은 아직 어두웠고 외진곳에서 불량배들이 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저들이 있는 곳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나가는 나를 세우고 틀림없이 시비를 걸거나 돈을 요구하면서 해를 가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이곳에서 기다리다 주변이 밝아지면 그때 저들이 있는 곳을 지나갈까 생각했다. 이때부터 내 몸의 핏줄이 부풀어 오르는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걸음을 멈춘 자리에서 조금 더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특히 외국인이라는 점과 어두운 시간에 만나는 그들은 나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혀 두려움에 빠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한없이 흘러가도 주변은 어둠에서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꼼짝하지 않고 주차된 자동차에서 밝히는 강한 불빛 아래 음악을 크게 틀며 춤도 추며 마냥 한자리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별안간 마주친 이런 심각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운명에 맡기고 가야 할 길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그들을 응시하면서 걸어가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최고의 긴장감과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교각 아래 모여 있는 그들 옆을 지나갔다. 내가 자동차에서 비치는 불빛을 지나가는 동안 제발 그들이 눈치채지 못했음을 기대하면서 달리기하는 사람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지나쳐 다시 어둠속의 아스팔트길을 뛰다시피 걸어갔다. 헤드랜턴이 비치는 길을 응시하면서 앞쪽만 똑바로 쳐다보고 숨을 죽이며 마라톤 선수처럼 걸어갔다.
그들을 벗어나 20미터쯤 지났을 때 뒤에서 “세뇰” 하고 남성의 목소리가 공명이 되어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명이 같이 나를 따라오는 듯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 무슨 말을 하며 계속 “세뇰”을 외치며 나를 불러 세우려 했다. 나는 내 위치를 감추기 위해 재빠르게 헤드랜턴을 끄고 잡히지 않으려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깨에 매달린 배낭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며 제발 그들이 따라오길 포기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때 길가의 공장 건물에서 줄달음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개들이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내 위치가 탄로 날 것 같아 나는 노심초사하며 걸어야 했다. 나는 저놈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몇 푼이라도 건네주어야 해를 끼치지 않을 거 같아 걸어가면서도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어둔 300유로 지폐를 꺼내 200유로는 팔토시 안에 감추고 그들이 돈을 요구하면 100유로는 주기위해 호주머니에 다시 넣어 두었다. 그렇게 계속 나를 붙들기 위해 따라오던 그 놈들이 추적을 포기했는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끊어지고 발걸음 소리도 조용해졌다. 어슴푸레하게 주변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해서 근처의 사물이 보이며 나는 그제서야 큰 숨을 들이켰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나서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때는 어슴푸레하게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고 그때서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앞가슴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느낌으로 배낭에 걸어둔 물 파우치의 빨대를 입에 물고 연거푸 들이마셔 댔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시원한 느낌의 물맛을 강렬하게 느끼며 자리에서 그대로 한참동안 앉아있었다.
스페인 신문에는 가끔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강도를 만나 피해를 입은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까미노 첫날에 내가 받은 큰 두려움과 혼란은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길바닥에 앉아 제멋대로 자란 풀섶에서 피워 오른 풋풋한 풀 냄새를 맡았다. 이제야 사방으로 아침의 고운 햇살이 풀밭과 시멘트길 위에 내려 앉았다. 풀속에서 풀벌레들의 외침이 주변에 가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순례길은 곧 낡고 오래된 집들을 지나 조그만 공장들이 붙어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산티폰세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벌써 걷기가 지루해져 가는 느낌이 왔다. 나는 다시 나타난 넓은 밀밭을 향해 걸어가 마침내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에 들어서자 이쯤 되면 도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곳에서 노란 화살표를 따라 언덕으로 향하는 길을 올라가자 왼쪽에 렙솔(Repsol) 주유소가 보여 마침 화장실을 이용할 겸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기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용량이 큰 시원한 콜라를 꺼내 2유로를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탄산이 입안에서 보글거리는 느낌을 즐기며 벌컥벌컥 마셔 댔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 절반가량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까미노의 첫날 우여곡절 끝에 산티폰세(Santinponce)로 들어왔다. 이곳은 말끔한 주택들이 타운을 이루어 모여 있었으며 도로는 한적했다. 도로를 따라 걷다 바르의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침 식사를 위해 카페콘레체 한잔을 마시며 좀 쉬었다 가고 싶었다.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고 어제 준비한 머핀과 사과를 꺼내 같이 먹었다.
이제 아홉시가 넘어가자 붉은 해가 점점 대지를 덥혀가고 있었고 대체적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평탄한 길을 걷고 있었다. 가을의 넓은 평원에는 밀들이 쑥쑥 자라고 있고 가끔 농기계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기예나(Guillena)는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야 했다. 그곳에는 광활한 대지들이 숨을 내쉬며 내 앞에 꾸준히 초록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숙소가 있는 기예나(Guillena) 마을까지는 13km를 더 걸어야 했다. 자동차가 자주 지나가는 갓길에 까미노 표시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얼마동안 이런 길을 가야 할지 모르지만 차도와 갓길을 번갈아 걸으며 앞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길을 옮겨 다녔다. 그러다 내 앞에 걸어가던 순례자 부부를 만났다. 나는 순례자 부부를 앞질러 가려다 그들에게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며 아침에 겪었던 위험했던 상황을 얘기하자 그들은 어제 호텔에서 이른 아침 강변길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세비야에서 택시를 타고 산티폰세로 와서 순례길 걷기를 시작했다고 하며 다행이라고 위로를 했다.
까미노 루트는 산티폰세를 완전히 빠져나와 회전교차로를 돌아 우측으로 들어섰다. 마을에서 떨어진 이곳은 밀밭과 옥수수, 그리고 채소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이라 가을에는 땅을 갈아 엎어 놓아 온통 흙더미들만 바라보며 걸었다.
가끔은 잡초가 무성한 넓고 황량한 지역을 지나 드디어 오늘 목적지 기에냐(Guillena)가 가까워 오면서 이제 자동차와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모습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가이드 북에는 기에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기에냐(Guillena)는 고대부터 로마와 아랍의 과거를 가진 마을이며 전통적 농업을 유지하고 있다. 강이 흐르고 Huelva와 Cala지역의 강둑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며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고장이라고 적혀 있다(나무위키 퍼옴).
기에나에 도착했을 때 오늘 마을 축제가 있다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작고 약간 낡은 건물 안에 있었다. 숙소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물었더니 오늘이 이 지역 수호성인 축제라 모든 식당과 바르는 문을 닫았으니 전통 시장의 음식 코너에서 사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시골 장터에서 열리는 축제 구경과 야외에서의 맛보는 지방 음식은 나에게 궁금증을 일으켰다. 수호성인의 축제는 한밤중에 시작하므로 저녁 식사와 맥주 한잔으로 배고픔을 달래기로 했다. 시장은 알베르게 바로 뒷골목을 나서면 나왔고 장터에는 칸막이마다 음식 판매 코너가 있고 옷을 파는 가게, 기념품 가게.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 임시 천막들이 보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벌써 흥이 나서 몰려다니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을 차례대로 구경하다 닭고기 튀김을 팔고 있는 천막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튀김 한 접시를 주문하고 맥주를 추가해서 한쪽 귀퉁이 비어 있는 테이블로 갔다. 테이블 건너편에 가족을 동반한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이 먼저 앉아 있었는데 엄마가 아들한테 화가 난 얼굴로 남자 아이를 심하게 야단치는 바람에 같은 테이블에서 치킨을 먹는 동안 나는 내내 유쾌하지 않아 서둘러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숙소 주인은 밤에 멋진 축제를 하니까 꼭 구경하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부터 기온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축제는 밤새 진행되었고 새벽녘에도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자 도로에 주민들이 모여 축제를 이어가는 고적대를 앞세우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보도블록에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느라 갈 길이 바쁜 나는 어쩔 수 없이 군중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마침 같은 숙소에서 지낸 순례자들이 일렬로 헤드 랜턴을 켜고 군중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어서 나도 재빨리 그들 뒤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기에냐를 벗어나 넓은 호밀 밭이 있었던 들판으로 나왔다. 햇살이 올라오며 들판은 누런 색깔로 나에게 부딪히며 무리들로 벗어난 탓에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까미노 루트는 연중 기온이 높은 조건의 땅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 농원을 지나갔다. 가끔 길에 헌팅 지역(hunting area)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나서 이곳에 무슨 동물이 있길래 사냥을 허락한 지역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올리브나무 농원이 끝나고 바위와 나무 숲과 거칠고 마른 풀이 길게 자라는 땅을 지나가며 진짜 사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옆에 지프와 픽업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었고 사냥꾼들이 사납게 생긴 사냥개들을 데리고 있었다. 나는 사냥총을 들고 있는 사냥꾼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긴장을 해서 걸음을 재촉하여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야겠다 고 생각했다.
이때 근처에서 "타타닥" 하고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냥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편 숲으로 사슴 한 마리가 사냥개 앞에서 요리조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동물을 살생하는 행위를 네추럴파크에서 자행하니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나는 사냥 지역을 빨리 벗어나고자 서둘러 걸었는데 내 앞에는 실망스럽게도 점점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그런 너덜길에 말라버린 흙먼지가 계속 날아올랐고 그곳에서 거의 두 시간 이상을 거칠고 무딘 길을 걸어야 했다.
까미노 루트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숲이 많았다. 스페인의 유명한 이베리코 돼지가 참나무 숲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먹고 자라 육질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을 지명이 매우 긴 까스티브랑코 데 로스 아로요(Castilblanco de los Arroyos) 뮤니시팔 숙소에 들어왔다. 호스피탈레노가 이곳도 기에나와 같은 마을 축제로 식당들이 문을 닫았으니 근처 수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사와 주방에서 만들어 먹으라고 안내를 했다.
샤워를 끝내고 배가 고파 무엇이든지 먹기 위해 일단 구글 맵에서 영업 중인 바르를 검색해서 마을로 내려갔다. 손님들이 꽉 들어찬 바르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콜라밖에 없었다.
은의 길에서 처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주인이 알려준 슈퍼마켓을 찾아갔다. 늦은 오후 푸른 하늘에서 붉게 타오르던 해는 아직 자취를 감추려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건물에 가린 그림자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마을은 정말 텅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수퍼마켓에는 아쉽게도 저녁을 만들어 먹을 만한 재료가 별로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계란 한 박스와 내일 먹을 간식으로 오렌지 주스, 사과, 납작 복숭아 그리고 덤으로 오레오 비스킷을 준비했다.
라면에 계란을 두 개 넣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옥상의 테이블로 나왔다. 이번 순례길 걷기를 준비할 때 뜨거운 물만 준비하면 가능한 다섯 개의 컵라면 사리와 수프를 별도로 포장했고 비상용 음식으로 육포를 준비했다. 라면의 진한 국물 냄새가 벌써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영어로 제작된 은의 길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며 내일 까미노 루트를 체크했다. 알베르게에서 곧장 자동차 길을 따라 약 16킬로 정도를 걸어 내추럴 파크(Natural Park)가 나오면 공원안으로 들어가 나머지 거리를 걷게 되어 있었다. 갓길이 따로 없는 시골 아스팔트길을 4시간 이상 걸어가기 싫어서 나는 호스피탈레노에게 아침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내추럴 파크까지 간 다음 '알마덴 데 라 프라타(Almaden d la Plata)를 지나 목적지인 'El Real de la Jara까지 걸을 생각이었다.
뮤니시팔 알베르게는 시설도 깨끗하고 친절하며 기부금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어제 준비했던 빵을 꺼내 오렌지 주스와 함께 먹었더니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오렌지 주스 병은 용량이 커서 한번 먹고 나면 작은 플라스틱 병으로 옮겨 배낭 옆에 넣고 다녔다.
알베르게 앞에 어제 예약한 택시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택시가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가 전화를 해서 택시 기사에게 다그치는 표정이 미안했다. 택시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자 도로에 들어서고 길게 쭉 뻗어 있는 자동차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도로에는 아침에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지나가고 이에 택시도 뒤질 새라 속력을 내며 거침없이 달려갔다. 택시가 내추럴 파크 앞에 멈출 때까지 나는 긴장을 해야 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내려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까미노 루트 표시는 내추럴 파크(Parque Natural Sierra Norte) 정문에도 붙어있었다.
출입문을 지나 직선으로 길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Almaden de la Plata'로 향하는 참나무 숲길을 향해 막연하게 걸어갔다.
이번 도보 여행은 마음을 비우고 침묵과 참선을 경험하듯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온전한 여행이 될 거라고 나는 다짐했었다. '내추럴파크'. 자연공원인데 공원을 찾는 사람은 오직 순례자들과 사냥꾼들만 있는 것 같았다. 공원에는 단지 도토리 열매가 열리는 참나무과 나무가 무성할 정도로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일정한 지역을 지정하여 울타리를 쳐놓고 공원이라 지칭한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공원은 삭막하고 건조하였다.
선진국의 자연공원들은 산림으로 우거진 숲 속에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었다. 또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휴식 공간도 많이 있는데 이곳은 공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삭막했다.
무덤덤하고 건조한 불모지 같은 지역을 한참 지나가는데 이 곳에도 '스포츠. 사냥 허가 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후에 근처에서 총소리가 들려와 나는 바짝 긴장을 하며 걸어가야 했고 혹시 조용한 숲 속에서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동물로 착각하여 사냥꾼들이 총을 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며 걸어갔다. 숲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아 가까이에서 사람과 동물의 식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보이는 가파른 경사길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정말 사냥꾼들이 갑자기 길에 나타나 하늘로 공포탄을 쏘는가 하면 다른 사냥꾼들과 무전기로 연락을 하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냥을 허용한 지역에 까미노 루트가 조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길에서 또 바위 위에서 긴 엽총을 들고 사냥개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들은 아마 나 같은 순례자들이 사냥 지역을 지나가는 것에 매우 귀찮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는 강한 햇살이 끊임없이 내려 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가슴에 차오른 땀은 갈 길을 무디게 만들었다. '부엔까미노' 앱을 들여다보았더니 중간 조그만 마을 '알마덴 데라 프라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까미노 루트는 다시 고도를 천천히 높여가고 있었다. 'Almaden de la Plata’ 마을 사인을 보고 반가웠다. 마을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우선 참치가 들어있는 샐러드에 토마토 수프로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엘레알 데 라 하라(El Real de la Jara)' 가는 길에는 도토리가 무수히 떨어져 있는 참나무 숲길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특별한 풍경도 없는 무색 무취한 길을 진짜 순례자가 되어 고행의 길을 걷는 경험을 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에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엘레알 데 라 하라'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가랑비를 만났다. 무척 시원했지만 빨랫줄에 널어둔 빨래가 젖기 전에 거둬들이느라 부리나케 마당을 다녀왔다.
스페인 식당들은 저녁 8시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한다. 다행히 '바르'는 열려 있지만 식사를 하기에는 먹을 만한 메뉴가 없었다. 그런데 마을 끝에 문이 열린 식당을 발견해서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에 오징어 튀김요리 깔라마리(Calamari)'가 있었다. 올리브 오일로 요리한 오징어는 약간 느끼했지만 콜라와 먹었더니 저녁 식사로 안성마춤이었다.
밤새 비가 많이 내려 마을 곳곳에 물 웅덩이가 많이 생겨났다.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 중심 거리로 걸어가자 문이 열러 있는 카페에 일하러 가는 인부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카페의 출입문 앞 원탁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단골 메뉴인 카페콘레체와 진열장에 넣어둔 오믈렛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두터운 오믈렛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고 커피와 매칭이 잘되어 훌륭한 아침 식사를 하고 일어났다.
비가 그친 마을의 거리에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부딪히며 지나갔다. 나는 이런 상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으며 걸어가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럴 때마다 조용한 순례길은 마치 푹신푹신한 양탄자처럼 내게 다가왔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며 자아의식에 빠지곤 했었다.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어디선가 구수한 빵 냄새가 풍겨와 발걸음을 멈추고 진원지를 찾아냈다. 근처에 간판은 없지만 빵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길쭉한 바게트를 만드는 창고 같은 건물에는 막 구은 빵이 차곡차곡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나를 보더니 웃으며 “빵” 하고 묻는다. 스페인어로 빵은 'Pan'이다. 길쭉한 바게트 빵 한 개에 1유로를 받았다. 빵을 봉지에 넣어 나에게 주며 남자 주인은 나에게 웃음을 띄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까미노를 알리는 방향 표시는 치즈를 만드는 공장 옆을 지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가파른 경사가 있는 길로 들어서고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스틱을 밀어내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자 그곳에는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커다란 정원을 가진 저택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아담하게 자리한 마을 풍경을 바라보았다.
넓은 정원을 갖고 있는 저택들의 낮은 담 안으로 쑥쑥 자란 침엽수들이 서 있고 그 아래는 두껍게 누렇게 말라버린 낙엽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곳에서 천천히 내리막 길로 접어들었다. 길을 따라 이끼 낀 돌담이 계속 이어지고 소나무 숲도 지나갔다. 그곳에는 오랫동안 쌓인 낙엽 때문에 거름 같은 토양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언덕을 다 내려가자 앞에 나타난 개천이 어제 내린 비로 건너가야 할 다리가 물에 잠겨 보이질 않았다. 나는 통로가 차단된 개천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혹시 개천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지만 모든 곳에 물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어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휴대폰을 켜고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GPS가 있는 '부엔까미노' 앱을 켰다. 'Monesterio' 가는 대체 길은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천을 건너가는 방법을 포기하고 내려온 길을 따라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개천 쪽에서 공사용 픽업 트럭이 물이 차 있는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구글 번역기를 열어 '다리에 물이 넘쳐 못 건너가니 나를 좀 개울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 라고 작성하고 픽업 트럭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트럭이 다가와서 나는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운전석으로 가서 번역된 글을 보여주었다.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외쳤다. "트럭에 타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뒤편의 화물칸을 가리켰다. 나는 배낭을 화물칸에 올려놓고 뛰어올라서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차를 돌리더니 물이 차올라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 길에 나를 내려주었다. 그러면서 이 도로는 자동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데 아침에 목장 창고에 전기 공사를 하러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남자들의 고마움에 답하려고 은행에서 신권으로 바꿔온 천 원 지폐 두 장을 기념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한국 돈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산티아고까지 잘 가라고 엄지 손을 들어 보이며 돌아갔다. 나는 그들의 차량이 언덕으로 다시 올라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넘쳐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포기한 순간,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도와준 그들에게 나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개천을 지나자 근처에 거의 허물어진 옛 성곽이 보였다. 구글을 검색하면 이곳이 14세기에 세워진 카스티요 데 라 하라 (Castillo de la Jara) 성이라고 알려주었다. 성곽 근처를 지나자 이제 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상당히 경사가 높은 언덕이 보였다. 이곳부터 진정한 순례자의 인내를 시험하듯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고개에 오르자 이곳부터 안달루시아(Andalucía)에서 엑스트레마두라 주로 넘어가는 경계선을 지나가는 표지판이 나왔고 이제 조금씩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은 다시 정말 지루할 만큼 계속 나타나는 참나무 숲과 돼지들을 방목하는 농장들, 철선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목장에는 번호표를 달고 있는 등치가 큰 소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때로는 그들 사이에 흰털이 뭉쳐져서 헝클어진 양들도 있었는데 참나무 그늘아래 옹기종기 모여 풀을 뜯고 있는 풍경도 보였다.
이렇게 답답하고 지루한 길에서 문득 음악이 생각났다. 이어폰이 필요 없으니 핸드폰에 저장된 '멜론'을 열어 그동안 간추려서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고 걸어갔다. 그동안 걷기에 온 정신이 몰두해 있었던 시간 때문에 아마 잊힐 수 있었던 음악들이 나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자주 듣는 곡 '한계령’을 첫 음악으로 시작해서 전체 재생을 눌렀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 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 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여름날 산에 오를 때나 한적한 농촌 길을 걸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 '한계령'이다.
엘 레알 데라 하라(El Real de la Jara)를 향해 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났을 때 편의점과 주유소가 나타났다. 오아시스 같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마시며 땀을 식혀 보았다. 자동차 도로를 횡단하는 육교위에서 분주히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까미노는 계속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도로 옆을 따라 지나갔다. '모네스테리오(Monestrio)'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알베르게에는 4명의 순례자들이 있었다. 여성 호스피탈레노가 매우 친절하고 순례자들을 한사람씩 각각 1인실로 배정해 주어서 특급 대우를 받은 기분이었다.
배낭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가 식당이나 바르, 슈퍼마켓에 갔었지만 '씨에스타' 시간을 철저히 지키느라 영업을 하는 곳이 없어서 일단 포기하고 돌아와 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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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짙푸른 하늘을 마주하며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여름이 다 가시지 않은 듯 낮 시간에는 더위가 한창이었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와 어제 저녁을 먹은 Leo호텔 식당 문이 열러 있어서 아침 식사로 커피와 빵을 먹으려고 들어갔다. 식사는 단순하지만 그래도 걷기위해 매일 빵과 과일은 기본으로 섭취해야 했다. 가을 풍경을 닮은 하늘에 뭉개 구름이 밀려다니는 아침이었다. 이곳은 대체적으로 노랗게 물 들어있는 밀밭을 지나가거나 올리브나무 농원들이 있는 지역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가끔 조그만 호수가 있고 오래전에 조성된 듯 공원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벤치도 있었다. 이곳에서 잘 익은 바나나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올리브나무 농원에는 구역을 구분하기위해 각자 돌담을 쌓아놓은 곳이 많았다. 농원을 지나면 소들을 방목하는 넓은 목장이 철조망 사이로 나타났다. 구릉을 따라 마른 풀들이 널브러져 있는 정리되지 않은 듯 모습과 간간히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섞여 조성된 목장에는 때때로 돼지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며칠동안 길에서는 한 사람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숲속으로 들어오니 통신도 잘 연결되지 않아 앱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며 걸어가야 했다. 어느 순간에 순례길이 조금씩 좁아지면서 까미노 방향 표식이 나타나지 않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방향을 잘못 들었다는 예감이 들어 오프라인 앱인 '맵스미'를 열어 위치를 확인했다. 내 위치를 알리는 빨간 커서가 정상적인 루트에서 상당히 떨어진 길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느 갈림길에서 화살표를 확인하지 않고 지나친 것이 탈이 난 것이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숲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무척 당황스럽고 두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숲 너머로 멀리 자동차가 가끔 지나다니고 있는 길이 보였다. 나는 일단 자동차 도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앞에 보이는 길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앞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SUV 자동차가 덜컹거리며 내가 있는 좁은 길로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자동차가 나타날 거라고 전혀 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너무나 놀랬다. 일단 가까이오면 운전자에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다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운전석에 혼자 있는 남자에게 가장 간단한 영어로 이렇게 외쳤다.
“아이 엠 필그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하고 외쳤더니 그가 스페인어로 얘기를 했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내가 걸어온 방향을 가리키며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열고 까미노 길을 잃어버렸는데 나를 좀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남자는 잠깐 망설이더니 십 분 이상을 가야 한다며 일단 뒷자리에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나는 "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냉큼 뒷좌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천사가 나타나 본래의 길로 인도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조리며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부주의하고 경솔함을 후회하며 갈림길이 나타나면 꼭 가야 할 방향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다.
남자는 내가 걸어온 울퉁불퉁한 길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으며 나는 흔들리는 좌석에서 앞에 내다보이는 길을 응시하며 정차할 때까지 긴장하며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넓은 갈림길이 나타나자 노란 화살표가 건너편 커다란 바위에 표시되어 있고 그는 나를 내려주며 가야 하는 까미노 루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에게 또 천 원 지폐를 건네면서 한국 기념품이라 했다. 남자는 지폐를 받고 신기해서 굉장히 기뻐했다.
이제 두 번이나 천사를 만나게 되었다. 까미노에서 길을 잃고 당황할 때 이렇게 불쑥 나타나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이 천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순례길 걷기에 나서면서 내가 다니는 성당 신부님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이 축복해 주시면서 매일 안전하게 걸어서 산티아고에 잘 도착하도록 미사 때 기도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오늘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먼저 오늘 일어난 사실을 전하며 신부님께 감사의 문자를 보내 드렸다.
그동안 프랑스 길, 북쪽 길, 포르투갈 길을 걸어 4대 순례길의 마지막인 은의 길은 나에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참석하는 동호인 카페 '까미노' 에는 노령이지만 지금도 여러 해 동안 까미노를 다녀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나는 그분들을 만나면서 다리가 성할 때까지 걸어보겠다고 하신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원래의 길로 돌아와 안정을 되찾고 한적한 농촌 마을을 지나가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89킬로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온 나는 개천을 따라 올라가며 노란 화살표를 주의 깊게 살피며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픽업트럭이 다가와 농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가 내렸다. 트렁크를 열고 두툼한 사료포대를 꺼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입구에 있는 사료통에 몇 봉지씩 쏟아 붇고 있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돼지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모이통으로 모여들었다. 참나무 아래에서 맘껏 걸어 다니며 도토리와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자라는 돼지들은 축사안에서 일생을 보내는 우리나라 돼지들과 비교가 되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지내야 할 알베르게 'Hostal Vicenta'를 찾아왔다. 숙소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마치 귀족이 살았던 집 느낌이 나는 고급스러운 건물로 하루를 지내면서 마음에 들었던 숙소였다.
까미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Dia Supermarket에서 쌀(Arroz)과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피클을 그리고 만찬을 위해 레드와인을 사왔다. 키친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냄비에 밥을 안치고 후라이팬에 소고기를 구어 튜브 고추장을 꺼내 고기에 발라먹었다. 레드와인도 한잔하면서 진정한 까미노의 아름다운 저녁 만찬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난 요리 솜씨가 없어서 식당을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유럽 순례자들은 파스타와 스파케티를 주방에서 잘 만들어 먹었다. 나는 쌀밥을 먹고 남은 잔밥은 아침에 끓여서 누룽지로 먹고 때때로 계란을 프라이해서 밥 위에 얹어 먹을 때는 포만감이 최고였다. 계란은 여섯 개 들이 한 꾸러미를 삶아 배낭에 넣고 걷다 중간에 쉴 때 두 개 정도를 물이나 주스와 함께 먹었다. 까미노의 즐거움 중 하나가 또 걷다가 힘들 때 쉬면서 배낭 맨 위 수납 포켓에 넣어둔 간식을 꺼내 먹는 즐거움이 어릴 때 소풍을 가서 먹는 느낌과 똑같았다.
늦여름의 더위 때문에 어제 Fuente de Cantos의 밤은 더디게 지나갔다. 낮에는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내 뿜는 햇살로 힘겹게 걷고 있는 나의 얼굴과 볼에 뜨겁게 내려앉았고 기온이 내려가는 저녁이 되어야 살 거 같은 날들이었다.
오늘은 9월 15일이다.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 창틀 빈틈으로 찬바람이 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라 한낮의 열기는 한 여름과 같이 힘차게 이베리아 반도에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오늘 까미노 루트를 점검했다. Zafra까지 걷는 동안 Calzadilla de los Barros 와 Puebla de Sancho Perez를 지나 인구 18,000명의 도시 Zafra에 도착한다. 총 25km를 걷는 구간으로 오늘 일기 예보는 오후에 비소식이 들어 있었다.
며칠전부터 침대에서 머리와 얼굴 그리고 경직된 다리와 어깨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둘렀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 밥을 먹고 남은 누룽지를 냄비에 넣고 끓였다. 반찬은 어제 사온 피클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으며 아침에 쌀밥 누룽지를 먹고 출발하니까 우선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이른 아침이라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빠른 시간에 더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알베르게 ‘Hostal Vicenta 건물을 뒤로하고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발걸음도 빨랐다. 우선 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한 손에 들고 걸어보니까 발걸음이 더 간편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를 출발하여 한 시간 반쯤 지나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 마을로 들어갔다.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상점들과 은행 그리고 약국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레스토랑이 몰려 있었다.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의 잘 정돈된 건물들을 지나 시골 길을 30분쯤 걸어가면 까미노 루트는 왼쪽 큰 도로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무료한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Pueble de Sancho Perez)에 도착할 때까지 14킬로 구간은 은의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자주 보이는 지역을 지나 가야 했다. 가끔 경작을 하지 않아 그냥 버려둔 토지에는 억새들과 잡풀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 대지를 덥고 있었다.
평원을 지나는 무료한 길을 지나 3시간 반쯤 지났을 때 다음 마을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에 들어섰다. 거리는 씨에스타(Siesta) 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조용했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가다 가이드북에 보았던 카페 아바디아(Abadia)에 들어갔다. 턱 수염을 기른 남자 주인이 손님들 틈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했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오늘 목적지 자프라(Zafra)에 도착한다. 인구가 2만 명이나 되는 도시 자프라는 20개의 로마 유적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1443년에 건립된 페리아공작의 궁전인 가장 아름다운 Zafra 성(Castle)이 있지만 다녀올 수 없었다.
자프라(Zafra)는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s)주의 도시이자 자프라(Zafra) 코마르카(Río Bodión)의 주도라고 위키피디아에서 언급한다.
자프라 시내의 거리를 까미노 표식인 노란 화살표를 찾아가며 걸어갔다. 어제 자프라에 들어오기 전 프에브레 드 산초 페레즈 마을에 와인 농장 간판을 본적이 있었는데 자프라 도시를 빠져나가는 외곽의 회전 로터리를 가로질러 가자 포도 농원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의 포도나무 높이는 일반 포도나무 높이보다 현저히 낮아 특별했으며 아마 다른 품종으로 생각했었다. 구글에서 와인의 품종을 검색했더니 무르베드르(Mourvèdre)라고 하며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며, 짙은 탄닌과 다크베리, 야생적인 육향, 허브 풍미를 지닌 포도라고 알려줬다.
스페인 와인은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과 인기가 높아져 마트나 와인샵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다. 까미노 루트는 생각보다 마을 규모가 꽤 큰 Los Santos de Maimona 마을을 지나갔다. 길 바닥은 네모난 돌이 깔려 있었고 예전에는 부유함을 영유하던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났다. 잘 꾸려진 도로를 걸어가다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이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오늘 내가 지내야 할 알베르게 'Hostal Vicenta'를 찾아왔다. 숙소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마치 귀족이 살았던 집 느낌이 나는 고급스러운 건물로 하루를 지내면서 마음에 들었던 숙소였다.
까미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Dia Supermarket에서 쌀(Arroz)과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피클을 그리고 만찬을 위해 레드와인을 사왔다. 키친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냄비에 밥을 안치고 후라이팬에 소고기를 구어 튜브 고추장을 꺼내 고기에 발라먹었다. 레드와인도 한잔하면서 진정한 까미노의 아름다운 저녁 만찬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난 요리 솜씨가 없어서 식당을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유럽 순례자들은 파스타와 스파케티를 주방에서 잘 만들어 먹었다. 나는 쌀밥을 먹고 남은 잔밥은 아침에 끓여서 누룽지로 먹고 때때로 계란을 프라이해서 밥 위에 얹어 먹을 때는 포만감이 최고였다. 계란은 여섯 개 들이 한 꾸러미를 삶아 배낭에 넣고 걷다 중간에 쉴 때 두 개 정도를 물이나 주스와 함께 먹었다. 까미노의 즐거움 중 하나가 또 걷다가 힘들 때 쉬면서 배낭 맨 위 수납 포켓에 넣어둔 간식을 꺼내 먹는 즐거움이 어릴 때 소풍을 가서 먹는 느낌과 똑같았다.
늦여름의 더위 때문에 어제 Fuente de Cantos의 밤은 더디게 지나갔다. 낮에는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내 뿜는 햇살로 힘겹게 걷고 있는 나의 얼굴과 볼에 뜨겁게 내려앉았고 기온이 내려가는 저녁이 되어야 살 거 같은 날들이었다.
오늘은 9월 15일이다.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 창틀 빈틈으로 찬바람이 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라 한낮의 열기는 한 여름과 같이 힘차게 이베리아 반도에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오늘 까미노 루트를 점검했다. Zafra까지 걷는 동안 Calzadilla de los Barros 와 Puebla de Sancho Perez를 지나 인구 18,000명의 도시 Zafra에 도착한다. 총 25km를 걷는 구간으로 오늘 일기 예보는 오후에 비소식이 들어 있었다.
며칠전부터 침대에서 머리와 얼굴 그리고 경직된 다리와 어깨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둘렀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 밥을 먹고 남은 누룽지를 냄비에 넣고 끓였다. 반찬은 어제 사온 피클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으며 아침에 쌀밥 누룽지를 먹고 출발하니까 우선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이른 아침이라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빠른 시간에 더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알베르게 ‘Hostal Vicenta 건물을 뒤로하고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발걸음도 빨랐다. 우선 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한 손에 들고 걸어보니까 발걸음이 더 간편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를 출발하여 한 시간 반쯤 지나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 마을로 들어갔다.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상점들과 은행 그리고 약국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레스토랑이 몰려 있었다.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의 잘 정돈된 건물들을 지나 시골 길을 30분쯤 걸어가면 까미노 루트는 왼쪽 큰 도로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무료한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Pueble de Sancho Perez)에 도착할 때까지 14킬로 구간은 은의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자주 보이는 지역을 지나 가야 했다. 가끔 경작을 하지 않아 그냥 버려둔 토지에는 억새들과 잡풀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 대지를 덥고 있었다.
평원을 지나는 무료한 길을 지나 3시간 반쯤 지났을 때 다음 마을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에 들어섰다. 거리는 씨에스타(Siesta) 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조용했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가다 가이드북에 보았던 카페 아바디아(Abadia)에 들어갔다. 턱 수염을 기른 남자 주인이 손님들 틈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했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오늘 목적지 자프라(Zafra)에 도착한다. 인구가 2만 명이나 되는 도시 자프라는 20개의 로마 유적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1443년에 건립된 페리아공작의 궁전인 가장 아름다운 Zafra 성(Castle)이 있지만 다녀올 수 없었다.
자프라(Zafra)는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s)주의 도시이자 자프라(Zafra) 코마르카(Río Bodión)의 주도라고 위키피디아에서 언급한다.
자프라 시내의 거리를 까미노 표식인 노란 화살표를 찾아가며 걸어갔다. 어제 자프라에 들어오기 전 프에브레 드 산초 페레즈 마을에 와인 농장 간판을 본적이 있었는데 자프라 도시를 빠져나가는 외곽의 회전 로터리를 가로질러 가자 포도 농원이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의 포도나무 높이는 일반 포도나무 높이보다 현저히 낮아 특별했으며 아마 다른 품종으로 생각했었다. 구글에서 와인의 품종을 검색했더니 무르베드르(Mourvèdre)라고 하며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며, 짙은 탄닌과 다크베리, 야생적인 육향, 허브 풍미를 지닌 포도라고 알려줬다.
스페인 와인은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과 인기가 높아져 마트나 와인샵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다. 까미노 루트는 생각보다 마을 규모가 꽤 큰 Los Santos de Maimona 마을을 지나갔다. 길 바닥은 네모난 돌이 깔려 있었고 예전에는 부유함을 영유하던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났다. 잘 꾸려진 도로를 걸어가다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이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카페에서 참지 샐러드를 주문하고 천정이 있는 테이블 밑에 앉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이곳 카페에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같이 팔고 있어서 주민들은 상당히 북적거렸다. 나도 허기를 달래느라 기다리던 샐러드와 콜라와 바게트 빵이 함께 나왔을때 나는 허겁지겁 샐러드의 부드러운 상추를 입에 넣고 콜라를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까미노는 마을의 주택가를 벗어나자 곧 드넓은 올리브나무 농원들이 있는 마른 길을 오늘도 지나가야 했다. 참나무 숲이 우거진 농장에 흙 돼지들이 모여 있는 나무 울타리 옆을 지나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잘 자라는 참나무는 홀름오크(Holm oak, Quercus ilex) 종이라고 했다. 규모가 커 보이는 돼지 농장을 지나갈 때면 축사를 지키는 대형견들이 있어 나를 향해 울타리에 다리를 올려놓고 따라오며 사납게 짖어 댔다. 그때마다 나는 바짝 긴장을 하고 지나가야 했으며 배낭 허리끈 주머니에 넣어둔 맹견퇴치기를 꺼내서 버튼을 눌러 댔다. 그래도 대형견들은 자리에서 끔쩍도 않고 계속 짖어 댔다. 돼지 농장의 규모는 넓은 구릉을 차지하고도 어찌나 큰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나는 이런 길을 만날 때마다 빨리 이곳을 지나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보채기 시작했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먹구름이 몰려오며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내릴 것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La Almazara 마을을 지나갈 때 비로소 바람과 함께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아직 가느다란 빗줄기라서 우비를 꺼내 입을 정도는 아니라 오늘 목적지 Villafranca de los Barros까지 1시간 반 정도를 그냥 걷기로 했다.
다행히 가느다란 빗줄기는 도시로 들어서자 멈추었다.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이 층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거리를 지나갔다. 사립 알베르게 ‘Extrenatura’에는 오래된 건물 느낌의 작은 창문과 베란다가 길밖으로 나와 있었다. 약간 낡은 나무 대문을 밀고 계단을 올라가 2층 리셉션으로 가자 젊은 남자 호스피탈레노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성껏 대하듯 차근차근하게 시설 이용을 위한 설명과 함께 침대를 지정해 주며 땀에 젖은 빨랫감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어 가져오면 자신이 세탁기에 돌려 건조한후에 다시 침대 옆에 두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나는 호스피탈레노가 순례자의 빨래를 손수 해결해준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간혹 웰컴 드링크를 건네는 호스피탈레노는 있어도 순례자들의 빨래를 직접 세탁기에 넣어서 처리해주는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빨랫감 바구니를 리셉션 데스크 곁에 두고 침대로 돌아왔다.
스페인의 가을은 아침에 해가 늦게 솟아오르고 저녁에는 반대로 늦게야 사라졌다. 저녁 식사를 위해 8시에 마을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식당에 가면 무엇을 새롭게 먹어야 할 생각으로 메뉴 고르기에 항상 고민을 해본다. 결국 오늘은 파스타를 와인과 함께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내가 지낼 침대 옆에 잘 말린 빨래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발견했다. 나는 젊은 호스피탈레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해야 했다.
가이드북과 Buen Camino 앱은 또레메이아(Torremejia) 가는 길을 Villa franca에서 시작해 우측으로 길게 지나가는 비포장 로마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루트는 중간에 마을이 없어서 27킬로를 하늘과 땅만 쳐다보고 걸어야 해 나는 15킬로 지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Almendralejo’ 마을을 경유하여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가이드 북에서 제시한 로마 길을 걸어가면 아마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포도송이들이 탐스럽게 달려있는 농원을 지나갔다. 포도나무 사이에 나 있는 통로를 기준으로 포도나무 덩굴들이 나란히 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통로 사이를 농기계들이 지나가며 포도송이를 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까미노 앱에는 8킬로 지점에 'Arroyo de Bonhabal' 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마을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없으면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상했던 대로 무료한 길이라 '멜론’을 열어 그동안 쌓아둔 음악을 하나씩 들어 보았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유키쿠라모토' 리스트에 담겨있는 루이스호수(Louis Lake) 와 황혼(in the gloaming). 세느강의 정경(A Scene of La Seine)을 차례대로 들으며 걸었다.
농사를 짖지 않아 방치해둔 들판을 걸어가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지역에는 소들을 방목하는 목장이 있었고 15킬로 지점에 이르자 ‘Almendralejo’로 향하는 사거리가 나왔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두 시간 정도 걸어가면 오늘 목적지 ‘Torremejia’가 나타날 것 같았다.
나는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Villafranca’를 출발해서 지금까지 쭉 뻗은 길에 이곳도 농사를 지을 여력이 없는지 풀 덮인 땅이나 흙을 갈아 업어둔 농지들이 계속 나타났다.
이 곳에도 ‘산티아고 가는 길(Santiago de Compostella)’을 소개하는 대형 입간판이 있어서 걸어오는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Almendralejo' 마을로 들어서자 몇 개의 상점들과 바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중심에 자리하는 'Restaurante La Silera' 에는 점심 식사로 오늘의 메뉴인 메뉴델디아(Menu del dia)에 ‘Fish & Chips' 가 있었다. 내가 유럽에 오면 제일 좋아하는 메뉴라 너무 반가웠다. 대구 생선을 튀겨 감자칩과 함께 나온다. 그리고 콜라 한잔으로 개운하게 마무리를 한다.
'Torremejia’는 작은 마을이다. 알베르게 'Rojo Plata Hostel' 은 소박한 건물과 침실을 제공하여 아늑한 하루밤을 지낼 수 있었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해결한 Bar에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그리고 말린 무화과 두 개를 먹고 오늘 까미노를 시작했다. 오늘 걸어야 할 까미노는 'Merida’까지 단지 15.4km거리이다. 짧은 거리인만큼 나는 아침에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떠나 직선으로 나 있는 큰 도로를 따라 한 시간 반을 걸었다. 대체적으로 주변은 계속 올리브와 참나무가 산재한 지역으로 흙먼지가 날리는 길이었으며 주변 풍경은 단조롭고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오늘 목적지 Merida는 인구가 57,000명이나 되는 Badajoz 주에 있는 대도시이다.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아 도심을 흐르는 과디아나강(Guadiana River)과 구도시에는 고대 로마 극장, 로마 미술관, 다이애나 사원. 무어인 사원 등이 있다고 했다.
작은 마을 ‘Torremejia’를 바로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로 들어서자 근처에는 메리다(Merida)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화물차와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 가까운 곳에 넓은 공동묘지가 나왔다. 출입문이 열러 있어 안으로 들어갔더니 묘지들이 다양한 크기로 영정 사진, 시들어진 꽃들, 심지어 어느 묘지는 작은 집을 지어 고인의 무덤을 안치하고 있었다. 나라를 불문하고 자손들은 죽은 자의 무덤을 크게 만들어 권위와 부의 위세를 보이려는 생각은 똑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조용한 길로 들어섰다. 순례자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걷는다. 차량을 마주 보고 걸어야 위험을 피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후 내내 햇볕이 사뭇 강하게 길 위에 내려앉았다. 한낮에 길을 걷는 동안에는 내 안에서 훈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곳에는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지나고 다시 조용한 길을 걸어갔다. 이때부터 까미노 루트는 고속도로와 기찻길이 교차하는 지역을 지나 Merida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제 목적지 메리다 까지는 2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했지만 점차 주변 풍경이 한껏 달라져 대도시 근처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꼈다.
정오가 넘어갈 때 나는 메리다의 외곽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은 오래전에 형성된 도시라 거리를 따라 세워진 건물들은 대부분 튼튼한 돌로 지은 건물들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으며 거리에는 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무리 지어 걸어가고 있는 모습도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전 시골 마을 사람들 보다 활력이 넘치고 한껏 밝은 표정들이었다.
나는 이제 도시의 중심 시내로 들어가는 로마 다리 근처를 향하는 길을 걸었다. ‘과디아나강’이라 불리는 경치 좋은 지역에 운 좋게도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의 아름다운 강변 공원을 옆에 두고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으며 알베르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른 시간이지만 몇몇 순례자들이 벌써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고 순례자뿐만 아니라 젊은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는 자원봉사자로 나의 순례자 여권을 보더니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었다. "세비야"라고 했더니 여권 출발 지점 란에 착실하게 'Sevilla'라고 적어주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출발지를 묻는다고 했다. 넓은 샤워장에서 시간의 여유를 누리며 빨래를 해서 건물 밖에 있는 빨랫줄에 걸었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빨래가 금방 바삭바삭 마를 것 같았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와 한가로운 강변을 따라 걸어갔다. 나는 근처에 있는 큰 사각형 돌로 만들어진 루시타니아(Lusitania) 다리를 건너갔다. 강폭이 넓어 여러 개의 교각이 있고 강물은 넘실대며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를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들, 많은 차량들이 지나가고 그곳에서 건너편에 있는 로마교 풍경도 보였다. 강변을 산책하며 로마교 근처로 걸어가 에스파냐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근처에 버거킹 간판이 보여 점심은 먹기 쉬운 햄버거 세트로 결정하고 안으로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 섰다. 스크린에 여러 세트 메뉴가 나타나는 화면에서 일단 소고기 패티가 두 개 들어 있는 와퍼 세트를 주문하고 롱 사이즈 콜라도 주문했다. 한쪽 손에 햄버거를 들고 잘 넘어가도록 콜라를 계속 마셔 댔다. 프렌치 프라이는 덤으로 먹으면서 배가 부르면 남겨야 했다.
나는 다시 강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으로 내려가서 산책길을 걸었다. 노부부가 하얀 페인트 칠 된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있었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편안한 모습 때문에 나는 그들이 부럽고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강변에는 또 엄마들이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있었고 가끔 연인들이 산책하며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도 정겨웠다. 주말이라 도시는 한껏 사람들로 분주해 보였다. 해가 점점 도시의 건물위로 떨어져 갈 즈음 강변을 따라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더위를 피해 강으로 나온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고 길가에 들어선 카페와 바르에는 비어 있는 테이블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더워서 더 이상 산책을 포기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 침대는 이미 순례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순례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 나타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침실에 있는 순례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시니어로 보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순례자들 셋이 모여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의 말에 두 여자가 크게 웃어 주변에 있던 순례자들이 모두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나는 우선 물 파우치에 새로 사온 생수를 부어 가득 채우고 배낭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침대위에서 핸드폰을 켜고 까미노 카페에 들어가 은의 길 걷기에 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참 문을 타고 넘어 들어왔을 때 옆에 자리한 순례자가 인사를 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물어보며 자신은 독일에서 왔는데 지난 해에 세비야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걸었고 내일부터 다시 산티아고를 목표로 걷겠다고 했다. 유럽 순례자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사정에 따라 걷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저녁 7시가 되어 밖으로 나와 강변의 넓은 공원으로 다시 내려갔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공원의 카페테리아 야외 테이블은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이제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가는 해가 도심의 빌딩 사이를 지나 강에 떨어지면서 강물도 윤슬이 되어 반짝거리며 너울거렸다. 사람들은 강변에서 느긋한 삶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다시 식당들이 몰려 있는 에스파냐 광장으로 걸어가기 위해 공원을 빠져나왔다. 구글 지도에서 주변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주로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와 해산물 요리점이 주로 검색되었다.
로마교에서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 왼쪽 코너에 아주 격식 있고 근사한 인테리어의 'Wyco Restaurant'이 눈에 띄었다. 물론 가격은 비싸겠지만 오늘 저녁은 폼을 잡고 우아한 척해 보자는 생각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육중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색 에이프런을 두른 여종업원이 인사를 하고 지나간 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남성 종업원이 다가왔다. 그는 비어 있는 테이블로 나를 안내하며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VIP 손님 대접을 받는 느낌 때문에 음식도 좀 비싼 걸로 주문해야 하나 하고 메뉴판을 한 장씩 들여다보았다. 생선요리 메뉴에 적힌 대구구이와 가지조림, 망고 샤벳, 그리고 레드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생선 요리는 고기의 양은 적었지만 가지조림이 더해져 맛있었고 마지막 와인 잔을 들면서 나는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꼈다. 물론 가져온 계산서 위에 팁도 더 얹어놓고 나왔다. 숙소에 돌아오면서 나는 순례자로서 너무 과한 저녁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강변에 있는 공원에 잠깐 산책을 다녀왔다. 해가 떠오르기 전이라 밤새 열이 식어서 선선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까미노 표시가 있는 로마 다리를 지나며 아침 과디아나강의 물결이 흐르는 멋진 광경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다리를 지나 Merida의 옛 도심이 있는 지역으로 넘어가 길에 표시되어 있는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였다.
순례길 루트는 이제 역사의 도시 메리다의 외곽 지역을 벗어나고 자동차들의 통행이 뜸해진 언덕길로 들어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량들은 가끔 나타나서 빠른 속도로 내 옆을 휑하니 지나가며 배기구에서 이산화 탄산가스를 뿜어 댔다. 그동안 지나온 메리다(Merida)는 이곳에서 안녕을 고했다.
언덕을 올라가자 내 앞에 생각하지 못한 넓고 멋진 호수가 나타났다. 입구에 'Proserpina' 호수라고 적혀 있었다. 전망이 좋은 호숫가에는 저택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호수를 따라 축조된 제방 위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긴 의자에 앉아 낚싯대를 호수에 던져놓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숫가 숲속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고 근처에는 캠핑 하는 가족들도 보였다.
호숫가를 지나가는 길이 끝나고 순례길 루트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때부터 조금 전 아름다웠던 풍경들은 사라지고 다시 건조한 참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그동안 걸으면서 익숙해진 풍경들이 도시를 지나자 여기서 다시 나타났다. 드넓은 구릉의 목초지에 익숙한 돼지 축사와 소를 방목하는 초원지대가 들어왔다.
오후에 들어서며 순례길 풍경이 바뀌었다. 내 앞으로 멀리 길쭉한 산 능선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미 추수가 끝난 밀밭과 농지를 갈아 없어 퇴비를 뿌려 놓은 농지도 보였다. 이때부터 기온이 최고로 올라 건조해지며 길에는 흙먼지가 바지를 타고 올라왔다. 내 앞에 턱하고 버티고 있던 산 능선이 가까워지자 El Carrascalejo 마을의 하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을 지날 때 나는 또 한 번 긴장을 해야 했다. 큰 저택의 담벼락에 등치가 꽤나 큰 개가 담장 위 철조망으로 올라와서 나를 향해 움직이며 크게 짖어 대 맹견퇴치기를 꺼내 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길거리에도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Aljucen 마을에 들어왔다. 이곳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는 초록 잎을 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줄 지어 나타났다.
알베르게를 찾아 주택들 사이를 걸어가다 바르가 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바르에 들어가자 주인 여자가 여기서 알베르게 접수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스탬프와 장부를 가지고 나와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12유로를 받으며 건물 뒤편에 있는 숙소로 안내를 했다. 바르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소까지 운영하는 주인은 매우 바쁜 듯했다.
이층으로 올라가 땀에 젖은 옷들을 빨아 빨랫줄에 걸어놓고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 여자가 나에게 “잉글리시” 하고 물어보고 '영어 메뉴'를 가져왔다. 오믈렛과 야채. 강아지 콩. 당근, 햄이 들어있는 이색적인 샐러드를 주문했다. 샐러드의 깊은 맛이 있었다.
스페인의 9월은 거의 밤 10시가 넘어야 약간 어둠이 찾아오는 거 같았다. 마을에 마트가 있는지 물었더니 동네 끝 부분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마트 앞에 붙여 놓은 요일별 영업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영업하고 다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영업한다. 또 토요일과 일요일은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주말이라 오후 2시가 넘어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알베르게의 침대가 너무 낡아 매트리스를 받쳐주는 철망이 등을 밀어내는 듯 닿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못다 쓴 일기를 쓰다 일곱 시에 알베르게를 나와 주인이 영업하는 바르에 갔더니 문을 열리지 않아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 확인했을 때 분명히 아침 7시에 오픈한다고 했는데 꼭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일하러 나가는 인부들이 오더니 문이 닫혀 있음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전화를 하자 조금후에 문이 열리고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주인이 만들어준 카페콘레체와 바게트 빵에 하몽이 들어간 보카디요를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러 양치질을 하고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의 시골 공기는 쌀쌀하지만 상쾌하며 냄새도 청량하다고 느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길을 나설 때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면 부드럽고 보드라운 여인의 피부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알베르게를 나설 때 늘 심호흡을 크게 몇 번씩 하며 걷는다. 이런 습관은 한국에서 미세먼지라는 문명이 낳은 나쁜 환경에 벗어난 지금이 나의 폐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일 거라고 생각했다.
거의 2년간 코로나의 위력에 짓눌려 지내오다 이제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조금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까미노를 다녀온 사람들은 코로나 팬데믹 공백기간에 예전의 순례길을 그리워하며 까미노 블루(Camino Blue)에 젖어 있었다.
마을의 날머리를 벗어나자 잘 닦여 있는 길에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큰 도로를 만나 Aljucen 강을 건너고 이제 순례길을 걷는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텅 빈 무거운 길을 걸어갔다. 가끔 불쑥 나타난 자전거 라이더들이 지나가면서 격려차 “부엔카미노”를 연발하며 휙 지나갔다. 빨리 비켜달라는 신호이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순례길 루트는 높지는 않지만 산허리를 줄기차게 치고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했다. 산길을 내려오자 ‘코르날보 내추럴파크(Cornalvo Natural Park)'라는 공원 안내판이 보이고 옆에는 '스포츠 헌팅'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사냥이 허용된 공원을 지나오면서 겪었던 총소리에 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나무가 무성한 숲을 지나는 길에 들어서자 근처에 지프차를 세워놓고 사냥꾼들이 동료들과 무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또 긴장이 되어 조심스럽게 그들을 비켜가며 한 걸음씩 스틱을 땅에 내리치며 빠르게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에서는 흙 먼지가 푹푹 피워 올랐다. 이곳은 강우량이 적은 곳이라 주변은 여름내내 말라 있었고 따라서 길에는 삐쭉하게 솟아올라온 돌들이 많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고르지 못한 돌 때문에 신발 바닥에서 톡톡 튀어 오른 느낌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질 않았다.
바짝 말라버리고 거칠어진 참나무 숲에 한낮의 강한 햇살이 내려앉고 있어서 상당히 심심한 길이 되어 버렸다. 이때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길에 총을 어깨에 걸치고 사냥개를 데리고 있는 서너 명의 사냥꾼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마주쳤다. 등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개가 길을 지키고 있어서 나는 긴장을 하며 그들에게 순례자가 걷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왜냐면 사냥꾼들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걷고 있을 때 나를 동물로 오판해서 실수를 하면 나는 불행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걷는 것도 힘든데 평온하게 걸어야 하는 길에서 사냥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만나는 게 정말 달갑지 않았다.
알루에스카(Alcuescar)에 들어가는 길 근처에 7세기에 건축된 수도원과 성당으로 이용하던 산타루치아 델 트람파 성당이 있지만 갈 수는 없었다. 이제 마을에 들어서자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에 식당부터 찾아갔다. 알베르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Restaurant Marques Arroz y Brass'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은 손님들로 거의 꽉 차 있었다.
번역기를 돌려 메뉴에 보이는 '오늘의 요리'를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요리는 매우 훌륭했으며 적당히 구워 나온 고기 한덩어리와 빵 바구니가 나왔고 별도로 주문한 연어 샐러드가 나왔다. 얼음이 담긴 글라스에 시원한 콜라를 붓고 나서 고기를 썰어 한 덩어리를 먹으며 콜라로 개운함을 추가했다. 사실 오랜만에 나는 식사 후 포만감을 느꼈다.
알베르게는 식당에서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종교 시설이었다. 예전에 수도원으로 운영했던 회색 빛 석재 건물은 매우 튼튼해 보였고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복도를 지나 호스피탈레노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나왔다. 호스피탈레노 자원봉사자가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이곳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고 이 시설을 지은 분에 대한 글을 읽어보라고 팸플릿을 보여주며 헌신과 봉사정신으로 그동안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내용은 이렇게 적혀 있는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 시설을 편하게 이용하고 아무 탈 없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갈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또 근처 성당에서 저녁 7시에 미사가 있고 8시에는 이곳에서 다같이 식사를 할 거라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배정받은 방을 찾아갔더니 뜻밖에도 2인실 룸이었다.
일곱 시가 가까워오자 성당 출입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성당에는 신부님이 거주하지를 않아 순례자로 오신 신부님이 미사를 대행하고 있었다. 저녁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이곳에 머무르는 순례자들이 모두 식당에 모여 식사를 했다. 메뉴는 매우 소박했다. 약간의 토마토 수프가 나오고 바게트 빵, 와인이 놓였으며 메인으로 으깬 감자를 넣고 당근과 브로콜리, 치즈 등이 섞인 요리를 순례자 두 명이 호스피탈레노를 거들어 접시에 나누어 주었다. 아무튼 스페인 음식은 대체로 담백하고 와인이 곁들어 지면 최상의 궁합인 요리라고 생각했다. 한끼의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내 앞자리에는 네델란드에서 오신 여자분들 앉았고 옆자리에는 프랑스에서 오신 남자 순례자가 식사를 했다. 이들은 아마 프랑스어로 대화가 통하는지 얘기를 열심히 나누고 있었는데 불쑥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고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산티아고까지 가느냐고 물어왔다. 호스피탈레노가 주방으로 가더니 자두처럼 생긴 과일을 가져오고 다시 돌아가 오래된 위스키라며 병을 들고 와 한 잔씩 따라주며 지나갔다.
아침에 침실이 있는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어제 저녁을 먹은 룸으로 와보니 아침 식사를 준비해준 종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게트, 머핀, 비스킷, 커피, 홍차, 우유, 주스, 사과, 바나나, 복숭아를 테이블에 차려 놓았다. 또 필요한 것은 하나씩 가져가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알베르게는 비용 지불이 도네이션 방식이라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망설여졌지만 내가 받은 만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릇에 커피를 따라 마시고(스페인 사람들은 커피를 컵이 아닌 사발 같은 그릇에 따라 마셨다) 밖으로 나왔다. 이때 호스피탈레노가 대문 밖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문뜩 북쪽길을 걸을 때 묵었던 구에메스(Guemes) 알베르게 주인 알폰소처럼 출발하는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산티아고에 잘 도착하라고 격려해 주시던 생각이 났다.
작은 마을은 조용했으며 날머리는 곧장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지나가야 했다. 마을을 뒤로하고 잘 포장된 외곽도로를 따라 걸었다. 알베르게를 출발한지 약 30분 정도 걸어갈 때 먼발치에 지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연두색 도이터 배낭을 지닌 독일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세비아에서 출발했다 도중에 병이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다시 온 거라고 했다. 성격이 활달해서 숙소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간식도 나누어 주면서 항상 환한 웃음이 이어지던 여성이었다. 키도 크고 걸음걸이도 빠른 그녀는 걸을 때는 대부분 혼자서 걷고 있었다.
세비야를 시작점으로 출발하는 은의 길에는 어느 지점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길에서 사각형 석상의 마일스톤을 많이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이 석상은 로마 통치 시대에 로마 병사들이 Astroga까지 길을 만들고 거리를 알기 위해 1마일(1.6킬로)마다 로마자로 표기한 마일스톤을 세워놓은 유산이라고 했다.
오늘은 Aldea del Cano 라는 마을까지 15.1km를 걷기로 했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서 걷는 내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8km 정도 지날 때 Casa de Don Antonio 마을이 나타났다. 작은 시골 마을은 대부분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흰 색깔 때문에 분위기는 밝고 깨끗하며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거리를 지나가다 조그만 카페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커피 향이 진한 블랙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배낭에 오랫동안 보관해둔 오레오 비스킷을 꺼냈다. 이렇게 조용한 마을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때문인지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있었다. 마을의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이며 가지마다 가득한 열매 때문인지 마을은 아주 넉넉해 보였다.
나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오랜만에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짙고 푸른 색깔의 하늘이 열러 있고 청량한 바람이 어느새 내 가슴을 헐고 안으로 확 밀려오는 거 같았다.
Aldea del Cano 로 향하는 마을까지는 가로수가 있는 시골의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자그마한 호수를 지나쳤다. 이곳을 지나면 아직 수거하지 않은 옥수수들이 널브러져 있는 들판을 지나고 나자 목적지 Aldea del Cano마을로 들어섰다.
오늘 지낼 알베르게는 식당을 겸하고 있어서 체크인을 하고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침대위에 깔아놓고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오징어튀김이 들어있는 보카디오를 주문하고 빵과 콜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건조한 땅을 걸어오느라 바지에는 흙먼지가 많이 달라붙어 있어서 뿌옇게 변해 있었다. 다행히 아래부분에 지퍼가 달려있어 따로 떼어내어 간단하게 물로 씻어 툭툭 털어 입어야 했다. 샤워를 하고 로비의 테이블에 나와 가이드 북을 펼치고 내일 걸어가는 코스를 들여다보았다. 테이블 앞에 검게 그을리고 체구가 건장한 순례자 두 명이 하몽을 빵에 넣고 커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느냐고 물었더니 폴란드 집에서 친구와 같이 출발해 세비야에 도착하여 은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하루에 몇 킬로를 걷느냐고 물었더니 평균 40킬로를 걸으며 가끔 노지 숙박도 하고 알베르게에서 잘 때 샤워와 빨래를 한다고 했다. 내가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노지 숙박을 할 때 텐트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상용 은박지 텐트를 가지고 다닌다고 하면서 나에게 물건을 보여주었다.
폴란드 순례자들은 다음 날 아침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출발이 나보다 늦었지만 헤드랜턴을 켜고 무척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가며 “부엔카미노” 로 인사를 했다.
저녁은 간단히 알베르게 주방에서 만들어 먹고 싶어 마트를 다녀와야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마트의 영업시간이 오후 7시까지라고 알려주었다. 알베르게 길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트가 있었는데 작은 공간에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같이 파는 마트였다. 생수를 사고 용량이 적은 쌀을 하나 샀다. 반찬으로 참치캔을 사고 간식으로 납작 복숭아, 사과 작은 것, 군것질로 마침 팩에 들어있는 말린 무화과를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무화과가 약간 무겁지만 나는 오랜만에 무화과의 달달한 맛을 생각하며 흐뭇해 있었다.
쌀을 물에 씻어 냄비에 넣고 끓이며 한국에서 가져온 황태국 블록을 따로 끓여 고추장과 함께 식사를 했다. 참치캔을 개봉해서 기름은 덜어내고 한 스푼씩 밥에 얹어 먹으며 나름의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설거지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덴마크에서 온 순례자가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출입문 앞에 마트 사장과 어린 아들이 나에게 돈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슈퍼마켓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아들이 주워서 보여주길래 당신이 흘린 것 같아 가져왔다고 말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비닐 돈주머니가 이 사람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줄로 알았는데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순간 부주의한 나의 행동에 대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아들한테는 감사 표시로 비닐 주머니에서 20유로를 꺼내 주었더니 너무 좋아했었다. 순례길에서 때로 흘리고 잊어버리고 방심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매번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나는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거리를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이 있었고 밤공기는 시원했다. 출입문 옆에 순례자들의 휴식을 위해 놓인 의자들이 있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긴 의자들이 나란히 비어 있었는데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별들로 가득한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길거리의 가로등 빛이 도로를 비치고 마을은 숨을 죽이듯 고요했다.
순례자들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네덜란드에서 오신 부부와 독일 여성분이 함께 로비의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어제 쌀밥을 하고 남은 누룽지를 물에 데워 먹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머그컵에 담고 한국 믹스 커피를 풀어 넣어 마셨다. 커피의 아주 달달한 맛이 마치 고향의 맛을 느끼게 했다.
오늘은 자외선 차단제를 약간 두껍게 바르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직 어두컴컴한 거리로 나와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골목을 지나갈 때 동네의 큰 개들이 따라오며 짖어대 나는 서둘러서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순례길 루트는 아직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마을의 밭고랑 사이에 나 있는 고랑길에 들어섰다. 머리에 헤드 랜턴을 끼고 앞을 넓게 비치며 걸어갔다. 밤새 이슬이 내려 축축한 좁은 길을 지나갈 때 풀섶에서 날아오는 풋풋한 풀냄새가 너무 좋았다. 해뜨기전 식물들이 탄소 동화작용을 열심히 준비하면서 발산하는 풋풋한 냄새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자연의 생리가 날아오르는 듯했다. 밭고랑을 따라 걸어가 큰 길이 있는 자동차 도로와 연결되었다. 나는 좌우를 살펴보고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면서 그곳으로 건너갔다. 시골 도로이지만 의외로 이른 아침에도 큰 컨테이너 트럭들이 굉음을 내고 다가와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트럭들은 열심히 대도시인 레온이나 살라망카로 줄달음 치고 있을 것이다.
알베르게를 나서고 30분이 지나도 캄캄한 하늘에는 샛별들만 남아 희미하게 생명을 다하듯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멀리 산 능선 위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걸려있었다. 까미노는 터벅터벅 아스팔트 도로 갓길을 오르다 보니 일곱 시가 넘어가고 이제야 멀리 지평선에 어슴푸레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 주변으로 시야가 밝아지고 그동안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던 속이 꽉 찬듯한 참나무 숲이 길 양편으로 조림되어 있었다. 농촌의 전형적인 숲은 이제 서서히 초록을 벗어내고 갈색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런 숲길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이곳을 벗어나자 넓은 목초지가 구릉위에 펼쳐지고 한가로운 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이 나타났다.
초원의 구릉 사이로 나 있는 목장을 가로질러 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버려진 조그만 비행장 활주로가 나타났다. 과거에 광활한 목장을 운영하기 위한 부자의 개인 비행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격납고 같은 창고 건물에 비행장이란 팻말도 있고 시멘트 활주로 갈라진 틈 사이로 풀들이 자라 방치되어 있었다. 순례길은 활주로를 지나 넓은 들판으로 다시 들어갔다.
먼 발치에 두 명의 순례자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자 앞에 네덜란드 부부가 걷고 있었다. 그들은 순례길을 많이 걸었던 경험이 있어 별 걱정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더운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매우 지쳐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에게 오늘 숙소가 이제 조금 지나면 Valesalor라며 나에게 힘내라고 엄지 척을 해 보였다. 나는 22킬로 떨어진 Caceres가 목적지라서 조금 더 힘을 내야 했다.
길 근처에 토호 세력들이 오래전에 사용했다는 작은 규모의 성들을 만나기도 했다. 숙소를 떠난 지 여섯 시간 즈음 지나 고즈넉한 마을 Valesalor의 에스파냐 광장에 들어섰다. 구글링을 해서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시원한 콜라를 두 번에 걸쳐서 다 마셨다.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마을을 빠져나오자 흙을 갈아 덮어놓은 널찍한 농지 옆을 걸어갔다. 아마 연거푸 농사를 하고 나면 토양의 질을 개선하기위해 농기계로 땅을 섞어주는 거 같았다.
이곳을 지나 자그마한 야산으로 올라섰다. 그곳에 뜻밖에 작은 호수가 있고 오솔길에 낡았지만 친절한 벤치도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낡은 벤치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고 물 파우치를 당겨 꼭지를 입에 대고 물을 힘차게 빨아 마셨다.
벤치에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위에 뜨거워진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덧 발랐다. 오후 두 시가 넘어 Caceres 입구에 들어섰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이른 시간에 출발하지만 낮이면 여지없이 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알베르게를 찾아 마을 우측에 있는 도로를 걸어갔다. 더위에 지친 몸이 걸음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마요로 광장 근처 한쪽에 있었다. 광장에 있는 음식점 Los Arcos 레스토랑에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모든 세포가 지쳐 있는 상태라서 우선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레스토랑 밖에 설치된 테이블에 참치 샐러드와 잘 익힌 소고기 요리가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얼음이 들어있는 시원한 콜라에 고기가 녹아들 듯 목을 타고 넘어가며 올리브 기름에 적셔 있는 샐러드는 음식들을 풍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식당에 왜 고객들이 북적거렸는지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호스피탈레노를 따라 3층 방으로 올라갔다. 힘이 빠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호스피탈레노가 뒤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으로 들어서자 열린 창밖으로 발코니가 나 있고 앞에 탁 트인 광장을 두고 같은 높이의 석조 건물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자주 만났던 네덜란드 부부와 독일 여자분이 오늘 구간의 Embalse de Alcantra 알베르게가 닫혔으니 오늘은 11킬로 떨어진 Casar de Caceres 마을까지 걷고 내일 33킬로 떨어진 Canaveral까지 걷자고 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순례길은 San Francisco 광장을 지나 우측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래되어 이끼가 잔뜩 낀 담벼락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니 그곳에 산타마리아 데 카세레스성당이 나왔다. 바로크 양식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은 규모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기도가 머물렀을 공간 앞에 서면 저절로 신앙적 깊이가 느껴졌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초가을 날씨의 시원한 바람이 볼에 와닿자 부드럽고 마치 고운 피부의 부드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성당 앞의 산티아고 광장을 지나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선 골목을 지나고 한산한 순례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이어지던 길은 자동차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고속도로 위의 다리를 건너가고 오르막이 시작하는 길로 들어섰다. 나는 보폭을 줄이고 갈지자로 걸어 고도 500미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숨이 턱까지 쳐 올라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나는 가파르게 올라온 길을 돌아보며 멀리 보이는 Caceres 마을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불그스레한 해가 산꼭대기 위로 높게 떠오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언덕길을 내려가면 먼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넓은 목초지가 펼쳐지고 그 가운데 순례길이 나 있는 풍경이 보였다. 그런데 넓은 들판을 바라보다 나는 문득 남미 배낭 여행을 할 때 아르헨티나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Ushuaia)를 가는 길이 생각났다. 버스를 타고 넓은 평원 사이로 직선으로 길게 뻗은 길을 지나갈 때 그곳은 거치른 토양에 가시덤풀과 바위와 돌과 바람에 쌓인 흙 무덤. 말라버린 풀들이 거친 바람에 휘청거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곳은 쓸모없는 넓은 땅을 가진 대륙이지만 이곳은 그런대로 농지에서 풍부한 식량을 생산하는 비옥한 땅이었다.
나는 이제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걷다 너무 무료해서 핸드폰에 저장된 멜론을 켜고 음악 서랍을 열어 어제 듣다 꺼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걸어갔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은 음악을 켜고 걷는 일은 순례자에게 또 하나의 위로였다.
오늘 구간은 짧은 거리라서 정오가 되기 전에 이미 Casar de Caceres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찻길을 따라 드문드문 오렌지나무들이 가로수를 대신하고 있고 길 폭이 넓은 인도에는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벤치들을 자주 설치해 두었다.
알베르게 주소를 찾아 구글맵을 켜고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레스토랑 간판이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밖에서 꽤 북적거리는 광경이 보여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늘 목적지에 왔으니까 이곳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하고 숙소에 가려고 했으나 마음이 바뀌어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에 치킨 윙 사진과 에스테야(Estella) 맥주가 눈에 띄었으나 나는 맥주를 싫어해서 치킨 윙과 엔 살라다, 그리고 콜라를 주문하였다. 주인이 바게트 빵과 얼음이 들어있는 콜라를 먼저 가져왔다. 빵과 콜라는 역시 맛을 돋우는 매칭이 잘되는 음식이다. 물론 커피와 빵도 나에게는 잘 어울리는 맛의 조합인데 치킨윙은 감자튀김과 같이 바구니에 담겨 나왔고 샐러드는 여러 가지 채소를 가득 채운 큰 접시에 담겨왔다.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는 길 건너 여행안내소에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으며 내일 구간의 목적지인 Embalse de Alcantara에 알베르게가 폐쇄되어 있으니 힘들면 택시를 이용하라고 알려주었다.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이 속속 찾아오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 침대에서 까미노 카페에 일기를 쓰다가 마을 근처 호수를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직 햇살이 강한 마을 골목을 따라 상점들을 지나니 바로 근처에 호수가 보였다. 호수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흰색 페인트가 여기저기 뜯긴 벤치에 잠깐 앉아 잡풀이 우거진 호수를 바라보다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갑자기 순례자들이 많아져서 침대 배정이 끝나 예전에 Guillena를 지나며 만났던 순례자 부부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며 그곳을 떠나갔다. 순례자들이 꽉 들어찬 알베르게는 실내 공간이 비좁아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벤치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에 해가 막 저물어 햇살이 건너편 건물 위로 사라지고 난 다음, 거리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8시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점심 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가려고 알베르게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독일 여성 순례자가 Embalse de Alcantara까지 택시를 같이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곳부터 걸어 Canaveral을 지나 아예 Galisteo까지 걷는다고 했다. 나도 얼른 “오우케이”를 연발했더니 택시를 같이 타고 가면 비용도 절감하니 내일 아침 7시에 택시를 대기시켜 달라고 호스피탈레노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는 비좁고 열악했다. 건물 입구에서 통로를 따라 3개로 나뉜 공간에 각각 2층 침대를 4개씩 배치하였고 특이하게도 중간 방에 공용 화장실과 사워장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근처 침대에 지냈던 여성 순례자는 밤새 이곳을 사용하기 위해 들락거리며 내는 문소리와 물 내려가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꽤나 거슬려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고 했다.
어제 예약해 둔 택시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배낭을 챙기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침낭과 배낭을 들고 아예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앞마당 벤치에는 벌써 순례자 몇 명이 나와서 빵이나 과일을 먹고 있었으며 독일 순례자는 머그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담아와서 마시고 있었다.
일곱 시 정각에 예약해 둔 택시가 나타났다. 기사는 독일 순례자 안나의 배낭과 내 배낭을 트렁크를 열고 차곡차곡 눕혀서 놓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는 약간의 어둠이 남은 골목을 재빨리 빠져나와 마을을 벗어나 넓은 차도로 들어갔다. 그 시간에도 가끔 반대편에서 차량들이 헤드램프를 켜며 순식간에 다가와서 지나갔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밤새 알베르게에서 피곤한 순례자들의 뒤척거림과 코골이 소리,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택시는 우리가 까미노를 다시 시작할 Canaveral 마을 알베르게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우리는 다음 마을 Grimaldo를 향해 햇볕이 내리는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경사진 오르막을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바로 길가에Repsol 주유소가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이 잘 돌아가는지 실내는 시원했다. 냉장고에 진열된 시원한 캔 콜라를 1유로내고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와 햇볕이 가려진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까미노는 다시 오르막 찻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 오른쪽 숲길로 들어섰다. 이제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좋아 젖은 옷을 벗고 배낭을 열어 어제 사둔 납작 복숭아를 꺼냈다. 빵과 물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 전 걸어온 오르막길에서 키가 큰 남자 순례자가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우리가 “올라”하고 인사를 하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35킬로, Carcaboso까지 걷는다고 했다. 내가 엄지를 치켜들며 “스트롱맨”하고 말하니까 그는 웃으면서 자기는 이탈리아 노르딕 선수라서 별거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무성한 잎의 미루나무 가지들이 꽉 채워져 있는 숲길을 걸어가며 나는 차분해지고 걸음도 느려졌다. 오랫동안 이끼 낀 나무에서 나는 냄새가 그냥 좋았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키 큰 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넓은 초원에 염소를 방목하는 목장이 나왔다. 뿔이 큰 염소들은 사람을 보자 낯설었는지 일제히 다른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을 지나오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나무에 붙여 놓은 안내 표지판에는 우측으로 Grimaldo, 직진은 Galisteo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거리가 조금 짧은 Galisteo를 선택하고 길 입구로 들어가는 나무 대문을 밀어보았다. 그러자 낙엽에 쌓인 비좁은 길이 보이고 좁다란 고랑으로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는 계곡이 있었다. 이 길은 순례자들이 잘 다니지 않은 길인지 조금전부터 까미노 표식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까미노앱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위치는 지도상에 공식 루트 밖으로 나가 있었다. 나는 공식 순례길로 들어가기 위해 GPS신호를 받아 깜박거리는 커서를 공식 루트 라인 쪽으로 옮겨가며 걸어갔다. 풀을 헤치고 나무 숲을 지나 폭이 넓은 길로 나왔다. 임도처럼 폭은 넓으며 작은 자갈이 깔린 길로 나오니 결국 공식 루트로 들어갔다. 정상적인 루트로 돌아오니 이제야 맘이 놓였다.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온전하지 못했으며 땀이 가슴을 이미 적셔왔다.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한적한 길을 가로수의 그림자를 따라 힘없이 걸어갔다. 그때 지명을 알 수 없는 한적한 마을이 나타나고 조그만 이 층 건물에 알베르게 겸 바르가 있었다. 바르 앞에는 앞서 걷고 있던 이탈리아 순례자가 배낭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괜찮냐” 하고 물었더니 발에 문제가 생겨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택시를 불러달라고 마을 사람에게 부탁했으며 다음 마을 Riolobos에 가서 쉬겠다고 했다. 독일 순례자가 그럼 우리도 택시를 타고 Riolobos에 가서 다시 걸을 테니까 동행하자고 했더니 그가 웃으며 비용도 줄일 겸 좋다고 승낙을 했다.
잠시후에 중형 차량의 택시가 달려왔다. 아주 젊은 택시 기사는 최대한 속력을 내며 달린 듯 정말 순식간에 Riolobos 마을 입구의 까미노 길 표시판이 있는 건물 코너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택시에서 내린 이탈리아 젊은 순례자는 우리를 보며 그냥 걸어보겠다고 하며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양 발을 벗더니 바늘로 물집을 터트린 부위를 보여주면서 조금 있다 따라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 곳부터는 도로에 자갈이 깔려 있는 경사길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오르막이 점점 심해지면서 언덕을 거의 다 오르면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길이 연속되었다. 몇 번을 오르내리자 드디어 멀리 Galisteo 마을의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로 Galisteo 알베르게를 검색했더니 이제 2킬로쯤 떨어진 곳에 3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이제 걷기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힘이 나고 걸음이 빨라졌다.
마을을 지나가며 구글맵에서 표시하는 선을 따라 알베르게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출입문 앞에 안내문이 붙어있고 순례자들은 이곳에 도착하면 호스피탈레노에게 전화를 달라고 했다. 호스피탈레노에 전화를 해서 우편함에서 키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숙박료는 15유로, 깨끗한 시설, 편안한 잠자리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갖을 때가 왔다.
오늘은 햇볕이 너무 좋아 미뤄두었던 빨래를 하고 나서 산책을 하러 나갔다 바르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산책을 하러 나가기 전에 가이드북에 게시된 내일 도보 구간을 확인했다. 11킬로 떨어진 Carcaboso에 알베르게가 있고 이후에는 39킬로나 떨어진 Aldeanueva del Camino에 가야 겨우 알베르게가 있었다. 하루 50킬로를 걸어야 알베르게를 만날 수 있기에 다른 대책을 찾기로 했다. Rome2 Rio 앱을 열어 여러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Carcaboso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버스로 Placensia로 이동한 다음 Aldeanueva del Camino행 버스를 다시 옮겨 타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밤이었다.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져 누워있다가 6 시 즈음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어제 사둔 머핀과 요구르트를 냉장고에서 꺼내 식사를 했다. 오늘은 출발 시간에 여유가 생겨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한국에서 가져온 카누 커피를 꺼내 머그컵에 털어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때 커피의 고소하고 진한 냄새가 나를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했다.
이제 출발 시간이 되었다.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는데 마을은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거리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고 파르스름한 하늘에는 샛별들이 흐릿하게 남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 출발을 하고 나면 불그스레한 여명이 차츰 산능선위에 퍼져가고 나는 햇볕으로 빛나는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거리에는 이제 가을의 전형적인 황갈색 잎들이 떨어지며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가로수는 잘 정돈된 듯 꼿꼿하게 서있고 그 사이로 가로등이 졸고 있는 듯 희뿌레한 빛들을 아래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헤드 랜턴을 켜고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나갔다. 가끔 집 뜰에서 닭들이 아침을 알리는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런데 이 마을에도 내가 걸어가며 내는 발자국과 스틱 소리에 집에 있는 덩치가 큰 개들이 여기 저기 집 울타리 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내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큰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빨리 걸어 그곳을 빨리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Carcaboso 방향으로 가는 도로에 올라섰다. 잘 뻗어 있는 도로에 자동차들이 속력을 올리며 지나갔다. 긴장을 하고 걸어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꺾이며 방향을 바꾸자 근처의 개울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주변의 어둠이 걷혀가면서 짙게 드러난 파란 하늘에 붉은 해가 올라오며 산능선위는 점차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멀리 높은 산에 몇 대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짐작했다. 이제 도로와 순례길에는 모든 생명체가 어둠에서 깨어나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농촌의 들녘은 평화로웠다.
까미노 루트는 이제 아스팔트길로 들어서고 곧 Aldehuala del Jerte마을을 지나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훨씬 지났을 때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Carcaboso에 들어섰다. 이곳은 작은 도시가 아닌 듯 시내버스가 지나다녔다.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보도블록이 놓인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여성에게 휴대폰에 지도를 열어 'Placensia’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부수 스타시온(Bus Station)하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노 부스” 라고 말하며 녹색 신호로 바뀌자 건너편으로 걸어가버렸다. 이곳에 버스정류장이 없다는 뜻이라는 의미로 이해를 해야 했다. 나는 ‘Rome2Rio앱에서 ‘Placensia’ 가는 버스가 이곳에서 운행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했기 때문에 아무튼 버스를 타기위해 2km 정도 떨어져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인도를 따라 Carcaboso의 중심 지역으로 걸어갔다. 도시는 반듯한 건물들과 상점들, 카페,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꽤 많이 들락거리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때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위해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에게 “부스 스타시온 프라센시아(Bus Station Placensia)하고 말하며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여줬더니 “까미노”하고 되 물었다. 나는 얼른 '씨"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기 휴대폰으로 검색하더니 건너편 길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가리키며 9시 20분에 Placensia행 버스가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친절한 그 신사에게 나는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말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지나가는 사람 또는 상점 같은 곳에 들어가 직접 물어보는 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 부스가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프라센시아(Placensia)행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아직 40분이나 남아있었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배낭에 넣어둔 바나나를 꺼내 물과 함께 먹었다. 포만감을 느끼기에 바나나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리고 나서 매일 해야 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식구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카톡을 열어 페이스톡으로 아내를 만났다. 별일 없냐는 물음과 어제 걸었던 상황, 저녁 먹은 일과 아침에 알베르게 나와 지금 걷고 있는 위치를 말했다. “집 걱정하지 말고 매일 잘 챙겨 먹고 나이도 많으니 무리하게 걷지 말고” 매일 남편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나는 전화를 끝내고 나서 가족이 유일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잠시동안 울컥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오랜만에 남동생에게도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었다. 동생은 내가 순례길을 떠날 때마다 여비 봉투를 주면서 "걸을 수 있을 때 맘껏 다니세요" 하고 용기를 주었다.
그때 약간 경사진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노란 색깔의 작은 버스가 나타났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같은 작은 크기의 미니 버스였다. 내가 배낭을 들고 버스 출입문에 서 있으니까 기사가 나에게 버스 뒤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버스 트렁크를 열어 배낭을 집어넣고 버스에 올라가라고 했다. 스페인 버스 기사들은 상당히 친절한 편이었다. 시외버스나 시내버스 기사들은 손님들에게 대부분 친절하게 대했다. 버스 앞 낮은 창문에 ‘Placensia’라고 쓰인 전광판이 달려있었다. 버스는 이후로 다른 버스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Carcaboso를 빠져나갔다. 버스는 곧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를 지나 둔탁한 소음과 속력을 내며 고갯길을 넘어갔다.
Carcaboso를 빠져나오자 주변은 아주 넓은 밀밭이 있었고 버스는 엔진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넓은 구릉을 이루고 있는 목초지를 옆에 두고 소를 키우는 목장의 축사를 지나갔다.
중간 경유지 Placensia는 인구가 4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도시였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 Aldeanueva del Camino로 이동해야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남은 시간에 시내를 산책하기 위해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걸어갔다. 오랜만에 구경거리를 만난 듯 호기심으로 쇼윈도에 전시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며 지나갔다. 마침 과일 가게를 지나가다 말린 무화과가 박스에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주인 남자에게 히고(Higo)라고 했더니 한 봉지에 무화과를 가뜩 넣어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일정량을 덜어 비닐에 넣고 나머지는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걸어가면서 꺼내 먹기 시작했다. 말린 무화과는 북쪽길을 걸을 때 독일 친구가 가끔 나에게 한줌씩 줘서 간식으로 이후에도 자주 찾는 최고의 과일이었다. Placensia시내 중심의 공원으로 가는 언덕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곳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근처에는1197년 건립된 6개의 문과 68개의 탑이 있었다는 이중 성벽이 이제는 오랜 세월이 지나 거무스름하게 변한 성벽이 있었다. 플라센시아는 서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남북 무역로를 지나가는 소위 Ruta de la Plata의 일부이며 중세 후기에 기본적인 도로가 발전을 이루었다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했다.
광장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화려하고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책을 하고 있었다. 단체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거리와 광장에 꽉 채워져 있었다. 나는 광장에 있는 역사가 꽤 오래된듯한 건물의 카페테리아 간판을 보고 이곳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나이 많은 종업원이 다가와서 메뉴판을 주고 갔다. 블랙 커피 한잔과 작은 케이크를 주문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휴일에는 사람들 표정이 훨씬 밝은 편이었다.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학생들이 요란스럽게 떠들며 장난치고 뛰어가고 그래서 주변은 활기차 보였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노년의 사람들이 서로 주장을 내 세우는지 매우 큰 소리로 대화를 해서 약간 소란스럽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쵸코 케익 한조각과 같이 먹었다. 카페테리아 앞에 설치된 모든 테이블은 이미 빈좌석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출발 시간에 맞춰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갔다. 조금후에 Aldeanueva del Camino 버스가 터미널 플랫폼에 나타나 버스 기사는 승객들을 태우자마자 바로 출발하였다. 나는 내가 버스에서 내려야 할 마을 이름을 휴대폰을 열어 버스 기사에게 보여주고 가까이 갔을 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20분쯤 지났을 때 버스는 내가 오늘 지내야 할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의 시골 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버려 나는 배낭을 챙겨 급히 내려야 했다.
마을의 좁은 도로를 따라 걸어가자 몇 대의 자동차가 도로를 따라 나란히 주차해 있었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아 조용했다. 점심 시간이 지났지만 일단 정류장에서 보이는 식당으로 먼저 들어갔다. 식당에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몇 그룹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은 점심때 또는 저녁에도 식당이나 바르에 모여 가족들과 식사를 즐기는 편이었다.
나는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오믈렛과 샐러드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인이 먼저 가져다준 바게트 빵을 버터에 발라 한조각을 먹었다.
주인장이 가져온 오믈렛에는 계란과 햄 또 당근이 많이 들어가 양이 푸짐했다. 오믈렛을 포크로 한 조각 짤라 먹기 시작했을 때 식당 문을 열고 마을 사람들인 듯한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 들어와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동석자들과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나에게 "제페니스" 하고 물었다. “노”, “아이 엠 프람 코리아” 했더니 옆에 나란히 앉은 여자가 남편이 일본에서 공부했다고 말하면서 까미노를 걷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이분들은 와인을 주문해서 글라스에 레몬주스를 섞어 마셨다. 내가 무슨 맛이냐고 했더니 직접 잔을 들고 오더니 나에게 거의 한잔을 따라주며 마셔보라고 권했다. 레몬을 섞은 와인은 독특하게도 시큰한 맛을 냈지만 상큼한 맛이 있어서 그런대로 괜찮아서 "긋" 하고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답례를 했더니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여유를 즐기면서 가벼운 샐러드와 푸짐한 오믈렛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인을 마시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건물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동양을 좋아하는 친절한 스페인 남자에게 건물 이름을 다시 물어볼까 하고 생각하다 감사하다는 인사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씨에스타 시간이라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조용해서 마치 텅 빈 공동화된 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게 건물 앞에 도착했다. 호스피탈레노는 크리덴시알에 세요를 찍어주고 나에게 식료품을 파는 마트의 영업 시간을 알려주면서 지금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일찍 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침대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끝내자마자 내일 간식을 사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도로를 따라 상점들이 있었으나 아직 오후 영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도로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조그만 마트에 문이 열러 있었다. 출입문에 영업시간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오픈이라고 출입문에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물건이 필요한 손님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마트를 찾아와야 했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미국 미시간주에서 오신 나이가 드신 여성분과 같은 테이블에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동안 걸었던 은의 길과 작년에 걸었던 프랑스 길에 대한 추억을 얘기해 주며 한국 사람들이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걷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등산과 트레킹을 즐기는 편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도 종교적 의미를 우선하기보다 장거리 해외 도보 여행에 대한 도전 의식과 성취감이 이유일 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중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근무했는데 지금은 정년 퇴직을 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얘기는 밤 10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미국의 집에서 가까운 트레일을 자주 트레킹 한다고 했다.
그녀와 얘기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자 불은 벌써 꺼져 있고 피곤에 잠든 순례자들의 호흡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침실의 창문은 닫혀 있어서 환기가 안되어 답답하고 순례자 들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일어나서 근처의 창문을 조금 열어 놓고 침대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창너머로 비치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듯 풀벌레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새벽에 왼쪽 팔목과 목이 가려워 침대에서 일어나 플래시를 켜고 비쳐보니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나는 베드버그(Bed Bug)에 물리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베드커버를 가능하면 새것으로 깔고 알베르게의 담요도 사용하지 않고 침낭을 사용하며 지냈는데 소용이 없었다. 베드버그는 어둠을 타고 벽을 건너 다니는 습성을 갖고 있어 나는 피할 수가 없었다. 물린 자국은 빨개지며 약간 부풀어 있었다. 배낭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물파스를 꺼내 여러 번 물린 부위에 덧발랐다. 그러나 가려움은 지속되었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혼자 있을 수 있는 휴게실로 내려갔다. 거울에 비친 빨간 부위는 목 주위에 나란히 부어 올라있었다.
휴게실의 소파에서 누워있다 침실로 돌아가서 침낭과 배낭을 들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냄비에 물을 끓이고 냉장고에 보관했던 빵과 치즈와 요구르트를 꺼내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날이 밝아 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출발 준비가 되어 알베르게를 나와서 골목을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아주 조용했고 길을 따라 가로등에서 비치는 형광등 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보였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에 노란 화살표가 회갈색 건물에 잘 새겨져 있어서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을 쉽게 찾았다. 그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들어서 갓길을 걸어가다 회전교차로를 지나고 한 번 더 교차로를 지나 이제 온전히 까미노 루트로 잘 들어갔다. 폭이 넓은 도로에 들어서자 건너편에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주유소가 두 개나 보이고 대형 트럭들이 주유를 하고 있어 이곳이 트럭이나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까미노 루트는 도로를 건너가도록 되어있어서 양쪽을 둘러보았더니 오른쪽 도로에 대형트럭들이 달려오고 있어서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트럭 기사들은 도로에서 사람들을 보면 경고의 수단으로 경적을 울려서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나는 도로를 건너 조용한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대형 자동차들이 다니지 않아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제 직선으로 길게 뻗은 오르막이 시작되었으며 경사를 따라 오름과 약간의 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주변에 막힘이 없는 길을 걸어가니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 때문에 가을의 스산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간혹 정면에서 달려 내려오는 차를 안전하게 피하느라 도로를 벗어나 고랑 쪽으로 피해 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곤 하였다.
아스팔트 길 위로 햇살이 확 퍼지면서 그동안 거칠고 둔탁했던 도로의 풍경이 이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멀리 높게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고 있는데 근처 야산의 작은 계곡에서 물이 흐르며 내는 콸콸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걷기를 잠깐 중단하고 좀 쉬고 싶어서 부근에 있는 낮은 바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제야 자연의 숨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청량한 가을 날씨와 함께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에 나는 힘을 얻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첫 마을 바뇨 데 몬테마요르(Banos de Montemayor)에 들어서자 암브로스(Ambroz) 강을 두고 넓은 저수지가 가까이 있었다. 마을의 중심가로 들어가자 커다란 나무에 가린 레스토랑 겸 카페가 나타났다. 야외 테이블에는 먼저 도착한 미국 여성분과 폴란드에서 온 바람 같은 두 사나이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폴란드 강철부대원 같은 사나이들을 다시 만났다. 예전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폴란드 사나이들은 어제 45km를 걸었다며 거리 기록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다리가 괜찮은 지 물었더니 문제가 생겨서 며칠간 조금씩 걷고 있으며 등산화를 벗고 샌들을 신고 걷는다고 했다. 대단한 집념을 갖고 멀리 폴란드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랫동안 걸어왔으니 발에 탈이 날 수밖에 없었을 거 같았다.
카페를 떠나 까미노는 마을의 주택들 사이로 난 언덕을 오르자 삼거리가 나오고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급한 오르막 경사 길로 들어가야 했다. 한낮의 햇살이 바싹 마른 아스팔트길에 내려앉고 있어서 땅에서 올라오는 훈기가 얼굴에 느껴졌다. 나는 거치른 호흡을 하며 언덕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다. 이곳이 그동안 걸어왔던 엑스트레마드라(Extremadura) 주에서 카스텔라이레온 (Castile y León) 주로 넘어가는 경계 구역이었다. 까미노는 이제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노랗게 변해가는 나뭇잎들로 가을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숲에 나 있는 오솔길은 오랫동안 이끼 낀 바위들과 고목나무들 그리고 가끔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길에 넘어져 있는 나무 때문에 나는 그곳을 우회해서 지나갔다. 숲 속의 시원한 산들바람 때문에 얼굴에서 느끼는 행복함을 느끼고 말았다. 이마와 가슴에는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야 했다. 모자를 벗고 길옆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기대었다. 물 파우치의 캡을 열어 목구멍이 시원하도록 몇 번이고 마셔 댔다.
오늘 지낼 알베르게, 해발 800미터의 산간지역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약간 허술한 건물의 집에 왔다. 이곳에 유일한 알베르게이며 호스피탈레노 여자에게 체크인을 하고 벽이 마주하는 안쪽 비어 있는 침대로 갔다. 산간지역에 있는 알베르게라서 모든 시설들이 낙후해 보였다. 더군다나 알베르게 여주인은 마트의 위치를 물어보는 나에게 알베르게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간식도 구입하고 커피도 마시라고 말해주었다. 샤워장에서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와 마당에 설치된 세수조에서 빨래를 비누로 쓱쓱 밀어 대충 끝내고 줄에다 널어 두었다. 알베르게가 높은 지대에 있어서 바람이 잘 불어와 빨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버렸다. 이곳은 산간지역이라 와이파이는 없고 통신이 약해서 인터넷을 연결하기가 어려워 저녁 식사 시간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마을 산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지 찬바람이 불었다. 윗옷을 하나 더 걸쳐 입고 마을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앞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마을의 조그만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성당의 굳게 닫혀 있는 출입문을 확인하고 돌아 나와 마을의 중심지역인 광장으로 나왔다. 정말 이곳은 상점이나 바르가 보이질 않고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만날 수 없었다. 호스피탈레노가 체크인시 말해준 레스토랑이 보였는데 마침 마을의 노인 부부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 알베르게에서 접수를 받던 주인 아주머니는 그곳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홀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인 남자가 나에게 스페인어로 만든 메뉴판을 테이블에 놓고 돌아갔다. 마을에 하나 있는 식당은 순례자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른 테이블에는 벌써 여러 순례자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아무튼 먹는 시간이 모두를 들뜨게 하는 시간이었다. 메뉴판에는 사진과 함께 요리 이름이 적혀 있어서 선택하기에는 좋았다. 메뉴에 먹음직하게 보이는 병아리콩. 감자. 당근. 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스튜 요리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를 와인 한잔과 함께 주문했다.
남자 주인이 식사 주문을 받으면서 “자폰?” 하고 묻길래 “꼬레아”하고 크게 대답을 했더니 “수드(Sud)하고 다시 물어왔다. 내가 웃으며 "씨" 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올봄에 일본인 순례자가 식당에 와서 기념으로 일본 국기가 새겨진 휘장을 붙이고 갔다고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하얀 천에 일본 국기가 그려진 휘장이 붙어 있었다. 나는 순례길에서 기념될 만한 일을 만났을 때 사용하려고 한국 지폐를 가져왔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한국돈을 기념으로 붙이겠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이 있었지만 어두웠고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에 옷깃을 치켜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찬바람이 불어서 난방이 없는 침실에도 냉기가 흘러 윗옷을 걸친 채로 침낭에 들어갔다. 그런데 또 일이 터졌다. 새벽에 목이 가려워 벌떡 일어나 랜턴을 켜고 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바닥에 까만 베드버그가 붙어 있어서 휴지를 꺼내 눌러 죽인 다음 돌돌 말아 바닥에 버렸다. 어제 체크인 시 베드버그를 염려해 침대에 있던 허름한 담요도 위 침대에 올려놓았는데 알베르게 베개를 사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물린 부위에 다시 물파스를 몇 번 발랐더니 이제 피부가 쓰려 살갗이 따가웠다. 열악한 알베르게 위생 때문에 연거푸 베드버그에 물려 목과 팔 등에 빨간 자국이 많이 남게 되었다. 기분이 몹시 상했고 연약한 피부가 계속 공격의 대상이 되다니 순례길을 걸을 때 받는 업보일까 생각했다.
아침까지 랜턴을 약하게 켜놓고 잠을 잘 수 없어 침대에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차라리 일찍 출발할 생각으로 일어났다. 나는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새벽에 일어난 베드버그 참상을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죽인 베드버그가 들어있는 휴지를 어제 체크인 할 때 접수 받던 테이블 위에 얹어놓고 나왔다. 주인이 휴지를 열어보고 침구류 소독을 자주해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그렇지만 알베르게 주인이 관심을 갖을 것이라고 기대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식당일이 본업이라 숙소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져서 바람막이를 하나 더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어제 저녁식사 때 앉았던 테이블로 가서 일본 국기가 새겨진 휘장 위쪽으로 한국 돈 천 원짜리 신권을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 남자 주인을 불러 설명을 했다. 지폐 속의 인물은 '퇴계 이황' 선생으로 한국의 학자이며 높은 벼슬을 지내신 분이라고 설명했더니 느닷없이 부인하고 같이 기념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주인에게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제품들도 알려주었다. “삼성 휴대폰 갤럭시와 “엘지 티브이, 냉장고” 그리고 “현대자동차” 도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해주었다. 남자 주인의 휴대폰은 오래된 갤럭시 모델이었다.
주인이 추천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사실 아침에 준비되는 다른 메뉴는 없었다.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산골 식당에서 만들어줄 수 있는 최고의 아침 식사였다. 오늘 순례길은 산간지역을 넘나드는 경사가 높은 지역을 지나가야 했다. 걷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걸음은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적한 언덕을 올라 멀리 높은 산들의 웅장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이럴 때 내가 이 길을 걷는 목적과 보람을 진정으로 느낀다고 생각이 되었다.
길을 걷기 시작하고 두 시간 즈음 지나 Valverde de Valdelacasa라는 이름이 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입구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자 바르가 보였다. 그곳에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미국 여성 순례자가 커피를 마시면서 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고 나는 콜라를 주문했다. 주인이 얼음 몇 개가 들어있는 유리잔과 캔 콜라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순례자 여권을 꺼내 주인에게 세요를 받자 빈 공간을 채워가는 스탬프들이 나란히 차곡차곡 구석을 찾아가고 있었다. 콜라를 다 마시고 일어났을 때 영국인 부부가 바르에 들어왔다. 항상 밝은 얼굴과 인사성 밝은 두 분은 오늘도 같이 사진 찍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후 지나가는 두 개의 마을에는 바르가 없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순례길은 플라타너스 숲을 잠깐 지나 양들을 키우는 목장의 목초지를 지나갔다. 한 시간 즈음 더 걸어 Valdelacasa라는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 구글맵을 열어 바르를 나타내는 그림을 확인했다. 문을 열었을지도 궁금하고 순례길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냥 패스하기로 하며 길가의 오래된 가로수 나무 벤치에서 어제 사둔 오렌지를 꺼내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오랜만에 배낭 사이드 포켓에 넣어둔 육포도 꺼내 봉지를 열어 한조각을 맛보았다. 씹을수록 단 맛이 느껴졌다. 먹기 시작하니까 입맛이 당겨 세 개를 한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오늘 목적지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은 산길을 올라야 했다. 숙소는 어제와 비슷한 높은 고도에 위치한 수도원에 있는 알베르게이다. 아침에 출발하여 여섯 시간 만에 Fuenterroble de Salvatierra에 도착했다. 사실 고도가 높다고 했지만 별로 느낄 수 없는 그냥 보통의 마을이었다.
알베르게 명칭은 ‘Albergue parroquial Santa María’이다. 예전에 수도원 건물이라고 가이드북에서 보았다. 천장이 꽤 높은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넓은 홀 가운데 길쭉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여러 사람이 회합이나 식사를 할 수 있게 의자들이 촘촘히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건물을 지은 성직자의 사진과 건립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올라” 하고 내가 호스피탈레노를 찾자 남자가 건너편 사무실에서 나오며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큰 밀 빵과 오렌지 주스와 과일도 내주며 건물에 대한 배경 설명을 먼저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는 8시에 아침 식사는 7시에 이곳에서 한다고 설명하며 비용은 아침에 나갈 때 도네이션(Donation) 박스에 넣고 가라고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스탬프를 찍어주며 7시에 마을 성당에 미사가 있으니 참석하려면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호스피탈레노가 지정해준 방으로 가서 침대에 침낭을 펼쳐놓고 샤워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베드버그에 물린 빨간 자국위에 물파스를 열심히 발랐다. 그리고 침대에 잠깐 누워있다 답답해서 마을도 돌아볼 겸 간식을 사러 마을의 마트를 찾아갔다. 멀리서 조그마한 마트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더니 반갑게도 과일 상자에 들어있는 납작 복숭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혹시 말린 무화과를 팔면 사고 싶었지만 없었고 에비앙 1,5리터 한 병과 오레오 비스켓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곱 시 가까이에 순례자들이 미사에 참석하러 근처 성당 건물로 갔다. 성당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사람들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분이 전화를 하고나서 문이 열리고 순례자들이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주위가 밝은 시간이라 성당 스테인그라스를 통해 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신자들이 좌석에 많이 앉아있었다. 그때 순례길을 같이 걸으시는 독일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러 제단으로 올라오셨다. 어제 산속 마을 알베르게 식당에서 원탁 테이블에 손님 몇 분과 같이 앉아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침에 식당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시며 웃음을 놓지 않으시는 그분이 신부님 이란 사실을 늦게 알게 되었다.
미사를 집전하시며 신부님은 외국인들을 위해 강론을 영어로 하시다 가끔 스페인어도 섞어가며 열성적으로 강론을 하셨다. 사실 나는 제의식에 따라 진행하는 절차는 알지만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강론 내용은 잘 알아듣기에 힘들었다.
미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온 사람들이 건물 내 넓은 홀로 모였다. 홀에는 순례자들 외에 동네분들도 오셔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 병아리 콩과 쵸리소가 들어있는 수프가 전달되었다. 빵 바구니도 사람들 사이에 놓이고 와인을 담은 병이 군데군데 놓였다. 사람들은 와인을 즐겼고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순례길을 걸으며 겪은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곳에는 유일한 동양사람인 내게도 질문을 던졌다. 주로 순례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로 어디서부터 순례길 걷기를 시작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디까지 걷느냐? 산티아고 길은 몇 번을 걸었느냐? 질문을 했다.
오늘 아침 기온은 6도까지 다시 뚝 떨어졌다. 고도가 아주 높은 지역이라 겨울이 더 빨라지고 있으며 이제 모레쯤 고도가 낮아지는 지역으로 들어가면 날씨는 다시 회복하겠지만 추운 날씨는 싫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의 종류는 많았다. 잘 썰어 놓은 바게트 빵과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와 우유, 그리고 바나나와 사과, 비스킷까지 천천히 식사를 하고 아주 잘 익은 붉은 사과도 배낭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독일 신부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온 73세의 경보 선수 출신 부부는 먼저 떠났다. 아직 어둑한 골목길을 걸어 나와 큰길에 들어섰다. 가이드북에 오늘은 29킬로를 걷는 동안 한 개의 마을도 나타나질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길을 나섰는데 아직 길에 어둠이 남아있었다. 어두컴컴한 길 주변은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아 이마에 헤드 랜턴을 켜고 걸어갔다. 앞에 비친 불빛에 의존해 거의 길바닥을 보며 한 시간이 지나 이제 사방이 밝아왔다. 자동차들이 가끔 지나가며 정적을 깨트렸다. 줄 곳 길 바닥을 보면서 무심코 걸어가다 'Casafranca' 라는 마을 팻말을 보고 깜짝 놀라 순례길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찾았지만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리나케 '부엔카미노'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을 하고 내가 까미노 길과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음을 알았다. 나는 이전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관성대로 도로의 폭이 넓은 왼쪽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원래의 루트를 들어갈까 고민하다 앱에서 표시되는 까미노 길과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다시 합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도에 나와있는 루트로 가기 위해 화면을 더 확대해서 가장 최적의 가까운 길을 찾아냈다. 앞에 보이는 들판의 농로를 걸어가다 약간 구릉을 넘어가면 원래 까미노 길을 만날 수 있었다. 목적지와 가까워지는 커서를 확인하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커서가 점점 까미노 루트에 다가서는 화면을 보며 한편으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좁은 농로에는 물웅덩이가 있어서 질펀한 길을 걸어야 했지만 스틱을 물 웅덩이 바깥쪽으로 집으며 잘 넘어갔다. 문득 합류지점에 다가갈수록 희망을 찾아가는 색다른 느낌이 들어 합류지점이 기다려졌다. 얼마후에 결국 원래의 까미노 루트에 들어섰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다 내가 확인하고자 했던 까미노 길 방향 표시인 노란 화살표와 거리 표지석도 만나면서 아침의 실수는 이 지점에서 마무리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잘못 걸었던 시간만큼 속도를 높여야 했다
바람은 차게 불었지만 어제 보다는 추위가 덜했으나 나는 패딩 조끼를 꺼내 입어야 했다. 까미노는 이제 넓은 밀밭이 지평선까지 연결되는 그곳에 구름에 가렸던 해가 조금씩 힘차게 떠오르며 자연 풍경은 아주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까미노는 방향을 틀어 이제 낮은 언덕의 야산에 들어섰다. 바람이 많은 지역인지 마치 시계 바늘처럼 천천히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들이 여럿 보였다. 하필 거친 돌무리들이 흩어져 있는 길을 지나가야 해서 걷기에 매우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다. 언덕을 오르던 까미노는 마침내 풍력 발전기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근처까지 접근을 했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듯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으며 나는 처음 마주하는 풍력 발전기를 가까이에서 보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지루하던 너덜길이 마침내 끝이 나고 이제 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마른 흙으로 덥힌 길을 지나가야 했다. 나는 이제 두 시간 이상 걸었으니 잠깐 쉬어야 했다. 그늘진 나무 밑에 주저앉아 배낭을 등뒤에 두고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시간이 여유인지 걷는 고통에 대한 쉼 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옆 떡갈나무에서 갈색 잎들이 흔들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구글맵을 열어보니 오늘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9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이젠 발도 아프고 장딴지도 아파서 걷는 게 조금 힘들어졌다. 그래도 목적지를 앞두고 일어나 다시 걸을 준비를 했다. 아스팔트 길이 직선으로 쭉 드러나 보였다. 또 까미노는 아스팔트 도로 옆에 따로 조성된 폭이 좁은 길을 걸어가도록 표시가 되어 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넓은 호밀 밭은 누런 색이 넘실대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호밀 밭이 끝나며 이제는 또 경작을 하지 않는 넓은 빈 농지를 바라보며 걸어야 했다. 내가 걷고 있는 도로에는 가로수가 전혀 없어 그늘이 없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강한 햇빛은 그대로 앞으로 떨어져 줄곧 안고 걸어야 했다.
나는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더운 공기와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볕 때문에 힘이 거의 빠져 걸음이 점점 무디어지고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닳아진 아스팔트 길은 볼품이 없었으며 'San Pedre de Rozados'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야 마을의 지붕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았던 마을은 쉽게 보여주질 않았다. 정작 마을은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있는 듯 주소지 근처에 와서야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알베르게 주소를 보고 찾아간 골목의 이층 집은 간판도 없었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하며 들어갔던 골목을 다시 나오다 입구의 2층 건물 테라스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분과 얼굴이 마주쳤다. 내가 손으로 조금 전 건물을 가리키며 ‘알베르게’ 하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른 숙소를 검색할까 생각하다 다시 건물로 돌아가 이 층의 출입구로 갔다. 옆 창문에 전화번호와 호텔과 식당을 안내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확인을 해야 했다.
골목을 다시 돌아 나와 건너편 호텔 간판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빙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알베르게를 갔는데 문이 잠겨 있다고 말하자 문은 잠겨 있지 않으니 밀고 들어가면 된다고 하며 알베르게 사용료 7유로를 지불하고 가라고 했다. 너무 싼 금액이라 속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내가 식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3시가 넘어 안되니 저녁에 와야 한다고 했다. 배도 고프고 더워서 지친 나를 달래 줄 생각으로 배낭에 넣고 다니는 육포를 먹으면서 콜라를 한잔 사서 마시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주인이 말한대로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니 알베르게 내부는 너무 낡아 지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열악하여 그냥 지낼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걸어서 다음 마을로 가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나는 이내 몸이 지쳐버려서 포기하고 배낭을 침대위에 던져버리고 그대로 누워 버렸다. 침대 스프링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고 하나뿐인 화장실 변기는 뚜껑이 없고 공동 샤워장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출입문 근처에 빨래 건조대를 두어 마르지가 않을 거 같아 일순간에 불만이 고조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것도 내가 순례길을 걸으며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돈벌이가 더 좋은 호텔을 중시하겠지 생각하니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마트를 찾아갔다. ‘마트’ 라고 조그만 간판이 벽에 붙어있는 집 앞에서 판매하는 것이 별로 없어서 망설이다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살 물건이 없어서 단지 생수와 바나나 두 개를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자 주인이 바게트 빵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두면서 주문을 받았다. 나는 알베르게 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음식에 신뢰를 하기 힘들어 가장 간단한 참치 샐러드와 콜라를 주문했다.
오늘은 24킬로 떨어진 대도시 살라망카에 들어간다. 살라망카는 이베리카 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서 마드리드와는 2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 의하면 148,000명이 거주하고 있고 카스티야 레온 지방에서 바이돌리드(Valladolid)와 레온(Leon)의 뒤를 이어 3번째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다.
살라망카의 역사는 2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철기시대에 최초의 거주민들은 지금 살라망카의 San Vicente라는 곳에 정착했고 도시는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도시의 모습은 11세기 레온의 알폰소 6세의 사위인 라이문도 데 보르고냐(Raimundo de Borgoña)에 의해 시작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교육으로 스페인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데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알폰소 9세에 의해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다. (나무위키에서 퍼옴)
순례자들은 이곳에 도착하면 대체적으로 이틀정도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 다시 출발을 한다. 나는 독일인 부부가 추천한 호텔을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했는데 이곳은 시내 중심 마요르광장에 있어서 구경 다니기가 좋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오늘은 어제부터 왼쪽 엄지발가락과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통증이 있어 살라망카까지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알베르게 골목을 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는 큰길로 나오니 우측에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등교를 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리를 절뚝거리고 걸어오는 젊은 남자 순례자와 다른 일행이 나타났다. 이들은 뮌헨에서 친구와 같이 카세레스(Caseres)에서 부터 걸어왔는데 지금 한 명이 무릎이 아파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로 살라망카에 들어간다고 했다. 한 친구가 정류장 벤치에 둔 내 배낭을 들어보며 매우 무겁다며 웃었다.
버스는 살라망카와 이곳 마을을 왕복하는 셔틀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버스로 학생들이 살라망카로 통학을 하고 낮에는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였다. 7시 30분 출발 예정인 버스가 조금 늦게 나타나 손님들을 차례로 태우고 터미널을 떠났다.
오랜만에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 의자에 기대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창밖으로 이제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9월 하순의 농촌 들녘 풍경은 확연히 변해가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가을의 진한 적갈색 빛깔이 주변을 물들게 하고 있었다. 살라망카로 들어가는 진입 도로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길게 늘어선 차량들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가 속도를 낮추고 서서히 시내로 진입하자 건물들의 높이가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도시의 느낌이 점차 느껴질 때 드문드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이 과거의 위세를 자랑하듯 단아하고 묵직하며 아직도 오랜 세월을 잘 견디고 있다고 전해주고 있었다. 시내의 중심가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화려한 건물들에 익히 잘 알려진 유명 브랜드 상점들이 밝은 조명아래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들 사이로 살라망카 대성당의 첨탑도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서서히 터미널로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의 활력이 나를 꿈틀거리게 하고 있었으며 그동안 강제로 침묵이 진행되는 시골 까미노를 걸으며 닫혔던 가슴도 쉽게 터지며 곧 도시의 풍경을 맞이하며 즐거워지는 듯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카페로 먼저 들어가 간단히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사실 도시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경험한다는 것은 더 세련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카페를 나오기전에 구글맵으로 숙소 위치를 검색했더니 걸어서 갈만한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카페를 나와 시간의 여유가 많은 나는 시내 구경을 하면서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호텔을 찾아갔다.
숙소가 가까워지며 거리는 화려해지고 사람들로 채워져 가는 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건물 사이를 한참 지나 마요르(Mayor) 광장으로 들어갔다. 넓은 사각형 광장을 가운데 두고 사각형 건물은 광장을 빙 둘러 차지하고 각 건물의 회랑을 따라 각종 상점들이 있었다. 광장 마당에는 넘쳐나는 여행객 들로 붐비고 식당이나 카페에서 광장으로 연결된 캐노피 아래 테이블에는 음식과 주스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마요르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8세기에 지은 스페인 바로크 양식으로 3면은 상업 시설로 이용 중이고 남쪽 건물만 공공건물인 시 청사 일부와 관광안내소로 운영 중이었다. 호텔은 동쪽 건물의 가게들 사이의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서 건물 이 층에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호텔 여자 주인은 체크인 시간이 아니니 배낭을 맡기고 구경하고 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마요르 광장으로 나가 천천히 건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걸어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한창 강하게 광장의 돌바닥을 달구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걸었지만 후끈 달아오른 돌바닥의 열기는 그대로 다가왔다. 회랑을 따라 걸어가며 살라망카 대성당을 구글앱으로 검색했다. 750미터 떨어진 성당으로 가는 다운 타운 거리에는 유명 브랜드로 보이는 명품 상점들이 있었고 카페, 펍, 음식점에는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로 복잡한 거리를 나와 조금 떨어진 건물들을 지나가자 성당의 높은 첨탑이 나타났다. 살라망카 성당에는 두 개의 대성당 건물이 있었다. 하나는 12세기부터 13세기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과 아치형 천장으로 건축된 구성당이며 다른 하나는 15세기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모마리아 승천(de la Asunción de la Virgen) 대성당내 100개의 스테인글라스 창문으로 부터 영롱한 빛이 성전 안으로 투영되는 신비함을 갖추고 있고 고딕, 플라테레스크,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스페인에서 가장 큰 대성당으로 종탑의 높이가 92m인 성당이었다.
성당 입구에는 마침 현지 중학생들이 단체로 미사를 드리러 왔는지 일렬로 줄을 지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성당안으로 들어가 중간 즈음 신자석에 앉았다. 성당의 제단 위로 높은 천장 돔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벽을 따라 미사실과 예수님의 14처 십자가의 길을 그린 성화들이 있었다.
나는 순례길을 걷느라 지친 정신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모처럼 예수님과 성모님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성당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가 매일 부족한 삶을 지탱하느라 지친 나에게 큰 안식을 베풀어 주시도록 하느님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살라망카 성당은 밖에서 또는 내부에서 보아도 웅장하고 커다란 예술적 의미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랜 세월을 신자들과 순례자들에게 무한한 안식을 제공하는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마요로 광장으로 왔다. 2성급 호텔 방은 좁지만 그래도 정갈해 보였고 창문밖으로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지내는 호텔방은 무료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새벽에 걷기를 시작할 때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긴 팔 셔츠를 사야겠다 고 생각되어 스포츠용품 쇼핑몰 ‘데카트론’에 가기로 했다. 먼저 구글맵으로 매장의 위치를 확인했더니 시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숙소를 나와 구글맵에서 확인한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숙소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건물 앞에 있는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나타났다. 기사에게 차비로 2유로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스페인에서 버스를 탈 때 운전사는 차비를 받고 종이 영수증을 꼭 발급해 주었다. 버스가 또르메스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자 좌회전을 하고 근처의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구글맵을 열어 데카트론이 있는 방향으로 거의 3킬로를 걸어갔다. 강렬하게 내리는 햇살로 도로는 뜨거웠으며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머리 위에는 태양이 떨어지는 듯 뜨거움이 느껴졌다.
의류를 파는 큰 패션 쇼핑몰을 지나고 나서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갔다. 가로수는 있었지만 태양이 하늘 중간에 있어서 햇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가끔 큰 건물 때문에 만들어진 그림자를 따라 걸어가기도 했었다. 고급스럽고 깨끗하게 새로 지은 주택들과 상점들이 있는 지역을 지나갈 때 살라망카의 새로운 신흥 부촌인가도 생각했다. 일교차가 크게 차이나는 계절이라 한 낮 더위속에서 3km를 걷는 일이 갑자기 지루하게 느껴지며 걸음이 자꾸 더디게 했다. 차량들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 건너편에 데카트론 폴 싸인 뒤편으로 전형적인 창고형 건물이 나타났다.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데카트론의 내부는 천정은 높고 공간이 매우 넓어 입구에서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입구를 통과하면 캠핑과 트레킹 용품들, 등산을 위한 옷과 신발, 양말들이 선반마다 꽉 들어차 있었고 자전거 라이딩 용품들도 잘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등산이나 캠핑용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곳 데카트론 매장에 오면 가격이 저렴해서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았다. 통로를 지나가다 트레킹 용품 코너에서 소매가 긴 티셔츠를 골라 바구니에 넣고 근처의 진열대를 살펴보며 걸어갔다. 아웃도어 의류 매대를 지나 등산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구역으로 걸어갈 때 데카트론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걸어오다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한국말을 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인천 송도 데카트론 매장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하며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 삼겹살과 소주가 제일 맛있었는데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며 활력이 넘치는 서울 생활이 너무 좋아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거냐고 묻자 자기 고향은 이곳이 아니고 ‘카나리아섬' 이라고 했다. 내가 몇 해 전에 한국 TVN 방송사가 그 섬에서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출연해 “윤식당” 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했다고 하자 자기는 육지에 나와 있어서 알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카나리아는 자기에게 심심한 곳이라고 하길래 우리는 서로 보면서 웃고 말았다.
나는 데카트론에서 돌아와 오늘 저녁 식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구글 지도 앱을 열고 인근의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메뉴를 결정하기 힘들어 일단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걷다 괜찮은 레스토랑이 나오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와 번화가 다운 타운으로 갔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마요르 광장 근처에는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좌우를 천천히 살피면서 걸어가다 우연히 골목에 있는 중국 뷔페식당을 발견하였다. 중국 음식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식당으로 갔다. 몇 년 전 프랑스 길을 걸을 때도 부르고스나 레온 같은 대도시에 가면 중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몇 번 있었고 짜장면과 짬뽕은 없지만 그래도 볶고 튀기고 낮 익은 음식들이 음식 코너에 준비되어 있어서 최고의 만족을 얻었다.
음식을 접시에 담기 위해 근처 테이블을 지나가다 “많이 드세요” 라는 인사가 들려와서 나는 깜작 놀라 뒤를 돌아보고 “감사합니다”라고 답례를 했다. “여기 살라망카 사세요?” 하고 내가 물었다. “여기 살라망카에 살아요”.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되었어요?"라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앉았어요” 라고 말씀을 하셔서 "살기는 괜찮으시고요?" 했더니 "살만해요" 하고 말씀하셨다.
빈 접시에 튀김과 야채 그리고 닭고기 볶음을 담아 자리로 돌아가다 건너편에 단체로 오신 분들을 보았다. 그곳 테이블에는 신부님과 수녀님이 많은 다른 분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고 계셔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신부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신부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어디에서 오신 건가요? “라고 물었더니 캐나다 토론토 한국 성당에서 신자들과 스페인 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 대성당’에 갔다 이곳으로 왔고 다음 목적지 '파티마' 성지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두 번째로 눈에 익은 볶음밥과 물김치, 새우튀김, 김밥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로마인들이 세운 강가의 로마교 다리를 구경하러 갔다. 아주 오래전에 돌을 활용해 만든 다리의 보도를 걸어 건너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강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걸어가다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살라망카 시내를 지나가는 또르메스(Tormes) 강은 잔잔한 물결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를 물오리들이 유영을 하고 있었다. 요즘 스페인의 가을은 해가 늦게 떠오르고 늦게 저물어간다. 그래서 살라망카 강변에는 아직도 환한 대낮처럼 주변의 사물은 생동감이 있고 강물위에 햇살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은 윤슬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공원의 계단을 올라 강을 지나는 다리(Puente Romano de Salamanca)로 돌아왔다. 오래전에 석물(石物)로 건설된 튼튼한 다리를 건너가며 멀리 바라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였다. 다리 중간 즈음에 밖으로 내민 교각 밑을 흐르는 강물과 도시의 풍경을 몇 차례 사진에 담았다. 이때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 다가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여 나는 강을 배경으로 멀리 도시의 풍경까지 담아 몇 개의 각도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팔레스타인' 이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분쟁 중인 팔레스타인 여성이 스페인을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은 불행했으며 이들 국가에도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 호텔 근처에 아침 일찍 영업중인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오늘은 여유 있는 출발이다. 넓은 마요르 광장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가 여러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넓은 도로로 나왔다, 거리에는 출근하는 자동차 행렬들과 상점들 앞을 지나가는 거리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길을 걷다 가이드 앱을 열어 오늘 루트의 방향을 체크하고 다시 출발했다.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다리를 지나 그냥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가야 했다.
한동안 횡단보도 신호등을 몇 개 지나가다 건널목 코너에서 사모라(Zamora)가 적혀 있는 방향표지판을 만났다. 이제 순례길은 주택가로 들어서 큰 아파트 단지 사이로 산책하는 길이 있는 Vilarroel 거리를 지나고 대형 마켓 까루프 근처를 지나갔다. 사모라 방향으로 가기 위해 회전교차로를 지나 이제 우측 아스팔드 길로 들어가자 이제 살라망카를 거의 벗어났는지 자동차들 움직임도 뜸해졌다.
시내를 빠져나오느라 약간은 긴장을 했으며 길만 쳐다보고 걷느라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살라망카에서 7km 지점의 Aldeaseca de la Armuna에 도착했다. 길을 걷다 재미난 소품들을 밖에 걸어둔 멋진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인 여자에게 시원한 콜라를 주문하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가슴에 젖은 땀을 닦아냈다.
카페에서 콜라를 마시는 동안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 갰다는 생각이 들어 카카오톡으로 아내와 통화를 했다. 한국과 7시간 차이가 나니 거의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전화를 해서 나의 위치와 상태를 전하고 나니 왠지 가슴이 후련했다. 카페를 나와 다시 계속 이어지는 자동차 도로를 따라 잠깐 걸어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낮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골목으로 들어섰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잔뜩 찌푸린 모양으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아무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을 피하기위해 현지 유심을 넣은 다른 휴대폰(평소 사용중인 휴대폰은 로밍을 했음)을 열어 한국 CBS 방송을 연결했다. 그리고 가끔 연결이 끊기기도 하지만 FM방송에서 진행하는 ‘박승화의 가요속으로’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걸어갔다. 진행자의 구수한 입담이 어느때보다 정겹게 느껴왔다.
알베르게를 나서 이제 3시간이 지나 Castellanos de Villiquera 마을로 들어갔다. 길가의 주택 담 벽에 상당히 솜씨 있고 다채로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아래에 QR코드가 있어서 그림을 설명해주는 친절도 제공하였다.
아침에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여기까지 줄곧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바르에 다시 들어가서 얼음이 들어간 콜라를 주문했다. 예전에 한의사가 내 체질을 검사하고 찬 음식을 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순례길에서 콜라는 나에게 더위를 식혀주는 유일한 음료수가 되었다.
바르에서 나오자 드디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우비를 입지 않고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빗줄기는 조금 전보다 굵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기다림에 지쳐서 배낭에서 우비를 꺼냈다. 하늘에 몰려 있는 잿빛 구름들이 멀리서 부터 빠르게 몰려왔다 지나가면서 비가 곧 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밖으로 나와 밀밭을 지나가는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되도록이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비가 내리는 길을 걸을 때는 빗물이 얼굴에 부딪히는 것이 싫어 머리를 푹 수그리고 걸어갔다. 이제 멀리 낮은 집들의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 Calzada de Valdunciel에 가까워질 무렵 내리던 비는 완전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곳 알베르게 출입문에는 순례자들이 도착하면 주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눌러 주인과 통화를 했다. 바로 주인이 차를 타고 나타나서 문을 열고 체크인을 한 후에 2인용 침실을 지정하며 주방의 시설들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호스피탈레노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마트가 7시에 문을 닫고 식당은 3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저녁에 식사를 하려면 바르에서 타파스나 샌드위치를 사 먹으라고 안내를 했다.
오늘은 주말이고 씨에스타 시간도 겹쳐서 곧장 마트를 찾아갔다. 내일 먹을 간식과 계란을 사와서 저녁 식사는 그동안 컵라면 면을 보관했던 비닐 봉투를 열어 물을 끓이고 계란을 넣어 훌륭한 라면 요리를 준비했다. 김치는 없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으며 한국 생각을 많이 했다.
한밤중에 누군가 말을 타고 마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말굽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 인적이 없는 좁은 동네는 정적이 깨트려지고 무언가 궁금해서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부부와 아들이 각자 말을 타고 골목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요즘 며칠간 밤 기온이 많이 내려가 새벽에는 숙소의 실내 공기가 상당히 차가워져서 옷을 하나 더 껴입고 지내야 했다. 오늘 구간을 El cubo de Tierra del Vino까지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알베르게가 폐쇄되었다고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주었다. 그러면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곳까지 13.7킬로를 더 걸어야 해서 나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Zamora에 내린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Montamarta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Zamora 행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더니 오늘이 월요일이라 사모라로 통학하는 많은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곱 시에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와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버스는 출발하자 근처의 시골 마을들을 차례로 지나가며 정류장에서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을 계속 버스에 태웠다. 버스는 속력을 내며 시골의 넓은 밀밭을 지나자 사모라 도시 근처의 카네도 강(Canedo)을 지나 이내 사모라(Zamora) 시내로 들어섰다.
사모라는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의 주인 사모라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66,293명으로 포르투갈과의 접경 지대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모라 시내에는 도루강이 흐른다(위키백과 퍼옴)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서자 또 다른 버스들이 출발 라인에서 어디론 가 다시 떠나기 위해 여행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터미널을 빠져나와 '부엔카미노' 앱을 켜고 걸어가야 할 까미노 루트를 확인했다. 사모라의 중심 거리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도시는 매우 활기차고 반짝거렸다. 나는 도시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가며 물품을 팔고 있는 상점의 윈도우 안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구경하며 여유를 부렸다. 까미노 앱에서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커서가 다음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며 좁은 골목길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이제 도시의 교외로 빠지면 나는 다시 시골길을 걸어야 했다. 볼 것이 많은 도시를 떠나기 전 문득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하며 이 도시의 정감을 더 느끼고 싶었다. 구글앱을 켜서 카페를 찾아내 멀지 않은 곳에 베이커리 카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페에는 브런치를 먹고 있는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인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가능하면 가공식품인 햄이나 소시지를 피하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식빵 사이에 계란후라이와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너무 먹음직해 보였다.
시내는 비슷한 키 높이의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거리에는 기온이 올라가며 온기가 퍼지고 있었다. 북적거리던 거리를 지나가던 루트의 방향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모라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에는 작은 정원이 들어선 주택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자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밀밭을 지나가는 길이 나타났다. 넓은 밀밭에는 대형의 콤바인들이 계속 움직이며 잘 자란 밀을 수확하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는 머리를 깎은 것처럼 잘려 나가는 밀의 줄기들이 여지없이 땅에 떨어져 그 뒤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드넓은 밀밭 평원을 지나가는 길에는 한 그루의 가로수도 보이질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그저 지평선만 바라보고 걸어야 했다. 나는 변화 없는 순례길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 즐겨 듣는 음악 카테고리에서 일단 '유키구라모토' 피아노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길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도 상관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이렇게 넓은 평원을 혼자 걷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치 외딴곳에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해서 침울해지기도 했다.
오랜시간 들녘을 지나가며 지루했던 길이 이제 끝나가고 아주 작은 마을 Montamarta 로 들어섰다. 마을은 초라해 보였지만 알베르게는 아주 훌륭한 시설과 깨끗하고 넓은 공간을 갖춘 2층 건물이었다. 내가 도착한 이후로 이곳에는 찾아오는 순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주방에는 새로 들여놓은 것 같은 기구들이 많아서 활용을 할 생각으로 마트에 들러 스테이크용 고기와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한 병 사 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소된장국 블록도 꺼내 끓은 물에 넣어 국물도 만들었다. 알베르게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해서 먹으면 식당에서 사 먹을 때 보다 하루를 더 잘 보냈다는 만족감으로 자신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은의 길을 시작한지 23일째 되는 날이다. 우유와 바게트 빵, 그리고 바나나 한 개를 먹고 조금 여유 있게 8시가 되어 출발했다. 까미노 출발을 좀 늦추었더니 우선 주변이 밝아서 마음이 안정되었고 기온이 올라있어서 추위도 덜해서 좋았다. 출입문 앞에서 '부엔까미노' 앱을 열어 까미노 루트를 검색했더니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안내를 하고 '닌자' 앱을 켜니 호숫가를 따라가다 근처의 다리를 지나면 자동차 길과 합해지는 방향선이 나타났다. 나는 거리가 조금 짧은 자동차 갓길을 따라 걷는 루트를 선택했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고 얼마 안가 고속도로 근처를 지나가는 순례길을 한동안 걸어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오래전에 물이 차 있었을 것 같은 작은 호수가 나왔지만 이제는 바닥이 말라 훤히 다 들여다보이고 잡초만 무성한 볼품없는 호수가 나왔다. 기후 온난화로 대지가 점점 말라가는 영향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곳을 지나자 오래전 폐쇄되어 낡고 무너질듯한 성당 건물을 보며 지나갔다. 홀로 마을을 지켜보는듯 멀리 떨어져 자리한 성당은 과거의 융성했던 자태가 사라지고 지금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 후로도 자동차 도로는 계속 이어지고 12킬로 정도를 걸어가 첫 마을 Fontanillas de Castro에 도착했다. 도로를 걸어갈 때 성당 앞에 주민들이 여러 명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 성당에서 마을 사람의 장례미사를 마치고 이제 영구차로 고인을 떠나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마을 ‘Riego del Camino’ 마을로 향했다. 40분정도 걸려 도착한 이곳의 바르는 문이 닫혀 있었고 벤치에 다른 지방에서 찾아온 순례자들 여러 명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길바닥에 앉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육포를 꺼내 먹었다. 육포는 순례길에서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며 말린 무화과도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 까미노의 비상 식량으로 좋았다.
그때 독일에서 온 두 명의 젊은 순례자들을 다시 만났다. 이전에 만났을 때 한 명이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이곳까지 잘 온 거 같았다. 그들은 내일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늘 알베르게 체크인 등록은 바르에서 하고 숙소는 길 건너편에 있는 2층 건물로 가야 했다. 이곳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알베르게라서 그런지 낡은 침대와 오랫동안 사용한 샤워기 등은 불편한 사항들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무료한 길이 끝나고 자연경관이 좋다는 사나브레스(Sanabres Way)로 들어간다. 어떤 순례자들은 계속 북쪽으로 걸어 아스트로가(Astroga)로 가서 프랑스길과 만나 산티아고로 들어가지만 나는 200킬로를 더 걸어 은의 길을 완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직 어둠이 깔린 길을 걷기위해 헤드 랜턴을 켜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며 노란 화살표를 열심히 찾았다. 마을 끝에는 자갈들을 깔아 놓아 걷기에 매우 불편하게 느꼈으며 풀벌레들이 소리 내어 날개를 떨고 있었다. 그곳에는 또 어디선가 날아오르는 새들이 높은 음조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옅게 걸친 푸르스름한 하늘에는 거의 생명을 다해 사그라들 것 같은 작은 별들이 무수히 깔려 있었고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손이 시려서 등산용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를 정신없이 걸었더니 이제 몸에 열이 나고 주위는 비로소 환 해졌다.
조금 전부터 시작된 너덜길을 내려와 한적한 도로에 들어서자 강이 만들어 낸 호수가 눈앞에 넓게 펼쳐졌다. 지금까지 만났던 풍경과는 다르게,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메마른 땅에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 농원. 그리고 밀밭. 지평선으로 점철되었던 길은 끝나고 자연을 실감하는 초록빛 숲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한 녹색과 푸른 색을 띄는 에스라(Esla) 강이 오래된 석재 교각의 다리 밑을 흘러가며 그곳에서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우거진 나무들은 늦가을의 전형적인 색체들을 띄우고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하늘 끝으로 물러가고 있었다.
넓은 호수를 지키는 오래된 교각을 지나 막 사나브레스 길(Sanabres Way)로 들어서자 글로만 만났던 새로운 자연 풍경이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졌다.
노란 화살표는 다리를 건너자 바로 왼쪽 강변으로 오솔길이 나 있었고 ‘Sanabres Way' 라고 안내 간판이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사나브레스 길 인증 사진을 찍고 이제 산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서 호수처럼 넓은 에스라강을 다시 바라보았다. 진한 녹색의 강물에 햇살이 물 표면에 넓게 반사되어 퍼지며 반짝거렸다. 나는 햇볕이 잘 내리쬐는 넓은 바위로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고 따뜻한 햇살과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기위해 누어버렸다. 이런 순간이 내가 도보 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번 까미노를 걸으면서 체험하는 놀라운 자연의 신비함을 얻게 된 것에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었다.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연출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어서 그렇다.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오솔길을 내려오다 작은 공원 같은 곳에 오래전에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는 폐허 된 흙 벽돌집을 발견했다.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흙으로 지은 집을 지어 살았을까 매우 궁금하기도 했는데 주변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산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건너편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야산을 내려와 찻길로 들어서서 아스팔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전에 바라보던 그 마을을 지나가며 정원과 화분들로 예쁘게 단장한 집들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몇 채의 주택을 지나가다 거의 끝에 있는 아담한 바르를 만났다. 나는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가 마침 진열장위 넓은 접시에 팔고 있는 오믈렛 한조각과 콜라를 주문했다. 주인이 햇볕이 내리는 바르의 밖에 있는 사각형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왔다.
오늘의 목적지 Tabara로 출발했다. Tabara는 이곳에서 5킬로 떨어진 곳이라고 표지판이 나타났다. 정오가 넘어가자 아스팔트 길은 햇살에 달구어져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도는 듯해서 걸음이 느려졌다.
오늘 내가 쉬어 갈 알베르게를 찾아왔다. 이곳에는 사나브레스 루트의 시작점을 출발해서 산티아고에 들어갈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나이가 많은 호스피탈레노가 시원한 레몬주스를 내왔다. 그리고 저녁과 아침까지 제공할 수 있다며 예약을 요청했다.
숙소에 Coruna에서 왔다는 스페인 남자 친구들 3명이 내 옆 침대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내가 배낭을 침대에 내려놓자 "올라"하고 정겨운 인사를 건네면서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신청한 순례자들이 8시에 식탁으로 모였다.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주인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식전주로 상그리아 그리고 메인으로 스페인 전통 음식 빠에야를 내오고 식후에는 전통주를 권해서 한잔하고 저녁 만찬을 끝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10월로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났고 앞으로 보름은 더 걸어야 까미노의 도전은 끝난다. 스페인에 도착하여 세비야를 출발한지도 오늘이 딱 한달이 되어 휴대폰의 로밍기간 연장을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세상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웍 때문에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그러니까 한국을 떠나 세계 어디서도 휴대폰을 연결하여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발명자들에게 감사해야 했다.
침실로 들어갔더니 순례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코를 골며 뒤척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하루가 피곤한 순례자들의 모습이었다.
어제 같은 숙소에서 지냈던 프랑스 순례자 Piet Maree는 달변가(達辯家)였다. 내가 숙소에 도착해서 침대에서 쉬고 있을 때 앞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인구, 서울은 어떤 곳인지, 은퇴는 했는지, 내일 목적지를 영어로 물어오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다. 프랑스인이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삐에트 마리는 내가 산티아고 이후 여행 목적지로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할 거라고 얘기하자 신이 나서 니스(Nice)부터 주변의 도시들을 설명하며 멋있는 풍경을 감상하라고 강조했다. 삐에트 마리는 어제 저녁 식사 때도 종교. 미술. 여행에 대해 자신의 지식과 이해를 가감 없이 스페인어와 영어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이제 숙소를 나서야 할 시간이라 순례자들이 어제 모였던 식탁으로 와서 주인이 제공하는 오트밀과 우유, 그리고 바나나, 바게트와 버터, 치즈로 푸짐한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알베르게를 나오자 시내로 쭉 뻗어 있는 한적한 도로에 배낭을 매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아침 햇살은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는 따뜻하고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바깥 날씨가 추울 걸로 예상해서 껴입었던 옷들을 하나씩 허물 벗듯이 벗어야 했다.
까미노 루트는 타바라 외곽을 벗어나자 상당한 시간동안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언덕길을 걸어야 했다. 고갯길에 올라서자 마치 테이블 마운틴처럼 넓은 지역을 지나가는 도로의 적막한 길목에 ‘Villanueva de las Peras’ 방향의 표지판이 있었다. 이때부터 주변은 지난 봄에 발생했던 산불의 현장이 나타났다. 당시의 화재로 주변 참나무 숲은 모두 검게 타버렸고 정말 참담하게 변해 있었다. 불행하게도 대형 산불은 오랫동안 여러 지역으로 옮겨붙어 넓은 지역의 많은 나무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내가 걸어가는 지역의 숲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걷고 있는 내내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뭄으로 스페인 남중부가 매일같이 불타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을 보면서 참나무와 올리브농원의 나무들이 모두 까맣게 타버려서 너무 안타가운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대한 재앙으로 지구는 나날이 파괴되고 있는데 인간들은 자신에게 직접 닥쳐온 불행이 아니면 너무 무관심하지 않나 생각했다.
산불 화재 현장은 내가 걷고 있는 동안 빠짐없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참나무 숲아래는 이베리코 흑돼지들의 먹이로 많이 이용한다는 타버린 도토리들이 참혹하게 널러있었다.
'Villanueva de las Preras' 마을로 들어섰다. 낮은 지붕의 주택들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농부들이 골목에서 나타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골목을 지나가다 돌연히 나타난 동네 바르를 만났다. 바르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다. 이곳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팔고 술과 음료수, 안주와 빵 등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본적인 제품을 팔고 있었다. 나는 타 들어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콜라와 진열장에 보이는 ‘토르티야’를 주문했다.
다시 마을을 빠져나와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상당히 길게 직선으로 뻗어 있는 너덜길이다. 길 바닥을 보면서 걸어가다 구릉에 있는 포도 과수원 근처를 지나갔다. 잠깐 언덕을 올라 갔더니 야산에 무슨 저장 시설로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나는 출입문 앞에서 작업 도구를 씻고 있는 남자를 보고 "올라" 하고 인사를 했다. 농부가 뒤를 돌아보며 "올라"하고 반응을 보여 휴대폰의 번역기를 사용해 이곳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와인을 제조하는 지하 저장시설이 있었고 입구에 부피가 큰 플라스틱 통이 두 개 있었다. 주인은 첫번째 통에는 포도를 수확해 물로 씻어 이곳에 넣고 한 달간 발효 과정을 거치는 중이고 이후에 포도 찌꺼기를 걸러내 다른 플라스틱 통으로 옮겨 두 달간 발효를 시킨 다음 지하에 있는 오크 통으로 옮겨서 장기간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며 토굴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저장하고 있는 오크 통들을 보여주었다.
주인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즐거운지 통로를 걸어가며 무척 들뜬 기분으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토굴속에는 얌전한 오크 통이 줄줄이 열을 지어 놓여 있었고 농부의 진심이 담긴 포도는 와인으로 잘 익어가고 있었다. 농부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어찌나 실감나게 설명하는지 나는 조금이나마 와인의 제조과정을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농부는 앞장서서 토굴을 한바퀴 돌고 나와 국자를 가져오더니 발효중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며 맛을 보라고 했다.
나는 토굴 밖으로 나와 농부와 같이 셀카를 찍었다. 동양인과 찍은 사진은 생애 처음일 거라고 설명했더니 그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박한 규모의 와이너리를 지나 다음 마을 산타마르타 데 테라로 향했다. 오늘 까미노는 곧 나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뮤니시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현대식 건축 건물은 얼마전에 리모델링했다는 알베르게로 규모는 작지만 키친에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깨끗한 시설과 도구가 잘 정돈되어 있어서 저녁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세비야를 떠난 이후 은의 길(Via de la Plata)을 걸으며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 여건이 어제 숙소를 제외하고 다른 숙소들은 약간 열악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늘 도착하는 빌라 데 파르폰 알베르게 마을에는 숙소 외에 마트나 바르가 없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그래서 Calzadilla de Tera 마을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사물들이 어슴푸레하게 투영되었다. 해드랜턴을 켜고 큰길로 나오자 그곳에는 폭이 좁은 운하와 빠르게 흐르는 물살을 볼 수 있었다. 운하를 따라 길에는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있는 오솔길이 있으며 운하는 근처의 작은 강과 나란히 지나갔다. 운하와 강 사이에 제방을 쌓아놓은 길이 있었다. 강변에 있는 채석장을 지나면서 부터 강폭이 꽤 넓어지고 강변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는지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풍경이 보였다.
이제 Calzadilla 마을의 슈퍼마켓을 찾아 내일 먹어야 할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납작 복숭아, 머핀과 내일 마실 생수를 사고 배낭에 넣어두니 무게가 확 늘어난 느낌이었다.
마을에서 2킬로 떨어진 곳에 알베르게 겸 식당이 있다고 해서 구글맵을 보며 찾아갔다. 식당은 정오가 되지 않아서 인지 아직 영업을 하지 않았고 나는 배낭 무게가 무거워서 이곳에서 오늘 머무르고 갈까 하고 옆 건물의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주인을 불렀더니 여자가 나와 숙소 내부를 보여달라고 했고 안으로 들어가 방을 둘러보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바닥이 끈적끈적하고 침대와 모포는 너무 낡아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나는 더 생각할 것 없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제 오늘 머무를 예정이던 알베르게에 먼저 전화를 해서 예약을 시도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한참 지난 후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영어가 꽤 능숙하게 들려서 숙박과 저녁 및 아침 식사까지 예약을 했다.
하루 저녁을 쉬었다 갈 숙소가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러나 걸음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1.5리터 생수가 들어간 배낭 무게는 걸어 갈수록 무거워지며 어깨를 눌려 아프기도 했었다. 숙소까지는 8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까미노 루트는 점점 고도를 높여가더니 얼마 안가 호수가 나타났고 그곳에는 높은 수문이 있는 댐이 보였다. 호수는 바람 때문에 물결이 출렁거리며 바다처럼 찰랑찰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댐 방향으로 가는 길의 호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 경치가 뛰어났지만 외딴곳에 홀로 있는 단층 주택이 숙소라는 것도 궁금했다. 그러나 이런 장소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기대가 되었다. 입구에는 'Albergue Rehoboth' 그리고 ‘Please Ring the bell(종을 치세요)'라고 출입문 벽에 표시가 있어 지체 없이 줄을 당겨 종을 쳤다.
노년의 남자가 문을 열어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신발을 벗고 배낭에서 저녁에 필요한 물건을 담으라고 바구니를 주었다. 그러니까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먼지가 뭍은 신발과 배낭을 밖에 두고 들어가라는 얘기였다.
주인이 거주하는 본체는 호수 쪽으로 있고 순례자들은 별채에서 지내게 되어있었다. 남자는 숙박 비용을 받고 크리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저녁 일곱 시에 로비 테이블에 음식을 가져다 놓겠다며 돌아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알베르게 주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부부이다. 로비를 지나 별채로 들어가 방문을 열어보니 하얀 베드커버로 덮인 침대 3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저녁 식사 음식을 가져온 주인과 잠깐 대화를 했다. ‘Albergue Rehoboth(평화, 쉼. 넓은 숙소란 의미) 주인은 가족과 함께 이곳 한적한 호숫가 마을에 터를 잡고 거주하며 4월에서 10월까지 알베르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저녁식사로 병아리콩과 강낭콩, 파프리카, 월계수 잎을 넣어 끓인 진한 수프를 내주었다. 이름은 Craig Waliace. 스코틀랜드가 조상의 나라이며 남아공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본인은 잠비아에서 태어나 사실 잠비아 사람이라고 에둘러 강조를 했다.
깊은 숲 속의 롯지(Lodge)같은 느낌으로 지난 밤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방안의 천정이 낮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았지만 아늑했다. 출입문 입구에 딸린 화장실과 샤워실은 작은 공간으로 상당히 편한 것이 흠이었다. 주인이 거실 테이블에 아침 일찍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갓 구운 식빵과 쨈. 치즈. 텀블러에 담은 따뜻한 커피와 사과 접시였다. 오늘 아침은 어느 때 보다 훨씬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했다. 까미노 구간이 좀 짧아서 8시에 출발해도 여유가 있었다. 밖으로 나와 알베르게 주변을 잠깐 산책하며 구경했다. 이제 10월의 가을은 완벽하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 쌓인 호수의 아침은 물위로 부터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다. 겨울로 다가서는 산악지역의 초록 빛들이 이미 누렇고 불구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갈대 숲이 우거져 있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갈대와 키가 부쩍 자란 풀무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의 쌀쌀한 기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것 같았다.
벌써 중간 마을 Rionegro del Puente로 들어갔다. 마을 입구에 있는 강변 공원을 지나가다 갑자기 왼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며 계속 걸을 수가 없어 벤치로 가서 주저 않고 말았다. 단단히 묶여 있는 신발을 벗고 발목에 물파스를 먼저 바른 다음 안티프라민 젤을 여러 번 겹쳐 발라 주었다.
발목을 주물러 근육을 풀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곳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마을로 들어가 약국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벤치에서 일어나 발을 절뚝거리며 공원을 빠져나오다 길에 동전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리를 굽혀 동전을 줍고 확인해보니 거의 3유로가 조금 넘어서 누군가 이곳에 흘리고 갔다고 생각되었다. 주운 동전을 분실한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느 장소에 두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찾아간다는 확신이 없어 나는 이 돈이 하늘에서 나에게 선물로 준 돈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발이 힘드니 커피 한잔하면서 쉬었다 가라고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구글맵을 열어 근처의 카페를 찾아 길 건너 주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카페로 갔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로를 횡단하여 가파른 언덕에 있는 카페로 갔지만 영업시간 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 성당의 벤치로 걸어가 영업 시간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렇지만 지금 발 상태로 계속 걷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택시를 타고 알베르게가 있는 ‘Mombuey’로 가서 바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길거리로 내려와 지나가는 사람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다가오는 SUV자동차를 무조건 세우고 휴대폰 번역기를 사용해 지금 발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택시를 불러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남자는 나에게 ‘Mombue’y에 내려줄 테니 배낭을 뒷좌석에 두고 차에 타라고 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라고 우선 감사를 표하고 그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는 8킬로 떨어져 있는 Mombuey 마을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또 기념으로 그에게 우리 돈 천 원 지폐를 전달했다.
알베르게는 마을의 중심가에서 약간 골목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우편함에서 출입문 키를 찾아냈다. 순례자들이 찾아오기에 이른 시간이라 나는 조용한 방에서 침대에 앉아 발목에 파스를 붙이고 그대로 눕고 말았다. 이렇게 이층 침대 천정을 보고 있으니 오늘 아침부터 지나오며 만났던 풍경들이 새삼 생각이 났다.
나는 침대에서 한참 뜸을 들이다 갑자기 허기가 들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발이 불편해서 걷기 쉽게 샌들을 신고 나와 걸어갔다. 오늘이 장날인지 알베르게 밖은 여러 대의 트럭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다양한 옷들과 가정용품들, 그리고 먹거리 차량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나 시장과 장날은 볼거리가 있어서 이곳 저곳 들려보다 식당에 들어가 샐러드로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했다. 그리고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며 산책을 했다. 마을에는 돌로 지어 올린 담장이 많았고 철 늦은 장미도 그 위에 걸쳐 있었다. 주택가 골목에는 담벼락을 넘어온 사과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진 낙과들이 길에 떨어져 널려 있었다. 골목을 나와 큰 길로 나오자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미용실 간판이 두 개나 보였는데 그 앞을 지나가다 안을 들여다보니까 여자 미용사가 남자 머리를 깎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보고 밝게 웃어 보였다. 나는 당황해서 웃었지만 그곳을 빨리 빠져나왔다.
맑은 공기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을 무렵 나는 불편한 발을 지탱하며 마을의 공원 벤치에서 오후의 느릿한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프랑스에서 왔다는 젊은 순례자가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에 반바지를 입고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배낭을 침대에 놓고 나갔다 밤늦게 들어오더니 바로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통증이 심했던 왼쪽 발목에 안티푸라민 젤을 다시 바르고 여러 번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 가이드북을 열어 오늘 구간을 사전에 확인하고 발목에는 다시 파스를 넓게 붙이고 발목 보호대를 처음으로 착용했다. 어제 늦은 밤에 들어온 프랑스 젊은 순례자가 일어나 물병에 수돗물을 가득 채워 넣은 후에 배낭을 들고 간단히 목례를 하더니 먼저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버리자 실내는 갑자기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되어 더 조용해졌다.
오늘 까미노는 알베르게를 나서면 우선 자동차 길을 따라 걸어가다 숲을 만나고 숲길을 지나 다시 시골의 차도를 걸어야 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어제 저녁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마침 문이 열러 있었다. 진열장위에 몇 가지의 빵들과 내가 평소 좋아하는 오믈렛이 큰 접시에 담아 있어서 한 조각을 주문했다. 대형 호텔의 아침 뷔페에서 쿡이 만들어주는 계란이 많이 들어간 오믈렛과 다른 으깬 감자가 들어간 모양이 다른 오믈렛이었다. 감자가 입안에서 씹히면서 만들어내는 맛이 한층 즐거웠다. 그리고 방금 로스터에서 내린 검붉은 커피 위에 우유를 뿌린 카페콘레체를 마시면서 나는 우아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이제 아침 공기가 선선해지면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다. 출발을 하고 얼마 안가 발목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 조심조심,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야 했다. 숲이 나타나고 햇볕을 가려주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이끼 낀 나무들의 가지가 축 늘어져 있고 피톤치드 냄새도 느껴졌다. 나는 숲 속 길에서 뜻밖에도 회갈색 토끼가 나타나 길을 건너 풀더미가 널려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또 뿔을 달고 있는 황갈색 사슴 두 마리가 나를 응시하며 경계를 하는 듯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약간 긴장을 해야 했다. 숲 속의 동물들이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접근을 경계하는 듯했다.
진한 초록색 소나무 침엽수와 키가 큰 유칼립투스들이 가득한 지역도 지나갔으며 가끔 벌목을 해서 키가 낮아진 나무사이로 파르스름한 하늘이 보이기도 하였다. 산길을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주택들이 있는 마을을 만났다. 골목을 지나가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내가 "올라"하고 인사를 했지만 할머니는 쳐다보고 엷은 미소만 보여 주었다. 마을이라 기에 너무 작은 집들이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낡고 바래서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거 같았다.
산길을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 까미노는 ‘San Salvador de Palazuelo’ 마을을 지나갔다. 그런데 마을을 빠져나오다 붉은 적색 벽돌 주택의 정원에서 떨어져 있는 사과를 담고 있는 여자분들을 만났다.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시골에서 그들은 매우 반가운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아주 평화스러운 시골의 정취는 사람들과 가을 열매에서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오늘 목적지 Asturianos 마을로 들어왔다. 한낮이라 거리는 무척 조용했으며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에 19세기에 건축된 ‘누에스트라 세뇨라 아순시온’ 성당을 지나가다 성당안에 공동묘지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넓은 묘역에는 높고 낮은 비석들이 주인의 묘비명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켜오고 있었다.
은의 길 종반으로 들어가는 사나브레스 구간으로 들어와 오늘은 'Sanabria' 라는 이름의 마을을 찾아가는 날이다. ‘Asturianos’를 출발하여 14킬로 떨어진 ‘Puebla de Sanabria’에 도착하면 그곳의 성을 구경하고 다시 12킬로 떨어진 오늘 목적지 ‘Requejo de Sanabria’로 간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같이 지냈던 상당히 점잖은 영국인 순례자 Mr. Justin과 여행에 대한 대화를 했다. 나이가 육십이라는 저스틴은 사업하느라 유럽 몇 나라밖에 여행을 못했는데 당신은 여행을 많이 했는지 물었다. 나는 직장에 있을 때 해외 출장을 다녔고 은퇴후에도 여행을 했는데 약 50개 국가 정도는 될 거라고 했다. 그가 한국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곧 아시아 여행을 할 때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저스틴은 은퇴를 하고 처음으로 나선 여행으로 은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내가 프랑스길을 먼저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그곳은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 조용한 길을 걷고 싶어서 은의 길을 선택했으며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구간들을 참고만 하고 매일 걷고 싶은 곳까지 걸으며 그곳에서 쉬며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오늘 까미노 루트를 살펴보니 대부분 산악지역을 약 27킬로는 지나가야 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자동차 도로가 바로 나왔다. 그리고 3킬로 정도 걸어가자 어제 저스틴이 알려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바르를 만났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 남자가 접시에 샌드위치와 진하게 내린 검은색 커피를 가져왔다.
바르를 나서자 까미노는 순례자들이 걷기 편한 흙길이라 그런지 걸음이 빨라지면서 한 시간 동안 4.5킬로를 걸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로에는 햇볕이 내려앉으며 조금씩 열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사나브레스 루트에 들어오면서 체감되는 가을 풍경은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었다.
Otero de Sanabres 마을에 들어갈 때 도로를 따라 심어놓은 사과나무와 담벼락 밖으로 빠져나온 무화과 나무에서는 열매들이 떨어져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음 마을 Triufe에 들어갈 때 마을회관 건물 입구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틈속에서 검은 정장을 하고 양복 앞 포켓에 장미꽃을 꽂은 남자가 서있어서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행사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오늘 자기 결혼식이라 친척들과 함께 근처 도시인 Puebla de Santabres로 차를 타고가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나는 신랑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은 다음 신랑에게 축의금으로 한국 돈 천 원 지폐 두 장을 봉투에 담아 건넸더니 그가 친척들에게 봉투를 들어 보이며 너무 좋아했다.
내가 ‘Puebla de Sanabria’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의 경사진 길의 인도를 따라 걷고 있을 때 뒤에서 따라오던 저스틴이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도시는 마치 요새처럼 바위 절벽이 둘러싸여 있고 아래는 테라강(Rio Tera)이 흐르며 도심의 중심에는 높은 언덕을 따라 주택과 건물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성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상점과 식당, 카페와 바르를 자나 넓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고 여행자 안내소에 들어가 팸플릿을 받아 나오다 나는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저스틴은 오늘 이곳에서 지내고 내일 다시 걷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 Casa Cenvino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가이드북이 알려준 오늘 순례길 정보에는 주변이 완전히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산악 지역을 통과하며 고도는 1350미터를 오르고 다시 내려가면 목적지 Lubian에 도달한다고 알려주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나는 건물 밖으로 나 있는 테라스에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늦은 오후 시간까지 보냈다. 더군다나 알베르게 건물 옆에 레스토랑이 있었고 음식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 델 디야(Menu del Dia, 오늘의 메뉴)'가 율창에 붙어있었다. 내가 유리창 쪽 테이블에 앉자 주인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나는 당연히 이것을 선택을 했고 음식은 최상의 스테이크와 호박 수프였으며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해서 스테이크에 맛을 더하며 여유로운 식사를 했다. 순례길에서 이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나는 감사해야 했다.
아침 8시가 넘어 출발을 했다. 서리가 내려 마을은 온통 하얗게 변하고 풀섶으로는 얼음의 결정체가 알알이 맺혀 반짝였다. 오늘도 한동안 숲길이 이어졌다. 까미노 루트를 가리키는 거리 표지판과 노란 화살표가 자주 나타났다. 이제 속도를 좀 내면서 걷기위해 스틱을 뒤로 밀면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런 동작이 걷기에는 더 수월한 느낌이 들었기 떄문이다.
마침내 숲길을 빠져나오자 자갈을 깔아 놓은 길이 나왔다. 이런 너덜길은 발바닥에 전해오는 압박감으로 걷기에 무척 불편했다. 도로의 가장자리를 택해서 걸어보았다. 앞이 탁 트인 고속도로와 기찻길이 앞에 나타났다. 모두 산티아고 콤포스테라로 연결되어 가는 길이다.
까미노 루트는 다시 오르막 언덕을 향해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힘겹게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 시간이 지나도 마을도 없고 순례자도 없어서 약간 겁이 났다.
고도가 1200미터를 넘어가는 길에 오르자 멀리 어느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속도로 같은 넓은 길로 자동차들이 쏜살같이 내 달리는 풍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배낭 때문에 통증도 생겨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담아 온 육포는 간식으로 거의 먹었고 고추장과 블록 음식들, 정관장도 다 먹었지만 얼굴에 바르는 로션과 바셀린이 많이 남아있어서 무게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몇 번 버리고 싶었지만 아까워서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갈림길에 있는 거리 표지석을 보고 있을 때 외국인 순례자가 옆에 와서 길을 물었다. 내가 "아끼" 하고 스페인어로 길을 가리켰더니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언덕을 내려오다 처음 만나는 마을 Padimelo에서 바르가 보여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얇게 자른 짭짤한 하몽을 씹으며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바르를 나와서 비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다 계곡이 있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계곡은 거의 물이 흐르지 않고 있었으며 가시덤풀이 무성했다.
오늘 알베르게는 Lubian 마을 초입에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서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은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와서 식사를 하고 있어서 나는 자리가 비어 있는 한쪽 귀퉁이에서 소고기 필레를 주문하고 곁들일 콜라를 추가했다.
식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했더니 “스페니쉬. 잉글리시!" 하고 먼저 물어왔다. 내가 "잉글리시" 하고 대답을 하자 출입문은 항상 열러 있으니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오케이" 하고 정말 열러 있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천정이 높아서 개방감이 있고 식당은 넓어서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4개의 침대가 나란히 있는 침실도 깨끗했다.
오랜만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배낭을 놓고 마트에 들러 1.5리터 생수를 사서 밤부터 내일까지 마실 물을 파우치에 채웠다.
오늘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어제 사둔 바게트빵을 절반 잘라 배낭에 넣고 절반은 오렌지 주스와 요플레를 먹으며 아침 식사를 끝냈다. 커피는 가지고 있는 카누(KANU)로 해결할까 하다 그냥 지나는 길의 바르에서 사 먹기로 했다.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 곧 숲이 있는 길이 나왔다. 숲이 깊어 마치 터널을 이루고 있었으며 키 큰 나무들이 양쪽에 가지를 길게 뻗어 햇볕이 차단되고 약간 어두웠으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숲 터널 주변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숲길은 끝나고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넓은 평지가 나왔고 그곳에 순례자용 벤치가 있었다. 공원에는 갈리시아 지역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산티아고까지 246킬로미터, 그리고 해발 1250미터 정보도 있었다. 이제 천천히 계곡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고랑을 따라 계곡이 만들어진 산길을 내려오며 나는 사뭇 여유를 즐기며 걸었다.
처음 만나는 Villavilla 마을 바르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바르에서는 식사를 하기에는 좀 허름해서 간단히 보카디요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이 지역은 고산지대를 지나가는 성난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 키가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멀리 Gudina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구글 맵에서 7킬로를 표시하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시간 3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도로에 자동차의 통행량이 줄어들어 한결 조용하고 부담이 덜해서 걷기에 수월했다.
Gudina로 들어가는 거리의 상점들은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심지어 슈퍼마켓과 레스토랑도 늦은 시간대는 문이 열려 있질 않아서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내 걸음은 먹는 문제로 상당히 마음이 무거웠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뮤니시팔 알베르게, 그러나 주방에는 오직 전자레인지만 있어서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다. 또 침실은 3개가 있었는데 여성용 침실을 별개로 운영하였다.
어제 살펴본 일기 예보에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 표시가 있었는데 정말 두 시쯤부터 빗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날리고 있었으며 길바닥이 이미 흥건히 적셔있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도로에 떨어지는 아침, 무엇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일곱 시쯤 알베르게 건너편 카페로 갔다. 카페에는 이른 시간에도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창가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들어 한쪽부터 먹기 시작했지만 입맛이 없어서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비가 내리는 아침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건너편 가족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번개가 치는 광경이 보이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 같아 오늘은 걷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머리속에는 출발을 해야 하지만 막상 일어나지 못하고 잠시 골똘하게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니까 걷지 말고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해서 오늘 목적지까지 갈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취지를 이탈하는 것이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자 나는 결심을 했다. 오늘은 비를 핑계 대고 택시를 타고 깜포베쎄로스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카페 여자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호출한 택시가 바르 앞에서 경적을 울렸다. 나는 배낭을 벌써 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밖으로 나가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는 문을 닫자 가속 페달을 밟아 금방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안개까지 자욱해서 희미한 길을 택시 기사는 오랫동안 익숙한 길을 야무지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우비를 쓰고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있는 두 명의 순례자를 발견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찡하며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택시는 오른쪽에 낭떠러지가 있는 고갯길을 돌고 돌아 오르더니 험준한 산골 마을에 나를 내려 주었다. 깊은 산골에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목축업 또는 벌목 업 아니면 사람들이 싫어서 멀리 떠나와 살고 있을 까도 생각했다.
마을에는 아직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비를 쓰고 알베르게를 찾아 걸어가다 ‘펜시온'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건물 앞에 섰다. 같은 건물에 카페 간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며 이곳에서 희뿌옇게 내려앉은 안개와 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따뜻하고 진한 블랙커피를 앞에 두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을 해냈다. 나는 바로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밖으로 마을 주변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 쪽으로 걸어갔다. 비가 흩날리는 마을에 돌로 쌓아 올린 집들과 그리고 정원의 키 큰 나무의 가지들이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주인 남자가 일찍 찾아온 나를 보더니 궁금해하면서도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비가 많이 와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솔직한 변명을 해댔다.
우유가 들어가는 부드러운 카페콘레체를 주문하고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나무로 만든 의자를 끌어내어 앉았다. 창밖에 있는 키가 큰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에 빗물이 송골송골 맺혀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대낮에 알베르게의 텅 빈 침대 위에 침낭을 펼치고 속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따뜻한 침낭의 아늑함이 최고로 상승했다. 나는 오늘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감행했으나 기분은 왠지 최고조에 달했다. 아마 힘든 걷기의 노동을 회피했기 때문에 육체가 반기면서 전달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비가 멈춘 ‘Campobecerros’의 아침은 사뭇 천상의 산간 마을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을의 골목을 따라 있는 주택들은 벌써 난방을 하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풍경도 보였다.
밤새 내리던 비는 산골 마을을 촉촉히 적셔놓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기온이 어제보다 훨씬 내려가 출입문을 밀고 나오자 역시 살갗이 차가웠다. 시멘트 포장된 골목길을 나와 마을 날머리로 걸어갔다.
해발 960미터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새 머물던 안개가 산능선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고 길에는 빗물을 머금고 있는 풀들이 길을 따라 나 있었다.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이르자 멀리 산 능선 위로 옅은 여명의 잔해가 벗겨지고 해가 올라오며 주홍 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하늘은 훌륭한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스팔트 포장된 길로 들어오자 순례길 표지석이 보이고 초록빛으로 우거진 산림지역은 고도를 낮추어 가고 있었다. 이런 내리막길에서 걷는 속도를 내고 싶지만 얼마 전 생겼던 발목 통증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긴장해야 했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고 14킬로쯤 걸어왔다. Laza라는 마을 안내판을 보고 들어갔다. 다행히 마을 중앙에 바르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들이 모여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다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고작 병맥주 한 병씩을 앞에 두고 무료한 낮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메뉴에 오징어 튀김(깔라마리)이 있길래 프렌치프라이와 같이 주문을 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이런 산골 마을에서 먹는 오징어 튀김은 입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하였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가 넘어 바르를 나왔다, 까미노 루트가 점차 언덕을 앞에 두고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그늘이 없는 도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계의 고도계는 거의 1,000미터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덥고 땀이 차올라 그 자리에서 물 파우치 꼭지를 들어내 물을 빨아 마셨다.
마치 오전에는 천당으로 가는 길이고 오후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힘들게 느껴져 도로 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처럼 늘어졌다가 스스로 눈을 감고 버텨보았다.
가이드북에서 소개된 알베르게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돌로 쌓아 올린 건물 입구에서 식당, 심지어 순례자들이 지내는 침실 벽까지 온통 가리비로 장식을 했다. 호스피탈레노는 크리덴샬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가리비와 사인펜을 주면서 이름과 방문일을 적어 달라고 했다. 나의 이름이 쓰인 가리비를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나는 유쾌하게 적어서 호스피탈레노에게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알베르게의 낡은 침대와 허름한 화장실, 그리고 닥쳐온 추위로 기온이 내려간 새벽에는 정말 잠들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침낭속에서 뒤척이며 통신이 잘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오래되고 시설들이 낡아서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던 알베르게에서 새벽녘에 잠이 깨어 휴대폰으로 다시 한국 소식을 들여다보았다. 미국이 인플레를 잡겠다고 금리를 계속 올리니 한국도 따라 올려서 무역수지도 나빠지고 내수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고 많은 매체들이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며칠 전에 사서 가지고 다니는 바게트와 우유. 사과 한 개로 해결했다. 잼을 가지고 다니고 싶지만 무게 때문에 사질 못했다.
오늘은 여러 마을을 지나가는 날이다. 그동안 지루하게 걸었던 산길에 비하면 힘이 날 것 같았다. 두 시간쯤 걸었을 때 마을에 카페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카페콘레체와 머핀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로 나왔다. 조금 후에 주인이 우유가 가득 덥힌 커피와 머핀을 가져왔다. 이 시간 즈음 마시는 커피와 빵 맛은 항상 최고였다.
갈리시아 마을들은 농작물과 먹을 음식을 저장할 창고를 오래전부터 집 입구에 세워놓고 이용하는 일명 ‘오레오’가 있다. 이 지역을 지나가면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오레오는 크기가 다양했으며 부를 상징하기위해 아주 크게 지어 올린 집도 있었고 때로는 가끔 측면에 나 있는 문이 열러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스페인에서 시골 지역을 걸어가며 나는 채소를 가꾸는 밭을 잘 보지 못했다. 채소를 조달하는 방법을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주인에게 물어본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때마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인터넷에 순례길에서 채소밭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이 나왔다.
순례길에서 채소밭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
대규모 농업 위주
순례길은 주로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같은 메세타 평원을 지나는데, 이 지역은 밀, 보리 같은 곡물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또, 포도밭(리오하,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 올리브밭(갈리시아 전 이전 구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집집마다 소규모 채소밭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텃밭은 ‘안쪽’에 있음
스페인 마을에 들어가면 집 뒤쪽이나 마을 외곽에 **작은 개인 텃밭(huerto)**이 있긴 하지만, 순례길에서 걷는 길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요.
순례객이 주로 지나는 길은 마을 중심 → 교회 → 알베르게 → 곧장 나가는 길이라, 주민들의 생활 공간(텃밭)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묵고 갈 알베르게가 임시 폐쇄되어 마을 중심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로 옮겨갔다. Casa Tomas라는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서 편리하고 1층 침대 4개로 구성된 침실이 무엇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침대를 배정받고 순례자 여권에 세요를 받았다. 그동안 스탬프가 찍혀 있는 마을들을 하나씩 생각해 내려 애를 썼지만 완벽한 기억을 불러올 수는 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빈 공간을 채우면 순례길 도보 여행도 끝을 맺을 것이다.
깨끗하고 아담한 알베르게 1층 침대에서 진정한 순례자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매우 홀가분했다. 어제부터 알베르게에는 순례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이제 프랑스길과 북쪽길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출발한 순례자들로 많이 북적거릴 것이다.
오늘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마지막 대도시 오렌세(Ourense)로 들어간다.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갈리시아 지방의 교통 요지이며 Miño 강이 흐르고 역사적인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렌세는 유명한 온천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된 온천들이 있으며 대표적인 온천으로 Outariz 온천과 As Burgas 온천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건축물로 오렌세 대성당(Ourense Cathedral)은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알려져 있다(위키피디아 퍼 옴)
산중 마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거침없이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처음 만나는 마을의 카페를 지나치고 다음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토르띠아와 커피를 받아서 밖에 있는 테이블로 나왔다. 잘 다져진 감자와 계란이 들어간 토르띠야는 프랑스식 오믈렛이라고 하는데 커피와 조합이 잘 맞았다.
도시로 들어가는 까미노 루트에 섰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메마른 도로에서 올라오는 먼지 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했고 분주함은 가득했다. 겨우 익숙해진 시골의 풋풋했던 냄새와 달리 약간은 메마른 공기를 마시느라 도시로 들어가는 갓길에서 걸음은 예전보다 빨라졌다. 그래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는 나에게는 ‘오렌세’로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까워 올수록 내심 신이 난 듯 주변을 자주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오렌세’의 넓은 도시 풍경이 보이는 낮은 야산의 길도 지나갔다. 구글 맵이 알려주는 알베르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언덕으로 나 있는 골목길을 몇 번이고 올라가자 나타났다. 갈리시아 주정부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는 깨끗하지만 화장실을 갈 때는 특이하게도 건물의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지낼 침대를 지정하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며 돌아갔다. 그가 정해준 침대를 찾아가 위에 걸터앉아 먼저 일기 예보 앱인 ‘weather.com’을 검색했다. 내일 오후부터 다시 비 예보가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남은 사흘을 비를 맞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상황에 따라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하기보다 처음부터 우산으로 비를 피하며 걸어가는 방법이 최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렌세에서 과감히 우산을 구해보려 했다. 우선 대형 슈퍼마켓으로 가기 위해 구글맵에서 알려준 대형 슈퍼마켓 까르푸를 찾아가 우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걸으며 마실 생수를 사러 들어간 중국인 마트에서 주인이 근처에 우산을 파는 대형 마트가 있다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Bazar Chino라는 곳으로 갔다. 물론 이곳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매장인데 주소를 보며 찾아갔더니 일상용품을 파는 대형 마켓이었다. 프론트를 지키고 있는 주인에게 우산이 있는 위치를 물었더니 바로 자기 옆에 진열대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산은 종류가 많아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첫째, 작은 사이즈로 접혀야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고 둘째, 중국산이 아닌 상품이어야 튼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보이는 회색천의 우산을 집어 들고 생산지를 확인했다. 중국산으로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스페인에서 만든 상표 라벨이 붙어있었다.
우산을 사고 미뇨강위에 세워진 로마시대 다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오랫동안 지탱해 온 돌로 만들어진 다리는 이제 다른 곳에 세워진 근사한 다리의 위용에 밀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오렌세’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규모의 성당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 우측으로 나 있는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대 앞으로 가는 우측 회랑사이의 통로를 따라가며 사도들의 조각상들과 예배실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때 나이가 지긋하신 신부님이 신도들과 걸어가며 무엇인가 설명을 하고 계셨다. 하느님의 종이 되어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자신의 삶을 오직 신앙에 매진하시는 신부님과 수사님을 뵈었을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제단의 뒤편에는 천사들과 성모님 상,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이 보였다.
오렌세의 아침은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적지로 움직이느라 번잡스러웠다. 더구나 도로에는 버스와 자동차들이 줄줄이 선을 따라 가느라 느릿느릿 움직였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 예보가 있어 가능한 빨리 걸어 Cea까지 걸어야 했다. 그런데 앱에서 보여지는 까미노 루트는 등고선이 매우 가파르다. 많은 오르막이 있다는 표시인데 정말 시내를 지나 오렌세의 외곽에 들어서자 주택들이 모여 있는 길도 오르막이었다. 이마와 얼굴에 흐르는 땀이 손수건을 적셔가기 시작해서 길가 시멘트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그런데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가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난 사람인데 등치도 크고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도 많아 내가 왜 큰 배낭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서툰 영어로 숙소가 없으면 매트리스를 깔고 아무 데서나 자고 먹고 하기위해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또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카나리아(스페인령 카나리아섬)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걸음이 매우 빨라 항상 나에게 "올라!" 하고 그냥 지나갔다.
가파른 고개를 막 넘어오니 어제 머물렀던 오렌세 시내가 멀리 바라 보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도시였다. 나는 이제 다시 양팔을 벌려서도 서로 닿을 수 없는 참나무 숲을 걸어갔다.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km 표지석이 나타났으며 이제 거리가 계속 줄어드는 반가운 숫자를 만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름 전 알베르게의 같은 침실에서 만났던 '피터'가 뒤에 따라오며 "헬로"하고 영어로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흔들며 빨리 오라고, 아니 반갑다고 롱 타임 노씨(Long Time No See)" 하고 외쳤다.
그를 처음 만났던 알베르게에서 같이 지냈던 폴란드 순례자가 그에게 왜 은의 길을 걷느냐는 질문에 피터가 설명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는 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아픔을 갖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스페인 세비야로 여행을 떠나 며칠간 호텔에 머물며 지내다 아내의 지병이었던 심장병이 발작되어 금년 5월 2일 그녀를 먼저 떠나보냈다고 했다. 금년 예순 두 살의 피터는 아내의 주검을 안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로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듯했다고 했다. 몇 달을 아내의 생각으로 거의 두문불출하던 피터는 아내와 여행을 했던 추억을 살려내고 그녀를 추모하는 방법으로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고 했다.
피터는 말을 하면서도 굉장히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듯 보였다. 그날 나는 그에게 “아이엠 쏘리"라고 위로를 전했다. 피터는 보통 순례자들처럼 가벼운 바지가 아닌 갈색 면바지를 입고 알베르게나 레스토랑에서는 청바지를 입고 다녀 마치 예전에 부인과 여행을 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상상하며 걸어가는 순례자라고 생각했다.
일기예보와 달리 밖은 찬바람이 불고 하늘엔 검은 구름이 몰려다니며 아직 어둑어둑해서 사물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비 예보가 아직 남아있지만 그래도 알베르게를 나설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아 오늘도 빨리 걸어 도착 시간을 당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 레스토랑에서 파는 송아지가 그려져 있는 팩우유와 머핀을 사 왔는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우유가 아니라 연유를 잘못 사 왔던 것이다. 머핀과 함께 몇 번 마시다 속이 더부룩해져 그만 버렸다. 그리고 속을 달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고추장 튜브를 열어 몇 번 빨아먹었더니 속이 개운해진 것 같았다.
오늘 목적지 Castro Dozon 알베르게가 폐쇄되었다고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가 Lalin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그 곳에서부터 Laxe까지 걸어가라고 했다. 일단 저녁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가서 주인에게 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해서 매우 낙심을 했다. 정말 모르는지 동양인에 대한 무시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동네에서 식당 영업을 하는 사람이 겨우 버스정류장을 모른다고 하니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구글로 Bus Station을 검색했다. 근처에는 정류장이 없고 꽤 먼 거리에 정류장 표시가 나타났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젊은 순례자 청년들에게 다가가 내가 내일 Lalin을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 명이 휴대폰을 꺼내 Rome 2 Rio 앱으로 버스시간을 찾아보고 나에게 Lalin 가는 8시 10분 버스를 타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은 이곳에서 1 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바르 옆에 있으니 미리 가서 직접 확인해 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내일 아침에 버스정류장을 찾아가기보다 사전에 위치를 확인해야 안심될 거 같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은 정말 사거리 근처의 바르를 지나 있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근처 바르로 들어가 카페콘레체를 한잔 주문해서 밖에 있는 테이블로 나와 앉았다. 조용한 시골길에 큰 트럭들이 소리를 내며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Lalin 가는 버스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서 도착했다. 버스가 시골길을 속력을 내며 달렸다. Lalin으로 들어가는 길은 작은 도시지만 상점들과 자동차들이 꽤 많이 움직이는 마을이었다.
이제 다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은 하늘을 보며 Laxe로 가는 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걸어야 닿는 목적지가 아니라 쉬운 길을 택한 덕분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순례길 정식 루트까지 거리가 줄어들길 바라는 생각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Laxe 라는 마을의 표지가 나왔다. 마을의 중심을 따라 상점들이 있고 식당들도 많았다. 까미노 앱에 나타나는 안내선을 따라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현대식 건물에 뮤니시팔 알베르게 이름과 체크인 시간이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알베르게는 오후 3시에 체크인이 시작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맵을 열어 레스토랑 니어 미(restaurant near me)를 입력해 보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300미터 떨어진 공장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현재 영업중인 식당이 하나 있었다. Laxe 시내를 찾아가서 식사를 하려해도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할 거 같아 포기를 했다.
나는 샌드위치와 콜라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종업원에게 손님이 없다고 하니까 오늘은 주말이라 식당들이 문을 닫고 쉬는 곳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음식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갑자기 단체 손님들이 몰려왔다. 스무 명이 넘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이 내 주변의 침대에 2층까지 꽉 들어찼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면서 신경이 많이 거슬려 로비의 소파로 나와 까미노 카페에 밀렸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잘되어 일기쓰기는 어제 일까지 마무리하고 침대로 돌아왔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맵으로 현재 영업 중인 식당을 검색하니까 근처에는 없고 최소 7km 정도는 나가야 해서 포기하고 가지고 다니는 빵과 생수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단체 순례자 한 분이 나에게 오더니 저녁 식사를 단체 주문할 계획인데 메뉴는 생선 또는 고기를 선택하고 수프는 기본이니 신청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생선요리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8시가 훨씬 넘어서야 식당 주인이 자동차로 음식을 가져왔다. 감자를 곁들인 생선 요리는 맛이 좋았고 곁들인 와인은 풍요로운 식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온 후에 사람들은 대화를 늦게까지 하면서 웅성거리며 창문을 열어 두어 모기가 들어와 몇 번씩 깨어나 플래시를 켜고 모기를 잡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오늘부터 매일 17킬로 거리에 있는 Bandeira, Outeiro, Santiago Compostella까지 걷기로 했다.
7시쯤 식당으로 가서 머핀과 생수를 끓여 한국 커피 KANU를 마셨다.
시멘트로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 공립 알베르게를 나와 바로 근처의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사가 꽤 거칠어서 땀을 흘리며 걸어갔다. 그래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지며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서 Silleda에 들어갔다. 마을에 있는 카페를 지나가다 잠깐 쉬어 갈 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늘 두 번째 커피를 마셨다.
마을의 주택가로 들어서자 구름이 몰려 있는 산능선위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로 염두에 두었던 Bandeira에 들어섰다. 도시는 크지 않아 중심 도로에서 좀 떨어진 길에 있는 알베르게를 쉽게 찾아갔다. 하지만 컨테이너 조립식 건물에 'Xunta Albergue de Banderia'라는 알베르게 간판이 출입구의 철 대문에 붙어있었다. 나는 이 건물이 알베르게가 정말 맞는지 가이드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주소는 분명히 맞지만 지금까지 이런 컨테이너 건물은 처음이라 체크인을 해야 하나하고 생각하며 문을 열었더니 아직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너무 열악한 시설에 머물고 싶지 않아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서 일단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마을 Casa Leiras까지 가는 것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시내의 거리를 걸어가다 손님이 많은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종업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손님들로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방법은 손을 들어 내가 당신을 필요하다는 표현을 해야 오기 때문이다. 오늘의 메뉴(Menu del Dia)인 닭고기를 구워 만든 요리를 선택했다.
종업원이 가져온 오늘의 요리는 넓은 접시에 나왔다. 한쪽이 약간 검게 그을린 닭고기에 채소를 으깬 양념을 발라 알맞게 구워졌고(바비큐처럼) 빨간 파프리카와 당근 그리고 통감자까지 넣어 푸짐하게 보였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콜라 한 병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레스토랑에서 까미노 앱을 켜고 숙소와 루트를 확인했다. 이곳에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7km떨어진곳에 약간 값이 비싼 알베르게가 있었다. 이곳에서 잘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시간의 여유를 갖고 출발하자 곧 시내를 빠져나오고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을 걸었다. 그때 또 멀리 산 능선 위로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연한 무지개가 하늘에 피워 올랐다.
그곳에서 소낙비가 몰려오는 듯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며 도로에는 낙엽들이 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걸어가자 곧 후드득하고 빗소리가 들리더니 길바닥에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배낭 옆 포켓에 둔 우산을 꺼내 펼쳐 들고 일단 걸어가기로 했다. 바지는 젖더라도 얼굴은 온전히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편리하게 느껴지고 조금 더 걸어가다 비가 많이 오면 우비를 입을 생각을 했다. 아스팔트 도로의 완전한 바깥쪽 길을 걸어야 했다. 이제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나를 향해 날아오는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동안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까미노 앱에서 보여주는 방향 표시가 내가 찾아가는 알베르게를 약간 벗어나 있었다. 나는 일단 구글맵을 다시 켜고 알베르게 주소를 검색하였다. 방향을 가리키는 커서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벗어나 농지가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서야 했다. 밀을 수확한 후 버려진 농지는 텅 비어 있었고 농로의 끝에는 주택들이 몇 채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내가 찾아간 가정집 단층 주택이 알베르게였다. 주택의 대문에 떡하니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휴가로 쉰다는 안내장이 붙어있음을 들여다보고 정말 온몸이 내려앉는 듯했다.
일단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구글맵을 열어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다시 검색했다. 그러나 가까운 지역에는 숙소가 보이지 않아 부킹닷컴(Booking.com)을 열어 다시 재검색을 하였다. 이때 내 앞에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 ‘마노르’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올라. 미스터 마노르"하고 인사를 하고 알베르게가 닫혔다고 하니 그는 작년에 이곳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좋아서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마노르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다음 알베르게를 예약해주겠다고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그는 본인과 ‘꼬레아노’ 한 명을 더 부탁하고 나서 나보고 출발하자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마노르는 나에게 은의 길에서 세 번째 천사로 인정되었다. 예상치 못한 마노르의 출현에 나도 놀랐지만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숙소를 예약해 준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뒤를 따라 Ponte Ulla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Ponte Ulla는 이곳에서 8.1킬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30킬로를 걸어가게 되었다. 장시간 걷다 보니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마노르를 따라가야 하니 쉴 틈이 없었다. 다시 도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야 하는 길이 멀어서 배낭에 레인커버를 다시 씌우고 우산 대신 우비를 꺼내서 입고 부지런히 마노르를 따라갔다. 숙소를 1.7킬로를 남겨놓고 걸음이 더 빨라졌다. Ponte Ulla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20킬로 표지석이 나타났다.
그러자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원을 선명하게 그린 무지개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 나는 환희의 순간을 보고 있는 듯 가슴에서 심장의 박동이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알베르게는 호스탈로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있어 레스토랑 오더 마감시간이 오후 3시라며 저녁 식사는 다른 레스토랑에 전화로 주문해서 먹으라고 번호를 알려주었다.
주인이 건네는 열쇠를 들고 이 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지나 룸으로 향했다. 열쇠를 열고 들어가자 꿉꿉한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좁은 공간에 침대가 두 개 붙어있고 화장실은 정말 공간이 좁아 샤워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일단 비에 젖은 옷들을 먼저 말려야 했다. 그리고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아직도 빗줄기가 창밖으로 내리고 있었고 나는 주인이 건넨 식당 전화번호를 보며 왓츠앱을 열어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닭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출입문을 두두리는 소리에 일어나 배달된 음식을 받고 값을 치렀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열어 음식을 꺼내 창 쪽으로 가져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맛보았다. 그래도 내일이면 이런 생활이 끝나기 때문에 서럽지 않았다. 자! 맛있게 먹어보자 하고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닭고기 한점을 먹기 시작했다.
새벽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날씨 예보를 스페인 앱 AEMET를 열어 확인을 했다. 시간에 따라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예보가 나왔다. 아무튼 오늘은 은의 길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아무 걱정이 없었다. 새벽에 깨어나 계속 뒤척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국 소식도 찾아보았다.
깜박 잠이 들어 일곱 시에 부리나케 일어나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길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웠으며 약간 찬바람도 불어왔다. 은의 길의 마지막 날 순례자들이 카페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다들 분주해 보였다. 아침을 무엇으로 먹을까 하다 산티아고 들어가서 정찬을 하기로 마음먹고 빵과 우유를 먹기로 했다.
어둠이 걷히고 이제 확연히 드러난 길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벌써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이제 경사진 길로 들어서고 호흡을 가다듬을 때 앞에는 할아버지 순례자들이 작은 배낭을 메고 판초우의를 입은 채 걷고 있었다. 차례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고갯길을 올라가다 숨이 차올라 언덕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멀리 안개가 걷힌 작은 마을들이 바라보였다. 비가 내린 뒤의 산과 마을의 풍경은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게 느껴졌고 거리의 풍경도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계속 올라가던 아스팔트 도로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길이 적기 시작했다. 도로 바깥 인도를 걸어가던 나는 전봇대에 순례길을 조금 벗어난 곳에 카페가 있다는 광고를 보고 비도 피할 겸 찾아갔다. 커피 사진이 그려진 카페로 들어갔더니 테이블에 순례자들이 몇 명 와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주인이 추천하는 문어(Pulpo)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를 골랐다. 그런데 생소한 샌드위치라 궁금했는데 맛은 별로, 식빵과 문어의 조합은 그리 매력적인 맛은 아니었다. 카페를 나갈 때 주인이 웃으며 맛을 물어봐 나는 '긋' 하고 대답을 해주었다. 진심은 아니지만 그를 격려해 주는 용기가 필요 했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9킬로 표지석을 만나니 갑자기 힘이 절로 나왔다. 걸음이 빨라지며 주변을 바라보지도 않고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마침내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우뚝 솟은 두 개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빗줄기가 굵어지며 길바닥에서 튀어 오른 빗물이 신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걸음씩 거리를 줄여가는 길에 서서 나는 계속 벅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이 길은 내가 여태 살아온 여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의 태어남, 그리고 삶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갈 채비도 하며 걸어가는 길위에서 나의 여정은 마무리되어갈 것이다.
나는 이제 대성당을 마주하며 걷기를 계속하며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온 야고보의 영원한 안식처가 있는 대성당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있었다. 조금 천천히 내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과 가슴이 미어지고 벅찬 감정이 쉬엄쉬엄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오브라도이로 광장으로 들어서자 나는 광장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 틈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 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