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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29. 2023

본격 남편 힐링 프로젝트 시작

일단 나부터 살고 당신도 살려주께.

 




    남편이 회사에 가는 날은 오늘로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잘했는지 여러 거래 업체들에게서 밥을 먹자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했다. 이틀 점심과 저녁약속이 풀로 잡혀 있어서 독박육아모드에 돌입했다. 뭐 어떤가? 겨우 이틀인데. 이틀이 문젠가?!



    1월에 휴직하면서 상담했던 신부님의 말이 생각이 났다. 몸에 남겨진 상흔 같은 감정을 지우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몸에 새로운 감각들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바로 남해나 전라도 같은 곳으로 미식 여행을 떠날까? 일단 응급 처방으로 몸 쓰는 일을 시킬까? 이제 백수니 홈쇼핑에 파는 이십만 원짜리 제주도 패키지를 갔다 와? 책은 뭘 읽혀야 할까? 유튜브 동영상들은 어느 시점에서 보여주는 게 좋을까?


   머리에 쥐가 나도록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본다. 그리고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뭐 하고 싶어? 여행 갈까?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당연한 반응이다. 내가 우울증이고, 내가 히키코모리 시절에 그랬으니까. 충분히 이해를 한다. 지금은 늪 같은 곳에서 빠져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시기이다. 옆에서 누군가 적어도 무릎정도까지는 꺼내 줘야 한다. 그리고 말해줘야 한다.

 

움직여봐. 이제 움직일 수 있지?



   금요일 밤 호텔을 예약했다. 힘들었던 회사에서 돌아와서 늘 누웠던 곳에서 잠들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겠다.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는 회사. 보지 않아도 될 사람들. 빨리 잊게 해주어야 한다. 몸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얗고 낯선 시트, 낯선 천장의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종용할 생각이다. 사실, 술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치명적이지만 이날만큼은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그동안 몇 년 동안이나 못 봤던 친구들과의 낯설게 마저 느껴지는 술자리에서 느껴지는 한여름밤의 즐거웠던 감각들을 주어야겠다.



    본격 적으로 남편의 치유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남편이 공황장애를 가지고도 사회로 복귀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지 그 과정을 글로 써볼 생각이다.  훗날 이 글을 보면서 '그래 우리가 이런 시기를 보내고 지금 여기까지 왔지'라고 추억하고 싶다.

 

P.S.  남편은 좋겠다. 나 같은 마누라가 있어서.

        나도 나 같은 마누라 있었으면 좋겠다. 돈 벌어올 자신은 없지만...ㅎ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내 신세가 갑갑해졌다. 문제가 있으면 달려 들어서 해결부터 해야 하는 성격상 이렇게 나를 제쳐두고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나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동시에 가진, 5년째 약을 먹고 있는 환자가 아니던가? 나는 대체 어디서 위로를, 에너지를 받아야 하지?


   스타벅스로 차를 몰아서 커피와 케이크를 시켰다.   디저트라는 것을 전혀 먹지 않는  내가 일 년에 한두 번 극도로 감정의 소모가 심할 때 하는 일이다.  슈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는 그날. 오늘이 그날이다.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힘을 빌리기는 해도 슈가의 힘은 빌리지 않는다.)


 

   이렇게 라도  멘털을 단단히 붙잡아 본다.


 오늘은,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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