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맥락

by 흔적



요즘 개인에게도 브랜드에게도 공간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체성이다. 사소하게 sns 채널을 운영하더라도 자신의 개성과 컨셉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있어서도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행보나 방향성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로 소비되는 브랜드나 기업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모두가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갖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식당을 운영하던 글을 쓰던 기획이 필요한 시대, 우리 모두 기획자인 셈이다. 그리고 그 기획은 sns의 계정과 부계정이 나뉜 것처럼 각기 다른 정체성을 구축해 좀 더 좁고 세밀하게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삶 자체를 기발하게 기획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나라는 인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나만이 가진 생각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들을 글과 sns, 팟캐스트 등등의 활동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일관성을 가지면서도 신선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지점으로 나를 포지션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나도 채 알지 못하는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고 타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관찰하는 것 역시 멈출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소통과 공감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누군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나다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어디까지가 나다운 것이고 아닌 것인지 구분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나라는 맥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공간의 맥락



맥락 안에는 개별의 문장들이 존재한다. 문장은 문장대로 남다르기를 바라게 되고 맥락은 그 나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문장과 맥락이 있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공간이 담아내는 콘텐츠와 그 맥락이다. 오프라인 공간이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한 매장의 기능을 전담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한 시대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공간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 특별한 매력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들이 만들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기 좋은 그럴싸한 인테리어를 넘어서서 새로운 경험과 영감, 네트워크 등이 공간의 구성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비슷한 듯 다르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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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흥미를 자극하는 공간이 생겨서 방문해본 곳은 중림동에 새로 생긴 '어반 스페이 오딧세이(USO)'. 공간을 잡지처럼 구성했다는 점이 가장 신선한 지점이었다. 잡지를 읽는 것 같은 공간의 구성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우선, 도시서점 2호점이 자리 잡고 있었고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로 다르게 꾸며진 전시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심야살롱이 열리는데, 작가의 북토크나 강연들로 채워지는 듯했다. 살펴보면 서로 다른 분야의 많은 개인과 팀들이 참여해 이 공간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의 관점과 결과물들이 각기 다르게 녹아들어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도시, 서울, 심야살롱이라는 맥락을 유지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잡지에는 따로 노는 듯 비슷한 맥락을 가진 각기 다른 콘텐츠와 기사들이 한 권 안에 담겨있다. 현재라는 시대를 담아내는 특성과 함께 새로운 소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기획으로 테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요즘 새롭게 보여지는 독립잡지들은 한 권 안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만 보여준다던지, 한 편의 영화만을 보여주는 형태로 한 가지 요소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기존 잡지의 한계를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쇼핑리스트나 가십거리로 채워진 잡지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맥락을 보여주는 잡지가 전혀 다른 결을 지닌 것처럼 공간도 그저 아무거나 채워 넣은 모음집 같은 쇼핑센터가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맥락 안에서 콘텐츠를 경험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질서 안에 무질서



맥락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검열하고 정렬하는 듯한 태도는 위험해 보인다. 가장 큰 오류는 지나친 의미부여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일까' 혹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와 같은 타인의 시선과 반응에 몰두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예전엔 그것이 견고하게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에게 깨지 못할 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맥락은 가져가면서 그 안에서 즉흥적이고 단발적인 무질서를 즐기는 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남들에게도 그 즐거움이 더 쉽게 전달된다. 그리고 굳이 맥락을 억지로 만들려 하지 않아도 그 사람만의 은근한 색이 느껴지게 된다.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느낌적인 느낌을 가진 의식의 흐름 같은 것들. 이는 요즘의 공동체들과도 닮아있다. 각자의 활동을 독립적으로 이어가면서도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 주제에 따라 혹은 흥미에 따라 이렇게도 모이고 저렇게도 모이는 사람들. 다양한 색이 모이면서 새로운 문화가 끝없이 만들어진다.


정리가 습관인 나는 요즘 생각한다. 너무 각 잡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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