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며칠 전부터 다리가 저리다면서 여기저기 주사를 맞으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다가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엎드려서는 움직이지를 못했다. 나는 앰뷸런스를 불렀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각종 검사를 하고 내려진 병명은 추간판 탈출증. 흔히 말하는 디스크. 걷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했던 남편은 병원에서 처방해 준 각종 주사들의 힘으로 3일째쯤 돼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9월부터 다시 직장에 출근하려뎐 계획은 무기한으로 연기되었다.
남편은 병원에 있는 동안 너무나도 답답해했다. 공간적 물리적 제약뿐만 아니라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허리라는 게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하루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라 시일이 꽤나 필요한 병이니 언제 나을지 기약이 없는 병 앞에서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굴 탓할 사람도 없다. 자기 관리를 못한 자신을 원망해야 할 뿐이지. 나는 처음 다리가 저리다고 했을 때부터 불안한 예감을 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까지 상황이 악화 죌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속이 상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아이를 케어하고 책을 읽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어 본다. 책은 언제나 내게 답을 준다.
최태성 선생님이 쓴 역사의 쓸모라는 책. 계속 읽어오던 경영서적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집어 들었던 책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었다. 정조의 죽음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던 우산을 잃고 내쳐진 자. 자신의 잘못으로 폐족 된 가문이 된 아버지가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에게 주는 격려는 물론,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주었던 편지 구절에서 나는 늘 술에 취해있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때는 어떠한 인생의 나침반도 주지 못했던, 매일 매시간 술에 취해있었던 아버지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보다 더 잘할 거라고 믿었기에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으리라. 마치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조언이었던 느낌을 책에서 받았다.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할지라도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이 아니니. 그 한 구절에서 마음의 위안과 힘을 얻었다.
나는, 그 구절을 남편에게 찍어서 사진으로 전송했다. 이것은, 내가 쓰는 나만의 러브레터.
지금 비록 위기이고, 쓰러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서 준비하면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다산의 메시지. 나의 메시지. 그리고 나의 아무 말 없었던 아버지의 메시지.
남편에게 면회를 간다. 병원 면회가 금지되어 있기에 로비에서 필요한 물건을 주고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이지만 입원했던 당시의 속상함보다는 지금은 안녕과 무탈을 바라는. 그리고 위안과 격려를 담은 말을 하고 온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고 영상통화를 하지만 직접 얼굴을 보는 것과는 가뭇 다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