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마 B Aug 30. 2022

포틀랜드 여행, 그 이후

여행을 마치며


포틀랜드에 온 지 열흘째 되는 날, 나는 또 다른 여행을 위해 짐을 쌌다. 집을 나서면서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여행의 연속이며 집에 도착하는 순간 아쉽게도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직항 비행기 편이 없기에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인천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시애틀에 도착한 날에는 딸이 공항에서 나를 픽업하여 포틀랜드로 갔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딸의 공부시간을 방해하기가 싫었다. 다행스럽게도 포틀랜드에서 출발하여 시애틀 국제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고속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표를 예약했다.


아침 7시에 포틀랜드에서 출발하는 FLiXBUS는 시애틀 타코마 돔에서 10분간 정차한 후 사람을 태우고 타코마 국제공항으로 30분 정도 이동한다. 총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는 정확히 10시에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버스 안은 싱싱하게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 안 온도처럼 싸늘했으며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좌석에 앉은 나는 에어컨 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냉장차 속 야채가 되어 실려가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무거운 가방 두 개를 낑낑대며 끌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인천행 비행기 편은 오후 1시에 출발이라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짐을 부치고 보안 수속을 밟은 후 터미널로 들어가는 순간 그제서야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돌아오는 여정의 공항 터미널은 만족스럽지 않은 시험 점수를 받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거운 마음처럼 뻐근함과 아쉬움이 엄습하는 곳이었다.


수제 맥줏집, 스텀프 타운 커피, 골프장, 와이너리, 쇼핑몰, 홀 푸즈, 파머스 마켓, 맛있었던 레스토랑들,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 그리고 딸과 세 마리의 고양이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울 것이다. 아니 벌써 그립다. 그리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pp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를 찾아 걸었다. 다리가 아플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그곳에서 음식으로 나의 배를 채워 그리움을 잊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그곳은 내 마음과는 달리 소란했으며, 마음이 고픈 나는 빵과 야채와 과일을 접시에 담아 비어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먹었다. 천천히 씹으면서 눈은 앞 화면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포틀랜드에서 지냈던 날들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두더지게임처럼 하나씩 머리를 내밀었다.


또 오면 되지 뭐,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대한항공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어 한국에 가는구나라는 생각은  미소로 맞이하는 승무원들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날 집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집에 두고 온 반려견 순이가 갑자기 생각났다.


아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를 느꼈다. 한국에는 나의 삶과 집이 있고 돌봐야 할 순이가 날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돌연 순이가 보고 싶어졌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마지막 한순간까지도 여행자의 기분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나는 아직 여행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오리건주 Drounhin에 있는 Rose Rock 와이너리에서 사 온 화이트 와인을 보고 있으니 그곳의 경치와 즐거웠던 대화들이 내 몸으로  진하게 타고 전해졌다. 집에 와서 마셔보는 와인 한 모금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어느새 눈을 감고 그곳으로 되돌아가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포틀랜드 여행은 여행 내내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숨 쉬고 있음을 순간순간 느꼈고,  시계는 장식품에 불과했으며 해가 떠 있는 낮과 해가 진 밤과 함께 나의 하루는 흘러갔다.


여행은 왜 좋은 걸까, 왜 가고 싶을까를 항상 알고 싶었다. 마음이 원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떠오른 답이었지만 이번 포틀랜드 여행은 좀 더 진지하게 여행이 주는 의미가 뭔지 알고 싶었다. 보통 주부들은 말한다. 아침 밥하지 않아도 되고,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여행이 좋다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고로움과 번잡함, 복잡한 관계로부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기에 다들 떠난다.


이번 여행은 떠나기 전 나에게 고통을 적잖이 주었었다. 밤에 안 자고 잠투정하는  순이를 맡기는 문제, 한의원을 여러 날 비워야 하는 부담감, 만만찮은 여행 경비, 코로나가 여전한 불안한 분위기는 여행 전 설렘보다 걱정과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떠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나를 재정비할 필요성은 확고했다.


유체이탈을 하듯, 걱정거리 많은 나는 한국에 남겨두고 홀가분한 마음을 가진 또 다른 나는 떠났다. 내 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맛있음에 감탄하고, 걷다가 들어간 수제 맥줏집에서 한잔하면서 시원함을 느끼면 되었다. 이게 사는 거구나를 느꼈고, 내가 마시고 있는 공기는 갓 구워낸 맛있는 빵처럼 촉촉함과 신선함과 따뜻함을 전해 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와인을 마실 때, 맥주 한 잔을 들이켤 때, 감자튀김을 먹을 때마다 그곳의 분위기와 날씨, 사람들의 얼굴 표정까지 떠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펠탑 아래에서보다 멀리 떨어져 에펠탑을 바라볼 때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듯, 여행하고 있을 때보다 여행 후 돌이켜볼 때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여행의 맛이 아닐까 한다. 다시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며 기념품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포틀랜드의 또 다른 재미 파머스 마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