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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암동 나그네 Nov 29. 2018

죽음에 대하여

#01 두 번의 전화와 한 통의 문자

수요일 늦은 저녁. 

시레깃국에 밥 한 숟갈 넣고 막 먹기 시작하려는 찰나, '아버지'라는 글자가 폰 화면에 떴다. 몇 년 전부터 아들에게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주신다.


눈길도 주지 않고 익숙한 2번의 터치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러고선 국에 밥을 마저 풀고 한 입 물었는데,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그냥 놔뒀다.


그러고선 날라오는 문자 한 통. 눈길 한번 슬쩍 주고 말려던 나는, 먹다 말고 신논현역 3번 출구로 냅다 뛰었다.


'할아버지돌아가셨다.대구온나00병원여만실에갈예정이다'


스스로 판단하건대, 뇌가 생긴 이후로 직계가족의 상(喪)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른이 돼서야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죽음 이후 남은 사람들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됐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 당장 왼 팔은  없는 완장을 끼고 있어야 했다.
 

신논현역 3번 출구로 걸어가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형제들이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어. 내일 아침까지 동생하고 내려와"라고 말씀하시고선 전화를 끊었다.


생경한 기분이었다. 잠깐 심장이 몇 번 가파르게 뛰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였더라". 가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 전인데, 정말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데도 기억이 안 났다. 기억나는 건, 전화기 너머의 "나는 괜찮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 정도였다.


수요일 저녁 8시 33분.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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