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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Jan 02. 2021

하얀색에 예쁜 색을 섞을 거야

미국 터줏대감 동네에서 한국인이 집 사기

"I'm sorry, we couldn't get the house"


우리 real-estate agent에게서 온 문자. 세 번째 offer였다. 이번 집만큼은 정말 꼭 잡자 다짐을 하고 agent가 해보자고 하는 것들은 다 하기로 했다. 가격도 꽤 높게 불렀고 안 되는 게 이상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 집주인이 다른 offer에 집을 팔기로 했다고. 그날 하루 우리 가족 모두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재작년 말부터 수많은 집들을 봤다. 작은집, 큰집, 오래된 집, 새로 고친 집, 비싼 집, 싼 집, 수영장이 있는 집 없는 집. 매번 진심으로 어떤 집을 사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고 골라 사려고도 여러 번, 그리고 모두 실패. 으잉, 돈만 준비되면 집 살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래서 커피 한잔, 외식 한번 아껴 아껴 열심히 모았다. 가끔 궁상맞을 정도로.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였다. 


조금만 벗어나면 훨씬 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 수 있을 텐데... 사실 맞는 말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조금 멀리 떨어진 시외로 가면 말 그대로 저택 같은 집을 진작에도 사고 남았을 거다. 그렇게 된통 당하고도 우리 동네를 벗어날 생각도 많이 해도 오빠랑 나랑은 이 동네만큼은 떠나지 말자라고 결론이 났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은 중소 도시의 동네여도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 마치, 서울 한복판 평창동(가본 적은 없지만) 느낌이라 해야 할까. 차 없이 다닐 수 없는 미국 땅에서 언제든지 걸어 산책하고 뛰고 자연과 도시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좋은 동네. 그래서 비싸고 그래서 대부분이 백인들이다. 처음엔 몰랐다. 막상 집을 사려고 보니 편안한 고속도로 진입로, 친절한 동네 사람들, 가까운 로컬 맛집들, 잘 꾸며지고 관리된 집들, 아름다워 보이는 하늘과 내가 밟는 낙엽까지도 집을 사려고 보니 다 돈이었던 것을. 


내가 편안하고 좋은 것에만 길들여진 걸까, 나는 편엽 한 시각을 가진 사람인가. 


이곳에서 가끔 우리가 유일한 유색인종일 때가 많다. 가끔 동양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미국 사람인 교포. 흑인들도 종종 있지만 정말 나이스 해 보이는 흑인들 혹은 학교 농구대에 놀러 온 흑인들을 볼뿐이다. 진짜 좋은 집은 매물로 나오지도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 소리 소문 없이 파는 그런 동네에 이방인인 우리가 회사생활 몇 년 만에 집을 사려고 하는 건 큰 의미였다. 우리가 이들만의 리그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들어간다면 그건 하얗기만 한 이 동네를 조금 더 예쁘게 물들여 주는 거 아닐까. 땡스기빙 연휴에 터키만 굽는 집들 사이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하는 이방인 가족들이 갈비찜을 나누어준다면 조금 더 다양한 색을 섞는 거... 겠지?


어느새 친구들이 꽤 생겼다. 둘째 출산하고 난 후에도 집 앞으로 음식도 가져다주고, 아이들 심심하면 "우리 애들 자전거 타니까 요 앞에 나와" 하고 불러낼 친구들도, 날씨가 좋으면 동네 한 바퀴 운동삼아 돌자고 불러내 주고, 내가 살던 곳,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 내가 이방인으로써 겪었던 겪는 힘듬들을 가끔 얘기하면 귀 기울여주는 친구들. 


얼른 예쁜 집을 사고 싶다. 크진 않아도 적당하고 마당에 햇볕이 잘 드는 집. 그 집에 하루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타는 친구들도 초대해서 우리 아이들 잘 먹는 한국 과자도 나눠주고, 또 하루는 우리 가족 매번 챙겨주는 친구네도 초대해서 삼겹살 쌈 싸 먹어야지. 코로나가 끝나고 겨울이 다시 올 때쯤, 미국 친구들 불러다가 김장도 보쌈도 해야지.


우리 집 찾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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