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be a (deginer).

나는 어쩌다 디자이너가 되었나.

by 공감수집가

중학교 2학년, 수 차례 되묻고 답을 내렸다.

미대 디자인과에 입학해서 전문 디자이너가 되기로.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했다.

교내외 미술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적성검사 때마다 늘 화가, 미술가 등 예능 계열로 나왔다.

동네 미술학원 한 번 다닌 적이 없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입시 미술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는 건 모험이었다.


95년 당시 ‘아스팔트 사나이’라는 드라마가 방영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였다.

방송 첫 회를 보고 난 뒤 설렘에 잠을 설쳤다.

드라마 속에 비친 디자이너의 삶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업으로 삼아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낭만 그 자체였다. (속았다. PD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당시 남자가 미대에 진학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 재학 당시 미대 진학 희망 학생은 전교에 단 3 명뿐이었다.

디자인이란 용어도 낯설었고 남자라면 응당 이과로 가는 게 미래를 위한 올바른 선택으로 여겨지던 때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꿈꾸는 또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대학에서 만나 함께 디자인을 공부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중학교 2학년 영어 기말고사 마지막 주관식 문제가 잊히지 않는다.

'I want be a ( ).'

4점이 걸린 문제였다.

친구들 대부분 실제 꿈과 상관없이 쉽고 무난한 단어를 괄호 안에 넣었단다.

나는 당당히 deginer(?)라고 썼다.

긴가민가 몇 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꾹꾹 눌러썼다.

시험 결과 공개 후 영어 선생님께서 날 지목하며 물었다.

"꿈이 디자이너니? 멋지다. 근데 스펠링은 틀렸다."

반 전체가 깔깔 대며 뒤집어졌다.

꼭 꿈을 이루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셨지만,

출제자가 점수를 주려고 만든 보너스 문제.

전교에서 유일하게 틀린 불명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도 4점과 꿈을 맞바꾸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내 멋진 꿈도 알려지고 말았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