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긍정 Jul 30. 2021

노래 하나로 떠나는 추억여행

인생의 흐름은 알 수 없는 것

요즘은 인공지능이 내가 즐겨 듣는 음악도 맞춰서 리스트를 선정해주곤 합니다.

오늘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냥 음악은 인공지능의 선택에 맡겨두고 운전하고 있었어요. 생각 없이 흥얼거리던 중, 25년 전 무척 좋아하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25년 전에는 가사를 줄줄 외우고 매일 들었던 노래인데 안 듣게 된 지 벌써 10년은 훌쩍 넘은 것 같았지만 노래를 들으니 저절로 입에서 가사가 줄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25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더군요.  


25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난 후 갑자기 성적이 많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수줍음이 많지만 자기주장은 확실하던 친구였는데,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지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때 친구 따라 도서관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은 정말 기적 같은 공간이었어요. 저는 대부분 조용히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으면 잡지를 봤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그 친구 보기 부끄럽지 않도록 수업시간에 자는 일이 줄어들었던 탓도 있었겠지요.


제가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담임선생님께서 청주 시내에서 네가 갈 수 있는 고등학교는 청주농고뿐인데 그마저도 턱걸이다. 이렇게 놀기만 하면 친구들 시내버스 타고 학교 다닐 때 너는 고속버스 타고 학교 다니거나, 낮에 친구들 학교 다닐 때 너는 밤에 학교 다녀야 한다고 수시로 들들 볶으셨어요. 튀김 젓가락으로 툭툭 제 팔뚝을 쳐가며 걱정 섞인 잔소리 하시던 음성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 무렵 그 친구를 만나고부터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 얘기를 하게 되고, 오늘 배운 것 중에 이거 재미있지 않아? 난 이거 신기하더라. 이거 오늘 처음 배워서 좋았어. 이런 얘기들을 자주 하기도 했고, 방과 후에는 도서관도 다니면서 성적이 굉장히 오르게 되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대표로 큰 대회도 나가곤 했고, 장학사가 오시는 날은 제 그림을 복도에 내걸기도 해서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요. 그러나 특출 나게 잘 그리는 것도 아니니 중학교부터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그림은 잠시 접게 되었고,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중학교 1년은 그렇게 그냥 대충 공부도 못하고 고등학교도 빠듯하게 갈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친구 덕분에 공부에 눈을 뜨게 되었지요.


그 친구는 그 후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매년 수많은 아이들의 성적을 올려주고 있겠지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집이 이사를 가면서 청주에서는 고등학교를 다니진 못했지만 시간이 더 흘러 청주농고에 교생실습을 나가 교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농학박사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농업고등학교 밖에 갈 수가 없다던 선생님의 진로 상담이 영 그릇된 방향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노래 하나에 갑자기 25년 전으로 훌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예전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건너간 시간을 훑어가다 보니 인생은 역시나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25년 전에는 그림을 더 배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그림을 더 배울 상황은 아니고 공부는 하기 싫고 성적도 좋지 않아서 힘들었지요. 그림을 그릴 땐 늘 칭찬받았는데 공부로 방향을 바꾸니 반에서 모자란 아이가 된 것 같아 기가 죽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렇게 방황하던 중에 만난 한여름 햇살처럼 반짝이던 친구 덕분에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오래 앉아서 보고 또 봐야 성적도 오른다는 것을 옆에서 보고 직접 경험하게 되었고, 옆에서 직접 보게 되니 방법을 쉽게 알아낼 수도 있었지요. 그리고 한껏 낮았던 성적이 조금씩 오르다 보니 그렇게 싫던 교무실도 즐거운 공간이 되더라고요.


열심히 하고 잘하게 되면, 인정받고 칭찬받고, 귀여움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공부에 대한 욕심을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고 또 봐서 궁금한 것을 해결하면 그 자체로 좋을 뿐 아니라 성적도 오르고, 여러 사람들이 절 더 좋게 봐준다는 것을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우연찮게 그림을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그래픽 프로그램을 배워 디자인 능력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또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23년 전에는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배워두었는데, 블로그가 생기고 개인 홈페이지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서 다 쓸모없는 기술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블로그가 생겨서 편하게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은 이제 더는 쓸모없는 것이 된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있었지요. 하지만, 23년이 지난 지금 우연한 기회로 회사에서 홈페이지 구축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예전의 기억이 있어 업무 영역을 보다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전에는 농업대학에 입학하기 싫었고, 농사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농대에 입학하게 되어 솔직히 짜증이 났었는데 다니다 보니 농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곳에서 평생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배우자도 만나게 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이게 무슨 소용이야? 싶은 순간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일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라도 쓸모를 보이곤 했지요. 이젠 망했구나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내가 나를 놓지 않는다면 정말 망했던 순간들은 없었습니다.


큰일이 났고 이제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지나고 나니 그저 제가 걸어가는 길의 일부분이고, 생각보다 큰 영향력도 없었고 오히려 나중에는 그 경험 덕을 보기도 했지요.  당시에는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서도 언제나 배울 것은 있었고, 그 경험은 훗날 어떤 방법으로 건 활용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실 오늘 출근 후 제 인생에 전환점을 맞을 새로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또다시 인생에 위기가 닥쳐왔지요. 어쩐지 아침부터 옛 기억을 되짚게 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오늘 맞이한 새로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나 지난날들을 짧게 되돌아보면서 느꼈던, 인생은 답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또 배우고 성장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이번 경험도 제가 스스로를 놓아버리지만 않으면 이 또한 지나갈 일이고, 그 힘겨움 안에서 저는 또 무언갈 배우겠지요.

.

.

오늘도 나를 놓지 않기 위해 정신 똑바로 차리자. 꼭 열심히 하지는 않아도 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잠깐 쉬어가면 또 다른 길이 보일 거야.

이번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주겠지만, 나는 그 새로운 세상에서 또 내 지난날의 경험에게 도움을 받고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겠지.


이렇게 스스로를 토닥여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