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 까미노

6.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발하는 via Gebenesis: 350km

by 천영길

D+1 Geneve에서 Saint Blaise로 출발


이제 막 서슬 퍼런 겨울을 견뎌내고 봄꽃들이 잔가지에서 뿜어 나오던 날 나는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내렸다. 이번 도보 여행은 GR65길의 제네바와 프랑스 르퓌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참고로 GR65길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르퓌길과 만나 스페인 론세스바에스까지 걷는 길이다.

취리히 공항 대합실에는 여행객들로 붐볐고 터미널 창 밖에는 이제 막 어둠이 찾아들고 있었다. 나는 이번 도보 여행의 출발점인 제네바로 가기 위해 지하에 있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일 년 만에 다시 나선 순례길 걷기의 시발점 제네바는 나에게 한때 회사일로 출장 다녔던 도시라서 친근감을 갖고 있는 도시였다

제네바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올랐다. 기차표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했지만 탑승 플랫폼을 찾아가는 동안 혹시나 늦을까 봐 긴장을 하며 그곳까지 바쁜 걸음으로 내달렸다.

미리 예약해 둔 좌석을 찾아 자리에 앉았으나 객차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왠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처럼 나는 긴장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 기차는 2시간을 달려 밤 11시가 넘어 제네바에 도착하고 다시 걸어서 예약해 둔 유스 호스텔로 가야 했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그러나 중간에 ‘Renens’라는 역에서 제네바행으로 환승을 하고 늦은 밤 11시 22분에야 제네바 중앙역으로 들어섰다. 썰렁한 역사를 나와 유스호스텔에는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다. 사전에 메일로 예상 도착 시간을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프런트 직원은 나에게 아무 말없이 열쇠를 건네주었다.

유스호스텔은 청소년 연수원 같은 구조라서 복도에 짐을 넣을 수 있는 락카가 있고 여러 명이 같은 룸에서 지내는 도미토리 형태이다. 상당히 늦은 시각에 룸에 도착한 나로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나에게 배정된 침대를 찾아 들어가 짐을 풀었다. 내게 배정된 룸은 이층 침대가 4개 있는 방이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룸에는 잔등만 남아있고 소등이 된 상태였다. 나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비어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매트리스 위로 올라가 윗옷만 벗고 누어버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그냥 휴대폰을 보면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누군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다 세면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순례길 첫날의 아침 식사를 하러 호스텔 카페테리아로 갔다. 벌써 학생들과 일반인이 섞여 트레이에 음식을 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빵과 우유를 담은 글라스에 켈로그를 담고 오렌지주스 한잔과 오믈렛도 담아왔다. 트레이에 음식을 담아 비어 있는 좌석을 찾아가다 배낭에 조개비를 달고 들어오시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을 만났다. 제네바길 걷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오늘은 천천히 Neyden까지 걷는다고 했다. 아무튼 같은 길을 걷는 순례자가 있다는 것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배낭을 챙기고 호스텔을 빠져나와 제네바 순례길 걷기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먼저 근처에 있는 넓은 레만호(프랑스어: Lac Léman)를 찾아갔다. 과거에 제네바 모터쇼를 참관하러 이곳에 왔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20251102_104748제네바길.png 제네바 호수

짙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과 잔잔한 호수는 까미노를 시작하는 나에게 긴장을 툭 던져주었다. 성피에르 성당과 노트르담 성당에 들러 순례자 여권인 크리덴셜을 구입하고 다시 길에 나섰다.

처음 만나는 제네바길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했다. 길을 나서자 이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을까 생각했다 입고 또 벗는 일이 귀찮아서 작은 우산을 쓰고 걷기로 했다. 우산을 쓰고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신발과 바지가 금세 젖어 왔다. 서울을 출발하기 전날 순례길에 두 번이나 함께 했던 등산화가 앞쪽이 닳아서 버리려고 했다 구두방에 가져가서 밑창 앞쪽을 땜질했는데 불안했다.

순례길을 걸을 때 비가 오면 언제나 기운이 빠지고 우울 해진다. 아울러 사진 찍기도 불편하다. 오늘따라 어깨가 무거워진다. 배낭 무게는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11kg 나왔기 때문에 어깨가 아파 고생 좀 하겠다 싶었는데 한 시간 지나면서 신호가 찾아왔다.

오늘은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 Charly 전 마을 Saint Blaise에 숙소를 예약했다. 언제나 순례길 첫날은 발도 아프고 종아리 근육도 아프기 마련이니까 적응하기 위해 짧은 거리를 걸어야 했다.

제네바를 출발하고 3시간을 걸어도 순례자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 만날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혼자 걷기에 숲길이나 시골길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EU 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112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생각 없이 지나쳤다. 제네바 길은 사실 출발 위치를 기준으로 명명되어 거의 대부분이 프랑스 지역이지만 출발장소가 제네바라서 그렇게 부른다,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10시가 넘어갈 즈음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햇살이 슬며시 나타났다. 내가 걸어가는 아스팔트 도로의 바닥이 햇살에 투영되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사물이 반갑게 나타나며 나는 서서히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 구간의 중간 마을 ‘Neyden’으로 들어갔다. 마을은 넓지 않지만 모처럼 레스토랑과 카페가 보였다. 젖은 바지와 신발도 말릴 겸 첫눈에 띈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주인 여자에게 암송아지 고기가 들어있는 오늘의 추천 메뉴를 주문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휴지를 챙겨 왔다. 젖은 신발 말리기 위해 신문지가 필요했지만 구할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젖은 양말을 벗고 신발 안쪽에 휴지를 말아 깊숙이 집어넣었다.

정오가 지나가자 하늘이 열리며 햇살이 강하게 도로에 내려왔다,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농촌의 도로를 따라 가로수가 없는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는 비가 내린 탓인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자동차가 지나갈 때는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Saint Blaise 입구에 다 달았다. 지트(민박) 주소를 구글링 했더니 그곳에서 1.7킬로 떨어진 곳에 있다고 나왔다. 그러니까 숙소는 Saint Blaise 마을을 지나 더 걸어가야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망설일 때 마침 근처에 있는 집에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다가가서 번역기를 켜고 주소를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이 동네가 아니라고 했다. 왓츠 앱을 켜 숙소 주인과 전화통화를 시도해 노인에게 이곳 위치를 말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지트 주인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다고 말해줘서 그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제자리에서 기다렸다.

지트는 주인이 거주하는 집 이층에 있는 한 개의 방이다. 저녁 7시가 되자 주인의 아내가 붉은 콩 스튜(Red Bean Stew)와 쌀밥을 섞어 익힌 음식. 그리고 아침에 먹으라고 버터와 쨈, 바게트 빵을 가져왔다. 내가 치른 비용에 비하면 제공하는 음식이 성의가 없어 먹다가 쉬었다 다시 먹다가 반 정도 남기고 더 이상 먹기를 포기했다.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출발부터 비를 맞으며 걷는 날은 상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시작한다.


D+2 ‘Frangy’라는 도시로


새벽에도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다시 요란스럽게 들렸다. 일어나기가 싫어서 불을 켜지 않고 여섯 시가 넘을 때까지 침낭 속에서 기다렸다. 주인이 어제 식탁 위에 놓고 간 딱딱한 바게트 빵은 먹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두고 배낭에 넣어둔 머핀과 주스. 사과 반쪽을 먹고 일 층으로 내려가 까미노에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져 다행히 우비를 꺼내지 않고 그냥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숙소에서 나와 어제 지나친 루트를 만나러 로커스 맵을 켜고 걸었다. 경사를 올라가는 고개를 지나 지도 위에 커서가 가리키는 농로로 들어섰다. 여러 개의 돌계단을 올라서니 비로소 오늘의 정상 루트로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가리비 표시와 GR 65 길 표시를 보면서 걸어가면 오늘 목적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산간 마을이라 능선 길을 따라 드문드문 하얀 집들이 보이고 비가 그친 탓인지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걸려있었다. 이제 기온이 올라가면 안개는 분명 걷히고 날씨는 더워질 것 같았다. ‘Mont Sion’을 지나고 이제 ‘Charly’가 가까워졌다. 이곳에는 공립 지트가 있는데 예약을 받지 않고 식사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벗어나 흙 길로 들어섰다. 비가 내려서 흙과 자갈이 깔린 길에 농기계가 지나갔는지 움푹 파인 곳에 물웅덩이가 많이 생겨 쉽게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산에 자욱하던 안개가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오른쪽 발목과 왼쪽 발가락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 속도를 늦춰야 했고 가끔 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신발을 벗어 발목을 주물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근육이완제를 먹었다. 또 물파스를 바르고 발목을 주물렀다.

정오가 넘어 작은 마을 ‘Chaumont’을 지나가다 쉬어 갈 카페나 식당을 찾았으나 보이질 않아 포기했다.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적막하지만 평화롭고 넉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을을 지나가다 길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마을에서 주민들을 위해 또 지나가는 순레자를 위해 설치한 벤치임에 틀림없었다.

20260118_182733.png 성모 마리아 상

오랜만에 배낭에 넣어둔 물 파우치를 꺼내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물의 시원함이 조금 전의 고통을 씻어 내렸다. 아침에 남긴 사과 반쪽을 먹고 다시 일어섰다.

하늘이 맑아 내리는 햇살 때문에 흙으로 다져진 산 길은 더욱 빛났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 목적지 ‘Frangy’가 가까이 있다는 방향 표시판을 만났다. 문뜩 배낭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곳은 한국에서 숙소를 예약하려고 왓츠앱으로 대화했던 지트이다. 여자 주인이 보낸 답장에는 숙박비가 60유로라고 해서 너무 비싸다고 다른 지트를 검색해서 문의를 했더니 똑같은 주인이 답장을 보내왔었다. 싱글 룸이고 작지만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지만 하루 저녁에 60유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비용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지트가 없고 호텔만이 가능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예약을 했던 곳이다.


D+3 Seyssel 캠핑장으로


오늘은 아침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선 숨 쉬기가 편했다. 매일 먹을 간식을 준비해서 배낭에 넣고 다니니 무게가 늘어 아침에 어깨를 마사지하고 출발했다. 사실 별 소용이 없지만 습관적으로 해본다.

오늘은 Seyssel까지 15km를 걷게 되어 있었다. 제네바길 일정을 계획할 때 20km 이하 구간을 두 번 넣어두었는데 오늘이 첫 번째 날이다. 이곳은 제네바 레만호수로 흐르는 론 강이 자주 보였는데 아마 순례길 내내 강물을 잠깐씩 바라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지나가는 길 주변엔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산지라서 포도밭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으며 오늘은 지명이 샴페인(champagne)이라는 마을도 지나간다. 지대가 높아지는 구릉을 따라 멀리 포도밭이 펼쳐진 풍경이 새로운 기분으로 느껴졌다.

언덕을 따라 내려오며 근처의 Seyssel 풍경이 나타났다. 도시는 넓은 강을 따라 이어지고 건너편 빌리지로 넘어가는 오래된 다리가 두 개 보였다.

제네바길3.2.png Seyssel 풍경

그리고 강변에는 캠핑장이 있어 텐트와 캠핑카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가 캠핑장인데 무척 궁금했다. 강변에 있는 캠핑장에 들어가자 캐러밴. 캐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전거로 여행을 다니는 무리들은 나무 밑에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부러워 보였다.

제네바길3.3.png Seyssel 캠핑장

리셉션에서 캐빈을 배정받고 찾아갔더니 아늑한 공간이지만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나서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 있는 걷기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날이다. 그러나 내일은 비가 오는 날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캠핑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저녁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서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 여자가 메뉴판을 들고 와서 무얼 먹을 건지 물어왔다. 메뉴판을 내밀며 무얼 원하는지 바로 묻는 그녀를 보고 올려다보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으나 딱히 아는 메뉴가 없어 치킨 요리를 달라고 했다. 주인 남자가 요리해서 가져온 닭가슴살 요리가 담긴 보울에서 맛있는 냄새가 피워 올랐다. 레드 와인 한잔이 곁들여져 오랜만에 만찬다운 식사를 했다.

캐빈으로 돌아와 어둠침침한 등 아래서 카페에 글을 쓰다 꾸벅꾸벅 졸려서 그만 덥고 9시 30분쯤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천정에 빗소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내일 걷는 일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D+ 4 운하를 따라 걸어 아름다운 마을 Chanaz까지


새벽 2시쯤 화장실 갈려고 캐빈 밖으로 나오니 가랑비가 오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비 맞으며 산길 걷는 경우와 경사 길 끝이 보였는데 올라오니 안 보이던 경사길이 또 나타날 때이다. 잠이 오질 않아 캐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밀렸던 숙제를 하려고 카페 글쓰기에 왔는데 지나온 길에 대한 잔상이 떠 오르지 않아 하루씩 기억해 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일기를 쓰고 남은 시간에 다시 침낭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잘 이룰 수가 없었다.

캐빈 안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어 카누로 커피를 한잔 끓이고 어제 사온 요구르트와 머핀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또 4개들이 계란을 꺼내 커피포트에 넣고 삶아 배낭 바깥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순례길을 걸을 때 삶은 계란은 최고의 영양식 즉 최상의 간식으로 챙기는 편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캐빈의 출입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자 근처에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젊은 커플들은 아직 움직임이 없었다.

비가 좀 멈추기를 기다리느라 출발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비가 점점 많이 내리고 바람도 거칠게 불어 댔다. 오늘 목적지 샤나즈(Chanaz)는 론 강(Rhône River)과 연결된 운하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오는 마을이다. 샤나즈는 ‘부르제 호수(Lac du Bourget)’와 론 강(Rhône River)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지역 사람들은 "작은 사부아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위키디피아’에서 소개를 하고 있다. 아울러 아름다운 수변 환경과 역사적인 분위기 덕분에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며 특히 론 강을 따라 이어지는 운하 주변에는 수공예품 가게와 레스토랑이 많고 이곳은 과거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옛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풍스러운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은 혼자 걷기가 힘들었다. 출발이 늦어지며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일단 근처의 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교통 앱 ‘Rome2 Rio’ 를 열고 ‘Seyssel’에서 근처의 ‘Curos’ 가는 기차를 검색하였더니 오전 9시 9분에 있었다. 나는 우비를 입고 우산도 쓰고 바람 부는 빗속을 걸어 일단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리옹(Lyon)행 기차를 타고 10분 만에 ‘Curos’에 도착했다. ‘Curos’는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 도로를 따라 걷다 다국적 공조회사인 Carrier 공장 옆을 지나갔다. 정오로 갈수록 점점 비가 그치며 조금씩 햇살이 잦아들었다. 다리를 건너고 로커스앱을 열어 까미노 루트를 찾아갔다.

그러자 곧 GR65길을 만나 반듯하고 직선으로 곧게 나 있는 숲길을 지나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비포장 도로에 들어섰다. 길 주변으로 비어 있는 농지에는 이제 길게 자란 풀들이 잔뜩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하얀 털을 가진 새들이 푸드덕하고 풀숲에서 날아가버렸다.

음악을 들으며 가기 위해 휴대폰에서 ‘CBS FM’ 앱 ‘레인보우’를 연결했다. 이곳이 10시쯤이면 서울은 5시가 되는데 가끔씩 친숙하게 익혀둔 가요가 나오고 그 이후에는 팝송을 들으며 걸었다.

까미노는 강을 옆에 두고 길게 뻗은 길을 걸어갔다. 짙은 푸른색 물결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먼발치에서 우측으로 굽어가며 사라진다. 길에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사람들만 걷는 길에는 가끔 등치가 큰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과 단체로 걷는 무리들이 걷고 있었다. 이런 길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곳은 강을 따라 3개의 길이 이어지는데 내가 걷는 가운데 길은 왼쪽에 수로가 흐르고 수로 건너편에 조금 넓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흙 길이 지나간다. 내가 걷는 길 오른쪽은 강둑 위로 길이 있고 론강을 따라 걸어간다.

길게 느껴졌던 길이 끝나자 건너편에 레스토랑 건물이 나타났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길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신발끈을 풀어 발의 열을 식히며 배낭에 있는 계란과 주스를 꺼내 간단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다시 강을 옆에 두고 따라 걸어가다 다시 근처의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경사길이 시작되자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갔더니 나지막한 주택들이 나타났다. 아담하게 자리한 주택들은 길을 따라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골목을 지나 이제 ‘Chanaz’ 마을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운하를 운항하는 유람선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입구부터 앤티크(Antique) 가게들과 그리고 레스토랑이, 경사진 골목을 따라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있었다.

제네바길4.3.png ‘Chanaz’ 마을

숙소 여자 주인이 "미스터 천" 하고 반갑게 인사를 먼저 했다. 거실로 들어가자 웰컴 드링크를 내오고 크리덴셜에 스탬프도 찍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내가 묵어야 할 숙소 예약을 부탁했더니 혼 쾌히 전화를 해서 예약해 주었다. 이곳은 도로를 따라 운하가 지나가고 약간 가파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소문대로 마을에는 관광객들은 바와 레스토랑에 붐볐으며 유람선 매표소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골동품 가게에도 사람들은 들락거렸다.

제네바길4.4.png 골동품 가게들
제네바길4.5.png ‘Chanaz’ 마을 운하


D+5 Yenne에 들어서다.


어제 오후 늦게 햇볕이 나던 하늘이 새벽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숙소 주인이 나에게 자기 딸이 작년 11월 한국에 여행 가서 이태원동에서 지내고 있는데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거 같다고 했다. 아마 외국 젊은이들이 조용한 자기 나라보다 활기찬 서울이 더 재밌고 볼 것도 많고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곳이 많아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숙소에 같이 머물던 순례자 3명이 자신들 캐리어를 택시로 Yenne에 있는 호텔로 부친다고 해서 비가 오니까 내 배낭도 같이 보내 달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을 했다.

처음으로 소형 배낭에 먹을 것을 넣고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숙소를 나왔다. 출발점은 마을 뒷산에 나 있는 언덕길로 들어섰다. 경사가 가팔라 걸어 올라가면서 천천히 심호흡 연습을 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약간 쌀쌀하지만 공기는 신선하였고 무거운 배낭이 없어서 언덕길을 훨씬 오르기에는 수월했다. ‘Montagnin’ 마을로 들어서자 ‘yenne”로 가는 방향과 11km 남은 표지판이 나를 반갑게 해 주었다. 앞으로 3시간 거리를 걸어가면 오늘의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주변은 모두 포도를 재배하는 넓은 구릉이 나왔다. 그곳에는 검붉은 포도들이 나뭇가지들에 걸쳐 자라고 있었다. 비가 그치기 시작해서 우비를 벗고 우산을 쓰며 산길을 내려오다 주택 앞에서 일을 하시는 노인분에게 “봉쥬르”하고 인사를 했다. 그가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갑작스레 나타난 동양인에게 어색하게 웃음을 보였다. 인사를 하며 창고 앞을 지나가다 현대자동차 'KONA'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주인을 보며 "현대 코나" 하고 외쳤더니 엄지 척을 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 그는 내가 코나 옆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두 번이나 포즈를 바꾸고 찍어주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바로 와이너리와 함께 회색 빛 석조 건물의 옛 성(Castle)이 있었다. ‘Jongieux le Haut’ 마을에 있는 성은 외부에 드러난 규모로 봐서 상당히 막강한 권력을 갖은 성주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러 있는 정문을 지나 부속 건물인듯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테이스팅과 판매를 하는 장소였다.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문구가 있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노년의 부부가 찾아와서 직원과 와인을 구매하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와인 테이스팅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직원이 작년에 출하한 레드와인을 글라스에 담아 내 앞에 건네주었다.

와인은 드라이하며 달콤하고 향도 진한 느낌이 왔다. 사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그냥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한 병 정도 사고 싶었지만 병 무게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와이너리에서는 매년 5월을 시작으로 성(사또)에서 숙박도 가능하다고 했다.

제네바길5.2.png 와이너리
제네바길5.3.png 포도밭

이곳을 빠져나와 목초지를 지날 때 언덕에는 공소 같은 건물이 보였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길을 따라가 올라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 상을 바라보았다. 공소 마당에 성모상과 철판으로 만든 순례자상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공소 입구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와 그곳에 종이를 깔고 바닥에 앉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먹어봤다. 비가 많이 내리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써도 배낭과 신발은 젖어들어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이때 내 앞에 남자 순례자가 나타났다. 내가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했더니 다가와서 옆에 앉아 자기 이름이 "존"이라고 하면서 호주에서 왔다고 했다. 존과 같이 산길을 따라 걷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그때부터 숲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질퍽거리는 경사지고 좁은 숲길을 내려오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다시 평지길을 한동안 지나갔다. 그때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갑자기 어지러움 증세가 찾아와서 잠깐 쉬면서 호흡을 크게 했다.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존" 한테 먼저 가라고 했다.

숲길은 너무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오늘 목적지 Yenne에 들어왔다. 이곳은 프랑스 남동부의 큰 강인 로온(Rhône) 강 동쪽에 위치해 있고, 협곡인 Gorges de la Balme 부근이라고 한다. 배낭을 찾으러 미리 알려준 호텔을 찾아갔더니 "존" 이 와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늦은 점심으로 빠에야를 먹었다. 존이 나에게 은퇴를 했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심장 문제로 일찍 은퇴를 하고 걷는 일에 열중인데 이제는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하며 일을 할 때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한 배낭을 찾아 다시 내가 예약한 숙소를 찾아갔다. 그곳은 청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에서 운영 중인 공립 지트 건물이었다. 그러나 배정받은 침실에 들어가니 의외로 호텔처럼 모든 집기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저렴한 비용에 숙소를 제공하는 지자체에 감사해야 했다.


D+6 Saint Genix에 도착


순례자가 많이 없어서 혼자 지내는 방에 묵게 되어 편안한 밤을 보냈다. 오늘도 아침에 창밖으로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해 7시 30분에 식당으로 갔더니 다른 룸에서 지낸 순례자 2명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봉쥬르” 서로가 보며 인사를 했다.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 우선 접시에 바게트와 쨈을 담고 그리고 포트에서 커피를 한잔 따랐다.

독일인 남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체구가 좋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유럽의 크로스컨트리길을 오랫동안 걷는 중이고 네덜란드 여자 순례자는 제네바 길을 걷는 여자였다. 출발을 하기 위해 우비를 들고 로비로 내려오니 식사를 같이했던 네덜란드 순례자가 불쑥 나타났다. 이름이 "네티"라고 하며 작은 체구에도 빨리 걷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미 네 군데 걸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숙소를 나와 마을 중심 거리를 지나가다 네티'가 약을 사야 한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약사와 ‘네티’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빗줄기는 약하지만 바람에 흩날리며 길 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약을 들고 밖으로 나와 도로를 걷다 빵가게에 들러 몇 가지 빠을 사고 나왔다. 약과 빵을 사느라 출발이 늦었는데도 ‘네티’는 천하태평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는 Yenne를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Yenne를 벗어나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가면 짧지만 그곳은 경사진 산길을 타는 루트이고 왼쪽은 약간 낮은 숲길을 걷게 되었다. 애매한 방향 표시가 나올 때마다 나는 로커스맵으로 루트를 확인하고 걸어갔다. 그런데 "네티”는 따라오면서 이 길이 맞는지 나에게 꼭 물어보고 따라왔다. 우비를 쓰고 스틱을 사용하며 걸을 때는 루트를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내기가 많이 불편해서 아예 포기하고 길에 세워둔 방향표시판에 의지해서 걸었다. 높이가 작은 산이 앞에 버티고 있었다. 경사진 좁은 길을 올라가는 동안 위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신발이 점차 젖어가고 안쪽으로 스며든 빗물은 양말을 적시기 시작했다.

산길을 올라가다 ‘Chanaz’ 숙소에서 만났던 스위스 순례자 한 명을 만났다. 그녀는 비를 피해 나무 밑에서 신발을 벗고 발가락에 물집을 따고 밴드를 붙이고 있었다. 드디어 계속 오르던 좁은 산길을 벗어나 이제 포장된 도로에 들어섰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려 어디라도 주저앉고 싶어졌다.

하늘을 가리고 있던 잿빛 구름들이 밀려가면서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우비를 벗어 배낭에 걸치고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를 걸었다. 그러다 우리 앞에 갈림길이 나오고 까미노 방향표시판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숲길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멈추고 로커스맵을 열어 혹시 다른 길이 있는지 길을 추적해 보았다. 여기서 산길을 들어갔다 나오면 다시 직진 방향의 포장도로와 만남을 확인하고 길바닥이 질퍽거리는 산길을 무시하고 그냥 앞에 보이는 포장된 도로로 직진했다.

포장도로를 걸으니 땅을 쳐다보며 걷지 않아도 되고 앞을 보며 걸으니 주변 풍경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스위스 여성 순례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네티’에게 먼저 간다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Cote Envers’ 마을이 나타났다. 사실 마을 이름은 특별하지 않으면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다.

오늘은 비가 와서 사진도 찍기 어려웠다. ‘Saint Genix’가 가까워질수록 집들이 많이 나타났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길가에 테이블이 있어 신발을 벗고 휴식을 하는 중에 Chanaz 식당에서 만났던 75세 순례자 "필립”을 다시 만났다. 말이 느리지만 농담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왼쪽 손가락이 엄지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없었다. 장애와 고령의 나이를 이겨내며 걷고 있었다. 필립과 숙소가 같아서 함께 찾아갔다. 주택에 방이 여러 개 딸려 있는 집이다. 다른 방에서 나온 젊은 커플이 검은색 큰 개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제네바에서 시작하여 개를 받아주는 숙소를 찾아다니며 걷는다고 했다.


D+7 Valencogne에 도착


오늘은 까미노 7일째이다. 숙소에서 식사 후에 비옷을 배낭 위에 걸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에는 잿빛구름이 가득하고 찬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꺼내기 쉬운 곳에 우비를 두고 걸어야 했다.

숙소에서 순례길 루트 접속까지 1.2킬로를 걸어와 다시 시작했는데 마침 어제 건너왔던 다리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작은 폭의 강을 따라 직선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야 했다. 오늘따라 상쾌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주며 걸음이 가벼웠다. 가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건강을 위해 걷는 여러 사람들도 지나갔다.

먼발치에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분명 스위스 순례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도 걸음 속도가 나하고 비슷한지 거리는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다.

제네바길8.3.png

강둑을 따라가는 길이 끝나고 ‘Romagnieu’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발음이 비슷해서 갑자기

최고급 부르고뉴 와인 "로마네꽁티" 생각이 났다. 가격은 잘 모르지만 구글 검색에는 25,000불이라고 나온다. ‘La Vigne’를 지나고 나서 쭉 비포장 길을 이어지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잠깐 숲 속의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올라가야 했다. ’Les Abret’로 가는 길, 고개를 몇 개 오르면 그곳에도 주택 몇 채가 나타났다. 이곳은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이 집 짓고 살아가는 곳이었다.

어제 잠시 같이 걸었던 벨기에 순례자 "필립"은 ‘Les Abret’까지 걷는다고 했다. 아침에

마을 숍에 갔다 따라간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아무튼 순례길은 ‘Les Abret’를 지나 산자락에 나 있는 길을 지나 다시 목장의 목초지를 질러가 보리를 심어 놓은 들을 여러 차례 지나갔다. 보리밭 사이에 놓인 농로길을 따라 유채꽃과 빨간 양귀비도 많이 보였다.

오후 2시가 넘어서자 이제 ‘Valencogne’까지 겨우 2km를 남겨두고 길옆에 오늘 숙소 지트를 안내하는 간판이 보여 반가움에 걸음을 멈추고 광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내용은 가이드북에서 예약할 때와 다름없는데 위치는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순례길 루트를 지나가므로 장소는 상관치 않았다. 숙소는 도로에서 약간 내려간 장소에 있어서 하마터면 지나칠 수 있었다. 열러 있는 대문을 지나 “봉쥬르”하고 사람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이때 문을 열고 긴 머리를 한 젊은이와 어머니인듯한 여자가 나왔다. 그리고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식탁에 놓아둔 그린티를 서둘러 한잔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갈하게 정리된 두 개의 침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의 가정에서 운영하는 지트는 룸은 하나, 그리고 침대가 고작 두 개 정도이다.

우선 땀으로 젖은 속옷 빨래를 하고 햇볕 좋아 바깥 테라스 빨랫줄에 널어 두었다. 주인 여자분이 약간 서툴지만 영어로 나에게 질문도 하고 대답할 수 있어서 지내는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고 이전 숙소에 비하면 보기 드물게 깨끗하고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웠다.

저녁식사에는 버섯이 들어간 크림 수프와 야채를 넣어 만든 약간의 고기 요리를 바게트와 함께 내왔다. 여자 주인과 아들이 식사에 동석을 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서로 대화를 했다.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아들은 나에게 자신은 불을 이용한 퍼포먼스 전문가로서 지역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25살인데 시골집에서 살며 연습을 하고 때때로 캐슬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며 본인의 공연 동영상을 자랑스럽게 나에게 보여주었다.


D+8 Le Grand Lemps


숙소 주인이 생수 한 병을 챙겨주며 길 앞까지 마중을 해서 꼭 고향집 다녀오는 느낌을 받고 출발했다. 지트 앞 좁은 길을 따라 Valencogne 마을까지 더 걸어 나오니 그동안 보지 못한 스위스 순례자 두 명이 어느 집 밖에서 숙소 여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봉쥬르’하고 아침 인사를 했다. 이곳 숙소에서 지냈던 네덜란드 순례자 '네티'는 오늘 일찍 출발했다고 했다.

마을의 끝에 첨탑이 뾰쪽한 성당 건물이 보였다. 대부분 마을에는 성당이 있어서 주민들의 공동체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맨 뒤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앉아서 오늘도 잘 걸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사 하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규모는 작지만 누구든지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하느님의 자비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다. 동전을 집어넣고 준비된 양초를 들어 불을 붙이고 촛대에 꽂아 두었다. 심지에서 불꽃이 위로 크게 타올랐다.

성당문을 밀고 나오자 입구에 조금 전에 만났던 스위스 순례자들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당을 빠져나와 건너편 넓은 밀밭 사이에 있는 농로로 들어갔다. 조금 더 걸어가면 순례길 공식 루트를 만나기 때문이다. 농로에는 거칠게 위로 솟은 풀들이 길 위로 뻗어 있어서 스틱으로 풀을 제 끼며 걸어 나가야 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안 바지와 신발은 풀잎들 스치며 이미 물기에 젖고 말았다. 벌써 아침 햇살이 넓은 들판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나 밀밭에는 초록빛줄기들이 싱그러운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상쾌한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자연의 신비함에 감동을 하고 말았다.

농로길이 끝나가는 도로에 하얀색 밴 자동차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다 자동차에서 누군가 나오는 광경을 보았다. 초록색 상의를 걸친 여자가 밖으로 나와서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길래 자세히 보니 숙소 여주인 "Christian Blanc"이다. 그녀는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내가 "봉쥬르"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그녀가 방에 두고 간 바지라며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그렇다, 나의 건망증과 주의력이 부족해서 물건을 또 흘리고 다닌 것이다. 내가 숙소를 나서고 룸을 청소하다 발견한 거라며 순례길에 있을 나를 찾아 자동차를 운전해서 찾아온 것이다. 작년 프랑스 르퓌길을 걸을 때도 컨버터블 바지 윗부분을 숙소에서 빠트린 경험이 있었는데 오늘 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

제네바길8.1.png 지트 주인

Le Pin으로 들어서자 마을에 레스토랑과 카페도 보였다. 이곳 주택들 지붕들은 겨울철 폭설에 대비해 경사가 심한 거 같았다. 아마도 알프스 산맥이 가까이 있어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지붕에 눈이 많이 쌓여서 지붕 무개가 무거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산을 오르는 길이 적고 낮은 숲길을 지나가는 구간이 많았다. Le Pin을 지나고 산자락 길을 걸어가다 반대편에서 백 팩을 메고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 단체로 트레일을 즐기며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제네바길에서 르퓌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니 아마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오늘 목적지 Le Grand Lemps 마을 간판이 나타났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며 이 정도 거리를 걷는 게 나로서는 적당한 거 같다고 생각했다. 숙소는 마을 끝자락에 있었다.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평범한 민박집 형태였다. 남자분은 좀 엄격한 분처럼 무뚝뚝하고 여자주인은 친절해서 액자에 붙어있는 가족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웰컴 드링크를 물어봐서 그린티를 달라고 하였고 티가 식을 때까지 부인은 본인의 가족 얘기를 하면서 6남매에 손주. 손녀 모두 합해서 30명이라고 했다. 이때 부인이 남편과는 근처의 대학을 다닐 때 만난 캠퍼스 커플이라고 웃으며 얘기를 해서 내가 멋진 커플이라고 치켜세워주었다. 그린티를 다 마시고 부인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가 다락방처럼 생긴 룸으로 들어갔다. 아마 아들이나 손주들이 찾아오면 자고 가는 방처럼 가재도구들이 쌓여 있었다. 제네바길 숙소는 대체적으로 순례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냥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에 침대 한 두 개 들이고 아니면 기존 쓰는 방을 예약 요청이 오면 준비하는 우리나라 민박집 같았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앉아있던 주인 부부가 일어나길래 따라 일어나 성호를 긋고 남자 주인의 주문으로 기도를 드렸다. 철저한 신앙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제네바길8.4.png


D+9 Faramans로


주인 남자가 식사 후에 성당으로 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떠나라고 해서 망설이다 그분들과 함께 성당으로 갔다. 성당에 딸린 작은 미사실에 다섯 명 신자들이 나를 쳐다보고 상당히 궁금해했다. 정확히 아홉 시가 되자 흑인신부님이 들어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미사는 짧은 시간에 끝나고 나는 주인 부부에게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와 우선 근처 마트에서 생수와 자두 하나 그리고 머핀을 사고 까미노를 시작했다. 마을을 거의 빠져나와 자동차도로의 갓길을 따라 걷다 밭고랑 사이로 나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까미노는 계속 밀밭과 목초지를 지나갔다.

아침 출발이 늦어 좀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발바닥에 열이 나는 거 같았다. 다행히 경사가 있거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나타나지 않아 소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녘을 벋어 나자 운 좋게 길옆에 벤치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는 비가 왔는지 약간 물기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휴지로 물기를 닦고 그 위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다. 우선 꽉 조이고 있는 신발끈을 풀고 땀에 젖은 발을 끄집어내 열기를 식혀주었다.

La Cote Saint Andre 마을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13km를 걸었다. 이곳은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고향이다. 아버님이 의사여서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으나 역시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했다고 한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이곳에 하나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더니 동네 노인들 손님이 많아 앉을 좌석도 없고 또 재료가 없다고 한다. 나는 할 수없이 레스토랑 밖에서 사과와 육포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걸었다.

‘Faramans’에 들어왔다. 어제 이곳 숙소를 예악을 할 때 주인이 ‘Faramans’에 들어오면 베이커리가 보일 거라며 그 앞에서 전화를 해 달라고 했었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나는 베이커리 주인에게 전화를 부탁했더니 혼 쾌히 걸어 주겠다고 했다.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면 주인이 자동차를 가져와서 픽업을 하는 것이다. 아마 숙소가 시내에서 좀 멀어 픽업을 해주는 거 같았다. 10분쯤 지났을 때 자동차가 베이커리 앞에 멈추고 여주인이 나타나 나를 변두리에 있는 숙소로 데려갔다. 주인이 차를 끓여주며 이곳에서 알프스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며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주인이 끓여준 그린티를 한잔하면서 거실에 걸어둔 인도인의 요가 사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요가를 배워서 정신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집을 나서서 알프스 자락이 바라보이는 곳의 포토포인트를 찾아갔다. 멀리 알프스 산봉우리마다 흰 눈이 쌓여 있고 평화스러운 마을의 분위기에 나는 심취해 있었다.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제네바길9.3.png 알프스 산맥이 보이는 풍경


D+10 Bellegarde


창밖으로 새로운 날이 왔음을 알리는 여명이 나타나고 어제 만났던 알프스 산자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숙소가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장소라 농촌의 들녘이 바라보이고 양배추를 기르는 밭까지 어우러져 여유롭고 한적한 그리고 평화로움이 물씬 풍기는 시간들이었다. 어제저녁 식사 때 주인은 이곳이 좋아 이사 온 지 2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끔 찾아오는 방문객(이 숙소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고 La Grand Lemps 여주인이 소개함)은 정적을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며 오히려 정신적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여주인은 나날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요가를 즐기며 남은 생을 메꾸어 간다고 했다. 그의 책장에는 인도 여성의 사진이 걸려있어서 누 군지 물었더니 요가 선생님이라고 했다.

바게트와 쨈이 들어있는 비스킷 그리고 오렌지 주스로 식사를 끝냈다. 식탁에 남은 사과 파이와 바나나를 가져가라며 포일에 말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주인이 순례길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기 위해 앞서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나이가 육십은 훨씬 넘은 그녀는 운전대를 쥐고 있는 뒷모습이 약간 쓸쓸해 보였다.

오늘도 출발은 밀밭을 통과하는 길이 나왔다. 그러나 길옆에 요염하게 밖으로 나온 빨간 양귀비꽃이 그리고 농로를 따라가는 길은 유채꽃 들판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들판을 마주하며 농로를 걸었다. 오늘 중간 지점인 ‘Revel ‘Tourdan’을 지나갔다. 주택의 정원에 보라 빛 라벤더 꽃무리들이 보였다. 그리고 오래되고 큰 당산나무 아래 벤치가 있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에 시원한 공기를 통하고 점심으로 사과 반쪽. 머핀. 주스. 무화과 말린 것을 먹었다.

그동안 소식을 못 전한 지인들한테 카톡의 보이스 톡으로 안부 인사도 했다. 다들 나이 생각해서 한결같이 무리하지 말고 잘 먹으라는 덕담이 전해왔다.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으니 일어나기가 싫어 미적거리다 자리를 정리하고 무거운 배낭을 들쳐 매고 다시 출발하였다.

오후 3시가 넘어 오늘 숙소인 ‘Bellegrade Possieu’에 들어갔다. 숙소를 찾기 위해 구글맵에 주소를 입력했더니 마을에서 2km 정도 더 걸어야 가야 하는 지점이 나타났다. 그래도 다음 날 거리가 줄어든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숙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지도에서 방향 표시는 점점 가파른 경사길로 안내를 했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아니라 산 중턱에 보이는 주택가에 숙소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반보씩 옮겨가며 걷는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힘을 쓰지 않고 걸어 올라갔다. 얼마 안 가 금세 숨이 차올라 길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버렸다.

제네바길10.3.png Bellegarde 마을

나는 마지막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주택가 도로에 올라섰다. 그리고 제주도의 중산간 도로처럼 평탄한 길에 들어섰다. 분명 숙소 주소지 앞에 도착했는데 도통 지트 명칭이 붙은 표시가 없었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할 때 숙소에서 시골 아낙네 같은 아주머니가 대문 쪽으로 나오며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이곳이 숙소였으며 너무 일반 가정집 같아 확신을 못했다. 숙소는 오로지 순례자들을 상대로 숙식을 제공하는 곳은 아니고 예약을 받으면 그때 남아있는 방을 서비스하는 일명 민박집이었다.

주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서자 큰 개가 밖으로 나와 짖고 작은 개 두 마리가 또 나와 짖었다. 주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데 옆에 있는 커다란 닭 사육장에서 닭들이 열심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구글 번역기로 여기 올라오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며 여주인에게 내일은 택시를 타고 순례길 루트로 가야겠다 고 했더니 남편이 태워다 줄 거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배낭을 의자에 내려놓고 땀을 닦고 있을 때 주인이 시원한 맥주를 마시라고 냉장고를 열고 하이네켄 한 병을 가져왔다. 병뚜껑을 열고 맥주를 잔에 채우고 몇 번에 걸쳐 마셨다. 잔을 다 비워갈 때 장화를 신은 남편이 들어왔다. 그가 안내해 주는 제일 안쪽 구석진 방으로 들어왔다. 느낌이 아들이 거처하던 방인지 남자아이가 입을 만한 옷과 책들 그리고 컴퓨터도 있었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 식사가 만찬이다. 남편이 위스키와 와인을 내놓고 골라 마시라고 했다. 샐러드를 내오고 이어서 구운 소고기 스테이크 3조각을 가져왔다. 자기 목장에서 키운 송아지 고기라고 하였다. 육질이 부드럽고 맛은 일품이었다. 벽에 가족들 사진이 두 군데 나누어 걸려있어서 식구들이냐고 했더니 이쪽 사진은 내 자식들. 저쪽 사진은 부인 쪽 자식들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당황하다 이내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오늘 하루 걷기가 힘들어도 숙소에서 휴식을 가질 때는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D+11 Chavanay로 떠나며


주인 부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체격이 좋은 남자 주인은 아침 식사량이 많았으며 식탁에는 바게트와 부드러운 케이크. 바나나. 주스. 커피. 쿠키도 있었다. 내가 식탁에서 일어날 때 부인이 점심용으로 케이크를 랩으로 포장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여덟 시가 넘어 배낭을 들고 룸에서 나오니까 남자 주인이 나에게 다가와 어제 집에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근처 순례길까지 차로 태워준다고 했다. 그는 성격이 호탕한 듯 보였고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젯밤에는 TV의 "Voice"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노래를 계속 따라 불렀다. 남자 주인이 내 배낭을 트렁크에 넣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가면서 먼저 자기 소유 목장에 들러 송아지를 보여주고 나와 근처의 낙농 공장을 가더니 주인하고 대화도 하고 나와 또 지금은 폐쇄된 아주 오래된 성당 건물에 들러 구경을 시켜주었다.

나는 빨리 가야 하지만 남자는 여유만만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정작 구불구불한 고갯길로 올라섰다. 자동차는 속도를 올리더니 얼마 안 가 차를 세우고 여기가 순례길이라고 하면서 나를 내려주었다. 잠깐이지만 마치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숙한 친구를 바래다주듯 나를 대했다. 다행히 순례길은 평탄한 길이 계속 나타났다. 그리고 근처에 올리브나무 과수원들이 꽤나 많았다.

순례길은 갑자기 자갈을 뿌려 놓은 흙 길로 들어가 울퉁불퉁한 길을 걷느라 발바닥에 전해지는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갈이 깔린 길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포장된 도로로 바뀌었다. 신발끈이 풀려 다시 메고 있는데 전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나이 든 두 남자가 멈춰 서고 산티아고 가느냐고 물어왔다. 한 남자가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자기들도 산티아고까지 걸어보았다라고 말하면서 "부엔카미노" 하더니 손을 들어 보이며 자전거를 타고 먼저 떠나갔다.

제네바길은 비교적 루트를 가리키는 표식도 많고 지나가는 마을의 명칭에 대한 거리 표시도 좋았다. ‘Chavanay’에 들어왔다.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 벤치가 있어서 숙소 주인이 준 케이크 두 조각과 사과주스를 먹고 일어섰다.

Chavanay는 은행도 있고 상점과 식당도 많았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거리에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많았다. 왓츠앱으로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 반응이 없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프랑스어를 모르니 영어로 대충 얘기했다. 조금 후에 여자가 나타나서 따라오라고 하더니 근처에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레지던스(Residence) 건물에 방을 빌려주는 형태이다. 음식은 제공하지 않아 근처 식당에 가서 사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고 크리덴셜에 스탬프를 찍어달라고 했더니 없으니까 그림으로 그려주겠다고 하였다. 이틀 전 ‘Faramans’ 숙소 주인도 스탬프를 잘 모르고 내가 크리덴셜을 보여주니까 볼펜으로 그럴듯하게 그려주어서 서로 웃고 말았는데 여기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렇듯 제네바길은 아직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우선 전자레인지에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저녁을 위해 영업 중인 레스토랑을 검색했더니 1.8km 떨어진 곳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마트에 들러 내일 중간에 먹어야 할 간식을 사고 맥도널드에 들러 햄버거와 샐러드를 사기 위해 구글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다. 대체적으로 유럽 시골의 맥도널드 건물은 변두리 외곽에 있어서 먹기 위해서는 걷는 수고를 해야 했다. 나는 치킨버거와 샐러드를 콜라와 함께 사 왔다. 그리고 마켓에서 달걀을 사서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담아 계란을 익혔다. 내일 간식은 계란이다. 저녁 7시가 넘어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한국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한 저녁을 보냈다.


D+12 Bourg Argental


오늘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비 예보가 있다. 일단 아침 식사로 어제 사둔 샐러드에 삶은 계란을 잘게 깨트려 섞어 먹었다. 침대 주변을 다시 살펴보고 서둘러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아침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열을 지어 바쁘게 지나가고 있는 풍경을 만났다.

GR65 Tracking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또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길을 걸으며 높아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들이 드문드문 몰려다니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될 거다. 가이드북 등고선은 1141m ‘Les Setoux’까지 올라갔다가 잠시 내려간 다음 다시 1159 미터 ‘Queyrieres’까지 올린 다음 마지막으로 이번 순례길의 도착지 ‘Le puy en velay’까지 내려간다.

‘Pourzin’이라는 조그만 마을 골목을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집 밖으로 나왔다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커피 한잔하겠느냐고 물어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더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집 마당은 화려한 꽃들로 꽉 차 있었으며 그가 잠시 후에 커피 두 잔을 들고 나와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땀을 흘리며 마시는 커피 맛이 무척 달콤했다. 그에게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나를 밖에 있는 정원 꽃밭으로 데리고 갔다.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남이냐? 북이냐? 그는 나이가 65세라고 소개하며 이름은 ‘Jean Marc Edo’이라고 했다. 그리고 끝에 Edo 가 일본 에도시대와 같은 발음이라며 웃었다.

제네바길12.2.png 커피를 제공해 준 ‘Jean Marc Edo’

나는 갈 길이 바빠서 내 휴대폰에 찍힌 그에게 방금 찍은 사진을 왓츠앱으로 보내주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Saint Julien Molin Molett’에 들어왔다. 이곳은 조금 큰 마을 같아 보였다. 마을 중앙의 성당으로 들어가서 잠시 쉴 겸 기도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12시가 조금 안되어 그런지 식당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상점 유리창에 붙어있는 음식 사진을 보니 볶음밥이 보였다. 딱히 음식을 고를 형편이 안 되어 일단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이 중국인이었고 일상용품을 팔며 중국식 볶음밥과 돼지고기, 닭고기 볶음을 만들어 주로 테이크아웃 방식으로 팔고 있었다.

‘Bourg Argental’ 마을은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 같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느낌이 들었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개천에 흐르는 물의 양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 마치 대관령 고개를 넘기 전 어느 마을 같았다. 숙소에 찾아왔다. 숙소 주인이 저녁은 밖에서 사 먹고 아침은 제공한다고 했다. 마켓에 가서 내일 간식으로 빵과 에비앙을 사서 오는데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어 저녁은 밖에 나가지 않고 김치 컵라면으로 해결해 버렸다. 밤새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D+13 외딴집 Les Setoux


밤새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한없이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아직은 출발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벽에 등을 기대고 창밖으로 추적추적 내라는 비를 바라보며 있자 하니 가슴이 멍 해지고 있었다. 나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휴대폰을 열고 음악 방송을 들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내가 목표했던 르퓌엥벌레이에 도착한다. 아침 7시가 되자 여주인이 테이블에 바게트 몇 조각과 우유, 그리고 사과와 커피를 가져왔다. 나는 오늘 비를 맞으며 고지대 산길을 올라가기가 싫어졌다. 주인에게 택시비를 줄 테니 나를 오늘 예약한 숙소가 있는 ”Les Setoux’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늘은 고도 1100m까지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가야 한다. 내 가슴에는 이미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할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여주인은 내 제안에 돈 버는 일이라 바로 승낙을 했다. 폭우 속에서 혼자 걷는 것은 자신이 없고 또 위험해서 안전을 택하기로 했다. 주인은 손주들을 데려다주고 9시에 출발하자고 했다. 배낭을 정리하고 침대 위에서 네이버뉴스를 검색하다 시간을 맞춰 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로 갔다. 기어도 수동 방식이며 많이 낡은 자동차였다. 그는 나에게 나이가 75살이며 딸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반복되는 고갯길을 절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바쁘게 올라갔다.

자동차는 중간 마을처럼 보이는 ‘Riotord’ 곳을 지나갔다. 그런데 이곳에 왠지 호텔들이 많이 보이며 지트라고 적힌 건물들이 보여 주인에게 물어보니 깊은 산속 계곡에 흐르는 물을 찾아 여름철 여행지라고 했다. ‘Les Setoux’는 그곳에서 다시 6km 정도를 더 올라가야 했다. 자동차가 드디어 Les Setoux 마을로 들어왔다. 높은 산마루와 조용한 마을에 반듯하고 깔끔한 지트가 있었다.

제네바길13.1.png 외딴 마을 지트

나에게 택시비를 받은 주인은 쏜살같이 마을을 떠나갔다. 숙소의 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노크를 했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기온은 ‘Bourg Argental’를 떠나올 때 보다 급 강하하고 바람도 불어서 날씨가 변했다. 밖에서는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낼 곳도 없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 손잡이를 당겼더니 문이 열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봉쥬르"하고 외쳐도 조용했다.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출입구에 안내문이 붙어있어서 번역기를 통해 읽어 보았다.

'예약자는 도착하면 전화를 해주시고 본인은 30분 내로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주택 입구에 밴 차량이 나타나고 주인인듯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천"하고 물었다. 그러자 모든 게 우려에서 안심으로 바뀌었다. 주인은 나에게 방을 안내하고 청소한 다음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재료를 주방에 내려놓고 먹는 법을 알려주며 돌아갔다.

저녁 식사를 좀 일찍 하러 주방으로 가서 낮에 주인이 두 고간 식사 재료를 꺼냈다. 고기 패티 한 덩어리(오븐에 150도 열로 15분간 가열)와 렌틸콩 샐러드. 디저트로는 사과로 만든 간식 같았다. 쳇 GPT에 물어보니 "애플클럼블"이라고 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먹고 있는데 창밖으로 송아지가 풀을 먹으면서 지나간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챙겨 먹었다.

창밖에서는 아직도 바람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창밖으로 송아지들이 비를 맞으며 풀을 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근처 나무에는 가지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잎사귀들은 아직 나오지 않아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거 같았다. 적막한 곳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시간이 무료했다. 그러자 생각한 것이 오랜만에 카페에 밀린 숙제를 하며 여유 있게 보내기로 했다. 산골짜기 숙소에 혼자 있으니까 꼭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밤새 Weather channel을 몇 번이나 열어보고 제발 좀 비구름이 멀리 지나갔으면 하고 들여다보았다. 금요일까지 비가 내리는 예보만 보였다.

새벽이 되어 몇 번이고 밖을 내다보는데 비는 소리 없이 추적추적 한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잎이 나와야 하는 철인데 아직도 꽃봉오리가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기온이 6도까지 내려가며 바깥공기가 더 추워지고 나는 완전히 갇힌 포로 같았다.


D+14 Montfaucon en velay


아침 일찍 주방으로 내려와 주인이 준비해 준 빵과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마시고 다시 룸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길은 빗물이 넘쳐흘러내려가고 있었다. 7시가 지나자 나는 걷는 일을 포기하고 숙소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전화했다. 비가 내리는 산길을 혼자 걷는 게 사실 두려웠다.

제네바길15.4.png 비구름의 이동 지도

주인이 ‘Les Setoux’로 오는 길에 Riotord라는 마을에 택시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전 11시부터 12시 사이에 택시가 가겠다고 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11시에 미리 현관에서 기다렸는데 12시에 택시가 나타났다. 배낭을 뒷좌석에 놓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택시는 어제 올라왔던 길을 따라 폭이 좁은 고갯길을 한참 동안 내려갔다. 택시 기사가 영어로 네팔 카트만두와 티베트 라싸. 인도 뉴델리. 타지마할에 다녀왔다고 자랑스럽게 애기를 풀어나갔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여행 얘기를 재미있게 설명하며 운전을 했다.

택시가 ‘Montfaucon’의 예약된 숙소 근처에 내려주고 가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남겨주었다. 혹시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하며 떠났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이는데 우체국과 은행도 있고 여행 안내소도 있었다. 오늘 숙소는 이름에 ‘Jardi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정말 넓은 정원에 주인이 거주하는 건물과 손님이 머무르는 오래된 2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부를 개조하였으나 옛 모습 그대로 분위기를 살려 부잣집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거실은 넓고 여러 곳에 걸어놓은 사진들, 그리고 오래된 가구들과 소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제네바길15.2.png 앤티크 가구가 많은 지트

숙소 주인은 천천히 아주 공손하게 내부 시설과 주방을 안내해 주었으며 크리덴샬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이른 시간 목적지에 도착을 해서 점심시간까지 침대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 열두 시가 넘어 우산을 쓰고 숙소 밖으로 걸어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주인이 소개한 식당으로 갔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많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종업원에게 메뉴에 나와있는 소고기 다진 요리를 시켰다. 점심이지만 오랜만에 소고기 요리와 콜라, 그리고 프렌치프라이가 며칠 동안 부실했던 식사를 대신하듯 배불리 먹고 나와 거리를 산책했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다 여행자 안내센터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동양인이 들어서자 놀란 듯 놀란 듯했다. 이런 시골에 여행자 안내센터가 있다는 사실은 주변에 관광지가 많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안내센터 여직원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곳에서 가 볼만한 곳을 물었더니 성당에 그림 전시회를 하니 가보라고 한다. 딱히 이 마을엔 볼만한 것이 없는 거 같아 본격적으로 내일 Le puy en velay를 가려고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버스 시간표를 보여주며 중간에 버스를 한번 바꿔 타고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실 비가 그쳐 날씨가 좋으면 내일 예약해 둔 ‘ueyriere’까지 걸을 것을 염두해 두었지만 지겹도록 내리는 비가 싫어서 하루빨리 ‘Le puy en velay’에 들어가고 싶었다. 사실 그곳은 작년에 르퓌길을 걷기 위해 찾아간 첫 도시였다. 그리고 산 정상에 있는 생미셀성당과 노트르담 모뉴먼트를 가보지 못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들려볼 생각이었다.


D+15 Le Puy en velay에 도착했다


아침 5시 30분에 알람을 설정해 두었는데 그전에 몇 번을 일어나 네이버 뉴스를 읽어보았다. 6시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인이 준비해 둔 빵과 커피를 마시고 6시 50분에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비는 그쳤는데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꽉 차 있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도로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겼다. 아침 7시에 지나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으로 갔다. 도로에 세워둔 안내판을 보니 H39번 ‘Riotord’라고 적혀 있었다. 여행안내센터에서 알려준 장소는 이곳인데 건너편에 또 다른 버스정류장 안내판이 있어서 그곳으로 갔더니 내가 가야 할 곳 ’Yssingeaux’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몇 학생들이 걸어오더니 전부 우루 루 처음 지나온 버스정류장 부근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도시로 통학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탈것이라 생각이 들어 확인이 필요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내 옆에 와서 학생들을 내려놓길래 달려가서 여행안내센터에서 받은 시간표를 보여주며 ‘Yssingeaux’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었더니 진짜 반대편 쪽을 가리키면서 그곳에서 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는데 바로 H39번 버스가 나타났다. 기사에게 ‘Yssingeaux’ 가는지 물었더니 맞다고 하면서 르퓌 가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친절하게 지금 받은 승차 영수증으로 르퓌까지 계속 갈 수 있으니 환승할 때 버스비용을 내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버스 맨 앞 좌석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산간 마을 주변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비가 그친 산간 마을 위로 회색 구름이 마을 자락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좁은 산길을 버스는 속력을 내면서 달렸다. 르퓌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중간 Yssingeaux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을 달려 마침내 Le puy en velay 시내로 들어왔다. 멀리 우뚝 솟은 산에 유명한 생미셀성당과 노트르담 기념상도 시야에 들어왔다.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기차역이 있었고 시내에 있는 숙소를 찾아갔다. 노트르담 성당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도로 입구를 지나갔다. 수녀님 두 분이 지나가다 큰 배낭을 멘 나를 보고 웃었다. 오래된 도시의 시내 중앙도로는 폭이 작아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밀려서 지나다녀 복잡했다. 오늘부터 이틀간 지낼 도미토리에 도착했다. 딱 9개월 만에 다시 찾은 Le puy en velay는 나에게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배낭을 숙소 라커에 두고 걸어서 데카트론 매장을 찾아갔다. 앞으로 걸어야 할 포르투갈길에서 신을 신발이다. 음용수 파우치도 사고 숙소로 오면서 맥도널드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숙소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밖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비와 우박이 세차게 내리쳤다. 유럽도 분명히 이상기후에 날씨 변화가 심한 거 같은데 어제 뉴스에 한국의 강원도 산간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숙소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한국인 젊은이가 숙소를 찾아왔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다 회사를 퇴직하고 순례길에 처음 나섰는데 선택한 길이 이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배낭에 캠핑도구를 가지고 다니며 캠핑장에서도 지낼 거라고 했다. 젊어서 다양한 경험을 자청하는 용기가 부러웠다. 그는 배낭 무게가 20kg 가까이 된다고 했다. 과연 그가 르퓌길의 목적지 생장피에드포르까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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