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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May 25. 2018

"너 자신을 지켜라"

어느 로스쿨 교수의 진심 어린 조언

요즘 부쩍 새벽에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억지로 잠을 청할까 하다가 결국 일어나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창문을 통해 모닝사이드 공원 쪽을 바라보았다. 로스쿨에 있는 삼 년이란 시간 동안 뉴욕이란 도시는 늘 경적소리와 사이렌 소리,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음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부슬부슬 내리는 가느다란 새벽 비에 덮여 이 도시도 고요하게, 또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다. 좁은 창문을 여니 희미한 새벽 빗소리를 타고 방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면서도 기분 좋은 포근함을 담고 있다.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졸업까지 고작 열흘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남기고 창 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스레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어느새 내 생각은 3년 전 입학식 그때로 향하고 있다.




콜럼비아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인 Buter Library


콜럼비아 로스쿨 (Columbia Law School)은 매년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교수들 4명이 패널로 나와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하는데, 나도 3년 전에는 신입생 중 한 명으로서 대강당에 모여 교수들의 환영사를 경청하고 있었다.

이날 세 번째 패널로 나온 Bert Huang 교수님은 대만 출신 이민자 2세대로서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에서 학사 (A.B.), 석사 (A.M.), 박사 (Ph.D.), 그리고 법학 박사 (J.D.) 학위까지 수료한 흔히들 말하는 수재였다. 그런 교수님이 마이크를 건네받고 강당 앞에 서시자 이미 교수님에게 Torts (한국으로 치면 민법상 불법행위법) 과목을 수강하기로 정해져 있던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이 짧은 환영사를 통해서라도 교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조금이나마 파악해보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묘하게 뒤엉킨 채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우리들에게 이 차분하면서도 두 눈에서 총기를 번뜩이는 조그마한 체구의 젊은 교수님은 뜻밖에 요구를 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지금 이곳 콜럼비아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의 – 그것이 몇 주, 몇 달, 몇 년 전의 모습이었든지 간에 – 여러분들을 떠올려보세요. 그들은 어떠한 취미와 열정과 그리고 꿈을 가지고 있나요? 자, 이제 눈을 떠보세요.”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뜨자 교수님은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두 단어뿐입니다. Save Yourself.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대체 이게 세 단어가 아니라 두 단어가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보도록 하시고!”


이렇듯 모두를 놀라게 한 짧고 파격적인 환영사와 알 수 없는 미소만을 얼굴에 남기신 채 교수님은 다음 패널에게 마이크를 넘기셨다.


Save Yourself? 자신을 구해라? 아니면 자신을 지켜라? 이 말은 지독하게 많기로 유명한 로스쿨의 독서량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본인의 관심사와 취미를 잊으면서까지 학업에만 매몰되어 3년을 허비하지 말라는 따뜻한 충고인가? 교수님의 위트 있는 마지막 농담에 터져 나온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곧바로 이어진 다음 차례의 교수님의 환영사 때문에 이러한 의문들은 결론이 채 나기도 전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학교를 다니면서 수많은 판례와, 제도, 규칙들을 읽어왔지만 부끄럽게도 상당수는 겨우 희미하게 남아있거나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만큼은 그 날 이후로도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런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내 뇌리에 박혀있다. 자신을 지켜라. 흔들리지 마라. 네가 누구인지 알고 네 중심을 놓치지 마라.  


콜럼비아 로스쿨 입학생 모두는 입학하기 전 지원서의 일부인 자기소개서에 왜 법을 공부하려 하는지, 왜 콜럼비아 로스쿨에 오고 싶은지에 대해 적는다. 답은 각양각색이었을 것이다. 흔히들 국제 인권법을 공부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탄압에 맞서 싸우겠다, 노동법을 공부해 심화되어가고 있는 불평등과 불합리한 질서를 바로잡겠다, 아니면 환경법을 공부해 지구가 직면한 다양한 환경문제들을 해결해나가겠다 등의 거창한 포부들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지원서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교육시키고, 그리고 노후 대비를 하기 위해서 법을 배우고 싶다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적당히 높은 연봉과 보장된 사회적 지위를 위해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고 주장한 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적었다가는 합격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다들 풍요로운 생활과 보장된 사회적 지위가 법을 공부하는 목적이 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학은 정적이고 딱딱한 학문이라고 오해받을 때가 많지만, 사실 꼭 그렇다고 볼수는 없다. 법학은 결국 사회에서 생기는 다양한 분쟁과 갈등을 다루며 그 사회에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는지 밝혀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에,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대상인 사회가 시시때때로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마다, 법 역시 따라 움직이며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내 삼 년동안의 경험상, 법전 자체에 나열되어 있는 문자들은 딱딱하고, 차갑고, 지루했지만, 그 언어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해석된 언어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 세상은 무척이나 유연하고, 뜨겁고, 가슴 뛰게 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법이 향하는 곳에는 사람이 있기에, 법에 대한 물음은 사람을 향한 물음이요, 법에 대한 공부는 사람을 향한 공부였던 거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사회니, 결국 사람, 법, 그리고 사회는 한 묶음인 것이다.


입학식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던 대강당은 여전히 그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하늘 역시 변함없이 푸르고, 그 안을 오가는 구름과 새들도 변함이 없다. 이 맘 때면 찾아오는 봄비도, 창밖에 비치는 모닝사이드 공원도 눈에 익은 경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만은 부산스럽게 변해갔다. 입학식 때, 아니면 로스쿨 입학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가슴에 품고 있던 이상과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여태껏 관철시키고 있는 학생들은 몇이나 될까? 나는 어떠한가?


아직도 눈을 감으면 교수님의 목소리가 내 가슴에 생생하게 울린다.  


"Save Yourself."


어쩐지 졸업할 때가 거의 다 돼서야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결국 사람만이 법을 바꿀 수 있고, 법이 바뀌면 사회와 세상 또한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나'를 지키고 (save), 또 구원하는(save)것은 그만큼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첫날부터 우리들에게 간곡히 주문하신 게 아닐까? 자신의 개성과 신념을 지킬 수 있길 바란다고. 네 안에 거창한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것이야 말로 세상을 지키고(save), 또 구원하는(save) 힘일지도 모른다고.



실로 고마운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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