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는 그냥 전시가 좋다
미술이나 미학, 미술사를 전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시를 대단히 많이 보러 다닌 것도,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작품 앞에 서서, 멍하니 보고, 푹 빠져 생각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전시를 보러 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유명한 아티스트, 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인터넷으로 본 광고에 끌려서, 누군가의 추천으로… 기대보다 더 괜찮았던 전시도 있고, 기대에 못 미쳐 실망했던 전시도 있지만 전시를 다 보고 문을 나서면 항상 어떤 생각이나 질문이 그림자처럼 머릿속에 따라오더군요.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들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어졌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대중의 관심을 가장 끌기 힘든 것이 미술이긴 하지만, 저는 어쩐지 제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캔버스나 조각, 사진은 말이 없지만(미디어 아트 같은 경우는 간혹 말을 하긴 하지만… 대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요) 사실 이미지가 주는 힘은 꽤 강력합니다. 조용하지만 은근하게 에너지를 내뿜으며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길 기다리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미술 작품을 인터넷이나 책으로 보는 것보다 전시장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에너지를 온전히 느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볼 때 처음에는 그냥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장면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그때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이성적으로 곱씹어 보는 두 과정을 거치면 미술도 충분히 즐겁고 역동적인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경지식이 많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차피 취미로 즐기는 예술은 ‘나’에서 시작하고, ‘나’에서 끝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서도 전시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전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르는 제 개인적인 생각의 소용돌이를 더 중점적으로 다룰 계획입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만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이 전시를 보러 가는 분에게는 가벼운 애피타이저가, 또 이미 보고 나오신 분께는 입가심을 할 만한 좋은 디저트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