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기' 대신 '함께 놀기'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타는 자전거는,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어도,
작은 손이 핸들을 잡고 따라오는 모습을 살피느라
내 페달은 언제나 한 박자 느렸다.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겁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딘가 갈증은 있었다.
어느 주말 아침.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미 자전거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설렘 반, 해방감 반.
오랜만에 나홀로 라이딩.
속도계를 의식하며 한껏 속도를 올렸다.
계획했던 주행 거리도 훌쩍 넘겼다.
사람 없는 강변에서
끓여 먹는 컵라면도 맛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즐겁지가 않았다.
속도는 짜릿했고, 목표 거리도 넘어 섰는데
무언가 빠져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와 놀아준 것’이었다는 사실을.
함께 페달을 밟으며
서로의 속도에 맞추고,
길가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작은 성공에 웃음 짓던 순간들.
이쯤되면 아이와 ‘놀아준다’는 말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실은,
우리가 ‘함께 놀았던’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시간을 내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내 인생에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준 것임을 알았다.
함께 타는 자전거는 조금 느리지만,
그 길 위에는
속도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