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스템에 대한 단상
설날이 되기 며칠 전. 병원에서는 공희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 입원을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해서, 명절을 병원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6인실 병동은 자기 부담금이 4만 원 정도 했다. 저렴한 가격에 호텔에서 공희랑 같이 지낸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병원 호텔에 온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뭘 하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여행 가방에 일회용 팩, 공예 도구와 그림도구, 노트북을 야무지게 챙겼다. 우리의 휴게시간을 책임질 스도쿠 책도 하나 샀다.
시작은 황달이었다. 공희 눈이 계란 노른자같이 노랬다. 아프다, 불편하다,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작년에도 황달에 걸려서, 그때처럼 며칠 입원하면 나아져서 돌아오겠거니 했다.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말할 때도 간호사 선생님이 그냥 의견을 주었거니 했다. 그러다가 일요일에 아무렇지 않게 "은지, 제가 경련을 한 것 같아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말이 침착해서인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인지 그때까지도 아무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공희가 상황을 잘 설명 못하는 느낌이 들어 간호사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의 반응은 달랐다.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야 돼요. 저희가 전화했는데, 아무데 서도 안 받아줘요. 가서 무조건 밀고 들어가야 돼요" 간호사 선생님은 여기는 작은 의원이어서 안된다. 진주 경상대 병원이나 제일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차를 타고 경상대 병원에 도착했다. 휴일이어서 응급실로 향했다. 초록색 옷에 크록스를 신은 간호사 선생님이 나왔다. 증상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였다. 경상대 병원은 지금 의료 파업 중이어서 간 전문 선생님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MRI나 CT를 찍을 수는 있으나 이를 판독해 줄 선생님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거였다. 차를 타고 제일병원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들은 말은 "경상대 병원으로 가세요."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돌아온 말은 "저희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였다.
공희는 탈모로 머리숱이 없다. 까만 머리 사이로 속살이 많이 보인다. 지금 그 살이 노랗다. 그 모습이 생경해서 비위가 약한 나는 올릴 지경이었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전화를 해봐도, 우리 병원에는 올 수 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안 됀다고만 하는 병원에 화가 났다. 병원은 병을 낫게 하는 곳 아니었나? 병원에서 환자를 골라서 받는다고? 왜? 여기서 죽으면 안되니까? 갑자기 무조건 응급실에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보라색 간호사 복을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간호사 선생님이 자동문을 열고 나타났다. 다시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그녀에게 나는 대뜸 다른 데서 다 안 받아 준다고 하는데, 병원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니냐, 받아 주라고 호통을 쳤다. 우리는 그렇게 응급실에 입성했다. MRI 찍고, CT를 찍고 그래도 모르겠다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창원의 한마음 병원으로 갔다. 그 와중에 앰뷸런스 비용은 16만원이 나왔다. 병원차에는 기본요금 30,000원에 1K 당 1,000원이라고 붙어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우리의 황급한 상황마저 미터기로 환산된 것 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한마음 병원 응급실에 입성하자 다섯 명 정도 되는 간호사들이 공희 침대로 달려들었다. 각자 기계니 호스니 하는 것을 들고 와서 공희 몸에 꽃아 댔다. 피도 뽑았다. 오늘만 네 번째다. 큰 주사기 가득 뽑던데, 뽑을 피가 있기는 한 거겠지? 의사선생님이 오셔서 황달이 오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오늘 하루만 이 상황을 열 번이 넘게 설명한 것 같았지만, 누군가 낫게 해준다면 백 번이라도 더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선생님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고,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에서 공희가 치료를 받게 되는구나라고 말이다. 침대에 누운 공희에게 돌아와서 손을 잡았다. 여 간호사 선생님과 남 간호사 선생님이 왔다. 저녁 9시쯤 되어서 인지, 원래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여간호사님은 에메랄드 색의 클립보드를 들고 왔다. 중환자실에 갈 거니까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입원하라고 했는데 그게 중환자실이었다니. 공희도 나도 황당했다. 아무도 설명해 준 적이 없었고, 설명해 주지 않았다. 왜 공희가 중환자실에 가는지 말이다. 이어 남 간호사는 소변 주머니를 보여줬다. 이걸 차야 한다는 거였다. 중환자실에는 화장실이 없단다. 그게 우리가 들은 설명 전부였다. 소변줄은 생식기에 넣는다.(이것도 나중에 공희를 통해 들은 말이다.) 커튼 뒤로 공희의 '으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옥에서 들리는 단말마 같았다.
병원에서 환자는 철저하게 사물 취급된다. 서공희 환자라고 불리지만, 그건 6012번이라고 부르는 죄수 번호나 다름없다. 공희는 여기에서 간염환자이고, 그 병을 치료해야 할 사물인 거다. 그가 얼마나 중환자실을 두려워하는지, 얇은 커튼 뒤에서 소변줄을 넣을 때, 정신이 온전한데도 기저귀를 차고 대변을 볼 때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면 언제든 출입을 거부할 수 있는 의료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철저하게 계산된, 사람으로 보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물일 뿐이었다. <사람, 장소, 환대>에 나오는 군인이나 죄수처럼 환자도 마찬가지다. 병원복을 입는 순간 사람으로서 장소가 사라지는 거였다. 그의 팔에는 어떤 간호사든 바늘을 꽃을 수 있고, 그가 있는 병실 커튼은 언제든 젖혀질 수 있다. 새벽 다섯시에도 엑스레이를 찍으라면 가서 찍어야 하고, 의사가 쉬면 이미 며칠 전에 채혈해간 검사 결과도 알 수 없다. 오늘도 공희와 거대한 병원 호텔에 침대 한 칸을 차지 하고 앉아서 스도쿠 칸에 숫자를 적는다. 우리도 적혀진 숫자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딱 그 자리여야 한다). 병원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무런 역사도 없고, 취향도 없는 그저 환자이다. 우리는 여기에 있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줄 장소는 이 큰 병원 어디에도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