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의 전화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남편과 단둘이 한 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말이다. 결혼하고 처음 명절이 되어 시가에 내려갔다. 남편이 쓰던 방을 배정받았는데 나는 이 집이 아주 낯설다.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어른들과 함께 잠을 자야 하는데 게다가 남편과 내가 둘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잔다니 뭔가 부끄럽다. 괜히 뭔가 잘못하는 것 같고 문이라도 열어 놓고 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8살이 이제 막 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 아가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이 낯설고 처음 접하는 상황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갑자기 어머님께서 평소에는 안 하셨다던 명절 차림이 늘어나고 ‘우리 집에서는 보통..’ 이라며 우리 집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신다. 평생 요리는 안 해 보셨다던 아버님은 ‘나도 전을 부쳐야지?’라며 부엌을 기웃거리시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어색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어색한 새아가 와 시부모님 사이에서 모두 다 익숙한 상황인 남편이 부럽기까지 하다. 어색하면서도 이 모든 상황이 나는 소꿉장난 같아서 웃기기도 하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엄마 옆에서 수다 떨며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을 하나씩 집어 먹었을 것이다. '이것 갖고 와'라고 하면 척척 어디에서 꺼내야 하는지 알고 가져다주며 계속 나의 서울 생활 이야기를 종알대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다소곳하게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나 스스로가 웃기기도 하고 남편과 자리에 앉아 산적을 꽂고 있는 게 마치 어린애들 소꿉놀이시켜 놓는 것 같다.
산적 꼬지를 완성하고 어머님의 지휘 아래 몇 가지 잔 심부름을 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갔다. 손이 빠른 어머님은 그냥 내가 옆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네가 있으니까 참 도움이 된다'라고 하셨지만 난 정말 그냥 서있었다.
눈치가 빠른 아이도 아니고, 집에서 이런 준비를 맡아한 적도 없는 철부지 딸이니 말이다.
결혼을 하기 딱 전 명절에는 딸 바보인 아빠가 언성을 높였다. 김장 돕는다고 옆에 서있다가 벽지에다가 빨간 고춧가루 세례를 해 놓고 미역국을 끓이며 간장을 넣으라기에 진한 색깔 간장을 넣었더니 색이 영 이상해졌었다.
곧 결혼할 딸이 갑작스레 걱정되셨던 모양이지만 그 마음은 알지만 행동은 잘 바뀌지 않는다. 몰라서도 못하고 나서면 일이 커질 때가 많은 똥 손이다.
어색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잠이 들었다. 말은 어색하다고 했으면서 잠은 어디서나 잘 자는 속 편한 아이이다.
다음 날 요란한 남편의 핸드폰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남편이 전화를 받으니 아버님이셨다.
'응? 같은 집에서 왜 전화로?'
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보니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차례를 지내려면 상을 꺼내야 하는데 우리가 자는 방 베란다에 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 쉽게 들어오지도 못하시고 시간은 지나가고.. 문 밖에서 마음을 졸였을 새시아버지가 눈앞에 그려진다. 우리는 9시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나는 화장 안 한 생얼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다며 후다닥 씻고 급히 화장을 했다.
결혼하면 정말 새로운 환경 투성이라더니..
나는 왜 명절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주말처럼 편히 푹 늦잠을 자고 나서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일어났다.
차례를 지내지는 않더라도 명절 음식 몇 가지를 해서 아침에 엄마가 먼저 기도하신다.
준비가 다 끝나고 기도가 끝나면 우리를 깨우셨으니 정말 단 한 번도 이 준비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렇게 나의 요란한 첫 명절이 지나가고 오후에 인근에 사는 시누가 놀러 왔다.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언니 저는 오늘 이 그릇을 처음 봤어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제기 처음 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던건데'라며 크게 놀라더라.
사실 나는 이 그릇 여기서 처음 본다. 그릇에 받침대 있는 것까지도.
이런 내가, 종부란다. 나 잘 살 수 있겠지?
그래도 아파트에 사시니 다행이다. 한옥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