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세상

by 산토리

서릿발 같은 냉기가 맴돌던 공유 숙소의 지하를 2주 만에 빠져나왔다.

아들의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가구와 살림집기들이 거의 모두 갖추어진 Full furnished 콘도(한국의 아파트)를 운 좋게 반년 간 계약하였다. 집은 콘도지만 드물게 복층으로 되어있는 구조였고 1층은 거실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로만 사용가능한 반쪽짜리 욕실이 있었고 2층은 방 2개에 Den-보통 책상 하나 정도 들어가는 오픈된 공간-이 있고 풀사이즈 욕실이 있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오렌지빛 오후 햇살이 무척이나 기울어져 집안 깊숙이 들어오는 기분 좋은 집이었다.


아내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20여 년 만에 다시 대학을, 그것도 캐나다 대학을 스무 살 신입생마냥 설레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했고 아들은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힘들어했지만 우리 부부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당초 나의 목표는 처음 몇 달 동안 영어도 익히며 서서히 적응하자였기에 도착해서 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캐나다 캘거리는 현지 대학들 이외에는 따로 운영되는 어학원이나 영어 교육기관들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캐나다 대학들에서 제공하는 어학 과정은 정규 대학 과정만큼이나 학비가 비쌌기에 몇 군데 교회들과 구세군 등에서 제공하는 뉴커머(New commer)들을 위한 무료 코스들을 요일을 바꿔가며 듣기 시작했다. 원래 그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깨에 짊어진 생업을 잠시 내려두고 뭔가를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식구들 모두 각자의 배움의 길에 들어섰을 무렵, 이상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중국 쪽에서 큰 유행병이 발생했고 점점 다른 나라로 퍼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처음에는 나를 포함한 여기 사람들 모두 예전 메르스나 사스 같은 일종의 심한 독감 같은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2월이 지나서 3월이 되자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의 거의 모든 국민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TV로 보고는 비웃던 캐네디언들이 점차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학교나 관공서 등 많은 인원이 모이는 곳에서는 마스크가 필수가 되었다. 내가 나가던 무료 수업들도 열리는 시간과 요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종국에는 모든 수업이 클로징 되었다.


이후 캐나다 정부는 1차 Lock Down 조치를 발표한다. 캐나다 내 모든 학교와 관공서, 회사들은 문을 닫았고 일도 수업도 온라인상으로만 이루어졌다. 캐나다를 포함한 전 세계는 역병의 공포에 떨었고 사람들은 시간을 멈춘 듯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렇게 19번으로 이름 붙여진 이 거대한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 당시 석학이라는 어느 누군가가 TV에 나와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은 이 병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뉘고, 그리고 다시는 그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는 그 이전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식구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시공간부터가 완전히 다른 이 세계에 오늘도 여전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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