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골목과 동네가 피고 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리고 있으며, 을지로도 그중 하나다. 이 글 하나로 을지로에 대한 전부를 정의할 수 없고, 전부를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순 없지만, 한 행인의 단상처럼 을지로에서 마주한 장면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정확히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을지로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거 산업화의 흔적이 자리 잡고 있는 옛 도시 같은 느낌의 을지로는 내게 머물기보다는 지나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명동에서 동대문을 가는 길에, 청계천 옆에, 종로에서 걷다 보면 어느새 인 곳에. 그 주변은 참 많이 맴돌았지만, 그 안을 관통한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젊은 세대들보다는 기성세대들에게, 현재보다는 과거에 더 익숙한 동네로 인식하던 어느 날부터 그곳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나 보다.
동네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길 권하는 매거진 '아는동네' 시리즈 중 하나인 '아는 을지로'엔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을지로의 역사와 그곳에 자리 잡은 요소들이 하나하나 소개되고 있다. 을지로란 동네에서 어떤 문화의 변화를 발견했길래 이렇게 자세히도 을지로를 들여다보려고 하는 걸까.
인쇄소와 철공소, 갖가지 목재, 조명, 벽지 등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국밥, 노가리 등의 노포들이 어우러져 을지로를 일궈냈다. 생산과 생산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동네의 풍경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어둡고 고단한 지난날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 또한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 또 하나의 낭만이 되고 문화가 되어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생산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젊은 사람들이고, 뭐 좀 해볼까 싶어 하거나, 작게라도 터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못 만드는 거 빼고 다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운상가에 자리를 잡았고, 칙칙하고 오래된 건물의 한켠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생겨나더니,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랜 생산 장인들과 젊은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려 을지로의 '색'과 '결'을 새롭게 그리고 오랜 빛깔을 잃지 않은 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래된 거리가 새롭게 재생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 을지로가 처음은 아니지만,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점이 있다. 걸어가다 힙플레이스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쁜 가게 옆에 예쁜 가게를 연이어서 만날 수 없는 곳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판도 없이 숨고 또 숨은 가게들은 그 자체로 힙함을 뿜어내고 있다. 누구든 구글맵에 내가 자주 가거나, 언젠가 가고 싶은 곳 한두 곳쯤은 별표로 저장해놓는 게 요즘이다. 거리에선 연결되지 않지만, 내 구글맵 속에는 연결되는 별표처럼 을지로의 숨은 가게들은 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실이 반가운 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 잡는 프랜차이즈의 공식을 피해갈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무얼 찾든 전혀 없을 듯한 골목으로 숨어들어야만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을지로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처음 간 곳이 커피한약방이었다. 작년쯤이었나. 이미 곳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는 카페들이 어딘가에 소개되고 있을 때쯤이었다. 가보고 싶었던 카페 중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수많은 핫한 카페에서의 경험과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랐다. 몇 안 되는 테이블이지만 다행스럽게도 LP를 틀어주는 스피커 앞에 자리를 잡았고, 핸드 로스팅하는 소리를 들으며 공간을 향유할 수 있었다. 'Now Playing'이라고 쓰인 벽에 붙은 LP 커버는 자개로 만든 핸드드립바와 묘하게 어울리면서 옛스러웠지만 또 옛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를 처음 들었다.
얼마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어 어떤 곳인지 알고 싶게 만든 곳은 '루이스의 사물들'이었다. 카페인 듯한데, 이것저것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전시 비슷한 것도 하는 듯 해 보이는 이곳은 한켠엔 골목길 한켠엔 청계천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루이스 박이라는 사람이 내놓은 익선동의 '식물', 을지로의 '잔'에 이은 세 번째 공간이라고 하니, 그 성향을 알 듯했다. 어딘가에서 수집했을지 모를 빈티지한 잔과 그릇들이 선택을 기다린다. 내가 원하는 잔에 커피를 담고, 내가 원하는 접시에 케이크를 담아준다. 카페와 커피는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그 경험을 향유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숨겨진 공간은 누군가의 사적이고 보물 같은 사물들을 마구마구 풀어놓은 곳이었다. 그릇과 그림, 음악과 커피가 한데 모여있었는데, 텅 빈 것 같으면서도 옹기종기 모아놓은 다락방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플리마켓을 목전에 둔 나의 방문 타이밍이 안타까울 뿐이었지만, 손님 없는 한적한 시간에 좋은 스피커로 넓은 공간에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 또한 괜찮은 경험이었다. 전시와 드로잉 클래스도 열리는 것 같았는데, 자신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다른 사람의 보따리도 풀어놓도록 장을 만들어내는 이 공간이 문득 너무 부럽다고 느껴졌다.
가볍든 무겁든 자기만의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저 자기식대로 풀어내 놓는 공간이 을지로에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고, 그게 을지로라는 동네와 잘 어울릴 때 '을지로스럽다'라고 느껴지면서 그 자체로 새로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사람들은 을지로로 끌어들인다.
을지로 전체가 흥하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로 묶여 오랜 터전을 떠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도 있다. 어느 동네나 겪어야 하는 공식처럼 느껴진다는 게 안타깝다. 유현준 교수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는 '보톡스 도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의 도시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주름을 허락하기보다, 젊어 보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보톡스를 맞은 어색한 얼굴과 닮아있다는 거다.
지금 을지로가 새롭게 흥하는 이유가 젊은 사람들의 창의성으로 들여놓은 '새 것' 때문일까. 새 건물에 더 비싼 창의성으로는 흥할 수 없었던 걸까. 나에게 을지로는 내가 찾아가야 할 밝고 화려한 동네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어두운 동네에 새롭게 자리 잡은 낭만적인 공간들은 서로 너무나 잘 어울리면서 그 만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