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오랜 시간 SNS 없이 지내왔고 카톡 없이도 잘 살았던 어린 날들이 무색할 정도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부터 인스타그램과 유투브를 끼고 살던 사람처럼 나의 모든 생활 습관과 생각의 과정들은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흐름에 맞춰져 있다. 인간은 정말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새로운 동네와 집으로 이사 온 그 날 이후로 나는 꽤 오랜 시간 살았던 지난 집에서 풍기던 냄새를 지우고 무섭도록 빠르게 새 공간에 익숙해졌다. 원래부터 이 곳에 살았던 것처럼. 모든 것들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의 유명 사이트들에서 인사이트를 얻었고 페이스북으로 리서치를 하곤 했다. 구글링을 통해 알게 된 트렌드는 꽤 오랜 시간의 텀이 흘러서야 국내에 도달했고 그것이 대중의 문화로 확산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가까운 과거에 일하던 방식인데, 이젠 그것이 아주 고리타분한 옛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어쩐지 묘하게 느껴진다.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에 허덕이며 정신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찾아봐야 할지 막막했고 어떤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우연히라도 의미 없는 정치싸움으로 물든 댓글 놀음을 마주하게 되면 피곤은 몇 배로 늘어났다. 그렇게 기존의 검색엔진에서 멀어졌고 페이스북에서 조금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괜찮은 블로그의 글들만 모아서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고 새로운 웹매거진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도 내가 쓰던 블로그의 글들이 새로운 사이트에 큐레이팅 되어 뭔가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 사이트는 활성화되지 못해 기억 저 먼 곳으로 사라졌다.)
괜찮은 정보만 모아서 따로 보여준다는 건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점점 개인이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이 되는 듯했고 빅데이터가 멋대로 모은 필터링은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저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팔로잉한 이미지 정보를 보는 것이 더 속 편한 일이었고 감각적인 정보들은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조금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따금씩 괜찮다 하는 매거진을 사서 보거나 적당히 재미를 주는 tv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영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점점 더 글보다는 영상이 우선이 되었고, 누군가의 편견 섞인 시선에 귀를 기울이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새로운 공간에 가서 개인적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읽을거리는 없다고 느껴질 때쯤, 그 읽을거리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노클(Monocle)'처럼 자신들의 관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들을 가치 있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저 한 번 떠올랐다 사라지는 정보의 모음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한 분석과 고민의 흔적을 탐색하는 것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B매거진과 퍼블리(Publy)는 그 시점에 가장 먼저 취향을 채워주었다. B매거진은 한 권에 한 브랜드만 다루어 브랜딩과 문화,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퍼블리가 리포트의 형태로 발간하는 내용들은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페어나 마케팅 사례들을 프로젝트의 형태로 분석하여 보여주어 그 밀도가 높았다. 나는 종종 내가 관심 있는 리포트들을 구매해서 읽어보곤 했다. 그 리포트들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형태로 괜찮은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퍼블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곳을 발견했는데, 먼저 마주한 곳은 서점이었다. 비슷한 레이아웃으로 여러 권의 책이 한 곳에 쌓여있었고 책이라고 하기엔 좀 얇지만, 리포트라고 하기엔 좀 두꺼워보였다. 북 저널리즘(book journalism)이었다. 선정되는 주제는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퍼블리가 좀 더 브랜딩, 마케팅, 디자인과 같은 일 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북저널리즘은 비슷하긴 한데 좀 더 시사적인 부분을 폭넓게 다루는 느낌이 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저널은 나의 취향을 저격해주기도 했지만, 그때그때 주제에 따라 취향에 맞게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퍼블리나 북저널리즘에서는 월 구독료를 내면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각종 에디션을 모두 볼 수 있는 멤버쉽 구독의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매일 아침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을 읽어보시는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빠가 신문을 다시 구독하시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거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와.'라고 만류했지만, 아빠는 그 스마트폰으로 보는 행위가 불편하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신문도 보시고 검색도 하신다.) 경험에 따라 세대에 따라 각자의 구독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게 놀랍다.
요즘 누가 메일함을 열어본다고 뉴스레터를 보내준다는 거지? 오래전 매거진이나 브랜드에서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받아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본 적도 없이 휴지통에 들어갔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주변에 이런저런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뉴스레터의 발신자들은 다양했다. 매거진이나 브랜드뿐 아니라, 개인이 담은 다양한 내용의 인사이트에서부터 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분야도 내용도 형식도 서로 달랐다. 내 메일함을 보니 언제 어떻게 가입했는지 모를 사이트에서 보낸 쓸데없음의 목록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뒤늦게 '북저널리즘'이나 '퇴사 준비생의 여행', 팟캐스트 '듣똑라', 생각노트 등 7-8곳의 뉴스레터를 받아보기 시작했다. 메일은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종종 메일함을 들락날락거리며 그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대부분 두세 가지 정도의 화두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뉴스레터는 딱딱한 내용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어체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전문적인 용어에 대해 간단히 짚어주어 알려주거나, 예전의 사건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를 해주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공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사적인 느낌이 든다. 이것이 적절히 섞여 있다는 점이 뉴스레터들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지점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 혹은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본 사람의 관점이 녹아든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사적인 분석이 들어가 있는 게 좋다. 개인의 취향에 너무 빠지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면서 읽는 대상이 대중임을 잊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한 부분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무언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영감과 친밀감 사이에서 구독의 묘미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