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나요?

입시미술의 명암

by 공감수집가


좋아하는 일, 꿈꾸던 일을 하게 된다면 마냥 행복할까?


15살, ‘디자이너’라는 목표가 생겼고 태도도 달라졌다.

‘뭐부터 시작할까’

'하루에 그림을 10 장씩 그려봐?'

'서점에 가서 책부터 찾아볼까?'

재미없던 학교 공부도 내 꿈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을 전환하니 ‘권태’는’ 활력’으로 바뀌었다.



월간 디자인 200호 표 출처: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월간 디자인과의 만남

우연히 발견한 잡지 하나.

인근 최대 규모의 서점이었던 동인천 ‘대한서림’에서 ‘월간 디자인’을 만난다.

게임 잡지만 접했던 내게 간결한 표지와 세련된 사진, 낯선 단어들은 무척 신선했다.

잡지에 실린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어찌나 근사하던지.

내겐 그들이 연예인이었다.

잡지를 학교에 가져가서 슬쩍 펴 놓고 포스트잇에 단어를 끄적이며 폼도 잡고.

어설픈 스케치를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아직 뭘 좋아하는지, 커서 뭘 해야 할지 고민 중인 친구들은 꿈을 찾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주변 관심이 더해질수록 조바심도 커져 갔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도통 방법을 몰랐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은 커져 갔다.

예고? 예술고등학교는 어떻게 가는 거지?

전문 미술학원에서 예고 입시 미술 교육을 받은 뒤 실기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거란다.

부모님께 설명드렸더니 당황하셨다.

어릴 적부터 그림도 잘 그리고 적성 검사마다 그쪽으로 나오던 터라 짐작은 했지만

정말 미술 쪽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셨다.

서두를 것 없으니 우선 일반고에 진학하고 맘이 변하지 않으면 그때 시작해도 되지 않겠냐고 덧붙이셨다.

꿈은 찾았지만 입시 미술, 미술 대학 진학, 졸업 이후까지 일련의 과정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나름의 방식대로 공부했다.

용돈을 털어 가며 디자인 잡지는 꾸준히 구매했다.

전람회, 이승환, 윤종신, 신승훈, 신해철 등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자켓을 뚫어져라 보며 나라면 이렇게 디자인했을 텐데 상상하곤 했다.


꿈은 커져 갔지만 색은 옅어진 채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미대에 진학하거나 진학한 사람을 알고 있는 경우도 없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미대 입시에 대한 정보는 더욱 얻기 어려운 때였다.

당시 인천에서 악기, 미술용품을 주로 판매하고 학원가도 형성되어 있던 곳이 동인천역 인근이었다.

겉모양이 그럴싸한 건물에 혼자서 무작정 들어갔다. 얼떨결에 상담을 받은 곳은 디자인 학원이었다.

묘한 실기 시험을 치르고 상담사도 전문성이 있어 보여 쉽게 결정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고등학교 1학년 생은 뒷전이었고 빛이나 조형에 대한 이해 없이 기계적으로 그림 훈련을 시키는 실습소 같았다. 무엇보다 같이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미술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고 좋아하는 작가, 디자이너 하나 없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이건 아니다 싶어 두 달 만에 그만두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는 길에 종종 봤던 낡은 미술 학원 문을 두드렸다.

엄격하지만 이론부터 실기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액자도 없는 입시 미술 소묘 99 년작


입시 미술 세계로의 초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입시미술학원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7시부터 10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고단할 법도 한데 단 하루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이브도 나왔으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원비와 재료비, 시험비까지 부담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했지만. 실제로 힘든 적이 없었다. 노력 대비 그림이 맘처럼 안 나올 때 속상했을 뿐.

미술학원 수업료, 재료비, 특강비, 시험료까지 점점 부담은 늘었다.

돈은 꿈을 놓게 만든다. 학원생 중 일부는 스스로 그만뒀다. 입시 미술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면 미대에 가면 안 된다는 원장님의 말씀이 그 해 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가웠다.

수능이 끝나고 이어지는 겨울 특강의 부담은 실로 엄청났다.
대학 등록금 수준의 금전적인 부담도 컸고 하루 3~4 장씩 10 시간 이상을 그림 그리는 데에서 오는 정신적인 피로감은 나를 극한지점까지 몰고 갔다.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그림 공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때다. 더는 즐기는 그림 생활은 없었으니까.

매주 서울로 가서 치르는 모의 실기 시험이 있었다.

본격적인 입시 시험을 앞두고 모의시험 대신 한 바탕 놀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이벤트가 절실했다. 선생님께 시험 대신 이승환 콘서트에 간다고 했다가 개박살 나고 그림까지 찢긴 기억이 있다.(끝내 갔다.)

모의시험은 교수 평가료 명목으로 3만 원을 내야 했다. 교수 평가는 돈이 들더라도 대부분의 입시생들이 받는다. 돈을 받고 평가하는 교수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의 교수들이고, 이들이 실제 시험장에서 자신들의 그림을 평가할 교수니까.

나중에 미술학원 강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

나이 지긋한 대학 교수가 담배를 물고 바닥에 깔린 수많은 그림을 지나다니며 지팡이로 그림을 하나씩 쳐나간다. 그럼 보조 강사들이 성적대로 그림을 분류한다.

말 그대로 그림을 스치는 느낌이다. 몇 년의 노력과 사연이 담긴 그림 한 장을 보는 시간은 길어야 5초였다.



그림을 외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술은 개인만의 세계, 철학이 담겨 있을 거라고 믿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입시 미술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정형화시킨 교육을 주입한다. 사고에 쏟는 시간보다 기교와 패턴을 익히는 시간이 월등히 길다.

석고 데생 시험을 보면 본인이 좋아하는 구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얼굴도 빛의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매력이 다르지 않나. 석고 데생 시험을 보면 하나의 석고를 둘러싸고 약 20여 명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그림을 그린다.

한 때 강남 유명 입시미술학원에서 유명 선생님이 빛과 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석고 소묘를 할 수 있도록 주입식 교육을 했다. 그 결과 실제 지정되는 자리와 상관없이 그림을 외워서 그리는 학생이 합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심으로 합격하고 싶다면 그렇게라도 하라며 권장하는 학원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발상과 표현이라는 시험은 당일 주어진 주제를 해석하고 개성을 표현하는 시험이다. 재밌는 건 학원마다 컬러, 패턴을 만들어 놓고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껴 놓을 수 있게 공식을 만들어 둔다.

시험작을 보면 아 저건 어느 학원이구나. 아 이건 저 학원 스타일이네 구별될 정도다. 학원에서 연구하여 만든 패턴을 일괄적으로 적용한다. 흔히 교육 제도를 비판하면서 언급되는 암기식, 주입식 국영수 교육은 입시 미술교육이라고 다르지 않다.

개개인성, 창의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입시 미술 시험은 천재를 선발하는 시험이 아니다. 교과 과정에서 수학할 기본 능력을 갖춘 학생을 가려내는 것이다. 길어야 4 시간 내에 그린 한 장의 그림으로 평가를 하려니 학원은 학생들에게 그림을 주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획일화된 입시 방식은 학생들의 생각을 편협하게 만든다. 사고의 경계가 없어야 할 예술 분야에서 입시라는 틀을 만들어 그 안에서만 사고하게 한 결과, 대학에 들어가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기 어렵다.

과거 입시 미술을 시작하기 전에는 혼자서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평가가 없는 만큼 나만의 느낌과 상상대로 그림을 그렸고 즐거웠다. 하지만 틀에 갇혀 학원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다 보니 혼자 그리는 그림마저 입시 그림과 닮아갔고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져 선 하나를 그을 때마다 맞고 틀림을 의식해 마음 놓고 자유롭게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

학원은 유명 미술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 유명 미술 대학을 졸업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미대의 서열화는 생각보다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미대 입시는 우리나라 입시와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형화된 실기를 받는 곳은 많지 않다. 유럽이야말로 전통적으로 도제식, 엘리트 아카데미 교육을 주도했던 곳이라 학생들의 실력에 대한 요구치가 매우 높다. 유럽의 경우 학생이 작품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받고 그것과 관련한 인터뷰로 입시를 치른다. 학생은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성과 관심 분야를 담은 그림, 조각, 사진 등을 엮어 포트폴리오를 제작한다. 그 영향을 받은 미국도 유사하다. 포트폴리오 작업 과정에서 학생은 좀 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넓히고 견고히 다져 나가고 틀에 박힌 형식 없이 자유롭게 표현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학교에 들어간 뒤인데 꾸준히 실력이 상승하여 입학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실력이 상승하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다.



제도의 잘못만 따질 것인가.

시험 방식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입시 미술의 평가 방식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쉽다.

입시 미술의 간절한 마음은 20 년 전의 나와 현업 학생들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입시 미술은 내게 많은 걸 남겼다.

꿈을 나눈 친구, 간절함, 태도, 열정, 꾸준함.

그림으로만 놓고 봐도 분명 얻는 것이 많다.

빛에 대한 이해, 아이디어 구상, 조형미, 형태감, 표현력, 시간 관리, 좋아하는 컬러 배합 모두 나를 알아 가는 과정이었다.

사업으로 변질된 입시 미술 제도 자체에는 분명 문제가 많다.

하지만 제도만 탓할 것인가.

재미와 고통이 뒤섞인 그 시간을 견뎌낸다면, 모든 과정은 의미로 남는다.

내 삶을 통틀어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3년 내내 몰두했던 적이 있었을까. 하루도 쉬지 않고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그 시간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10대에 마주했던 그 끈기는 지금의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 되었다.


디자이너를 꿈꾸거나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런 과정을 기꺼이 견딜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다.

만약 그 정도로 간절하지 않다면, 취미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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