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통 책을 읽지 못한다. 3개월 차 육아맘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엔 나도 자야 겨우 체력이 보충된다. 틈틈이 보는 것은 tv 예능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집중을 요하는 영화나 흐름을 놓치면 안 되는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덜 보는 편이다. 잘 땐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듣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어 버린다. 매번 앞부분의 인사만 기억이 남아 다시 듣고 또다시 듣기를 반복한다.
책 한 페이지 읽어내는 일은 그보다 힘겹다. 독서라는 행위가 생각보다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예전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커피 한 잔과 함께 누리던 휴식이었는데, 이제 내겐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야 할 만큼 품이 드는 일이 되어 버렸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총체적 노동 같은 것.
책을 읽지 않음으로써 느끼는 아쉬움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는 허전함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거나 누군가의 생각을 엿듣는다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천천히 고민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거. 하루 종일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있어도 영상이 채워주지 못하는 이야기의 공백이 있음을 느낀다.
오직 책이 가진 결의 부재.
책을 읽지 못하는 대신 책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자주 챙겨보고 있다.
tvn의 '책 읽어드립니다'는 말 그대로 시간 없는 나를 위해 책을 대신 읽어주는 느낌이 든다.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점뿐 아니라,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한 생각을 나누는 점이 좋다. 같은 책을 읽어도 심리학자와 과학자가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다. 그 다름이 재미가 된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선정되는데 '타인의 고통', '노동의 종말', '한중록'편을 재미있게 봤다. 책은 언제 쓰이던 그 나름대로 현재와 교차점을 만들어내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페스트'편을 봐야겠다.
팟캐스트 '듣똑라'나 '책읽아웃'을 통해서도 많은 책들을 알게 된다. '듣똑라'는 시사프로그램인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여성으로서 알면 좋을, 관심을 가질 법한,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소개되는 편이다. 책뿐 아니라 영화나 유튜브, 인물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와 영감을 두루 던져준다. 예스24에서 만드는 '책읽아웃'에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김하나 작가가 진행하는 '삼천포 책방'이라는 코너도 좋아한다. 시시콜콜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듣다 보면 책과 작가,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스며든다. '엄마의 20년'과 '식사에 대한 생각'편을 듣고 꼭 읽어봐야지 싶어 모바일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언제 다 사서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에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미리 담아둔 장바구니만으로도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든든한 기분이다.
'듣똑라'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채널은 출판사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tv'다. 민음사에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아 이제 출판사도 책만으로 먹고살긴 힘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뭘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호기심에 보게 되었는데 이거 은근히 재밌다. 북커버 디자인에 관한 영상과 매거진 '릿터'의 주제를 정하는 회의를 담은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레트로' 주제가 드롭되어 은근히 아쉽기도 했다.
종이책으로서의 책은 점점 더 읽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로서의 책은 하나의 주제를 펼쳐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도구로 자리를 잡고 더욱 확장되고 있다.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이야기를 펼쳐서 내보여준다. 첵을 고르고 읽고 생각하고 리뷰해보는 많은 과정들 사이사이에서 떠먹여 준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책은 혼자 곱씹고 즐기는 사유의 공간이 되고 있으며 세상으로 나가는 토론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책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은 조금 가벼워졌고 활기차 졌다.
내 손으로 넘기는 페이지 수가 조금 적어졌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