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워커스 展
“모든 혁명의 허점: 혁명이 끝난 뒤,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누가 치울 것인가?”
- '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 1969!' 中
압구정역 부근에 있는 코리아나 미술관(space*c) 건물 지하1층으로 내려가면, 현대미술을 공부했다면 한번쯤 보았을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의 ‘메인터넌스(Maintenance)’ 작업 사진을 볼 수 있다. 미술관 앞을 열심히 물걸레질하는 여자의 사진. 그 옆에 마련된 종이에는 ‘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 1969!(1969)’의 번역본이 있다.
모든 ‘중요한 일’들의 성공은 그것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회의장,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IT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예술적, 문화적 교류를 하는 전시장에서부터 학교, 가정까지, 매일같이 그곳을 쓸고 닦고 어질러진 곳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단 일주일도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그러나 무언가를 ‘유지한다(maintain)’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을 ‘돕는다’ 정도의 가치에 머물러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낮은 임금과 부당한 처우를 수반한다.
<히든 워커스> 전시는 이처럼 사회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항상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돌아본다. 가사, 돌봄 노동, 서비스직 등 ‘그들’이 말하는 ‘중요한 일’에서 제외되어왔던 일들을 밝은 조명 아래로 끄집어내어, 익숙한 사회구조 속에 잠들어있던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전시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의 질문을 되새기며 전시장 지하 1, 2층을 천천히 감상해본다.
임윤경 작가의 ‘너에게 보내는 편지(2012-14)’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무거워지는 영상작품이다. 여러 개의 TV 화면 중 아무거나 골라 푹신한 방석에 앉아 헤드폰을 끼면,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이 아이 돌보미로 일하며 만났던 아이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돌보았던 아이들은 대개 6세 미만의 영유아들로, 사실 그 시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돌보미 여성들은 그 아이들과 있었던 일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는 것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문득,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나를 돌보았던 수많은 손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돌봄 ‘노동’이며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고, 그들의 일을 ‘없던 일처럼’ 지워버리기도 한다.
“We are married to a straight white guy called ‘the economy’(우리는 ‘경제’라는 이름의 이성애자 백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폴린 부드리와 레나트 로렌즈의 영상 작품 ‘차밍 포 더 레볼루션(2009)’에 등장한 이 구절은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주부’라는 주로 여성이 전담해온 이 ‘직업’이 사회적으로 아주 하찮은 일로 여겨지거나 혹은 아주 신성한 일로 숭상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주입함으로 인해 누가, 어떤 이익을 얻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결코 가정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도, 그것이 보잘 것 없는 일로 여겨지거나 혹은 아주 ‘신성한 소명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면 그 일은 제대로 된 직업으로서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조장하고, 그들을 ‘갈아 넣으면서’ 순탄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985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게릴라 걸스의 유명한 포스터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여성작가의 이점(1988)’, ‘당신은 전체의 반도 못보고 있는 것이다(1989)’, ‘베니스의 여성 작가들은 어디에 있을까(2005)’, ‘여자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입성하려면 벗어야만 하나요?(2012)’ 등 재치 있게 허를 찌르는 문장과 통계자료로 가득한 포스터들이다. 핑크 립스틱을 바른 고릴라 가면을 쓴 익명의 여성 예술가 집단인 게릴라 걸스는 이러한 신랄한 포스터 제작을 통해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 특히 여성, 유색인 예술가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2시부터 6시 사이에 이 전시장을 방문하면 김정은 작가의 ‘네일 레이디 퍼포먼스’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데, 운 좋게 시간을 맞춰 작가님을 만나볼 수 있었다. ‘네일 레이디(2013)’는 작가가 뉴욕에서 공부하던 때에 생계를 위해 일했던 네일샵에서 만난 손님들에 대한 단상을 글과 이미지로 작업한 것이다. 리즈, 넬슨, 로리 등 네일샵 손님들의 이름과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는 벽면 앞에, 네일 케어 제품들이 널려있는 탁자에 앉아있던 작가님이 내 손을 보시더니 “손이 로리의 손과 닮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작가님께 네일 케어 퍼포먼스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누군가에게 손을 맡겨본 경험이 없던 나는 작가님이 섬세하게, 그리고 ‘상냥하게’ 내 손톱과 손을 관리해주고 있는 그 시간이 조금 불편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타국의 마사지샵에 가서는 그 여성들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마사지를 받았던가, 미용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또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던가, 마음 한 구석에서 그들을 멸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네일 레이디’ 작품 속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뉴욕의 네일샵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이주여성들인데, 그들이 단골손님을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 대부분의 손님들은 눈을 피하거나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고 한다. 네일샵 여성들은 그들과 마주쳤을 때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손님들을 ‘착한 손님’이라고 불렀다.
이 외에도 주부 여성의 이야기를 미스터리한 서사와 촬영 기법, 사운드, 편집으로 새롭게 재조명한 마야 자크의 ‘마더 이코노미(2007)’, 다양한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장면을 릴레이식으로 덤덤히 보여주는 임윤경의 ‘지속되는 시간(2014)’, 홍콩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거리에 모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찍은 ‘여성, 열린 공간의 침입자들(2010-12)’과 같은 영상 작품들도 흥미로웠다. 전시를 보는 내내 들었던 것은 ‘이것은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숨결이 닿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언제까지나 숨겨두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에게 정당한 자격과 권리를 되찾아주어야 한다.
히든 워커스
전시 기간: 2018.04.05.-2018.06.16.
전시 장소: 코리아나 미술관 (spac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