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by 흔적


육퇴 후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었다.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찬 탕 안에서 책이 물에 젖을까 혹은 눅눅해질까 조심조심 책장을 넘겼다. 사소한 이 시간을 아껴가며 메모를 하기도 했다.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생각들 사이에서 글감을 건져 올려 두서없이 적어둔다. 다음엔 어떤 글을 쓸지, 오늘 생각한 건 무엇인지, 기억에 남았던 키워드 따위에 대하여.


카페인 대신 아이스 레몬티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노곤해진 몸으로 어두운 방 안 침대 위에 누워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 자면 제대로 숙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잠에 들 수 없었다. 잠도 아까웠지만 고된 육아의 하루를 보낸 후 맞이하는 밤 시간은 그 어떤 욕구보다 달콤하고 아깝다. 어찌 글 한 줄 쓰지 않고 잠에 들 수 있겠냐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글 쓸 시간이 넘쳐났을 때 보다 희소해진 지금이 더 쓴다는 행위에 쾌락을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을 이끄는 건 결핍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하고 간절하게 글쓰기를 소망하고 있다.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쓸 수 있을까. 쓰게 될까.


이 공간에 얼마나 더 쓰면 나는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될까. 내 글을 모아놓은 책을 만져보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 날은 나 스스로 만들게 될까 아니면 어떤 기회가 주어지게 되려나.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업으로 삼을 작정인 걸까. 아니면 그저 어딘가에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걸까. 왜 쓰는 걸까.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내 책은 어떤 모양과 색을 가져야 할까. 내가 책을 낸다면 찾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날까. 그렇다면 내 글은 눈에 띄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텐데. 내가 가진 생각과 글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남다른 경험을 했을까. 얼마나 많이 알고 깊은 생각을 가졌을까. 그래서 내 글은 언젠가는 건져 올려 지기는 할까.


글은 쓰고 나면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훅훅 털어지는 듯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듯한 쾌감이 느껴진다. 온전히 나 혼자 느끼는 경험이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읽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며 '발행'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당장 내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묘한 성취감이 든다. 이렇게 쌓아둔 글들이 언젠가는 무언가로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한다.



나의 시가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그것들이 아름답다면, 아름다움은 거기 있으리.

하지만, 아름다우면서 인쇄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뿌리들이야 땅 밑에 있을 수 있어도

꽃들은 공기 중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피는 거니까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한다. 아무것도 그걸 막을 수 없다.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1915년 11월 7일에 이런 글을 남겼다. 방대한 양의 미완성된 글을 남긴 그가 생전에 출판한 포르투갈어 책은 시집 한 권이 전부라는데. 그는 자기 글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 알고 모르고를 떠나 필연이라고 느끼는 확신은 어디에서 왔던 걸까.


그에게는 70여 개의 이명(異名)이 있었다고 한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써 내려간 글들. 왜 그랬을까. 한 사람 안의 서로 다른 자아들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었을까. 그는 괴짜였을까.


100년도 더 지난 요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자아는 오히려 익숙하다. 성격은 때론 상대적이고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다. 한 사람 안에 상반된 취향이 공존하고 그것이 취미와 소비, 직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에 따라 sns 계정을 다르게 운영하며 또 다른 정체성을 빚으려 애쓴다.


나에게도 여러 자아가 있다. 내 자아는 동시다발적이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상에 낯을 가렸던 10대의 나, 열정을 쏟아부으며 일했던 20대의 나, 틀린 게 다른 줄 몰랐던 나, 세상이 원래 그런 줄로만 알았던 나, 전혀 다른 시도를 해보며 고민을 이어갔던 나, 손에 꽉 쥐었던 것을 놓고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 나, 엄마가 된 나. 엄마가 아닌 온전히 나로서의 나.


결국은 모두 나다. 여러 모습의 '나'들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르다. 아니, 달랐다. 지금 내 안에는 과거의 내가 그대로 있는 한편 전혀 다른 모습도 물들어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사람은 변하는 거고 한 가지 모습만으로 살 수 없으니까.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는 여러 개의 이명만큼이나 산만하게 느껴진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당최 알아낼 수가 없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참 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 없는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글에 묻어난다. 산만한 건 머릿속이 어지러운 나겠지.


글을 쓰다 보면 계획을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카테고리화해야 솔깃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컨셉을 나열해보고 지루한 것들을 버려낸다. 하지만 그럴수록 막막해지고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도 그 나름의 색을 지닌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조급한 포장을 거두어야 할 텐데 말처럼 쉽지 않다.


오늘도 그저 열심히 나를 기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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