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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Mar 29. 2023

우리의 취향

수영과 처음 식사를 한 곳은 신사역의 '취향'이라는 중식집이었다. 


우리는 소위 남초회사로 분류되는 건설사에서 근무하는 여사우들로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중식당 취향은 '몇 없는 여직원들끼리 얼굴도 트고 잘 지내보라'며 특별히 마련해 준 점심회식 장소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옆에 서서 걸었다. 안경을 걸쳐 쓰고 무심하게 뒷짐을 지었으며  단화 뒷굽을 턱턱 치면서 걷는 수영과 왠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 복직한 나와 경력직으로 갓 입사한 수영은 그렇게 친해졌다. 수영과 나는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들이었고, 또래이며, 헛소리를 잘했다.


결정적으로는 취향이 비슷했다. 주류의 취향도 비주류의 취향도 아닌,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서 손발이 짝짝 맞았다. 우리가 처음 식사한 중식당 '취향'은 혹시 복선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말이다.


우리는 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장르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같았다. 내가 읽어본 적 없는 유의 책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수영이 좋았다. 나 역시 수영이 읽어보지 않았음 직한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보라색과 진녹색(정확하게 스타벅스 색깔)을 좋아했다. 주로 무채색의 옷을 입었지만 가끔은 보라색과 녹색의 옷을 입기도 했고 그런 색깔의 귀여운 것들을 사랑했다. 2023년 회사 달력의 콘셉트컬러가 마침 연보라색이었는데, 색깔에 반해서 아이처럼 좋아하던 수영을 잊을 수가 없다. 나 역시 연보라색 달력에 보라색 형광펜으로 중요 일정을 표시하며 웃었다.


우리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업계 농담을 하며 낄낄거렸다. 이 바닥에 대한 풍자와 해학의 시간이었다. 업계 용어로 조크를 하며 우리만 웃을 수 있는 (그러니까 남들은 하나도 재미가 없을) 내밀한 포인트들을 늘려가며 더욱 가까워졌다. 알게 된 시간에 비해서 밀도 있게 친구가 되어갔고 멀겋기만 했던 회사 생활에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그런 수영이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냥 퇴사도 아니고, 남편의 주재원 발령에 따라 바다 건너로 가겠다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단연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다음의 감정은 기대감이었다. 조금 의아한 감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영과 나는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다행히 같은 프로젝트에서 만나지 않았기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지만, 언제라도 업무로 엮일 수 있다는 옅은 불안을 내재한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소속과 직급을 내려놓고 나면 온전히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어떤 기대감 같은 게 불쑥 솟았다.


때가 되어 수영은 퇴사를 했고 나는 회사에 남았으며, 수영은 해외로 떠났고 나는 한국에 남아있다. 시차는 크지 않지만 이전만큼 자주 보고 떠들 시간이 없어진 우리가 택한 것은 이메일이다. 일상의 재미있는 일, 속상한 일,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이전 메일에 답장을 하며 주절주절 일상을 풀어놓는다.


물론 안다. 이 메일의 수발신 주기는 점점 길어질 것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살아가는 시공간이 벌어진 만큼 조금씩 멀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언제든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시간을 건너서 또다시 일상을 나누고 헛소리를 하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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