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르게이 슈킨과 마티스, '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시절에나,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변함없이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1869~1954)다. 마티스의 강렬하고 원시적인 색감과, 어린아이가 그린 듯 자유롭지만 확신에 찬 선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그러나 생각보다 주변에 마티스를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요즘 ‘힙하다’는 카페에 가면 꼭 마티스의 드로잉 하나쯤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카페 사장님들 커뮤니티에 마티스 그림이 대량 판매라도 되고 있는 건 아닐지 궁금할 정도다). ‘야수파’라 불릴 만큼 거칠고 강렬한 색채 때문인가, 확실히 마티스의 그림은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류의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마티스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유명한 <춤(Dance, 1909/1910)>인데,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방문했을 때 실제로 보고 더 빠져들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모니터 스크린보다 실제로 볼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가 사이즈다. 세로 2.5미터, 가로 4미터 가까이 되는 이 거대한 작품을 파랑, 초록, 그리고 주황빛의 세 가지 색으로만 가득 채운 자신감을 보라. 사람들은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옆 사람의 손을 놓치며 넘어질 것처럼 보일만큼 격렬한 운동감을 보여준다. 이곳은 어디인지 이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배경도 맥락도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춤’의 에너지만큼은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춤>을 좋아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해 몰랐던 사실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 작품이 러시아의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이 자신의 집에 걸기 위해 ‘의뢰’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음, 마티스를 좋아하고 근대미술, 현대미술을 충분히 접한 나도 이 작품을 집에다 걸기로 결정하긴 힘들 것 같은데. 어쨌거나 집이란 곳은 휴식을 위한 공간이지 않은가. 실내 인테리어를 위해 이 강렬한 그림을 직접 주문하기까지 한 슈킨이란 사람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세르게이 슈킨(Sergei Shchukin, 1854~1936)은 ‘세계 예술사상 최고의 투자자’일지도 모른다는 평을 받는 인물인데, 그 이유는 그가 프랑스 모던 아트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그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프랑스 작가들(모네, 세잔, 피카소 등)의 작품은 현재 미술시장에서 범접할 수 없는 최고가에 거래되는 것들인데, 슈킨은 이들이 명성을 얻기 전에, 즉 이 작품들이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 이미 프랑스 모던 아트 컬렉션을 만들어놓았다.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즈가 평가하기에, 그의 컬렉션의 가치가 지금이라면 85억 달러(9조 원 정도)에 달할 것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출처=러시아 미술 수집가 톱5)
아직 프랑스에서도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먼 러시아에서 온 컬렉터가 알아보고 사들였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점이다. 나는 아직 유명한 작품들을 섭렵하기에도 벅찬 하수라 시대를 앞서는 작품을 알아보는 고수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항상 궁금해 했는데, 슈킨의 가정환경에서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부유한 가정 출신인 슈킨은 아버지의 섬유무역회사를 물려받았으며, 그 또한 뛰어난 사업 수완가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다양하고 아름다운 섬유와 직물의 색감과 디자인을 접했고, 스스로도 러시아에 안주하지 않고 중앙아시아, 인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풍부한 미감을 갖고 섬유 사업을 발전시키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의 형제들 또한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미술품 컬렉팅을 했으니, 슈킨이 일찍부터 뛰어난 안목을 갖고 컬렉팅에 뛰어든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슈킨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품에 중점을 두었다. 그의 첫 수집품은 1897년 파리에서 구입한 모네의 <Les rochers de Belle-Île>였다.
컬렉팅을 시작한 슈킨이 마티스와 처음 만난 것은 1906년 파리 생 미셀의 마티스 아틀리에에서였다. 마티스는 슈킨과의 첫 만남을 회고하면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는 벽에 걸린 정물화를 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전 이 작품을 살 겁니다. 하지만 먼저 이 작품과 며칠 함께 살아본 다음, 그래도 여전히 이 작품이 내 흥미를 끈다면 이 작품을 계속 가질 겁니다.’ 그가 내 작품을 계속 좋아해주었다는 건 내게 행운이었다. 내 작품이 그의 첫 번째 테스트를 잘 통과했나보다.” (본인 번역)
실제로 슈킨은 피에르 보나르라는 다른 화가의 작품을 구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팔아버리기도 했다. 보나르의 그림은 슈킨에게 너무 ‘전통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슈킨은 마티스의 그림은 총 38점이나 구입했다. 또 그가 이미 만들어진 그림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작품을 의뢰한 작가는 마티스가 유일했다.
마티스의 <춤>에 대해 몰랐던 사실 두 번째는, 바로 내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본 <춤>은 <춤 1>과 <춤 2> 중 <춤 1>에 해당하는 그림이었으며 이 그림이 사실 습작이었다는 것이다. 습작이 이렇게나 거대하다니. <춤 1>은 아마도 슈킨에게 보여주어 작품을 의뢰할 것을 제안하기 위함일 것이고, 슈킨은 <춤 1>을 보고 완성작 <춤 2>를 주문하였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설이다. <춤 1>보다 더 확신에 찬 선과 강렬한 붉은 빛으로 인체를 채색한 <춤 2>는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슈킨이 마티스에게 의뢰한 두 점의 작품, <춤>과 <음악(Music, 1910)>은 그의 집에 걸린 그림들 중 가장 커다란 작품이었다고 한다. 슈킨이 아무리 부유한 컬렉터였다고 해도 이렇게 거대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동시대의 다른 화상들이나 수집가들에게 마티스의 그림은 아직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테니 당연히 수익 창출을 위한 컬렉팅은 아니었을 것이고, 단지 그의 미적 취향에 들어맞기 때문에 그렇게나 많은 마티스의 작품을 수집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슈킨이 마티스를 선택한 건, 마티스가 가장 ‘동시대적인’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마티스뿐만 아니라 피카소 등 많은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는 한때 고갱의 작품을 사랑했지만, 고갱이 더 이상 동시대의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컬렉팅을 중단해버렸다. 한편, 마티스가 <붉은 방(The Dessert: Harmony in Red, 1908)>이라는 그림을 완성한 것을 보았을 때, 슈킨은 마티스야말로 진정한 동시대의 화가라고 느끼고 1908년부터 1913년까지 그의 작품들이 완성될 때마다 곧바로 러시아로 사들여 왔다.
나는 바로 이러한 슈킨의 자세가 ‘이상적인’ 컬렉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하거나, 혹은 당대의 대중적인 평가나 인기에 기반한 수익성을 목적으로 한 컬렉팅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나가고 다음 시대를 예고하는 작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 이는 시대를 앞선 날카로운 안목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요구하는 일이다. 나의 선택이 어쩌면 예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책임감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참고한 논문의 저자는 슈킨에 대해 이런 평을 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컬렉터였다기보다,
예술사적 흐름에 동참하는 참여자에 가까웠다.
마티스는 슈킨에게 <춤>과 <음악>을 주문받고 받은 선금으로 집을 렌트했고, 정원에 큰 아틀리에를 지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초기에는 야수파적인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인간 본연의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면, 후기로 갈수록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를 캔버스 위에 조화시키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암 수술을 받은 1941년부터 침대 위에 누워있게 되자, 캔버스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대신 색칠된 종이를 가위로 잘라 붙이는 새로운 기법을 발명하여 죽을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젊은 시절, 그를 알아봐준 슈킨이 없었다면 마티스는 이렇게 오랜 세월 작품 활동을 하며 수많은 걸작들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컬렉터가 없다면, 위대한 화가도 위대한 작품도 없다. 슈킨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은 러시아 혁명 때 국유화되어 푸쉬킨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등에 나누어졌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슈킨은 자신의 컬렉션으로써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예술 애호가들의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참고
박은주, 모던아트의 아이콘, 세르게이 슈킨 컬렉션 – 중앙시사매거진
Albert Kostenevich, Matisse and Shchukin: A Collector's Choice,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1990.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