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넷플릭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
제목 : 빌어먹을 세상 따위 (The End of the F***ing World)
장르 : 블랙 코미디 드라마
방영 : 영국 Channel 4, All 4 / 2018.01.05 넷플릭스 방영
방송 횟수 : 각 시즌별 8회씩 (시즌 1, 2 / 총 16부작)
방송 분량 : 각 20분 정도
시청 연령 : 청소년 관람 불가
원작 : 찰스 포스먼의 그래픽 노블 <The End of the Fucking World>
한 줄 요약 -> 자신이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는 제임스가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엘리사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이야기
이 영국 드라마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원작 소설 제목 한번 기차게 지었다고 생각했으나

소설 제목 그대로 F..... 이 단어를 온전히 썼다가 검열 처리됐다고 한다.

('빌어먹을'도 그다지... ;;;)
어쨌든 영문이나 한글 제목에서 주는 첫인상은 어색하면서도 거친 표현은 불닭볶음면처럼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다.
친구가 소개해줄 때는 관심 없는 척을 그렇게 해댔는데 유튜브 알고리즘 미끼를 물고 보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 총 16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국 미니시리즈 한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보기도 전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이 드라마는 한 편당 약 20분 정도기 때문에 금방 볼 수 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국 시트콤 <미란다> 이후로는 영드를 챙겨본 적이 없다. <셜록>은 보다가 포기했고 그 외 유명한 영국 드라마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미드만 간간이 챙겨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갑작스럽게 이 드라마가 내 삶에 끼어들면서 해외 드라마 순위를 바꿨다.
하루는 유튜브에서 '사이코패스가 블라블라...' 하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그 동영상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살짝 당황스러웠다. 극 중 영국 청소년 두 명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러 문제를 일으켰고, 제목만큼이나 전개가 요상했다. 하지만 반면에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이 드라마는 두 캐릭터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뭘까.
시즌별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즌 1 제임스와 엘리사는 어쩌다 말을 텄고 바로 데이트를 했다. 제임스는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욕구에 의해 엘리사를 죽이기로 계획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얼떨결에 엘리사와 함께 엘리사의 친아빠를 찾아 나서게 됐지만 도중에 클라이브 교수 집에 침입하여 음주 가무를 즐긴다. 그러다 뜻밖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시즌 2 두 주인공의 2년 뒤의 내용이 시작된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그 사건으로 인해 둘은 헤어졌다. 그리고 완벽한 외톨이가 된 제임스와 결혼을 앞둔 엘리사는 최대한 과거를 잊으며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자신을 그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여기는 보니가 나타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구체적인 인물 소개를 말하기에 앞서 이 드라마에는 잔인한 장면도 꽤 나오고 극 중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치고는 저속한 표현들이 많다.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요소마다 따져 물어가며 설명을 해준다거나 억지로 교훈을 주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불친절한 드라마다. 그러나 인물 묘사의 독특한 점을 따라가는 것과 동시에 매력적인 배경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 드라마가 풍기는 불편한 향내를 잊게 된다.
핵심 등장인물 정리 (스포 주의하세요.)
제임스 : 남자 주인공 / 엘리사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사이코패스가 맞는 듯해 보였다. 삶의 별다른 목적이 없어 보이는 제임스는 엘리사를 통해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면서 점차 변화되어 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제일 많이 변화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엄마가 자살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도 모자라 아빠는 자신과 볼링을 치다가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정말 기고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그래도 옆에 엘리사가 있다.
엘리사 : 여자 주인공 /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폭주할지 모른다.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반항적이다. 한 번은 '집이 싫으면 떠나야지'라는 새아빠의 한마디에 충동적으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알렉스의 아빠 차를 훔쳐 친아빠를 찾으러 떠난다. 죄의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말의 양심은 있다. 그냥 표현이 서툰 것일 뿐.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다.
클라이브 : 극 중 중대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하지만 정신은 쓰레기다. 자신의 지위와 화려한 언변을 이용해 여학생들을 꼬신 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몰래 침입하여 무전취식을 한 엘리사를 겁탈하려다 침대 밑에 숨어있던 제임스 때문에 죽게 된다.
보니 : 시즌 2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 / 어릴 적부터 엄마의 삐뚤어진 관심과 애정은 보니를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인물로 자라나게 했다. 클라이브 교수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한 그녀는 교수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여학생 한 명을 차에 치여 죽게 한다. 죗값을 치르기 위해 복역하던 중 클라이브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출소 후 복수를 위해 제임스와 엘리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1. 만약 이 드라마가 우리나라 작가의 손에 그려졌다면...
이 소설이 한국에서 나왔다면 기똥찬 청소년 성장 드라마로 각색돼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학교>나 <반올림> 시리즈 드라마처럼 말이다. 물론 넷플릭스에 <인간 수업>이나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은 성장 스토리를 포함하지 않는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기존 국내 작품 특유의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서 보는데 괴리감을 느낄 때가 간혹 있다.
평범하지만 성실한 학생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갑자기 탈선을 한다거나 공부 잘하는 부잣집 도련님과 삐딱선 타는 불량 청소년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주변 어른들의 등쟝!!! 뭐 이런 거?!
분명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바른 인성을 가진 학생들은 아니다. 단지 차를 가지고 나가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것도 모자라 크고 작은 범죄행위를 일삼았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의 기본적인 심성은 지독하게 못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참신하게 느껴졌던 건 이들에게 바른말만 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참견쟁이 어른은 없었다. (보니에게는 자신의 엄마와 보니를 도우려는 약사가 있긴 했지만...)
상황에 따른 고통은 각 개인의 것이었고 그것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본인 자신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 캐릭터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사회적 틀에서 자신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느끼고 작게나마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절대 공감이 안 되는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2.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 때론...
제임스, 엘리사, 보니는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버려진 자식'이나 다름없다. 다들 주변에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만한 것들이 없었다. 이들은 말로써 누군가를 탓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거칠고 잔인한 행동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꼬인 속마음을 드러냈다. 제임스는 동물을 살해하면서 또 다른 살인충동을 느꼈고, 엘리사는 거친 언행과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삶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보니 또한 거짓말과 살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내고 있었는데, 이들을 지켜보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며 최대한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반면에 다들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고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에 맞게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했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한답시고 과몰입 또는 과잉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드라마는 그러한 오류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하자!)
뭐가 됐든...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각자 다른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로 단정 지어서 말하는 것은 금물이다.
3. 브금이 주는 이 드라마의 매력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배경음악이었다. 음악에 대해 넓고 다양한 지식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은 못 하지만 뭔가 보이는 장면과는 다르게 듣는 귀가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시즌 1 3화에서 클라이브가 엘리사를 덮치다가 제임스의 칼에 목이 베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굉장히 언밸런스하면서도 절묘하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클라이브가 살해당했을 때 처음 뱉어내듯 나오는 가사가 "I'M SORRY"였다. (♬Brenda Lee - I'm Sorry) 이건 마치 영화 <올드보이> 복도 싸움씬에서 싸우는 소리 대신 배경음악으로 "미안 미안해"(♬태진아 - 미안 미안해)를 깔아놓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이 드라마의 많은 시청자들이 네이버 지식인에게 '그때 그 장면에 나온 노래'를 찾을 정도니 뭔가 특유의 끌림이 있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음악을 담당하셨던 분이 영국의 '블러'라는 록밴드 기타리스트이자 음악가이며 화가라는 정보 외에는 아는 게 없다. 그러니 평가는 PAS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갬성 하나는 끝내줬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SO NICE.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찰진 브리티쉬 영어를 들으면서 즐거웠고, 엄청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보고 오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일은 찰나의 순간이고, 세상은 빌어먹을 만큼 멋대로 흘러간다.
그래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면 오늘도 넷플릭스 속 작품 하나 때리고 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