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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is unexpected Sep 11. 2023

5. “디자인은 내용과 형태 사이의 관계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디자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생각보다 꽤 많은 공을 들여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의(?)는 ‘디자인은 문제해결 혹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이다. 집단 간 당면한 문제에 대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뜻일테다. 맞는 말이지만, 디자인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정의’라고 보기는 힘들다.


많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대한 정의 내지는 설명을 시도했으나, 디자인에 대한 정의의 백미는 폴 랜드의 ‘디자인은 내용과 형태 사이의 관계다.(Design is relationship. Design is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content.)’라고 볼 수 있다.


‘정의’에 대해 표준국어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 (철학)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類)를 들어 그것이 체계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고 다시 종차(種差)를 들어 그 개념과 등위(等位)의 개념에서 구별하는 일. ‘사람은 이성적(理性的)인 동물이다.’와 같이, 판명하려는 개념을 주어로 하고 종차와 최근류(最近類)를 객어로 하는 판단으로써 성립한다.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이 속한 가장 가까운 상위 집단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다시 그 집단에 속한 다른 대상들과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 간의 차이를 이야기함으로써 대상을 ‘정의’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폴 랜드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먼저 ‘디자인’이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이며, ‘관계’가 대상이 속한 상위 집단이 된다. 이 둘을 연결하면 ‘디자인은 관계다.’라는 기본적인 문장 구조가 완성되는데, 이 글의 시작에서 살폈던 ‘디자인은 문제해결이다.’ 혹은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표현과 비슷해 보인다. 이러한 류의 표현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설명이지만, ‘문제해결’ 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속하는 다른 대상들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가 나타나있지 않아 ‘정의’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폴 랜드의 정의가 빼어난 점은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디자인은 관계’이되, ‘내용과 형태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이 일곱 글자 속에 디자인의 본질이 담겨있다.


먼저 ‘내용’이라 함은 디자인은 무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디자인은 반드시 그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팔리기 위함이든(대량 생산, mass production),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든(대중 소통, mass communication), 환경을 조성하든(인공 환경, artificial environment) 디자인은 그 존재 목적이 있다는 것이 ‘내용’ 안에 포함되어 있다.


‘형태’라 함은 디자인은 조형 예술의 언어를 빌려와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도형, 색, 이미지, 질감(texture), 그것들의 배치(layout)와 같은 것들이고, 이러한 조형의 원리가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심상(image)을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사이’라는 표현에 디자인의 골수가 담겨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용’과 ‘형태’를 이어준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내용을 형태(혹은 내용을 포함한 형태)로 변환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사이를 이어주는데, 이것이 바로 ‘문제해결’ 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속한 다른 대상들과 디자인을 구분 짓는, 그럼으로써 디자인을 비로소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디자인의 골수이다. (폴 랜드는 자신의 정의에 “형태와 내용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지는 것이 디자인이다, Design is the method of putting form and content together.”라고 친절히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사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맥락(centext)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디자인 수요자가 가지고 있는 내용, 프로젝트 자체의 내용, 디자인 대상물이 속한 동시대적인 내용 등 다양한 맥락과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그 사이(between)를 절묘하게 구현해 내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는 ‘조형’을 가지고 있고 디자인 수요자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디자이너는 자신의 조형 만을 고집하지도 않고 디자인 수요자의 내용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측면으로도 ‘사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폴 랜드의 정의와 유사한 다른 정의 하나를 소개하며 이번 글은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래픽디자인’으로 한정지어진 정의이지만, ‘그래픽’을 빼고 그냥 ‘디자인’으로만 보아도 어색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매체의 형식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그래픽디자인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본질이란 정보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각을 시각화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일이다.”

유정미, 「그래픽디자이너들」



*참고도서: 마이클 크뢰거, 「폴 랜드의 그래픽 디자인 특강」, 유정미, 「그래픽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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