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영단어 ‘design’은 사전적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특정한 목적이나 용도를 위하여 계획, 구상, 결정하는 행위’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design’의 어원은 르네상스 시대의 라틴어 ‘disegno(디세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disegno’는 소묘 혹은 소묘술을 뜻하는데, 이는 좁은 의미로서의 소묘(혹은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소묘. 이를테면 연필 소묘와 같은) 뿐만 아니라 계획, 의도와 같이 행위나 결과에 앞서는, 아직은 외부로 구현되지 않은 정신적인 구상활동까지를 가리켰다.
‘disegno’가 행위 혹은 결과로서의 소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구상활동까지를 의미하게 된 것은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이다. 르네상스 이전인 중세시대에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은 미술은 인문학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저급한 육체노동 정도의 수준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겪으며 미술은 정신적인 구상활동의 의미까지 포함하면서 인문학과 동등하게 고상한 정신노동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영단어 ‘design’의 사전적 의미와 실제적 용례 안에 르네상스적 ‘disegno’의 개념이 분명히 녹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결과물로서의 design이든 행위로서의 design이든) ‘design’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얼마나 ‘disegno’의 개념을 이어오고 있을까?
단어의 의미와 그 쓰임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design’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행위와 결과물을 엮어내는 하나의 구상 혹은 심상이 없다면, ‘design’을 장식과 구별할 요소는 무엇이 될까? (하지만 스기우라 고헤이의 <형태의 탄생>을 읽는다면, ‘disegno’ 없는 ‘design’에겐 장식조차 과분한 이름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참고도서: 최범, 「최범의 서양디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