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딸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외향적인 남편은 모임마다 일명 '아빠 어디 가'를 주최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은 '아빠 어디 가-제주 편'으로 시리즈 중 가장 긴 여행 (꽉 채운) 2박 3일 일정으로 떠났다. 그리하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흘, 출근하는 월요일을 빼면 이틀, 이틀이다.
빠르게 투두리스트를 작성한다. 워킹맘으로서 흐린 눈으로 모른 척했던 집안일 위주로 토요일을 보내고, 어스름한 저녁 동네 책방에 전화를 건다.
"사장님, <예술도둑> 재고 있나요?"
"신간이라 두 권 정도 들여놨어요. 빼놓을까요?"
"네, 지금 갑니다."
그렇다. 나의 일요일 계획은, 말하자면 '당일치기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이다.'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이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신하들에게 제공하던 한 달간의 '유급' 독서휴가다.
드디어 일요일. 어제 들인 <예술도둑>을 북커버에 감싼 뒤 가방에 플래그와 노트, 볼펜을 던져 넣고 집을 나선다. 여기서 왜 집에서 안 읽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핑계를 대자면 집에 앉아있으면 해야 할 일.. 이 보인다.(떨어진 머리카락, 버리고 정리해야 할 옷들 그리고 손자국이 가득한 냉장고 문짝 같은) 그래서 미련 없이 집을 나선다.
물색해 놓은 독립서점 겸 북카페인 <걸리버스>에 도착해서 음료 한잔을 주문하고 각을 잡는다. 몇 페이지 들춰봤더니 이거, 대박이잖아? 역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 달의 책'으로 꼽힌 이유가 있군. (물론 나머지 '이 달의 책'은 안봄) <다이애나의 책장>에서도 꼭 읽으랬던 이유가 있다니까. 즐거이 책장을 넘긴다. 어느새 반 절 이상을 읽었다. 그리고 목이 약간 부서진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다.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으로 가려면 지하철 세 코스를 가야고, 그 정도 시간이면 한두 챕터 정도는 더 읽어야지 하며. 코를 박고 킥킥대면서 읽는데, 누군가 계속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 거다.
맞은편에 앉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혹은 나도 모르게 킥킥댄 걸 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이에게 속으로 말을 건네 본다.
'아.. 아줌마 잘 읽지?'
그렇게 '당일치기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이 끝났다.아참, <예술도둑>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