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 까미노

8.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리스본길, Camino Portugues

by 천영길

세 번째 찾은 리스본에서…………

나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발하는 Camino Genebesis(GR65길)의 도착지 프랑스 르퓌엥벌레이에서 리옹으로 그리고 항공편으로 어제 리스본에 왔다. 2019년 Porto에서 포르투갈길을 걷고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남은 구간을 완성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우선 오늘은 리스본의 중심, 그리고 포르투갈길의 출발점 Se Cathedral de Lisboa 대성당을 찾아갔다. 그러나 성당 입구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순례길의 출발점은 건물 우측에 표시되어 있었고 벽을 따라 철판으로 가림막 이 되어있는 상태를 보니 내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20260126_102731.png 리스본 대성당

대성당 앞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 있고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사진을 찍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까미노 카페에 배언덕님이 올려 주신 정보대로 포르투갈 순례길 리스본 출발점인 이곳에서 대성당의 오른쪽 벽면에서 순례길 표식을 확인하고 보도에 세워진 보행자 보호용 볼록렌즈 기둥에 있는 까미노 표식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돌이 깔려 있는 길을 따라 경사진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Via Lusitana 순례자 정보 안내 센터를 찾아갔다. 나는 그곳에서 크리덴셜을 구입하기 위해 구글맵을 열어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단 언덕을 내려와 자동차들이 다니는 넓은 도로에 들어섰다. 바로 근처에 바다가 있고 부두에는 선박들과 해상 물류센터들이 계속 나타났다. 철망 펜스가 오래도록 지나갈 만큼 규모가 큰 창고들도 우뚝 서있었다. 내 옆으로 도로에는 차량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펜스가 걷힌 안쪽으로 항구에 대형 크루즈 선박도 보이고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들도 정박해 있었다. 리스본 항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호텔 건물들이 자주 보이며 역시 대도시다운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는 오전부터 도로에 내리는 강한 햇볕을 받으며 드디어 크리덴셜을 구할 수 있는 성당에 도착했다. 옆 문을 밀고 사무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자원봉사자 여자분이 갑자기 찾아든 방문객을 보고 반갑게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그리고 크리덴샬을 사겠다는 나의 요청에 서랍에서 크리덴셜을 꺼내 비어 있는 칸에 스탬프를 찍고 포르투갈 리스본 출발 순례길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대성당을 출발하면 Azambuja까지 리스본 시내와 외곽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니까 볼 것은 없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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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을 나와 순례길을 따라 걸어가다 포르투갈 특유의 돌길과 언덕길을 걷는 게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리옹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리스본으로 이동하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숙소에 가서 쉬기로 했다.

포르투갈길 리스본 2일 차는 딸이 추천한 신트라(Sintra)와 호카곶(Cabo da Roca)을 다녀올 계획으로 숙소에서 걸어 나와 Rossio기차역으로 갔다. 유명한 관광지 신트라로 가는 기차에는 온통 분주한 관광객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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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라의 페나성과 무어 성을 들려보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헤갈레이아 별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곳은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지 입장 가능한 시간이 3시가 넘어야 가능해서 관람을 포기하고 호카곶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 마을인 호카곶으로 향했다. 나는 오늘 하루에 두 곳을 보기 위해 이동 시간을 줄여야 해서 우버를 호출했다. 그리고 40분을 달려 평소에 관심이 많은 육지의 끝 호카곶에 도착했다. 이곳이 이베리아 반도의 끝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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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리스본에서 Azambuja로 이동 Valava까지


복잡하고 돌길 많은 리스본 시내를 빠져나오기 위해 대성당으로 가는 대신 Santa apolonia 역에서 아예 도시를 빠져나가 Azambuja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리스본의 높은 지대에 있는 숙소를 나와 역으로 내려갔다. 트램이 다니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역사로 가는 길에 먹을 것을 구입할 생각을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그냥 패스했다. 대합실에는 어디론 가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드디어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는 철길 주변으로 낡은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창고들과 공장들도 휙휙 지나가는 차창밖에 있었다. 기차가 정차하는 역마다 객실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기차가 출발한 지 50분 정도 지나 출발점 Azambuja 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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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랜만에 첫 번째 마을 Reguengo에 들어섰다. 마을은 우측에 강을 두고 있으며 성인의 키만큼 높이의 강둑이 길게 연결되고 있었다. 나는 가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피해 강둑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폭이 넓은 둑은 길게 이어졌다. 찻길 너머에는 먼지에 쌓인 허름한 주택들이 그리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강물은 흙탕물처럼 탁해 보였다.

네모난 돌을 올려 지은 둑은 아주 튼튼해 보였는데 문득 홍수로 강물이 넘쳐서 마을에 피해를 입은 이유로 높은 둑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굳게 닫힌 집을 지나치다 문을 열어놓은 바를 발견했다. 정말 반가워서 둑에서 계단을 내려와 바로 들어갔다. 시원한 콜라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내가 들어가서 진열장 앞에 섰는데 주인 여자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손님이 들어와도 쳐다보질 않았다. 내가 진열장 앞쪽에 서서 “코카콜라”하고 외쳤을 때야 전화기를 내려놓고 캔 콜라와 컵을 내밀었다. 주인에게 오믈렛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대번에 “노”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테이블에 앉아 뙤약볕이 내리는 밖을 응시하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물론 실내는 선풍기도 없었고 이 정도 더위는 그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낡은 아스팔트길은 열기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시원한 콜라 한 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일어섰다. 왠지 콜라 맛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찬 물이 위로 들어가니까 속에서 거부반응이 나왔다. 모자 둘레에 땀이 젖었다 마르면서 이미 소금기가 하얗게 배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걸었던 제네바길을 걸으면서 베인 땀자국일 것이다.

배낭을 다시 메고 밖으로 나와 길에 섰다. 마을을 벗어나 자동차 도로를 따라 최대한 가로수 밑을 지나갔다. 가끔 앞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차들이 긴장하게 했고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오늘 목적지는 Valava. 루트에 다음 마을 Porto de Muge가 10km나 떨어져 있고 숙소가 없어서 이곳 숙소를 예약했었다. 숙소가 Valava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 끄트머리에 있어서 지도를 보면서 찾아가는 도중에도 예약을 잘못했나 할 정도로 주택이 없는 지역을 계속 걸어가야 했다.

오늘 숙소 Casal Das Areias 가 있었다. 대문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더니 입구에서 건물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덩그러니 서있는 하얀 단층집이 단아해 보였고 오히려 쓸쓸해 보일 정도였다.

숙소 주인하고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 한쪽 귀퉁이에 초인종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커다란 철 대문이 스르르 열리고 직선으로 주택과 연결된 길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걸어가는 동안 말을 기르는 마구간, 그리고 채소밭과 키 큰 나무들, 한적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으며 걸어가다 주인이 나를 향해 양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열렬한 환영 인사를 하는 숙소 주인을 예전에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나는 감동했다.

주인의 성격대로 실내는 매우 잘 정돈되고 깨끗하며 복도를 따라 엔틱 가구들이 잘 꾸며져 있었다. 또 주인은 뮤지션임에 틀림없었다. 거실에는 한쪽 벽면에 오르간. 기타. 우쿨렐레 등 몇 개의 악기들이 있었는데 그는 라틴음악과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투를 좋아한다고 했다.

체크인을 하고 룸으로 들어가려다 거실의 테이블 유리안에 우리나라 천 원짜리 지폐가 보여 주인에게 한국돈을 어떻게 구했냐고 물었다. 작년에 한국인 순례자가 다녀가면서 기념으로 준 것이라고 했다.

Valava 숙소 호스트는 굉장한 젠틀맨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묶었고 말도 부드러우며 천천히 대화를 하는 편이며 잘난 체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원래 제공하지 않았지만 내가 저녁을 준비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럼 오늘 투숙하는 다른 두 사람과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저녁을 먹을 때까지 룸에서 빈둥대기 시작했다. 와이파이가 잘 터져 인터넷에 올라온 한국 뉴스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곳에 와 있는 동안 버려야 할 사회에 대한 관심을 버려야 할 텐데 쉽지가 않았다. 드디어 8시가 되자 주인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식탁으로 갔더니 이태리 젊은 여자와 캐나다에서 온 남자가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남자는 여자에게 포르투갈에 대한 여행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가 대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주인이 바게트와 호박수프를 들고 와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빈 접시에 먹을 양을 담아 앞에 놓았다. 나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호박수프를 두 그릇이나 먹어 치웠다. 수프가 담긴 접시가 비워지기 전에 주인은 메인으로 잘 구운 소고기 스테이크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밭에서 직접 기른 싱싱한 상추와 브로콜리 그리고 쌀밥을 볼에 담아왔다. 또 레드 와인을 테이블에 놓고 요리의 품위를 더 해주었다.

식사를 끝내고 이태리 여자가 주인의 기타 연주를 들러 달라고 설득을 했다. 주인은 망설이다 연주를 위해 손가락에 피그를 붙이고 포르투갈 전통 악기 파두를 가져와 대형 스피커에 연결하였다. 준비를 끝내고 그는 태블릿을 앞에 놓고 연주 곡의 반주를 켰다. 파두를 켜는 주인의 손놀림이 완전히 신들린 사람처럼 움직였다. 연주 곡은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호아킨 로드리고(Joaquín Rodrigo, 1901~1999. 스페인 작곡가)"의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 1939) "라고 알려주었다. 이 음악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곡이라 우리는 음절을 따라 흥얼대기도 하였는데 딱 두 곡 연주를 하고 종료되었다.

D+2 Valava에서 Santarem


아침 식사는 빵과 커피, 우유. 치즈. 햄으로 준비되었다. 케나다인이 식탁으로 나오고 더 늦게 이태리 여자가 나오니 다시 시끄러워졌다.

나는 먼저 출발하려고 룸에서 배낭을 정리한 다음 배낭 포켓에 있는 립밤을 꺼내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일어나다 통증이 생김을 느꼈다. 허리가 아프면 걷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근육통증 완화 젤을 허리둘레에 바르고 파스도 붙인 다음 일단 밖으로 나왔다. 숙소를 나서 텅 빈 도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배낭의 무게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고 허리 통증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통증은 심하지 않았지만 걸어가면서 느껴지는 의식은 여전히 머릿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나는 금세 지친 듯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오늘 구간은 Valava를 출발하여 테오(Tejo)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가며 3km쯤 가면 Porto de Merge 마을이 있고 그 이후에 Santarem까지 13km는 그냥 감자나 밀과 포도밭이 이어진다고 했다.

오늘 순례길은 다행히 대부분 평지여서 걷기에 펀하지만 허리 통증을 느끼며 걸어야 했다. 순례길은 곧 근처의 마을로 들어가자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주택들이 길을 따라 나타났다. 빛바랜 페인트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느낌의 오래된 무늬 타일이 벽을 장식했고 마을 이름 간판마저 흐릿하고 때가 묻어 있었다.

도로를 따라 강과 분리된 둑길이 이어졌다. 길에서는 강물이 흘러가는 풍경은 볼 수 없고 오직 가끔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올라야 건너편 강을 볼 수가 있었다. 둑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어제 숙소 주인의 말에 의하면 Valada인구가 현재는 400명 정도인데 예전에 강을 따라 농산물을 리스본으로 운반할 때는 2000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이곳에서 재배한 농산물은 대형 트럭으로 운반되고 있어서 인구 감소가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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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판에는 영농작업을 하느라 농부들이 대형 농기계를 이용하여 일을 하고 있고 있었다. Santarem을 8km 정도 남기고 허리가 아파서 길가에 자리를 깔고 주저앉았다. 신발을 벗어 햇볕에 말리고 갈증을 느껴 물 대신 사과를 먹었다. 그런 다음 순례길 출발 전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근육이완제 약을 꺼내 물과 함께 먹었다.

포르투갈의 가톨릭 성지 파티마까지 70km 남았다는 거리 표지석이 보였다. 오늘 순례길은 다행히 대부분 평지여서 걷기에 펀하지만 허리 통증을 느끼며 걸어야 했다. 마을로 들어가자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주택들이 길을 따라 나타났다. 빛바랜 페인트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느낌의 오래된 무늬 타일이 벽을 장식했고 마을 이름 간판마저 흐릿하고 때가 묻어 있었다.

도로를 따라 강과 분리된 둑길이 이어졌다. 길에서는 강물이 흘러가는 풍경은 볼 수 없고 오직 가끔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올라야 건너편 강을 볼 수가 있었다. 둑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Santarem은 조금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시내버스가 다니고 은행 등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데카트론도 있었다. 시내에 들어오면서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숙소는 현대식 건물로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에 우동(Udon)이 있어서 주문을 했다. 서양식 우동은 정말 맛은 없지만 오랜만에 국물이 있는 면을 먹는다는 즐거움으로 먹었다. 일본식이나 한국식의 육수가 들어간다면 국물까지 다 먹을 수 있는데 크림수프와 우동 면. 그리고 조개도 들어있어서 특별한 우동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D+3 Santarem에서 Azinghaga


Valada의 Casal Das Areias 숙소에서 허리를 구부리다 발생한 통증 때문에 끝까지 걷기 힘들어 Santarem 근처에 와서는 할 수 없이 Bolt 앱을 이용해 차량을 불러 숙소까지 타고 왔었다. 참 편안 세상이다.

숙소에서 오후 내내 침대에 누어 근육통 완화 젤을 자주 바르고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식사 후에 착실히 먹었더니 아침에는 증상이 그래도 빨리 호전된 거 같았다.

오늘은 Azinghaga 마을까지 갈려고 한다. 아침 식사라고 주인이 바구니 안에 치즈와 햄이 들어간 빵과 주스. 생수를 바구니에 넣어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아침에 좀 움직였더니 허리가 온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서있을 때는 통증이 느껴 조심스레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순례길은 아침나절이 항상 즐거운 시간이다. 피곤한 몸이 밤새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컨디션이 회복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출발을 하고 Vale de Figueir에서 오랜만에 아침에 문을 연 커피를 파는 바에 들어갔다. 출입문 옆에 레이키 스틱이 있어서 혹시 순례자가 들어갔겠다 생각했더니 맞았다. 할아버지 순례자 한분이 빵과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나도 오랜만에 카페콘레체를 주문하여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와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먼저 나에게 "부엔카미노" 하며 인사를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하며 묻고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고 스스로 소개를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프랑스길에서 한국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까미노 카페의 배언덕님이 며칠 전에 올리신 2023년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 국가별 순위표를 보여 드렸더니 은근히 놀랜 표정이었다. 그분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9번 걸으셨고 해마다 시간을 내서 다니신다고 했다.

자리에 일어나 가이드북을 보면서 오늘 " Azinhaga까지 걸으신다고 말씀하셔서 저도 같은 동네에서 숙박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내가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 가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승낙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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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배낭을 메고 먼저 밖으로 나가 총총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음이 굉장히 빨라 내가 밖으로 나와서 그분을 찾았을 때 이미 멀리 걸어가고 계셔서 그분을 따라잡지를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은 시야에서 완전히 멀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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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로 향하는 순례길 표시는 잘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 순례길을 가운데 두고 드넓은 평원에 대규모의 감자. 포도. 밀 농사를 일구는 들판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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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inhaga'로 들어가는 입구는 잘 정돈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아담하고 쉬기에는 좋았다. 나는 자동차들이 자주 지나는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성당의 십자가가 보였다. 일단 성당으로 발길을 옮겨 찾아갔다. 그러나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시내를 걸어가며 건물들을 구경하며 산책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길에 약국이 있어서 혈압을 체크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약사에게 휴대폰의 번역기를 이용해 비용을 드릴 테니 혈압을 체크해 달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며 혈압계를 들고 나와 테이블에 앉으라고 했다. 혈압계에 130/82가 표시되자 프린트된 슬립을 보여주면서 영어로 거의 정상에 가까우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감사를 표하며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프리”하고 외쳤다. 그러자 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메모지에 식당 이름을 적어주었다. 약국을 나와 길을 따라 내려가다 골목으로 돌아서는 순간 약사가 추천한 식당이 보였다. 식당 안에는 역시 손님이 많았으며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소고기와 감자를 넣고 양념으로 익힌 찜 같은 요리였다.

오늘 숙소는 마을 중심부에서 한참 외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리상으로 2km 이상 떨어진 제법 규모가 큰 주택들 몇 채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다. 마을로 들어가 한 블록을 지나쳐 도착했을 때는 이곳이 숙소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 “올라”하고 무작정 불렀을 때야 여자가 밖으로 나와 거실로 안내했다. 저녁 식사와 아침까지 포함한 비용을 지불했다. 아마 숙소가 마을 중심에 있다면 밖으로 나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식사를 위해 외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저녁을 먹은 후에 남성 둘이 숙소에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한 명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또 물어왔다. 그들은 독일에서 온 사람들인데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슨 대화를 하는지 밤새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D+4 Azinghaga에서 Vila Nova da Barquinha


어젯밤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사촌형제들이 아침 6시에 출발한다고 해서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더니 7시가 넘어 일어나 설친다. 나는 주인이 식탁에 마련해 둔 식빵에 쨈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고 일찍 일어났다. 과일도 없고 우유나 요구르트도 없었다.

일단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와 대문을 나섰다. 어제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까미노 루트로 들어갔다. 자동차 도로를 2km 정도 나와 다시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다음에는 숙소 예약을 할 때 사전에 숙소 위치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마을 초입의 광장으로 들어가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바에 들어갔다. 프런트에 검은깨가 살짝 뿌려진 빵이 보여 카페콘레체 한잔과 함께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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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을 지나가는 거리에는 어디론 가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보도를 걸어가는 길이 끝나고 이제 인도가 없는 찻길의 맨 안쪽을 따라 걸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의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모두 사각형 돌을 나란히 붙여 깔아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면서 질주할 때는 덜컹덜컹 소리가 들리며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대에는 물자 수송을 빨리하기 위해 도로를 이런 식으로 건설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걸어가는 나도 신발안으로 전달되는 불편함 때문에 빨리 이런 길이 끝났으면 했지만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그런 길은 다음 마을까지 연결되어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모두 걷어내고 깔끔하게 아스팔트 포장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인도가 없는 길을 잔뜩 긴장하며 걸어갈 때 다행히도 대부분 자동차들은 나를 발견하고 건너편 차선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지나갔다.

이런 자동차 순례길은 첫 번째 마을 Golega까지 약 7km를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Golega를 지나서도 다시 자동차 길로 이어졌다. 도로 주변에는 넓은 밭에 감자와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고 때때로 올리브 나무 농원들도 이어졌다.

때때로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면서 쏜살같이 지나가다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갓길을 걸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속도를 줄이며 나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는 듯했다. 아마 “저렇게 사서 고생을 왜 하지” 하고.

정오가 가까워올 때 나는 “Sao Caetano” 마을에 들어섰다. 주택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려다 나를 보고 수프를 먹고 가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도 더위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좋다고 했더니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런데 입구에 알베르게 표시판이 붙어있어서 이곳이 숙박 시설인지 그제야 알았다.

내가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차에서 내려 들어오면서 여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자기 와이프라고 말했다. 여자 주인이 전자레인지에 호박 수프를 데워서 식탁으로 가져왔다. 시원한 물과 호박 수프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여자 주인이 또 계란프라이가 들어간 파스타를 먹겠냐고 물어봐서 달라고 했다. 여자가 내준 파스타도 적당한 양으로 짜지 않고 내가 먹기엔 아주 맛있었다.

그들의 호의적인 배려로 나는 배를 채우고 땀까지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치르기 위해 내가 음식 비용을 물었더니 10유로 달라고 해서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오늘 목적지 Vila Nova da Barquinha는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었다. 순례길은 다시 자동차 도로를 걸어 잠시 걷다 숙소가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인도가 나타나고 그때부터는 걷기에 훨씬 편했다. 그러나 오늘 숙소를 구글맵으로 검색했더니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어차피 내일 까미노 루트는 이곳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었다.

숙소는 바가 딸려 있는 조그만 호텔이었다. 길쭉한 금속 키를 받아 들고 이층 계단을 올라가며 오늘은 나 혼자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좋았다.


D+5 Vila Nova da Baroquinha에서 Tomar


어제는 지은 지 오래된 호텔방에서 창밖으로 해 질 녘 들판을 내다보면서 문득 내가 자유로운 순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례길을 걷는 자만이 이런 자연의 신비롭고 마음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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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하러 호텔 식당으로 갔다. 그런대로 여러 가지 음료와 빵을 준비해 주어서 천천히 그리고 배부르게 먹었다. 내가 식사를 거의 끝낼 즈음 Azinghaga에서 같이 지냈던 독일인 한스와 썬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연장자인 한스는 조금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계속해서 썬에게 말을 하고 있고 썬은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런데 내가 출발하고 조금 후에 이들이 벌써 따라와 일행이 되어 순례길을 같이 걷게 되었다. 한스는 걸어가면서 주변 사진을 찍어 유튜브로 보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같이 걷고 있는 썬은 한스의 사진 찍기를 말리지는 않았다. 한스는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동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앞서가며 썬에게 마지막 같은 인사를 했다.

주택들이 모여 있는 도로를 지나가다 마을 골목 언덕길 계단에 세계의 나라 이름이 적혀 있는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배낭을 카트에 넣고 끌면서 걸어오는 한국분을 만났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후드 티를 입고 반바지 차림의 그분은 마른 체격이지만 다부지게 보였는데 반가움에 먼저 인사를 했다. 본인이 먼저 소개를 했다. 미국 LA에서 오신 최 조셉이라고 했다. 북쪽길을 걷고 나서 다시 포르투갈 길을 걷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는 자동차 도로를 같이 걸어가며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태권도 사법을 했던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태권도장을 운영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내 앞에 울창한 숲이 보이는 산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산 허리를 오르는 가파른 언덕이 있고 임도(林道)가 지나가는 길이 나타났다. 배낭이 든 카트를 끌고 오르던 그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며 나는 상당한 거리만큼 앞서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숨을 연거푸 내쉬며 오른 끝자락에는 내 앞에 멀리 도시가 바라보이는 풍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의외로 넓은 정원을 갖춘 부유한 전원주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힘에 겨워 주택의 커다란 대문 앞 담벼락에 기대고 쉬고 싶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휴식모드로 들어섰다. 사과를 꺼내 칼로 조금씩 잘라먹고 있을 때 그가 카트를 끌고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지나갔다. 발걸음이 매우 빠르신 분이었다.

멀리 도시 모습을 보이는 Tomar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상당히 먼 곳이라 밀집된 주택들만 봐서는 Tomar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배낭을 들고일어나 호흡을 길게 내뱉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가다 울창한 나무가 있는 숲에 낡고 오래되어 창문이 떨어져 나간 호텔 건물이 있었다. 근처에 사람들이 찾아올만한 관광지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는 가끔 Tomar 가는 방향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진짜 모습은 좀처럼 빨리 드러내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마을들은 Tomar와 관계없는 동네 명치들만 나타나서 그때부터 나는 많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자주 다니는 길로 들어서고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앞에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배낭 위로 긴 머리를 날리며 나무 지팡이를 들고 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순례길에서는 가끔 복장이 유별난 사람이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이 꽤나 궁금해서 열심히 따라나섰지만 걸음 속도가 비슷한 지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는 못했다. 그런데 좌측으로 난 커브길을 돌아가다 그가 주택 앞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먼저 “헬로”하고 인사를 건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온 젊은이 순례자였다. 우리는 이후에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길을 지나며 조심스레 걸어갔다. 그가 Tomar에서 발이 아파 버스를 타고 온 친구를 만나 숙소를 찾아간다고 하면서 앞서갔다.

오늘 순례길은 자동차들이 지나는 도로가 많아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마침내 Tomar 시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Tomar는 포르투갈의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템플기사단의 중심지였던 도시였다. 이제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검색하고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내일 파티마를 가기 때문에 미리 버스 정류장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 도심 숙소로 왔다.

체크인을 하고 우선 샤워를 한 후에 방으로 들어왔을 때 숙소 호스트와 까무잡잡한 얼굴의 새로운 젊은 순례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티셔츠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어서 한국 분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온 교포 젊은이 김준현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이 젊은이를 만나러 또 중년의 미스터 김이라는 한국분이 오전에 만났던 조셉 최와 방으로 찾아왔다. 같은 숙소에 4명의 한국 사람들이 모인 특별한 날이 되었다.

우리는 저녁식사 거리를 사러 같이 마트로 갔다. 나와 젊은 미스터김은 냉동 오믈렛과 호박죽을 고르고 다른 분들은 컵라면을 선택했다. 오믈렛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와인 한잔과 함께 맛있는 만찬을 해결했다.

내일은 뜻하지 않게 4명이 같이 파티마를 가게 되었다. 미스터 김은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면서 걸어왔기 때문에 원래 이곳에서 하루 더 쉬었다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파티마를 우리가 간다는 말에 미스터 김이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D+6일 차 Tomar에서 Fatima 다녀오기


오늘은 숙소에 모인 한국인 4명이 Fatima에 다녀오기로 한 날이다. 사실 나를 제외한 3명은 Tomar에 와서 갑작스럽게 파티마를 알게 되었고 내가 간다는 말에 그냥 합류하는 개념이었다.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서 터미널로 왔다.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약간 쌀쌀한 날씨인 데다 버스터미널 앞이 광장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버스는 Ourem을 지나 40분쯤 지나 파티마에 도착하여 우리를 내려놓고 다시 떠났다. 그런데 미스터김이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린 것을 알게 되었고 젊은 김현준이 매표소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니 버스회사 Rede Expresse 홈페이지에 분실물 신고를 먼저 하라는 대답이 나왔다. 우리는 우선 영어를 잘하는 미국교포 청년의 도움으로 분실물 신고서를 작성해서 접수를 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우선 카페에서 로사리오 대성당에 입장하는 시간 10시까지 차를 마시며 기다려야 했다.

로사리우 대성당은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새로 지었다는 산티시마 트란다 데 바실리카(Basilica da santissima Trindade) 성당에도 들어갔다. 이곳에는 마침 주일 아침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면적이 상당히 넓은 대광장이 나타나고 정면에 로사리우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왼쪽에는 신자들이 양초를 사서 불을 붙여 소각로에 던지는 장소가 있고 바로 옆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장소에 지은 3면이 개방된 성당에서도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로사리우(Rosario: 묵주) 대성당 미사 시작은 11시다. 다른 나라의 유명한 성당에 비해 건물은 단조롭지만 회랑을 길게 배치하여 본관을 기준으로 마치 예수님이 양팔을 벌리고 어서 오라는 모습을 느끼게 했다.

20260126_110539.png 로사리우(Rosario: 묵주) 대성당

광장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매워졌다. 11시가 되자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장소의 성당에서 복사들이 성모마리아상을 앞세우고 뒤로 여러 명의 사제단들이 줄을 지어 로사리우 대성당으로 이동하자 일요일 교중미사가 진해되기 시작했다.

미사는 엄숙하고 장엄했다. 대형 스크린이 양쪽에 설치되어 멀리서도 미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미사를 마치기 전에 옆에 있던 미스터 김이 다른 곳을 다녀오자고 해서 중간에 자리를 떴다. 로사리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모님이 발현하여 만났던 세명의 어린 목동(여자 2명. 남자 1명)들의 무덤도 이곳에 있었다. 오후 2시 30분에는 성당 뮤지엄에서 수녀님이 설명하는 파티마 성지와 관련된 영어 안내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다.

우리는 다시 Tomar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아침에 우리를 이곳으로 태워준 버스가 다시 온다고 했다. 미스터 김이 잊고 내린 가방이 실려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마침내 터미널에 나타나고 미스터김이 버스 안을 살피더니 자기 가방이 선반에 그대로 있다고 하며 너무 기뻐했다.

D+7일 차 Tomar에서 Cortica


한국인 2명은 먼저 출발하고 같은 방에서 지낸 미국 교포 젊은이 김준현이 무릎이 아파 걷는 속도가 느리니 우버를 불러 첫 번째 마을 Casaisfh로 이동한 다음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내가 출국 전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어제 주었는데 상태가 많이 좋아진 거 같다는 얘기를 하지만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서 우버와 볼트앱에 택시를 검색했지만 대기 차량이 없어 계속 기다리다 9시쯤에 드디어 차량을 예약하여 우리는 숙소 앞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탔다.

우리는 Casais라는 조그만 마을 골목에 내렸다. 요즘 며칠간 날씨가 좋아서 까미노 걷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유럽의 진짜 5월이 이런 날씨인데 하고 느껴졌다. 편안하고 낮에는 덥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여기 있었다.

오늘 까미노 구간에는 아스팔트 길이 많았지만 다행히 한적한 시골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차량들이 적어서 걷는데 오히려 편안한 길이었다. 김준현이 본인의 집안은 기독교인데 예전부터 가톨릭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고 했다. 자신은 해외 선교 활동을 하고 싶은데 가톨릭에서도 평신도들이 해외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기독교와 가톨릭이 종교적으로 대립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학생 때 우울증에 걸려 한동안 방황하고 있을 때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위로를 받았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Porcelain de Vila Verde라는 마을을 지나며 우리는 바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콜라와 함께 먹고 출발했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오후 3시쯤에 내가 지낼 Cortica로 들어와 숙소를 찾았다.

오래되지 않아 깨끗하고 공간이 넓으며 식사도 제공하는 숙소로 호스피탈레노가 젊은 부부였다.

김준현은 이곳에서 택시를 불러 다음 마을 Alvaiazere에서 한국인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다시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후 Coimbra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곳도 저녁시간까지 찾아오는 순례자가 없어서 나는 혼자 지내게 되었다. 호스피탈레노가 저녁 식사 주문을 미리 받아서 식탁 위에 차려놓고 퇴근을 해버려 나는 혼자 식탁을 마주하고 음식을 먹어야 했다. 텅 빈 식당에서 닭고기가 들어간 이름을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주방에 있는 다른 과일 바나나도 후식으로 먹어버렸다. 숙소를 찾아온 순례자는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아침 식사 때 주인이 테이블에 차려놓고 간 바게트를 먹지 않고 따로 선반에 둔 부드러운 빵을 먹고 냉장고에 있는 우유와 오렌지 주스도 함께 마셨다. 그리고 생수를 살 수 없어 물 파우치에 수돗물을 담아 출발을 해야 했다.

D+8 Cortica에서 Ansiao


방문객이 없는 숙소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호스피탈레노가 순례길을 걷는 사람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한다. 숙소는 깨끗했지만 우선 음식을 준비해 주는 방법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준비된 음식은 랩에 덥혀 있고 커피는 알아서 끓여 마시고 과일이나 쿠키 같은 디저트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주인은 순례자 경험을 먼저 한 다음 이런 일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방으로 들어가 배낭을 메고 건물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조그만 마을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있다는 게 사실 감사할 따름이었다.

까미노의 출발은 숙소를 나와 직선으로 길게 쭉 뻗은 길을 따라갔다. 아침나절 걷기는 항상 들뜬 마음으로 시작한다. 우선 공기가 신선하고 초록색 들판을 따라 걷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해바라기의 노란 꽃 봉오리들이 한참 솟대를 들어 올리며 기세를 높이고 있었다.

이제 숲 속으로 들어가지만 낮은 키의 참나무들로 우거진 길이 이어졌다. 이제 조금 더 가면 큰 마을인 Alvaiazere에 들어간다. 어제 먼저 떠났던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지내고 다시 떠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순례길은 이 마을 중심을 지나지 않고 외곽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마을을 검색했더니 마을 끝에서는 순례길과 만나는 길이 있어서 구경삼아 마을로 들어갔다. 그냥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뜻밖에도 약국이 보여 혈압을 체크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 걷다가 어지러움 증세를 느껴 잠깐 걸음을 멈추고 진정을 한 후에 다시 걸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 매일 복용하던 혈압 약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번에 혈압 체크를 하고 가기로 했다.

구글 번역기로 "혈압을 체크하고 싶다. 비용을 지불하겠다"라고 번역하여 보여주었더니 하양 가운을 입은 약사가 웃으면서 "you don't need pay "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혈압을 체크하기 전에 약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5분 정도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했다.

혈압을 나타내는 숫자가 오름 내림을 지나 137/89로 나타났다. 약사가 정상이니까 물을 많이 먹으라고 하며 140/90이 넘지 않으니 괜찮다고 하는 거 같았다. 나는 약국을 나서면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포르투갈 길은 남쪽에서 북쪽 Tomar까지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모두 Fatima 가는 길 안내표시판이 따로 설치되어 있어서 포르투갈 정부가 최대의 관광 자원인 Fatima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을 느꼈다.

작은 마을 Capela de Alminhas를 빠져나가기 전에 작은 성당으로 갔다. 그러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주변은 적막했다. 아주 작은 시골에 있는 성당은 대체적으로 주재하는 신부님과 관리인이 평일에는 없어서 그런지 대부분 문을 열어놓지 않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가톨릭 젊은 사제 서품이 줄어드는 추세라 신자가 적은 시골에는 도시의 성당 신부님이 주일에만 출장을 나온다고 했다.

성당 앞 넓은 광장을 지나자 이제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숲은 깊지 않았고 키가 낮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산길이었다.

어느새 정오가 되어 휴식 겸 마을의 주택 담벼락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으며 등산화를 햇볕에 말렸다. Ansiao는 꽤 큰 마을이었다. 숙소는 마을 끝 무렵에 있어서 우선 점심식사를 주변 식당에서 먼저 하고 찾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당을 물었더니 한 곳을 알려주었다. 내가 찾아간 식당에는 손님들로 매우 붐볐다. 아무래도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식당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메뉴판에 적혀 있는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더니 " Cow meat or fish 하고 물어 "fish"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종업원이 들고 온 음식을 보고 순간 주문을 잘못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넓은 접시에 담긴 음식은 삶은 콩하고 프라이팬에 볶은 앤초비(멸치) 같은 생선과 감자가 들어있는 요리였다.

사실 나는 생선이 멸치였다면 분명히 주문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후회를 했다. 그래서 콩과 감자만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 손님에게 종업원이 가져온 요리를 보고 저걸 시켜야 하는데 하고 나름 요리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종업원을 기다렸다. 옆 분은 소갈비 찜에 감자가 들어있는 요리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저분이 먹는 요리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며 돌아갔다. 잠시 후에 종업원이 돌아와서 내가 먹던 그릇을 가져가며 옆사람이 먹는 소갈비찜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나는 설마 이렇게 친절할 수 있는지 긴장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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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시 가져온 요리는 이렇게 푸짐한 소고기에 감자가 들어간 찜 요리였다. 나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이 맛없다고 판단하고 원하는 음식을 바꿔주는 경우를 처음 경험해서 정말 감사했다.

내가 지불한 음식값은 콜라를 포함해서 단지 9유로였다. 나는 착한 음식점이라 손님들이 많았구나 생각했다.

숙소는 이곳에서 1km쯤 떨어져 있었다.

D+9 Ansiao에서 Rabacal


어젯밤 오랜만에 프랑스 르퓌길을 걷고 계신 위갓님과 보이스톡을 했다. 집을 떠 난지 40일째 되어 이제 좀 지겹기도 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이전에도 위갓님 부부는 집을 나서면 두 달은 거뜬히 걷고 돌아오는 도보 여행을 매년 계속하고 있는 분이었다. 순례길 걷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매년 실행을 하니까 카페 모임에서도 대단한 모범생으로 이름나 있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면 비슷비슷한 순례길을 걸을 때 지겨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는 그런 생각들은 사라지고 빨리 그곳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었다.

오늘 목적지 Rabacal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판매완료가 되어 며칠 전에 왓츠앱으로 예약 신청을 했더니 "방이 있다"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아침에 좀 일찍 출발해서 빨리 도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순례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가끔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길과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숲길들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Netos 마을을 지날 때는 재봉틀 모양의 예술 작품이 설치된 곳을 지나갔다. 이 마을이 봉제 산업이 발달했던 지역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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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2018년 국민 우화 퍼레이드의 일환으로 앙시앙 마을을 행진한 이 작품은 전통 재봉틀을 대표하며 이 지역의 재봉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Alvorge마을을 지나가다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집의 바에서 주스를 한잔했다. 실내가 꽤나 넓고 주인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길에 꽤 재미난 집이 있어 한 컷 눌렀다.

라바칼(Rabacal)이 가까워질 무렵 반대편에서 리컴번트(Recumbent Bicycle)라는 자전거를 타고 한 순례자가 앞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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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스듬하게 누워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만약에 로마인들이 만든 울퉁불퉁 돌길에서도 잘 지나갈 수 있을까 나름 염려가 되었다.

오늘의 숙소 Rabacal에 도착했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길이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숙소는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었다. 작은 풀장도 있고 숙소에 머물고 있는 관광객들은 벌써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D+11 Rabacal에서 Coimbra


오늘은 코임브라에 들어가는 날이다. 새벽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아침이 늦게 나타났다. 그러나 숙소의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밝아졌다. 토마르에서 같이 지냈던 김준현이 Coimbra에서 기다린다고 연락이 왔다. 로비에서 미국인 순례자 제임스가 오늘이 포르투갈 공휴일이라 코임브라에는 상점들이 문 닫은 곳이 많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7시에 문을 연다던 숙소 레스토랑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막연하게 기다릴 수 없어서 간식용으로 배낭에 넣어둔 빵과 오렌지 주스를 꺼내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식당으로 연결된 숙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니 아침이라 약간 쌀쌀한 공기가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앞에 푸르는 하늘을 바라보이며 순간 내 몸속에는 불쑥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한 시간 후에는 금방 따뜻한 열기가 온 거리에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틱을 부지런히 사용하며 힘차게 마을을 지나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들어섰다. 컨디션이 괜찮은 아침나절에 스틱을 사용하면 걸음이 빨라진다. 이곳 마을의 끝에는 오랫동안 폐허가 된듯한 집들이 방치된 듯 그대로 남아있어서 씁쓸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있는 보도를 걸었다. 회전로터리를 돌아서 곧바로 직진을 했다.

이제 마을을 완전히 빠져나오면서 농촌의 넓은 들녘과 마주쳤다. 갑자기 무덤덤한 들녘이 무료할 수밖에 없었다. 탈농촌화 현상은 넓은 농지를 그대로 방치해서 높게 자란 풀들만 한들거리고 있었다. 잡풀이 왕성한 고랑사이로 나 있는 길도 자주 걸어가야 했다.

포르투갈의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순례길은 가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농원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거의 한 시간을 특별히 관심이 가는 풍경이 보이질 않았지만 지명을 알 수 없는 마을 끝에서 재미있는 장소를 만났다. 각종 폐품으로 순례자와 관련 있는 조각품을 만들어 설치해 놓은 물건들과 한쪽에는 기도 장소. 파티마의 목동 사진들까지, 그리고 포르투갈 순례길 지도, 또 벤치가 있었고 테이블에는 커피포트. 티. 비스킷. 사과를 무료(도네이션)로 제공하며 쉬어 갈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이미 외국인 순례자 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쉼의 장소를 제공하는 이곳의 주인이 나타났다. 길게 자란 머리와 수염을 하고 마치 도사처럼 그는 다가와서 악수들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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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양한 소품들과 장식을 천천히 둘러보고 벤치로 돌아와 테이블에 있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1유로를 도네이션 하고 나왔다.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는지 내가 있는 동안에도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연거푸 들어왔다.

오늘 길도 처음부터 그저 평탄한 길이 오랫동안 연속되었다. 이럴 때는 속도를 조금 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어서 속도를 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잘 닦여진 숲길과 키가 큰 느티나무 숲이 자주 나타났다. 이곳은 또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테이블과 벤치도 여러 곳에 있었으며 얼마 안 가 이곳이 ‘내추럴파크’라는 안내판을 만나기도 했다. 숲길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무리들이 자주 나타났다.

멀리 Coimbra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오래되고 키가 큰 나무 숲길이 이어지며 계곡에서 물살이 흘러가는 풍경도 마주쳤다. 자연학습을 하러 어린아이들이 곤충 채집 박스를 들고 부모들과 함께 지나갔다. 지나가는 길에 유적을 발굴하는 장소가 있었다. 안내판에 포르투갈내 로마 정착지 중 하나로 발굴단들이 작업을 하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코임브라 외곽마을 ‘Cernache’에 들어가면서 처음보이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한산했다. 메뉴를 보여주는데 시골 식당치고 가격이 좀 높은 거 같아 망설이다 소고기 슈트 같은 사진을 보고 주문했다. Ansiao에서 먹은 소고기 갈비찜 생각이 나서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으나 막상 고기가 짜서 살만 약간 먹고 감자는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나니까 더 이상 걷고 싶지가 않았다. 궁리 끝에 주인에게 코임브라 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봤다. 주인이 알려준 시간에 나가 식당 바로 앞 버스정류장 팻말이 있는 곳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종일 32도가 넘어가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었더니 식사를 하고 난 후로도 내 몸은 녹초가 된 느낌이었다. 버스는 도착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버스를 포기하고 그냥 걸어갈까 하고 여러 번을 망설였다. 정작 버스는 약 30분이 지났을 때 모습을 나타냈다. 버스 기사에게 ‘코임브라’ 가는지 확인하고 비어 있는 맨 앞 좌석에 앉았다. 버스에는 거의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버스가 복잡한 코임브라 시내로 들어왔다. 나는 구글맵으로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거리를 지나 약간 경사진 골목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젊은 관광객들이 머무는 호스텔이었다. 호스피탈레노가 접수를 끝내고 룸키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건물은 12시에 출입문이 자동으로 폐쇄되니 키를 사용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늦게까지 거리나 바에서 술을 마시지 않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이곳에 도착하면 만나기로 했던 재미교포 김준현에게 카톡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숙소 근처 코임브라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거리에는 여러 곳에서 대학생들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일 다시 떠나고 김준현 씨는 이곳에 있는 지인집에서 더 머무르다 떠날 예정이었다. 그와 헤어져서 근처의 코임브라 대학교로 걸어 올라갔다. 1290년에 설립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알려졌고 8개 단과 대학이 있다고 했다. 이곳 몇몇 남학생들은 과거의 교복인 듯 검은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점도 특징이었다. 예전에 우리나라 초기의 대학생들도 교복이 있었던 것처럼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이기 때문일까? 또 오랫동안 잘 버티고 있는 대학의 건물들은 유럽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마 튼튼한 자재인 대리석이나 돌을 쌓아 올려 지은 건물들이라 웬만한 자연재해나 전쟁에서 폭격을 받지 않으면 오늘날까지 멀쩡하게 잘 견디고 있을 것이다.

교정을 돌아 나오다 어느 단과 대학 앞에 텐트를 설치하고 학교에 항의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조금 전에 올라왔던 대학 건물들을 지나 내리막 경사길과 계단을 지나 시내로 들어섰다. 오늘이 가톨릭 제례일로 성모님 방문 축일이라 그런지 숙소 근처 산타크루즈 성당 앞에서 야외 미사가 열렸다. 나는 주교님 성경 강론 차례까지 계속 서 있다가 사람들 틈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에 미사가 끝나고 거리 행진에 사제단들이 앞장서고 신자들이 줄을 지어 다니는 행사를 했다.

20260126_114119.png 대학 건물 앞에 모인 학생들

숙소 바로 근처에는 한국 음식점인 강남식당 간판이 보였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까미노 카페에 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동안 이틀 이상이나 미뤄두었던 일기를 쓰기 위에 지나간 일들을 기억해 내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나간 일들을 더듬어 보는 것이 지금은 예전만큼 빨리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기대를 하고 찾아간 식당의 메뉴에는 내가 상상했던 김치찌개는 없었다. 그래도 예상하지 않았던 한국 식당을 만나 김치와 갈비정식을 먹고 나오니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D+12 Coimbra에서 Agueda


Coimbra 숙소 바로 옆에 조그만 광장이 있고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들이 있다. 새벽 3시가 넘어서도 젊은이들이 모여 술 마시고 떠들어서 잠을 자지 못하고 불편한 밤을 보냈다.

오늘은 코임브라에서 기차로 Mealhada로 가서 다시 Anadia로 간다음 순례길을 출발하기로 했다. 먼저 Coimbra B역으로 2km를 걸어가서 Porto행 기차를 타고 18분 정도 가서 내린 다음 Mealhada역에서 우버를 불러 인근 큰 도시 Anadia로 갔다.

규모가 큰 도시 Anadia에서 길을 걸어가다 안경점을 발견했다. 마침 착용하던 안경의 오른쪽테가 떨어져서 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15분쯤 뒤에 원래의 부품이 없어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고 가져왔다. 수리 비용을 묻는 나에게 무료라고 하면서 웃어 보였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와 상점들이 있는 길을 따라가며 순례길을 찾아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외곽의 공원과 테니스장을 벗어나자 순례길이 나왔다. 그리고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휙휙 지나가는 길을 걸어갔다. 오른쪽 보도 위에 가지런히 가로수가 지나갔다. 가로수 때문에 그림자가 차도 앞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어서 나는 그곳을 따라 계속 같은 방향으로 지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가는 듯했다. 어느새 가슴에 땀이 흠뻑 젖어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자주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Avelas de Caminho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공원 안에 카페가 보여 나는 반가워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에어컨이 작동하는 실내는 아니었다. 카페 앞에 테이블이 있는 벤치가 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더위를 식힐 겸 주인에게 콜라와 머핀을 주문하고 벤치에 앉아 뜨거워진 신발도 잠깐 벗어서 말렸다.

시원한 콜라가 목안을 넘어갈 때마다 내 가슴을 타고 지나가는 청량감이 깊숙이 와닿았다.

계속 이어지는 시골의 삭막 한 분이기 때문에 나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했다. 그늘이 없는 길이 지속되면서 어느새 무료한 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줄지어 나타난 가로수 밑을 지날 때는 의외로 아주 기분 좋은 시원함도 느낄 수 있었다.

’Aguada de Baixo'를 지나면서 나타난 두 번째 카페에서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콜라와 함께 먹었다. 아침부터 세 번째 먹는 빵이다. 반쯤 먹다가 소화가 안 되는 거 같아 그만 일어났다.

이 지역은 산업단지 분위기로 큰 회사들과 공장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구글 지도를 열어 이곳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가로수가 없어지고 삭막한 자동차들도 뜸한 거리가 나왔다. 공장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세라믹 공장이라고 한다.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며 이마와 가슴에 땀이 맺혀 축축 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정차를 하면서 운전자가 밖을 내다보며 "산티아고 " 하고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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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라고 대답하자 조수석에 둔 비닐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Very Hot" 하더니 부엔카미노 하며 떠났다. 주머니 안에는 생수 한 병과 사과 두 개 그리고 명함이 들어 있었다. 이곳에도 순례자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던 공장들이 산재한 지역을 지나가자 마침내 도시가 나왔다. 강물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순례길은 왼쪽으로 나 있지만 직진 방향 언덕길을 올라갔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을 1.5킬로 떨어진 곳에 멋진 모습의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숙소 입구에 세워진 전광판 온도 표시 란에 현재 기온이 36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체크인을 한 후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를 하니 제법 시원했다. 어두컴컴한 룸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모기들이 들이 날아다녔다. 빨래를 하러 바깥 수도꼭지가 있는 건물 뒤편으로 가서 시원한 물을 틀어놓고 비누로 땀에 젖은 속옷과 양말들을 씻고 있었다. 그때 미국 교포 조셉최와 한국인 김문중 씨가 나타났다. 이들은 벌써 도착해서 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중이었다.

우리는 조셉최가 만든 생선지리탕과 내가 사 온 수박 한 통으로 6명(한국인 3명. 일본인 1명. 미국인 2명)이 저녁을 근사하고 맛있게 후식까지 푸짐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D+13 Agueda에서 Aveiro


어제저녁식사 후에 미국에서 오신 조셉최가 순례길에서 같이 걸었던 포르투갈 순례자가 적극 추천한 도시 Aveiro를 가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바닷가 사진과 해산물이 최고라며 같이 있는 김 선생과 나에게 다녀오자는 제안을 거듭하길래 그럼 하루를 그곳에 다녀와서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나 김 선생은 Aveiro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계속 걷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침에 Rome2 Rio 앱에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Agueda 역으로 갔다.

역사는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으며 때를 맞추어 기차를 타면 되는 방식이었다. 기차가 시간에 맞춰서 나타나 우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Aveiro로 향했다.

기차가 Aveiro에 도착하자 우리는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 숙소를 찾아갔다. 기차역에서 숙소는 거리가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다. 길가에 미술관 건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유럽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항상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었다.

숙소는 청소년 수련관이라 단체 학생들이 들이닥치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또 큰 트렁크를 가지고 나타난 아프리카 여행자들이 찾는 건물이었다. 우리는 체크인 시간 전이라 매니저에게 배낭을 맡기고 시내로 나왔다.

먼저 쇼핑몰에서 조셉최의 전화기 유심을 새로 끼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해산물이 좋은 바닷가 도시라고 어제 조셉최가 자랑을 해서 식당 입구에 생선 사진이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에 있는 종합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식사 전에 접시에 올리브와 빵. 버터가 나왔는데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이 항목을 하나씩 모두 계산에 포함해 청구를 하였다. 서빙 한 종업원을 불러서 왜 시키지도 않은 것을 가져와서 계산에 포함했느냐고 따졌더니 거부를 하지 않아서 주문서에 포함했다고 했다. 내가 "주문 의사를 먼저 물어봐야 지"하고 목청을 높였더니 주인이 종업원에게 야단을 치며 뭐라고 하더니 다시 수정된 계산서를 나에게 가져왔다.

숙소는 늦은 5시에 정식 체크인을 했다. 우리는 이곳의 여행 포인트인 해변으로 가기 위해 6킬로쯤을 우버를 호출해서 그곳을 찾아갔다.

대서양의 짙은 녹색 바다와 짙푸른 하늘의 뜨거운 햇볕에도 모래 해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근처 식당은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우리는 대서양 바다에 발을 잠깐 담그는 것을 끝으로 Aveiro의 해변 체험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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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내로 나와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체험하는 보트를 타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5시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숙소로 돌아왔다. 배정받은 방에는 이층 침대가 3개 있는데 한 개는 인도계인 장기체류자가 있었고 또 하나는 흑인이 들어오면서 커다란 이민가방을 갖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또 흑인의 친구가 나타나 옆 침대를 차지했다.

침대 커버는 낡고 더러워서 도저히 그 위에 눕기가 어려워 침낭을 사용했다. 실내는 더워서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모기들이 들어와 밤새 윙윙거리며 팔과 다리를 물어 가렵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여기저기 모기에 물린 곳에 물파스를 계속 바르며 시간을 버티었다. 5시 반쯤 조셉최가 일어나 키친에서 어제 사 온 빵과 우유를 먹고 일찍 Agueda로 돌아가자고 했다. 나도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려 제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우버를 불러 다시 Agueda로 돌아가서 하루동안 순례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


D+14 Agueda에서 Albergueria a Velha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예약한 우버 택시를 타고 Aveiro에서 Agueda로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기온차가 심해 몸의 컨디션이 나빠지며 기침을 자주 하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 목이 부어오르며 걸을 때도 기침이 나와 Agueda 약국에 들러 약을 구입했다. 길을 걸을 때도 아픈 목을 진정시키는 멘톨 캔디를 계속 빨아먹었으나 변화가 없었다. 또 어제 수면 부족에 더해 컨디션이 매우 나빠진 거 같아 겨우겨우 걸어서 오늘 숙소인 Albegaria a velha에 도착했다.

오후 2시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우선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돌아오자 여자 호스피탈레노가 친절하게도 음료수를 내오며 마시라고 했다. 그가 순례자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내가 기침을 하니까 목감기가 걸린 거 같다고 하면서 주방으로 데려가 오렌지를 얇게 썰어 접시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그 위에 노란 설탕을 뿌리고 감기에 최고의 치료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먹으라고 권하며 미리 끓여 놓은 차에 레몬즙을 넣은 물을 마시라고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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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새 기침을 하며 침대에서 지냈다. 어제 약국에서 처방받은 목 캔디 정도로 낳을 거 같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부터 계속할 순례길 일정을 검토하였다. Aveiro에 다녀오며 더 악화된 감기는 포르투까지 며칠을 더 걸어갈 건지 아니면 무리하지 말고 순례길 일정을 이곳에서 마무리해야 할 건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3일간 일정을 포기하고 포르투를 거쳐 산티아고에 들어가 우선 미사를 드리고 마드리드로 이동해서 귀국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깊이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 알베르게 숙소의 예약을 마쳤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걷고 싶은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또 순례길에 나서면 될 일이다.

포르투 가는 버스를 Rome2 Rio 앱에서 확인하고 9시쯤 터미널을 찾아갔다. 어디론 가 떠나는 사람들로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포르투 가는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왔다. 나는 모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실패한 순례자 기분으로 찹찹한 감정에 우울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으로 차창밖의 포르투갈 시골의 전원에 놓인 목가적인 풍경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는 Albergueria a Vilha를 출발하고 잠시 후에 포르투 터미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행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터미널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라테와 머핀을 주문해서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산티아고 공용터미널은 배낭을 메고 떠나는 많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열두 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꽉 들어찬 성당은 비좁고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의 강론이 있고 성체조배도 지나갔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참석한 게 보였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찾아오고 싶었던 이곳에서 약간의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미사가 끝난 뒤에도 더 앉아있었다.

'Albergue Seminario Menor'는 내가 즐겨 찾는 알베르게이다. 수도원 건물을 개조하여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는데 좋은 점은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1인실 룸을 사용할 수 있어서 순례길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하 1층에는 매점이 있어서 필요한 물품은 살 수 있고 주방이 넓어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역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나는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포르투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까미노는 2019년 5월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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