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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is unexpected Sep 09. 2023

4. 디자인과 예술: c. 예술이 기능하는 원리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시리즈

[디자인과 예술: a. 예술의 역사]에서 예술과 기술은 본래 하나로 결합된 형태였으며, 또한 일상의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이야기했다. 이는 곧 당시의 예술은 뚜렷한 일상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그릇, 양탄자, 항아리, 활과 같은 일상적 물건과 종교의식을 위한 도구, 샤먼의 장신구, 신당과 같은 종교적 물건과 음악, 춤, 연극, 의식과 같은 집단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분명한 일상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이러한 ‘일상적인 예술’들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행하며 그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때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심적 작용을 불러일으키거나 더욱 강화시킨다. 그릇에 식량을 모아 저장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안락함을 위해 만든 집에 양탄자를 깔고 그것을 경험함으로써 집에서 느끼는 안락함은 더욱 강화된다. 종교의식을 위한 도구나 샤먼의 장신구는 종교의식이나 샤먼의 신적 권위를 더욱 강화시킨다. 음악, 춤, 의식과 같은 집단적 행위는 그 주제에 따라 어떠한 심적 작용을 불러일으키며, 공동체 의식을 더욱 강화시킨다.


예술로서의 장식 또한 마찬가지다. 그릇, 양탄자, 항아리 등에 새겨진 문양이나 그림의 목적은 무언가를 기원하거나, 혹은 과거의 특정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문양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의미를 상기하면서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예술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혹은 중립적이든)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심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일상적 의미를 잃어버린 현대의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일상’과 분절되어 더 이상 ‘예술’이 (일상 속에서) 목적하는 바는 없어졌지만, 회화, 설치, 영상, 개념 미술 등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은 여전히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관람자가 예술을 경험하며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예술에 ‘감정이입(혹은 공감; empathy)’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이입(empathy)란 관람자가 어떠한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테오도어 립스, Theodor Lipps)'이다. 예술가는 창작 행위에 앞서 본인의 경험 속에서 어떠한 주제의식, 즉 ‘질성’을 포착해 내고 그것을 예술을 통해 표현해 낸다.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이나 개성에 비추어 예술을 경험하며 예술가가 표현한 ‘그 질성’을 재포착해낼 때, 즉 예술가의 마음에 자신을 투사할 때 ‘감정이입’이 이루어진다. (예술이 일상의 영역에서 경험되던 때에는 감정이입 자체가 예술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일상적인 예술을 목적에 맞게 경험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심적 작용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 일반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예술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감정이나 심적 작용을 의도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로 감정이입의 원리가 동일하게 있었다고 본다.)


디자인 경험에 있어서도 ‘감정이입’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디자인 결과물은 대체로 특정한 목적이 있으며, 대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형태로 드러낸다. 이는 형태를 이용하는 소통(communication)과 다름없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결과물의 형태 속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포착해 낸 디자인 결과물의 질성(이제까지 살아온 디자이너 개인의 삶과, 디자인 결과물과 관계하여 습득한 다양한 형태의 지식이 버무려진)을 담아낸다. 관람자 혹은 사용자는 디자인 결과물과 관계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개성에 비추어 ‘그 질성’을 재포착해내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예술과 마찬가지로 ‘감정이입’이 이루어진다.


결국 창작자(예술가 혹은 디자이너)는 자신이 포착한 질성을 형태 속에 담아내고, 관람자 혹은 사용자는 ‘감정이입’을 통해 그 질성을 재포착해낸다는 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이 기능하는 원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예술과 디자인 기능하는 원리, ‘감정이입’의 관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의 변천을 보았을 때 재미있는 점이 있다. 초기의 예술은 ‘일상적 목적’이 뚜렷했으나,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의 예술은 일상과 분절되어 ‘일상적 목적’을 잃어버렸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디자인은 당시의 예술과 기능하는 원리는 같으나, 초기 예술과 같이 ‘일상적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참고도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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