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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전화가 온다.

치매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

by 공감수집가

며칠째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온다.

검색해 보니 몇 달 전에도 왔던 번호다.

얼핏 통화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회의 중이라 "지금 회의 중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전화가 온다.

다시 문자로 답했다.

"급한 용무라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회의가 끝난 후에도 부재중 전화는 깜빡 잊고 말았다.


저녁 식사 중.

자비 없이 뜨는 아까 그 번호.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나이 지긋한 여성 목소리.

60~70대쯤 되어 보인다.

더듬더듬 나한테 누구냐고 묻는다.

"네?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시죠?"

대답이 없다.

"누구한테 전화하신 거죠? 이 번호가 맞나요?"

그러자 멀리서 들리는 소리.

"그 번호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앙칼진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들려왔다.

잠시 후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들인데요. 어머니께서 전화를 잘 못 거신 것 같아요. 주의하겠습니다. “

“네. 몇 달 전에도 전화가 왔었어요. 최근 들어 자주 전화가 왔고요. 문자도 남겼는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

"어머니가 치매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잠시 침묵.

"아... 노인네가. 계속 얘기해도 이러시네."

날 의식해서인지, 버럭 화를 내는 목소리.

통화가 끊겼다.


치매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음 날 아침.

또 전화가 온다.

이번엔 짜증이 나지 않았다.

잘못 거신 전화임을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멀리서 또 그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끊고 나서 생각했다.

남을 의식하고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나였다면,

저 아들보다 더 심하게 면박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전화 너머로 들리던 그 목소리가 오래 남는다.

나도 엄마에게 비슷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치매'라는 말로 한 사람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일은 잔인하다.

'치매(痴呆)'는 어리석을 치(痴), 어리석을 매(呆)로 이루어진 한자어다.

일본에서는 이미 '치매'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도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과'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바꾸지 않았던가.

'치매'를 대신할 새 이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게 달라질까.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전화 너머 그 어머니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며칠 동안 그 번호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아마 연락처를 삭제하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신 듯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머니는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찾는 걸까 싶었다.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게 잘못 전화를 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혹시 짜증을 냈다면, 엄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치매와 함께 사는 일은,

설명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전화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는 것뿐이다.

쉽지 않다.

나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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