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와 호랑이유람선

1986년 2월 1일에 벌어진 두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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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는 레바논의 수도다. 세계에 있는 도시나 나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난 베이루트를 밴드 이름쯤으로 알고 있었다. 트럼펫과 트롬본이라는 관악기가 있는 밴드. 흥얼거리듯 작은 바이브레이션이 잔망스러운 보컬이 노래하여 제 3세계음악 느낌이 연출되는 미국 밴드. 멜로디를 듣다 보면 중동 어디쯤이 생각나기도 했다. 실제 베이루트는 레바논에 있다. 그리고 레바논은 조금 특별한 나라다. 레바논은 우리나라 경상도보다 약간 작은데, 그런 나라에 종교가 18개나 있다. 수니파, 시아파, 알라위파, 이스마일파, 마론파, 그리스 정교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 개신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도 많다. 영토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고 중앙에서 집권이 힘든 구조라 종교가 많아졌다. 게다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통치를 수월하게 하는 전략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많은 종교를 영입했다. 1943년 식민 통치를 끝내고 레바논이 만들어질 때 각 종파에 권력을 분배했다. 정치와 종교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의석수도 종파별로 나누어 가진다. 왜 도시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레바논에 관해서 이야기하느냐. 우리나라 사람이 최초로 피랍된 사건이 1986년 2월 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북괴의 소행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모를 일이다.


같은 때 서울에서는 ‘호랑이 유람선’ 논쟁이 있었다. ‘호랑이 유람선’은 서울시 물순환 안전국 하천 관리과에서 한강에 유람선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주식회사 세모에서 디자인한 유람선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13미터에 이르고 높이 6미터 어깨 2.5미터, 무게 5톤에 늠름한 호랑이가 앞서 있는 유람선. 주식회사 세모는 호랑이 유람선 외에도 사자 유람선, 공작새 유람선, 유니콘 유람선 총 네 척의 디자인을 내놓았다. (공작새 유람선은 특별히 꼬리를 펼쳤다가 접을 수 있다!) 꽤 재미있는 이 디자인은 반대 세력이 많았다. 86년 2월 3일 세종문화회관 회의실에서는 서울시장, 부시장을 비롯한 각종 분과위원 87인이 모여 호랑이 유람선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결국 동물형 유람선은 부자연스럽다는 의견과 일반형 유람선의 산뜻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찬성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86년 10월 26일 한강유람선은 보통의 모습을 갖고, 한강을 가르며 지나간다. 그 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형 호랑이 모형은 한강까지 갔더랬다. 1988년 5월 2일 동작대교까지 작은 배로 인양되고, 크레인으로 올려져 과천으로 옮겼질 때까지 말이다. 당시 돈 1억 예산으로 만들어진 호랑이 모형은 결국 지금 서울대 공원 호랑이가 되었다.


1986년 2월 1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신문에서 태어난 날에 있었던 두 사건을 뽑아봤다. 서울대 공원 입구 포토존의 역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사이에 있으면서 지중해를 끼고 있는 작은 나라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 사실 1986년 2월 1일은 나에게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당시 그날은 나에게 어떠한 기억도 없고, 의식조차 되지 않는 날이니까 당연하기도 하다. 신문을 찾으면서 그날도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응애하고 태어났을 때,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들은 이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레바논에 피랍된 외교관을 걱정하고, 그게 북괴의 소행일지 모른다고 염려하였으며, ‘호랑이 유람선’ 저 못생긴 게 한강을 누빈다니 산뜻하지 못하군, 이라고 판단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들춰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읽어보면 많은 사건이 있다.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의 개성을 가진 것처럼 모든 날이 특별함을 가진 다 생각하니 지나간 날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여하간 앞으로 나의 생일은 선글라스를 끼고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긴 총을 든 무장단체와 18개의 종파를 가진 산악 지형의 나라 레바논, 한강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유유히 지나가는 호랑이 유람선으로 기억될 거다. 생일 초를 불 때 소원보다는 이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겠지. 그리고 오늘도 세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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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서울기록원/《세모관광선건조계획안》, 1985.10.15. 서울특별시 물순환안전국 하천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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