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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03. 2017

화면 속 판타지와 화면 바깥의 현실,

그리고 화면 바깥의 우리.

나pd의 예능이 성공하는 이유는.

그건 그가 그리는 풍경이 비현실적이며 판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예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스스로의 이름으로 나온다. 출연 대부분의 직업은 배우나 가수로. 스스로라기보다는 ‘멀리 있는 스타’ 혹은 유명인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등장인물들이 그간의 가상의 역할(가수도 performer이다. 결국.)에서 벗어나 ‘실제’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판타지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더. 더. 더. 현실과 같다고 생각하게 하므로.


화면 속 그들은 모두 행복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 해 먹고 여행하고 심지어 현실 속에서는 건물주가 아니라면 손해를 보지 않고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 전부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열광한다.

매 에피소드마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지내는 그들의 일상에서 우리는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알고 있다. 그가 그리는 세상에서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질문해보자. 우리가. 현실에서 행복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을 해 먹고, 여행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식당 같은 것들을 할 때. 우리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회는 우리가 애쓴 만큼의 대가를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서 무엇을 탓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복잡하다.

방송에서는. 처음 보는 관계이거나 이전부터 알던 사이의 사람들에게서 누구의 악의도 아닌 다른 이유로 마주하는 불편한 요소들은 철저하게 제거된다. 불행은 사회구조이거나 거대 자본이거나 친구나 가족의, 또는 처음 본 사람과 형성되는 불편한 관계에 기인한다. 애초에. 악인이라고는 등장하지 않으며 항상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관계라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악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왜냐하면 꼭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고 개별적인 욕망과 의지는 대부분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를 깨기에 충분할 정도로.

화면 속에서는 오로지 스스로(방송사)의 의지로 관계를 맺고 (잠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직 목적에 충실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것이 행복의 근원이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권력과 정치는 일상이며, 가족을 포함하여 친구들과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배신은 우리가 겪어야만 할 현실이다.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훨씬 더 고달프다. 이 곳에서 탈출하여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      


화면 속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기 위한 화면 바깥의 노력은 더욱 처절하다. 이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낸,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를 잘 그려내는 픽션을 뛰어나게 만들어내었던 방송사는 화면 바깥 노동자의 시간과 마음과 꿈을 담보로, 생명을 앗아가는 일마저 자행했다. 해당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오히려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판타지를 구현해내는 그들의 방식에 판타지의 반대편 지옥의 일상이 전제가 되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충분히, 그리고 더욱 격렬하게. 아프게 한다.

콘텐츠는 콘텐츠로 보아야 한다. 콘텐츠 속에는 콘텐츠가 존재하는 세상과 그 세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담긴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다. 화면 바깥의 일은 우리의 일이다.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기도한다. 그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우리가 화면 바깥 현실에서 무언가를 더 할 수 있기를. 새롭게 도래한(!) 시대에 직접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 글은 CJ E&M에서 근무하던 한 젊은 pd의 죽음 이후 작성하였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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