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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Nov 02. 2015

뜻밖의 시간에 떠오른것들(6)

베네치아의 카니발 역사

가면 하나에 담긴 역사


https://youtu.be/s-fW1DpUdPI




현재에도 베네치아에서는 연중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대부분의 중요한 축제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종교적인 행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카니발로서 이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등장하는 가면과 의상은 ‘세계 유일의 가면축제’로 찬사될 정도로 그 독특함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베네치아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은 인파의 홍수로 북새통을 이룬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기원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법령을 비롯하여 사문서 및 축제 관련 연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카니발의 어원은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배 마차’라는 뜻의 라틴어인 carrus navalis (로마력(曆)에 따라 한 해의 마지막 달인 2월에 로마에서 행해지던 정화와 맹세의 의식에 사용되던 배 모양의 형태를 한 행렬의 마차)에서 연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육’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인 carnem levare라는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베네치아 정부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보전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교회의 권위에 결코 대항하지 않았으며 법으로 축제일을 지정하여 베네치아 시민들과 더불어 외국인들까지도 다양한 축하행사와 공연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공화국의 단결된 모습과 종교적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섰다. 베네치아에서 종교는 정부와 민중들의 관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축제는 베네치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상징이 마르코(Marco)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기한 역사적, 종교적 축제 이외에도 힘의 우위를 가리는 축제가 있는데 이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전투정신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축제로는 레가테(Le regate 노 젖기 시합), 권투경기(Lotte dei pugni), 인간 탑 쌓기(Le forze d’Ercole), 모의 해상전투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축제들은 베네치아가 공화국으로 있는 동안 지속되었다. 그 중에서 레가타는 베네치아 인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현재까지도 계속 거행되고 있다.


카니발은 현재 베네치아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축제로서 1094년 베네치아 총독이었던 Vitale Falier의 지배시기에 사순절이 시작되기 이전 기간에 대중들이 즐겼던 오락과 관련이 있으며, 1296년에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직전의 마지막 날을 축일로 지정함으로써 카니발은 공식적인 축제가 되었다.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매년 10월초에 시작되는 연극 개막 공연과 때를 같이하여 시작됨으로써 매우 긴 기간 동안 진행되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카니발은 정부가 가면의 착용을 허용하는 때인 성 스테파노 일부터 시작되어 재(災)의 수요일 전날에 끝났다. 이 기간 동안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미뤄두고 전적으로 즐기는데 몰두하였다.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한 주요 광장과 대 수로 주변에는 여러 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었다. 축제 분위기는 매우 떠들썩하였고, 트럼펫과 피리, 북 등이 항상 분위기를 돋웠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들여온 온갖 종류의 과일과 과자, 사탕들을 판매하는 행상들이 돌아다니곤 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행사 중에서 불꽃놀이(Macchina dei fuochi)는 전쟁을, 무어인의 춤(Ballo della moresca)은 전투를, 황소 목 자르기(Taglio della testa al toro)는 심판을, 천사의 비행(Volo dell’angelo)은 평화를 상징하였다. 이 이외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행사로는 에르콜레의 힘(Forze d’Ercole)으로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인간 탑 쌓기를 하는 행사이었다.


카니발 기간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분위기가 고조된 날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기름진 목요일(Giovedi grasso)과 화요일(Martedi grasso)이었다. 기름진 목요일에는 푸줏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대장장이, 수공업자들의 행렬이 펼쳐졌고, 이 행렬이 끝난 후 이들은 꽃으로 치장된 황소를 산 마르코 광장으로 끌고 가서 총독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잘랐다. 계속해서 불꽃놀이와 천사의 비행(Volo dell’angelo)이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한 곡예사가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에서 줄을 타고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의 로지아(loggia: 한쪽에 벽이 없는 복도 모양의 방) 까지 꽃을 뿌려가면서 그리고 총독에게 존경을 표시하면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곡예사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비둘기 모양의 불꽃 점화 로켓트로 대치되었고(Volo della colombina), 비둘기는 내려오면서 꽃과 꽃가루를 모여든 인파들 위에 뿌렸다. 기름진 화요일 (재의 수요일 바로 전 날)에는 카니발의 절정으로 가면을 쓴 사람들의 행렬과 더불어 노래와 춤이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베네치아에서 거행된 카니발 중에서 역사적으로 기억할 만한 것으로는 레판토 전쟁의 승리 직후에 열린 1571년의 카니발과 말과 마차의 행렬을 주제로 한 1587년의 카니발, 남자 귀족들이 여자들의 복장을 하고 가장행렬을 한 1696년의 카니발을 꼽을 수 있다.


카니발 축제 기간 동안에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길은 가면 복장을 한 인파로 넘쳐흘렀고,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민속 오락과 곡예사의 묘기, 폭죽놀이 등을 함께 즐겼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가면은 계층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동시에 기회였다.


가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가면마다 유래와 용도, 모양에 따라 각각의 명칭이 주어져 있는데, 베네치아에서 유리제품과 더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가면이 베네치아에 들어온 것은 1204년에 베네치아의 총독(doge)이었던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가 1204년 제 7차 십자군 원정에서 점령한 콘스탄티노폴리에서 베일을 쓴 무술만 여인들을 데리고 오면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면은 카니발 기간 동안뿐만 아니라 바다와의 결혼식을 하는 축제인 센사(La Sensa) 기간과 총독 선출 기간, 총독 자녀들의 결혼식 등이 있을 때도 사용되었다.


베네치아에서 가면의 사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68년 5월 2일이다. 그 이후의 몇 몇 법령을 보면 1339년 2월 22일에는 가면을 쓰고 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1458년 1월 24일의 법령에는 남자들이 여자처럼 가장을 하고 수도원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8월 13일에 10인 위원회(Consiglio dei Dieci)에 의해서 공포된 법령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미 이 시기에는 가면이 베네치아 공화국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정도로 연중 오랜 기간동안 착용되었다. 이 법령에 따르면 가면에 의해 초래되는 심각한 좋지 못한 후유증을 피하고자 카니발 기간과 공식 연회를 제외한 시기에는 모든 일반 시민과 귀족을 포함하여 이방인까지도 가면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을 어기는 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는데, 남자의 경우에는 2년 동안 옥살이와 더불어 18개월 동안 노역을 해야 했으며, 10인 위원회에 500리라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여자의 경우는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 Marco)에서 리알토 다리 (Ponte Rialto)까지 채찍질을 당했고,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두개의 기둥 사이에 묶여졌으며, 4년 동안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에서 추방되었고, 역시 500리라의 벌금을 10인 위원회에 지불해야 했다.


1658년 1월 15일에 10인 위원회는 가면을 쓰고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것과 신성한 장소에 출입하는 것, 종교적인 복장을 하고 가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선포하였다. 1699년과 1718년도에는 법으로 사순절 기간과 카니발 기간동안에 포함되어 있는 종교적 축일에는 가면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1776년에는 거의 쇠퇴한 가문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자들이 가면을 쓰지 않고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이 공포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한 직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사적인 잔치 이외에는 가면의 사용을 금지하였으나, 두 번째 오스트리아 정부는 카니발 기간 동안에 가면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기간동안에는 가면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사람의 신분과 성별, 사회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Fondaco dei Tedeschi 구역에서는 3일 동안 무도회가 열렸으며, 이곳에는 어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었고, 마음대로 가면복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때 사용되었던 가면으로는 일반적으로 베네치아의 가면 복장인 판탈로네(Pantalone: 가장 유명한 베네치아의 가면 복장. 나이 많은 베네치아 상인)와 콜롬비나(colombina: 보통 가면을 쓰지 않고, 희색 원피스를 입고,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조그마한 모자를 쓴 여자 하인)가 있었고, 이와 더불어 베르가모(Bergamo) 지역의 가면 복장인 아르레키노(Arlecchino: 비천한 하인)와 브리겔라(Brighella: 교활한 남자 하인) 등이 있으며, 가면 복장을 한 귀족들과 평민들은 뒤섞이어 매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특히 라르바(Larva) 또는 볼토(Volto)라고 불리는 흰색 가면을 포함하여 검은색 베일 또는 망토(tabarro)와 삼각형의 검은 모자로 구성되어 있는 바우타(La Bauta)라는 복장은 카니발 기간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변장의 방편으로 사용되었으며, 남녀 모두가 사용하였고, 여자의 경우 극장에 갈 때는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특히 라르바(larva)라는 용어는 ‘가면’ 또는 ‘유령’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가면을 착용한 상태로도 쉽게 숨쉴 수 있고, 음료를 마실 수 있어서 신분을 숨길 수 있었다.


외에도 모렛타(Moretta)라는 가면은 검은색 벨벳으로 만들어진 타원형의 가면으로서 주로 여성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수녀원을 방문할 때 사용되었다. 이 가면 복장은 프랑스에서 개발되었으며, 여성적인 라인을 지니고 있어서 베네치아에서 빠르게 유행되었다. 남성들 또한 모렛타를 사용하였는데, 이 가면을 얼굴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면 내부의 입 높이에 있는 단추를 입에 물고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모렛타는 벙어리 가면이라고도 불리웠다.


베스타 (Vesta) 또는 젠다 (Zend)라고 불리는 가면 복장은 하류계층의 베네치아 여인들의 전통적인 카니발 복장이다. 젠달레 (Zendale)라는 것은 머리에 쓰는 짧은 망토 또는 커다란 수건을 의미하며, 젠다 (Zenda)는 레이스로 장식된 흰 색 또는 검은 색의 천으로써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결혼한 여성은 흰 색의 젠다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니치올레토 (nizioleto) 또는 파주올 (fazzuol)이라 불렀다. 카니발 기간 동안에는 모든 것이 허용되었으므로 귀족 부인들도 이러한 변장을 즐겨하였으며, 1782년에는 추후에 러시아 황후가 된 마리아가 남편인 파올로 1세와 신혼여행 중에 젠다 복장을 하고 산 마르코 광장에서 마음껏 카니발을 즐겼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흑사병 의사 가면 복장(El medico dea peste)은 실제로 가면 복장이 아니라 베네치아에서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실제로 의사들이 흑사병에 걸린 환자들을 방문할 때 사용했던 복장으로 막대기는 환자들의 옷을 들춰보기 위해 사용되었다.


카니발에 관련된 행사는 1400년대 중반부터 1500년대 말까지 그룹에 따라 색깔이 서로 다른 양말을 신고 일했던 베네치아의 젊은 귀족들의 단체인 콤파니에 델라 칼자(Compagnie della calza: ‘양말 단체’라는 의미)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이들의 목적은 카니발 축제 기간 동안에 사용될 공연과 오락을 창안하는 것이었다. 1487년부터 1565년까지 베네치아 전체에 23개의 콤파니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 이르러 베네치아 카니발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축제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에 베네치아 시(市) 당국은 음악회, 미술 전람회, 연극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는데, 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가면 및 의상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회는 베네치아의 가장 화려한 중심 광장인 산 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져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면 및 의상과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진 가면과 의상이 출품되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場)을 이룬다. 시민들 또한 옛 전통의상을 입고 가면을 쓰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의 촬영대상이 되며, 자신들 나름대로 과거로의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베네치아를 점령했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카니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더불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몰락은 카니발의 쇠퇴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카니발은 부라노(Brano) 섬을 비롯한 작은 섬들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단지 1970년대 말에 와서야 베네치아 시민 개개인들과 시민단체들이 과거에 유명했던 카니발을 되살리기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으며, 1979년부터 베네치아 시와 카니발 전담 위원회가 베네치아와 육지 베네치아에서 재의 수요일 이전 10일 동안 행해지는 카니발 축제를 조직하고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 결과로 1979년에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가 탄생하게 되었고, 해가 갈수록 시민들의 열의와 매스컴의 관심과 홍보, 많은 스폰서들이 참여함에 따라 베네치아 카니발은 그 규모가 매우 거대해졌고, 다양한 음악회와 연극, 전시회, 가면복장 대회 등이 열리는 카니발 동안에는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수많은 외국인들 때문에 베네치아 시민들이 오히려 이방인처럼 느껴지고, 베네치아 시민들을 위한 카니발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위한 카니발이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명한 축제가 되었다 (다음지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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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사준 가면 하나가

짐 속에서 빼어뒀는데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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