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삶에 대하여

by 흔적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지도 않으며, 뛰어난 문학적 지식을 보유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에 대해 제대로 어디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독립출판으로도 책 한 권 내보지 않았다.


이런 나를 어디에서 '글쟁이'라고 소개할 수는 없지만, 내 삶이 글을 쓰는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일상의 면면에서 글감을 고민하고 늘 내가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지 살핀다.


내 글이 꽤 괜찮다고 도취되어 있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으로서 썼던 글이었기에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는 자만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글 쓰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도 않았기에 한 발짝 떼어서 가질 수 있었던 헐거운 마음이었다.


이제 글은 나의 언어가 되었다. 나를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사용되는 언어. 아직은 이 언어를 배워가며 더듬더듬 말하는 법을 배우는 시작점에 가깝다. 더 깊고 넓은 마음으로 물 흐르듯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나 스스로 글 쓰는 삶에 들어섰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먼 산을 바라보며 눈길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만 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오랜만에 카페에 나와 어수선하고 늘어지는 마음들을 추스르며 그동안의 시간들을 곱씹어보았다. 뭐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 얽매였던 어린 날의 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모든 것을 자연스러움에 맡기는 나로 변해가고 있다. 프리랜서가 되었던 것도, 결혼을 한 것도, 아이를 갖게 된 것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는 것도. 모두 내 인생 계획에는 없던 리스트들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서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 뿐이다.


일하면서 다 풀어낼 수 없는 내 관점을 파고들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했었고, 토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들이 쌓여 간간히 일기도 쓰며 유치한 마음들까지 모두 기록해두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 이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 스스로 어떤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다는 욕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글은 내 안을 끝없이 들여다보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것임을 느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허세를 덜어낸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필연적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내 일상은 겉으로는 밋밋해 보이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하게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엊그제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 '백투더북스'에는 파리의 유명한 책방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소개되었다. 문을 연지 100년이 된 이 서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텀블위드'의 존재였다. 텀블위드(Tumbleweed)란 공 모양으로 바람에 날리는 잡초를 뜻하는데, 서점에서 무료로 숙박을 하며 서점 일을 돕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반전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재워주던 것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이제 서점의 상징이자 문화가 되었다. 이곳에서 묵는 이들은 주로 작가 지망생이거나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에겐 이곳이 영감의 공간이자 최고의 작업실이 되고 텀블위드는 이 서점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생각을 퍼뜨리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읽히길 기다리는 물건이고 그 안에 쓰인 글들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이야기라고 본다면, 서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도 당연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텀블위드의 존재 역시 매력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였고 로망을 자극하는 한편 부럽기도 했다.


나도 텀블위드가 되고 싶다. 꼭 파리의 그 서점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그리는 세상에서의 텀블위드가 되어보면 어떨까. 나의 경험을 확장하고 생각을 겹겹이 쌓으며 천천히 글 쓰는 삶에 안착하고 싶다.


나의 글 세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도록 읽고 보고 듣고 쓰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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