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가구를 수입하고 제작하며 고객 배송까지, 모든 일을 줄곧 혼자 하는 1인 사업자였었다.
그 나홀로 사업은 다년간의 꾸준함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사업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까지도 나와 가족들에게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즈음, 체력도 감각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나 스스로가 느끼기 시작했었다. 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에서 이걸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주재원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1년 살이를 하고는 바로 캐나다로 떠난 지인이 있었다. 그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부부 중 한 명이 대학을 들어가면 다른 한 명에게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고 자녀는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의료는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이제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는 와이프가 대학을 들어가고 아직은 쓸만한 몸뚱이를 가진 내가 일을 하며 서포트하기로 하고 캐나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대학에 다니는 2년 동안과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할 때까지 3년, 최대 5년간 나는 이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PGWP"라고 부른다)
2019년 여름, 먼저 건너간 지인이 살고 있는 도시인 캘거리로 정하고 해당 도시의 한 대학에 와이프가 입학신청서를 냈다. 캐나다 대학에 한국 사람이 입학하기 위해선 한국의 학교 서류와 영어 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입학허가를 받기까지 유학원에서는 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는 걸리다고 한다. 그런데 신청한 지 2달 정도 지났을 무렵 유학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입학허가가 떨어졌으니 서둘러 준비하라고... 캐나다 대학 쪽에서는 와이프의 대학교 전공이 영문학이고 학점이 높아 따로 영어 점수가 필요 없다고 했다.
나와 와이프, 그리고 11살 아들은 다들 각자의 이유로 멘붕이 왔다.
나는 아직 사업을 정리하지 못했고 와이프는 처가에 그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아들은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아무튼 입학허가를 받은 게 10월이고 떠나기로 한 게 12월이니 단 두 달 동안 살고 있던 집은 물론이고 사업체까지 모든 걸 팔고 정리하고 깨끗이 비워야만 했다.
일단 가족들에게 어렵게 말을 하고, 이후에는 익숙한 얼굴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하나둘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나도 한국의 부모님을 뵈러 격년으로는 귀국할 테니 그때 다시 보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겨를도 없이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의 끝자락에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거리 노선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영화와 기내식에 마냥 들뜬 철없는 아들 녀석과 여간 해선 보이지 않는 눈물을 훔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복잡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닥쳐올 일들에 대한 불안감은 깊이깊이 감춰야만 했다.
나는 가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