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이야기
한참 잊고 있던 브런치를 다시 쓰기로 결정했다. 여행의 막바지이기도 하고, 따로 종이에 매일 일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이 모두 희미해지기 전에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기록해 보기로 했다.
19년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1년 후 코로나 사태가 터지게 되었고, 비대면 수업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던 나는 2년 동안 계속 알바와 인턴을 전전하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용돈을 최소한으로 받고 돈을 벌었다.
결과적으로는 또래보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이 쌓여 성격이 외향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벌었던 돈은 사실 월 100-200 사이의 푼돈이라 (저축이랑 주식도 하긴 했지만) 대부분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는데 많이 썼다. 특히나 연애 초반이었어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지금 돌아보면 행복한 기억이 잔뜩.. 대신 9 to 6로 일하다 보니 피곤해서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학점은 많이 떨어졌다. 이 부분은 조금 후회가 되어 졸업 전에 재수강 찬스를 쓸 생각이다.
2020년 일하면서 모은 적금을 깨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다. 영국 오기 전에 무거운데 카메라를 들고 올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잘 들고 온 & 잘 산 아이템이다. 100만 원 약간 안 되는 돈으로 본체 + 렌즈 + SD카드 + 케이스까지 구매했다.
유튜버들이 브이로그용으로 많이 쓴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가볍고 가성비 괜찮은 카메라다. 화질은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와이파이 환경만 있으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금방 옮길 수 있어 좋다. 후보정은 많이 건드리진 않지만 모바일 라이트룸을 사용한다.
필름 카메라(Canon Prima Super 105)도 들고 오긴 했는데, 인물보다 자연 풍경을 주로 찍다 보니 미러리스가 더 잘 쓰여서 필름은 퐁텐블로 다녀온 뒤 한 번 인화하곤 거의 안 쓰고 있다.
생각보다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충동적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다. 예전에 엄마가 교환학생이나 유학 갈 거면 직접 돈 모아서 가라고 칼짤 당한 이후에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친한 친구가 영국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 먼저 나간 걸 보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든 취업이든 열심히 할 에너지가 떨어져서 새로운 자극제가 필요했던 것 같다. 부모님도 친구가 잘 지내는 걸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도와줄 테니 나도 지원해 보라고 하셨다.
우리 학교는 교환 기준이 빡세지는 않아서 학점+토플 성적만 봤고, 당시에 7 to 5 회사+ 7 to 11 학회를 병행하고 있었어서 학원 다닐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조금 재수 없는 이야기지만 원래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었어서 얼레벌레 이틀 공부한 뒤 한 번만에 103점을 받았다. ㅋㅋㅋㅋ
영어 말고는 할 줄 아는 언어가 없어서 영국/네덜란드로 지원했고 3 지망에 썼던 영국 남부에 있는 작은 학교에 배정받게 되었다. 원래 사람 많고 복잡한 대도시를 별로 안 좋아해서 일부러 시골 쪽으로 지원했다.
학교는 영국인들이 은퇴하고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는 Cornwall ~ Devon 근처에 있다. 영국 안에서도 그나마 비가 덜 오고 날씨가 좋은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크림티와 스콘이 유명하고, 근교에 아름다운 절벽과 해변가가 많다. 부촌인 데다 대학도시라 학생이 많아 안전한 편이다.
나중에 학교 다니면서 알게 된 거지만 영국 안에서 경영 금융 쪽으로 꽤 유명한 학교였다. 러셀 그룹 소속에 학생의 90%가 백인인 posh 학교였다는.. 졸업한 유명인으로는 JK 롤링과 톰 요크, 한국에는 표창원 교수님이 있다.
나름 출국 계획 짜고 한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변수가 생겼다. 9월 말부터 아픈 빈도가 잦더니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매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니까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나중 되니까 몸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갔다. 눈 주변으로 알 수 없는 발진+부종이 올라오는 게 제일 힘들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어 사랑니 때문인가 해서 치과도 가보고, 알레르기성인가 해서 피부과도 갔었다. 시간이 갈수록 살이 너무 많이 빠지고 이유 없는 관절 통증이 심해져서 면역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생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하루는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엉엉 울면서 혼자 응급실에 다녀왔다. 여러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류마 내과 가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결과 기다리는 동안 큰 이상일까 봐 불안해서 말 그대로 일주일 동안 지옥에 살았다..
항핵항체가 약양성이 떴다. 루푸스가 진단 기준이 까다로워서 완전히 확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팔로업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다행히 히스타민 + 비타민 D 먹으니까 증상이 빠르게 나아져서 출국 전에는 많이 좋아진 상태로 갈 수 있었다.
당시에 학회랑 회사랑 모든 게 하루하루 너무 버겁기만 했는데, 아픈 거 알고 있는 몇 사람들이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마지막 12월 한 달도 체력적인 여유가 안 돼서 서울 사는 사람 중에 정말 친했던 사람들만 만났는데, 다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 줘서 그것도 너무 고마웠다.
여러모로 폭풍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니 출국 전에 별로 긴장이 안 됐다. 뭔가 현지에 적응도 잘할 것 같았고, 짐도 작은 캐리어 하나에 택배 하나로 최소화하여 부쳤다. 당시에 만나던 남자친구도 갑작스레 12월에 한국을 떠나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달까.. 모든 준비를 혼자 하고 공항도 혼자 버스 타고 갔다. 정말 독립적인 여성으로 거듭나는 한 해였다.
이렇게 출발한 유럽인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이미 막학기 4학년이었기에) 다시는 이렇게 놀면서 6개월 보낼 시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좋든 나쁘든 매일이 결국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될 것임을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유 자금으로 1,000만 원 정도 모아가긴 했는데 돈이 좀 오버되더라도 본전 뽑고 돌아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떠났다. 실제로 친구들도 나만큼 현지에 적응 잘해서 놀고 오는 교환학생 처음 본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다. 여행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지금 거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틈틈이 이렇게 좋았던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브런치를 다시 시작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