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서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쥐고 친구가 걸어온다. 아이스크림은 뜨거운 햇볕 아래 아주 빠르게 녹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서 몇 걸음 떼지도 않았을 거리인데 아이스크림은 친구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고 있고, 그 흐르는 아이스크림이 멀리서도 보인다.
친구에게 받아 든 아이스크림은 내 손가락 사이로도 흐른다. 급하게 입을 갖다 대니 아직도 차갑고 아직도 쫀득한 질감이 남아있다. (터키 아이스크림이었다.) 이 뜨거운 햇볕 아래 콘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했는데, 친구는 굳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주었다. 여름을 사고 싶었다고. 나는 여름을 산다면서 차가운 것들을(혹은 차갑게 느껴질 것들을) 사 왔는데, 그래 맞다 여름은 뜨거운 것이지. 햇볕 아래 몇 초만에 녹는 아이스크림이 여름이다. 그간 여름에 수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어왔지만 그건 여름이 아닌 여름을 견디기 위한 걸 먹었을 뿐, 오늘 먹은 아이스크림이 여름이었다.
아이스크림이 햇볕에 닿아 흘러 손에 끈적이게 묻는 것이 여름의 당연,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물렁거려 입가에 잔뜩 묻는 것이 여름의 낭만,
끈적이는 손가락과 아이스크림 색으로 물든 입가를 여름 분수대에서 쏟아지는 물에 씻는 건 여름의 우연.
여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