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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서행 Dec 06. 2023

[걸어서 유럽 속으로] 피자가 맛있는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Verona)


무사히 오스트리아를 여행하고 베로나에 도착했다. 사실 베로나를 보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 3박 4일 일정 동안 근교인 시르미오네와 베르가모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밀라노가 근처에 있긴 한데, 사람이 너무 많은 관광지는 안 좋아해서 패스!


베로나는 어떤 도시?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사랑의 도시로 유명하다. 2021년 헨리가 비긴어게인으로 에르베 광장을 찾아 유명해지기도 했다. 내 기억엔 대중교통이 꽤 잘 되어 있고, 작아서 하루 만에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관광객도 꽤 많아서 여행하기 좋다. 한국에서는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첫날 인스브루크에서 기차를 타고 왔더니 꽤나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약 4시간 소요)


처음 타본 대륙 유럽의 기차는 신기했다. 영국 기차는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 빼면 KTX랑 비슷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기차는 한 캐빈 안에 6명이 세 명씩 마주 보고 같이 탄다. 덕분에 앞자리 커플의 애정행각을 그대로 관람할 수 있었다.

트렌토를 지날 무렵에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바깥 풍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용하게 덜컹거리는 밤 기차 나름의 낭만이 좋았다.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도로가 어딘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밤 10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천천히 운전했고, 사람이 지나가면 놀라운 속도로 차가 급정거했다. ㅋㅋㅋ 덕분에 안전하게 호스텔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NIRVANA의 NEVER MIND 티셔츠. 아끼는 거였는데 짐이 너무 무거워서 파리에 버리고 왔다. (…)


호스텔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시설이 정말 좋았다. 3인 1실인데, 2층 베드가 아니고 1인용 세 개가 있다. 개인 락커룸도 있고 온수 잘 나오는 샤워 시설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가격이 1박 3-4만 원 사이로 무난하게 가성비를 챙길 수 있다. 여행이 끝난 지금 돌아봐도 가본 호스텔 중 가장 깨끗하고, 기차역과 가깝고, 친절한 곳 top 3 안에 든다.


같이 방을 쓴 사람은 맨체스터에서 온 영국인 여자애, 그리고 멕시코시티에서 온 멕시칸 이모였다.

영국 애는 내 또래였고, 이탈리안 메뉴가 비건이 먹기에 애매하다며 오레오를 뜯으며 툴툴거렸다.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를 탄 남자들이 따라왔다며 또 툴툴거렸는데 당시의 나는 맨큐니안 악센트에 익숙하지 않아 (못 알아들음) 대충 웃어넘겼다. ㅋㅋㅋ


멕시칸 이모님은 성격이 좋았다. 이탈리안 남부부터 여행하고 온 사람이었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여행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줄리엣의 집에 가서 love of life를 찾을 거라고 했다. 내 롱디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듣더니 자긴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이야기는 첫날 말고는 많이 못해본 듯하다.


StraVagante Hostel

https://maps.app.goo.gl/4G1RvqDd2Wa58BNx5



Ponte De Castelvecchio, 카스텔베키오 다리.


이탈리아는 영국보다 따뜻했다. 1월 말이었는데도 패딩 조끼랑 히트텍, 기모 맨투맨으로 충분했다.

호스텔과 관광지는 시가지 쪽이었는데, 거기서 카스텔베키오 다리를 건너 반대로 넘어와야 예쁜 강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카스텔배키오 다리는 14세기에 벽돌, 대리석을 이용해 지어진 아치형 다리. 제2차 대전 이후 재건되었다고 한다. 추가로 돈을 내면 다리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다.


다리 위에서 찍은 아디제 강의 전경


평화롭고 좋았다. 다리를 지나가다 보면, 중간중간에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좀 더 높은 곳에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빠 손을 잡고 작은 몸으로  가파른 벽돌 계단을 오르던 금발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햇살 잔뜩 드리운 다리


반대 편으로 건너오면 자갈밭이 있다. 자갈밭에 혼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두 시간 동안 해 지는 풍경을 구경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장면 같아서 괜히 울컥했다! 베로나의 일몰은 정말 예뻤다.


BGM - 최유리, 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NYR3GjM73nM



광장, 그리고 이탈리아 국기


석양을 구경하고는 원래 구시가지로 가서 야경을 볼 생각이었는데, 밤늦게까지 혼자 돌아다니기가 무서워서 일찍 들어왔다. 그리고 둘째 날은 근교 도시인 시르미오네에 다녀왔다. (다음 편에 쓸 예정..!)


셋째 날엔 관광지를 구경하러 나왔다.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과는 달리,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많았다. 천막 아래에서 수공예품이나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줄리엣의 집

베로나 관광 명소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1) 줄리엣의 집, (2) 베로나 아레나로 요약할 수 있다.


혼자 돌아다니고 싶어서 시티 투어는 신청하지 않았는데,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서 부킹닷컴에서 판매하는 모바일 가이드 오디오를 결제했다. 5,000- 10,000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으로 각각의 관광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영어)을 들을 수 있다.



줄리엣의 집

입장료를 별도로 내면 건물 안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데, 마당과 기념품샵만 둘러보고 왔다. 줄리엣 동상의 왼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자세히 보면 가슴 부분만 색이 바랬다.

관광객들이 저 앞에서 가슴을 잡고 셀카를 찍는데 좀 wierd 해서 나는 사진은 안 찍었다. ㅋㅋㅋ


기념품 가게도 들렀다. 크게 살만한 건 없었지만 벽에 사람들이 그린 낙서가 눈에 띄었다. 남산에 걸어둔 사랑의 자물쇠가 생각났다.


Arena di Verona

베로나 원형 경기장

기원 후 30년 경 완공된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여름에 공연이 많고, 1년쯤 전에 표를 예매해야만 볼 수 있다고 한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폐막식이 여기서 개최된다고 한다.


오페라 공연은 못 봤지만 공연장의 규모는 가히 놀랄 만했다. 카메라에 모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컸고, 둘레를 따라 걷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예전에 지어진 만큼 건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 쓰기 싫어하는데 진짜로 그랬다.)


평화로운 모습.
베로나의 광장에서 책 읽는 사람들.


인터넷에 베로나 여행을 검색하면 사랑, 로맨틱 이런 키워드들이 뜬다. 줄리엣의 집에서 오는 이미지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본인들이 연인들이랑 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ㅎㅎ


혼자 이곳을 돌아보며 내가 느낀 건 도시 전체가 볕이 잘 들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다는 점이다. 벽돌 건축물들이 많아 분홍, 빨강, 주황의 색감이 주를 이루는 곳. 여유롭게 벤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곳!


내가 좋아하는 사진. 지나가던 길에 있는 분수


사실 이 날 아침에 가고 싶던 밥집이 문을 일찍 안 열어서 길가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바깥에 있는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이탈리안 칵테일로 유명한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를 한 잔 시켰다.


유럽 여행하는 동안 마셔본 술 중에 가장 인상적인 술 중 하나인 스프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페롤은 상큼한 오렌지 맛이 나고, 화이트 와인 잔에 담겨 나오는 이탈리아 대표 식전주이다. 만들 때는 아페롤: 프로세코(스파클링 와인)를 1:1 정도의 비율로 탄 후 소다로 단 맛을 가미한다. 가니쉬는 오렌지.


레이스 감자칩이 기본 안주로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다. 식당까지 걸어가는데 햇빛이 따스워서 그랬는지, 빈 속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살짝 취기가 돌았다. 한 잔에 6천 원 정도였다.



배율을 맞추기 위해 함께 첨부. 순서대로 아페롤 / 젤라또 / OOTD.


La Pissa De Verona

https://maps.app.goo.gl/1JdjuDFgyVEHS3Uz7

Arena Pizza, 7.8 eur


자고로 이탈리아에 왔으면 꼭 피자를 먹어 봐야 한다 해서 피자집으로 향했다. 근처 관광지에는 레스토랑 위주라서, 혼자 먹기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곳은 무려 구글맵 평점 4.9의 엄청난 맛집이었음. 진짜 맛있었다. 여행 가서 밥을 꼭 챙겨 먹는 편은 아닌데, 여기는 전체 유럽 여행 동안 맛있게 먹은 곳 중 손에 꼽을 수 있다. Zucchini랑 Fromage, Quatro cheese가 주 재료인 Arena 피자는 내 얼굴의 두 배 크기였다. 혼자 한 판 다 먹었다.



사장님께 같이 마시기 좋은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레드 와인이 좋고, 반 병을 줄 테니 입맛에 맞으면 한 잔 가격에 그냥 다 마시라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헤롱헤롱....... 오전 내내 알딸딸...... 한 상태로 이탈리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단 돈 16,000원에 피자 + 식전/식후빵 + 와인 반 병을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구글 번역기로 '여기 너무 맛있어요. 최고예요'라고 돌려서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ㅋㅋㅋㅋㅋ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세세하게 다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8개월 전 일이라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그날 내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어떤 자세로 했는지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기록, 그리고 기억의 힘은 엄청나다!


다음 편은 시르미오네, 베르가모 여행기와 함께 돌아오겠다. See you very soon.

- SL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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