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색이 전부는 아니다.
다르게 보이는 세상, 다르게 표현하는 나
무더운 여름 방학, 미술 학원에서 디자인 전공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가 내 세계를 흔들어 놓는다.
“선생님. 만화가 이현세가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데요. 아세요?”
“이현세가 색맹인가, 색약인가. 눈 쪽에 문제 있지 않아? 그래서 못 간 걸로 알고 있는데.”
순간 부르르 손이 떨렸다.
잊고 있었던 나의 약점이 떠올랐다.
‘색약 때문에 미대를 못 갔다고?’
요즘 세대에는 낯설지 몰라도, 그를 기안 84나 주호민 같은 웹툰 작가들과 같은 급의 국민 만화가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드라마로 다수 제작되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로 불렸다. 그런 사람이 색각 이상 때문에 미대를 포기했다는 말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고 근처 도서관과 서점으로 향했다.
‘색약’, ‘학과’, ‘직업’ 같은 단어를 검색하며 관련 서적들을 뒤적였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답답함을 학원 내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기란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웠다.
사실 어릴 적부터 색맹 검사에서 읽을 수 없는 숫자가 있었다. 색색의 점들로 이루어진 숫자 책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끔 느껴지는 환 공포증도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울먹이며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큰 병원에 가보자."
인근 대학병원 안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적록색약.
의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관학교나 항공과 같은 곳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큰 지장은 없어요.”
그러고는
“아, 미술 관련 학과도 해당되겠네요. 아마도 어머니 쪽에서 색각 이상 염색체가 전달된 걸 거예요.”
굳이 덧붙인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늘 보던 풍경도, 햇살도, 그날은 모든 게 잿빛이었다.
처음 미술 학원을 빠졌다. 도저히 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는 친구의 전화 한 통에.
꾹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가 주머니에 넣어준 몇 장의 현금을 들고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어른이 없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떨림도 두려움도 없었다. 모든 게 상관없었다.
나만큼이나 친구들도 울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셋이서 술을 마시며 우는 광경이라니. 쪽팔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 후, 미술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기 너머로 잠시 흐르는 적막. 다음 날 선생님은 전화를 걸어왔다.
“일단 학원에 나와봐.”
길을 나섰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주고받은 대화가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럼, 아예 미술을 그만두겠다는 거야?”
“… 모르겠어요. 일단은 쉬고 싶어요.”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조소나 공예 같은 다른 길도 있잖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미련도 없어?”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어요. 디자인 쪽만 바라보고 왔는데, 장애 때문에 제대로 못 한다면 아예 다른 길을 찾는 게 낫겠어요.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보는 색을 나만 못 본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제약도 있겠지. 네 마음도 알겠다만. 이건 돌파하려 하기보다 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내 후배도 너랑 같은 증상이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색약 검사 책자를 다 외웠어. 그래서 결국 미대에 합격했지. 80년대 미대 입학 기준은 지금보다 더 엄격했어. 알고도 준비한 거야, 걔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좋아했던 일에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자격지심, 최고가 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이 뒤엉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을 찾은 설렘에 밤잠을 설쳤던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하려고 하다니. 이 정도의 의지였던가 싶어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자료를 찾으며 이현세 작가의 뒷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색약이라는 이유로 미대 진학의 문턱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이 찾으니. 흑백 톤의 만화에 스토리를 얹으면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그렇게 그는 만화가라는 길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 마음 한편에서 작은 불씨가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학원으로 돌아갔다.
이전보다 물감을 선택할 때 신중해졌다. 혹여 틀렸나 싶어 위축되기도 했지만, 대신 구성 능력을 보완하기로 했다.
틀린 색은 없다. 단지 표현법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입시 미술 평가 기준에 맞추되, 주제별로 적합한 색상 조합을 여러 벌 만들어 두었다.주제가 연상 되는 분위기를 최대한 입체적이고 밀도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도 손에 익혔다.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나갔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다만, 가장 희망했던 시각 디자인과는 포기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후에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입학 전 건강 검진이었다.
우선 색각 이상 검사 책을 어렵게 구했다.
읽어낼 수 있는 숫자는 넘어가고, 읽어낼 수 없는 숫자는 페이지와 함께 외웠다.안 보이는 숫자는 페이지 번호를 떠올리며 대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검사 당일, 심장이 터질 듯 긴장한 채 색각 검진 책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또렷하게 보이는 숫자 두 번을 읽어내고 무사히 통과했다. 만약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입학 취소가 되었을지 영영 알 수 없지만, 간절히 원하면 운도 따라온다는 진리를 19살의 나는 깨달았다.
걸어온 시간을 믿는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기특하다 여길 정도로 노력했다면, 세상은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현재는 기업 연구소 내에서 제품 디자인을 맡고 있다.
형태를 주로 다루지만 C.M.F(컬러, 소재, 마감) 디자인까지 담당하며, 제품의 톤 앤 매너(일관된 스타일과 어조)를 잘 잡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색각 이상을 알아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약 내 선택이 생명을 위협하거나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해당 업무를 포기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맡은 업무는 심미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까지 기업이나 사용자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디자인에서 색은 중요한 요소지만 전부는 아니다.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아름다움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해하기 쉽고 경제성을 추구한다.
또한,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처럼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색이나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답을 논리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에 감성을 더하는 것,
그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다.
혹시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안심해도 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길은 다양하다.
그 길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는 그곳이 곧 길이 된다.
결국 남은 것은 당신의 선택과 의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