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밖으로 처음 만나는 캐나다의 하늘은 진한 하늘색 바탕에 온통 오렌지 빛이었다.
한국-일본-밴쿠버까지의 긴 비행 끝에 드디어 캐나다 땅을 밟게 되었지만 반가운 마음은 잠시, 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 선 우리는 길었던 대기줄이 짧아질수록 심장도 빨리 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캐나다는 첫 도착하는 캐나다 국경이나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최종 비자를 발급받는 시스템이다.
와이프도 엄밀히 말하면 캐나다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지 학생 비자를 받은 상태는 아니었다. 와이프는 학생 비자(Sturdy Permit), 나는 워킹 비자(Working Permit) 그리고 아들은 비지터(Visitor) 비자 ¹ 를 받아야만 했다. 입국 심사 시 담당 심사관의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받아야 하는 비자를 받지 못하고 부모가 비지터나 관광비자를 받는 경우가 꽤 많다고 들었다. 만약 이런 종류의 비자를 부모가 받게 되면 가족 모두가 캐나다의 무상교육, 무상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식구들에게 긴장한 마음은 깊이 묻어 두고 피곤한 얼굴은 펴라고 주문해 두었다. 나는 마음에도 지갑에도 모두 여유 있는 척 굴었다. 다행히 크게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딱히 친절하지도 않았던 중국계 심사관을 만나 몇 가지 질문 후에 모두에게 필요로 했던 비자가 발급되었다. 물론 충분한 기간과 함께.
비자까지 무사히 받아 든 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캘거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2번의 경유와 마음 졸였던 입국 심사 끝에 비로소 우리는 차갑고 깨끗한 캘거리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의 지하 숙소까지 당도한 식구들은 마치 동면이나 든 듯이 긴 잠에 빠졌다.
꿈과 현실의 경계 속, 누군가 몸을 흔들어 깨운다. "정우가 이상해" 아내의 말에 흠칫 놀라 아들놈을 만져본다. 온몸이 불덩이인 게 보통의 감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 건강보험도 신청하기 전이었던 탓에 근처 약국에서 구해온 해열제로 열을 내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들은 도착한 이튿날부터 그 해의 마지막날까지 꼬박 십여 일을 아팠다. 11살 아들도 살아왔던 땅과의 이별을, 그곳 사람들과의 작별을 그제야 온몸으로 슬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 은행 계좌를 만들고 각종 사회 보장 신청들을 하고 한국 면허증을 캐나다 면허증으로 교환했다. 앞으로의 발이 되어줄 차까지 장만하느라 첫 달은 - 20년 1월임, 19년은 마지막 10일 동안 아들이 아픈 탓에 지하에만 있었음 - 정신없던 캐나다 정착기, 이제 시작해 보자.
*비지터(Visitor) 비자 ¹ - 보통 미성년 학생들은 이 비자를 받고 들어온다. 운이 나빠 부모가 정확한 비자를 받지 못한다면 자녀도 유상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 실제 주위 그런 가정이 있었다. 어쨌든 이 비자만 받으면 초중고 무상교육은 물론이고 무상의료에 더해 캐나다 정부의 자녀 보조금(Child Benefit)까지 받을 수 있다. 다만 자녀 보조금은 입국 후 18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수령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