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입학 전 한 달의 시간은 마치 꿈같았다.
합격의 기쁨에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과감하게 머리 염색에 도전하고 운동에 몰두하며, 책 한 권 한 권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때의 나는 학교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이미 그곳의 모든 순간을 갈망했다.
CD 플레이어의 음악과 함께 1시간 반을 지하철로 이동하며, 캠퍼스의 길목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만끽했다. 한적한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을 마셨다. 대학이라는 신비로운 무대로 향하는 설렘은 나의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물들였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합격한 학과 사무실을 들렀던 기억이 난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맞이해 준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환대는 마치 특별한 인연처럼 다가왔다. 처음 보는 이들이 아무 조건 없이 밥과 술로 반겨주다니. ‘너희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모습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더 커졌다.
특히 그날 밤, 조교 누나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학 생활이 단순한 공부 이상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순간이었다. 대학은 내게 지식을 쌓는 곳을 넘어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인생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채워가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가난한 대학생이 첫 해외여행을 꿈꾸며 몇 달 동안 힘들게 돈을 모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호화 크루즈 티켓을 손에 넣은 그날, 그는 별다른 정보 수집도 준비도 없이 필수품 몇 가지와 여권 하나만 달랑 챙겨 집을 나섰다. 여권 심사를 마치고 승선 카드에 적힌 방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크루즈의 거대한 규모에 잠시 숨이 막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럭셔리 수영장에서 선탠을 즐기는 이들과, 고급스러운 가운을 두른 이들이 스파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건 추가 비용을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어릴 적 꿈꿨던 워터 슬라이드를 한 번쯤 즐겨보고 싶었지만, 수영복이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정된 객실에 들어서자,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이 펼쳐졌다. 자취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그 방은 둘셋이 지내기에도 차고 넘쳤다.
배고픔을 느낀 즈음, 뷔페식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석 자리에 앉아 접시를 들고 음식 진열대를 둘러보았다. 저편에서 종소리와 함께 요리되는 랍스터의 향기가 퍼지자, 돈 많아 보이는 고급 정장 차림의 가족들은 웃돈을 내고 랍스터까지 먹는구나 부러워했다. 생전 보지 못한 다채로운 색과 향을 지닌 음식들이 놓여 있었지만 입에 안 맞았다. 결국 그는 익숙한 음식에만 손을 댔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문을 나서던 순간, 저녁 8시 디너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파티? 영화 속 화려한 파티처럼 꾸며진 곳인가?’라는 생각에, 몇 안 되는 깔끔한 옷가지 중 덜 낡은 셔츠를 골라 입어봤다. 거울 앞에 서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다짐했다. 면도와 머리 정리를 마친 후, 어깨를 펴고 문 밖으로 나섰다. 복도를 지나던 중,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한 남자와 그의 옆에서 금빛 테두리 카드를 든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다.
‘초대... 장? 초대장이 있어야 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스치자, 살짝 위축되었다. 초대장 얘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일단 가보자. 실밥이 삐져나온 외투 끝 소매가 자꾸 거슬린다. 복도를 돌아 로비를 지날 때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많이 본 사람 같은데 누구더라. 촌스러운 것 같아 방에 두고 온 뿔테가 그립다. 가까이서 보니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이었던 그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 녀석이네. 옆에 있는 여자는 여자친구? 모델처럼 생겼네.”
쪽 길로 몸을 숨겼다.
‘내가 왜 숨지? 죄지은 것도 없는데’
파티장 입구에 다다르자, 한창 진행 중인 댄스파티의 열기가 느껴졌다. 파트너와 함께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역시 무리인가. 파티장은 내가 어울릴 곳은 아냐. 초대장도 있어야 하는 것 같고. 난 춤도 못 추잖아.’
대신 건너편 콘서트 장 밖으로 울리는 노래를 감상했다. 엄마가 좋아했던 ABBA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갈채가 이어진다.
다음 날 호기심에 들른 카지노에서 단숨에 5만 원을 잃었다. 돈을 잃고 나니 다른 시설은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데크를 걷는데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한 중년 부부가 춤을 춘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재즈바에서 위스키를 마셔 봤지만 소주, 맥주파인 그는 두 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무제한 제공인 게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취기가 올라온다. 어느새 망망대해 틈으로 해가 몸을 숨긴다. 뜨겁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명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객실로 돌아와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한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안 먹어 본 음식도 먹어 봤잖아. 크루즈 안에 있는 수영장을 언제 보겠어? 카지노도 가보고 파티 분위기도 느껴 봤고.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 ‘
그렇게 그는 짐을 싸고 크루즈의 출구로 향했다.
기항지에 도착한 순간, 꿈에 부풀었던 3박 4일의 크루즈 여행은 방구석에서 끝나버린 듯한 씁쓸한 현실로 돌아왔다. 몇 달치 생활비를 단 며칠 만에 다 썼다는 사실에 갑자기 숨이 막혀 왔지만 여행이란 원래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법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입구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선상 내 모든 시설 및 공연은 무료입니다. 마음껏 즐기세요.'
너무 고생 많았다.
이제 눈부신 캠퍼스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대학생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축하한다.
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다시 준비해야 한다면 그 또한 축하한다. 다시 걸어야 할 길 앞에 잠시 멈춰 선 시간이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더 단단해질 수 있을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좀 더 살아보니 그 1~2년은 평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지 않더라. 오히려 나만의 속도로 걸으며 얻은 깨달음은 더 오래, 더 깊이 나를 지탱해 준다.
대학 시절은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입학 당시 좋아했던 음악, 벚꽃 언덕, 수줍은 웃음소리까지 생생하다. 여행, 동아리, 교양 수업, 축제, 술자리, 학생회 등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값진 시간이었는지. 지금 뒤돌아보면 그 모든 경험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내 전공에만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전공자들과 교류하는 것을 권한다. 타 대학이라면 더더욱 좋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낯선 생각들을 만나야 한다. 그런 만남이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 준다.
두려워 말고 문을 두드려라. 세상이 준비해 놓은 수많은 기회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대들은 누릴 자격이 있다.
등록금은 같을지라도 남기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손을 뻗어라. 사람도, 사랑도, 공부도 맘껏 누리고 내 걸로 만들기 바란다.
돌아봤을 때 망설임보다는 용기가, 후회보다는 추억이 더 많이 남는 대학 생활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