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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Sep 26. 2022

잊을 수 없는 면접의 기억

외모와 다르게 나는 소심하다. 그것도 매우 소심하다.

그런 소심함은 긴장되는 자리에서 더욱 커지는데, 특히 '면접' 같이 생계가 걸린 중요한 자리에서 나의 소심함은 폭발하고는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일단 이런 나를 불러준 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상 면접 질문에 맞는 답변을 며칠 밤낮으로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면접장에 들어섰지만, 면접관들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여백의 미로 가득 채운 A4 용지가 되어버리고는 했다.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원래 준비했던 시나리오는 모두 잊은 채 아버지라 답한 뒤 "이런 미천한 나를 먹여주고 키워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한 적도 있고, 입사 후 포부를 물을 때는 "일단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그 당시 면접관들은 얼마나 바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그런 나를 좋게 봐주고 합격이라는 목걸이를 걸어 준 첫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특유의 머슴 정신으로 머리보다 몸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내게 대학 선배가 스타트 업 기업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고, 사장님이 능력 있고 좋은 분이라는 회사를 소개해줬다.


그때만 해도 첫 직장에서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뼈를 묻을 거라 생각했지만, 선배는 사회생활을 하며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서로 마음에 맞으면 이직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는 말에 면접을 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선배와 술을 마시다 "그럼 한 번 볼게요."라는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었고, 선배는 '기회는 찬스다!" 라며 그 사장님과 약속을 그 자리에서 잡았다.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으며 다른 회사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본다는 것은 그 당시 내게 '불륜', '배신', '배은망덕'의 단어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미 면접 약속을 했으니 회사 퇴근 후 면접을 볼 회사로 찾아갔다.


도착한 사무실에는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고, 빈 사무실을 바라보며 '그냥 도망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소개해 준 선배에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두리번거리며 혹시라도 남아있을 사람을 찾았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사무실 내에 있는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빨간색 고무장갑을 낀 아저씨가 나오셨다. 


"저기 어떻게 오셨나요?"


"면접, 면접 보러 왔는데요."


순간 그 아저씨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리 일찍 오셨나요?"


시간을 보니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그 아저씨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아직 면접 시간도 있고 해서 화장실 청소를 좀 하고 있었어요. 일단 그 앞 의자에 앉으시죠."


순간 그 아저씨가 사장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머슴 모드가 발동하여 


"사장님, 제가 청소 도와 드릴게요. 제가 화장실 청소 하나는 잘해요."라고 말했고, 사장님께서는 "면접 보러 오신 분이 무슨 화장실 청소예요. 잠시만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짧은 사회생활에서 보지 못한 낯선 경험이었다. (훗날 들은 말로는 사장님께서는 사업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의 모든 것이 소중했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조차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는 내 앞에 앉으셨고, 그동안 만났던 면접관들과는 다르게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닌 나보다 더 수줍게 나를 한 번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시며 "제가 직원 면접은 처음 보는 거라. 저희가 이제 시작한 회사라 함께 창업을 준비하고 창업 멤버인 부장 1명 하고 제가 전부예요. 사무실도 지금 다니시는 곳보다 누추하고 직원도 많이 없죠?"라고 하셨다.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야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제가 만일 입사하게 된다면 NO.3, 3인자인가요?"


"그러네요. 3인자네요!" 


사장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계를 한 번 보시더니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더 나누자고 하셨다. 그동안 긴장된 자세로 온몸의 근육통이 수반되는 경직된 분위기의 면접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였다. 


근처에 연포탕을 잘하는 식당으로 가자는 사장님과 함께 식당을 향해 걷는데,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걸음을 멈추시더니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처럼 물으셨다.


"아! 그런데 연포탕, 낙지 괜찮으세요? 제가 그것도 묻지 않고 무작정 끌고 왔네."


"낙지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없어서 못 먹어요."


"아 그러면 다행이네요. 가시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우리 부장도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배고플 텐데 먼저 가서 먹고 있죠."


도착한 식당에는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사장님과 나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메뉴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연포탕을 하나 시키시고, 내게 "산 낙지도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으셨다. 이때까지는 모르셨겠지만, 사장님은 계산대에 섰을 때 "내가 왜 산 낙지를 주문했을까."라고 후회하셨을 것이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 면접을 보는 것인지, 처음 보는 분과 합석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도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자리였지만,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사장님 또한 표정을 바라보니 이 분도 지금 엄청 힘든 자리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 곧 있으면 부장이 온다고 하니까 조금만 참아요."


마음속으로 이 서먹할 분위기를 깨며 차라리 내게 메시도 통과하지 못할 빗장 수비 아니 압박 면접을 시도할 부장님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드디어 두 남자가 애타게 기다리던 부장님이 도착했고, 두 남자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이제 세 남자의 서먹서먹한 술자리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세 남자는 말없이 연포탕과 산낙지에 술을 계속 마셨고, 이따금 한 번씩 지금 하는 일, 신상에 대한 질문을 하셨고 우리에게 궁금한 게 없냐고 오히려 내게 질문을 유도하셨다.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 늦게 왔지만 가장 먼저 술에 취한 부장님께서 갑자기 "저는 ***씨만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씨는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운전면허도 있는 인재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뭐야 벌써 합격이라고?" 라며 나도 놀랐지만, "뭐야? 우리 직원 채용하는 거야?" 하는 표정의 사장님도 놀란 분위기였다. 


알고 보니 두 분 모두 운전면허가 없었고, 내가 가진 운전면허는 그들에게 007의 살인면허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부장님은 그동안 몇 명을 소개받았지만, 다들 회사의 규모와 자신들을 보고 채용을 하겠다고 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셨다. 하지만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자신들을 대하는 나를 보고 '이 친구라면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나의 소심함이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 난 "내가 새로운 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만일 이직했는데 이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 때문에 이 두 분이 너무 좋은 분이라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선뜻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셋 중 성격이 가장 외향적으로 보이는 부장님이 시끄러운 식당이 아닌 조용한 곳에서 2차를 하자며 우리를 끌고 나갔고, 나 혼자 산 낙지를 무려 18마리를 마신 흔적이 남아있는 충격의 계산서를 받은 사장님은 손을 덜덜 떨며 '내가 사람 새끼랑 술을 마신 거야, 고래 새끼랑 술을 마신 거야.' 하는 표정으로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2차로 간 맥주전문점에서 부장님은 피곤하셨는지 얼마 되지 않아 의자에 기대 잠이 드셨고, 사장님과 면접관과 면접자의 모습이 아닌 마치 동네 친한 형과 동생의 모습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를 떠나 사회라는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 이렇게 내가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를 채용하지 않더라도 이 분들은 꼭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이미 열렸고, 사장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내가 그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을 전달해주셨다. 


맥주 전문점에서 나온 뒤 내가 가는 모습을 먼저 보고 가겠다는 두 분과 '먼저 가세요!" 실랑이를 조금 한 뒤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두 분과 헤어지고 좀 더 생각을 하기 위해 근처 공원으로 갔다.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음날 사장님께 연락이 왔고, 간단하게 안부를 물으신 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저를 부르면 그때 합류해줄 수 있는지" 물으셨고, 마음속으로 "아.. 어제 너무 산낙지를 많이 먹어서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제가 필요하면 불러 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이 분들과 나의 인연은 끝이라 생각하고 다시 본연의 머슴의 자세로 돌아가 열심히 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예전에 제가 ***씨를 꼭 부른다고 했잖아요. 이제 우리가 ***씨를 모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랑 함께 하실 수 있으세요?"


나조차 잊고 살았는데,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준 사장님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난 1초의 고민도 없이 "네! 사장님 잊지 않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할게요!"라고 말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채용하고 싶었지만, 좀 더 일하기 좋은 분위기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나와 함께 하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잊지 못할 두 번째 직장 생활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사장님과 부장님의 가르침과 배려 속에 많은 것이 성장했다. 실수투성이 풋내기에서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 사회인이 되었다.


지금은 몇 번의 다른 직장을 거쳤지만, 지금도 이 두 분은 내게 은인이고 사회생활 초년생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이다. 지금도 면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날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회사는 지금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 사장님과 부장님은 지금 한 회사에서 함께 하시지는 않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지금도 열심히 그리고 변하지 않는 초심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 그리고 저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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