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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리뷰

by 양경




안녕,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친구...


친구와 친구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이야기는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너무 좋으면서도 친구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는 이야기는 많았다. 그런데 <은중과 상연>은 달랐다.


dignity (존엄성)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은중과 상연>



연출을 맡은 조영민과 극본을 담당한 송혜진은 그들이 만들어 온 작품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은중과 상연의 완성도가 왜 높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름이 낯선 이유는 소위, 대박 친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영민은 <사랑의 이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을 연출했고 작가 송혜진은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드라마 뿐 아니라 <해어화>, <협녀, 칼의 기억>, <소중한 날의 꿈>, <아내가 결혼했다>, <인어공주>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사랑의 이해>는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일부 매니아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명작으로 뽑히기도 한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 <은중과 상연>을 만들어 포텐이 터진 게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어린 시절의 비중이 큰 편이다. 그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은중과 상연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부잣집에 춤까지 잘 추는 상연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재주가 있을까? 은중은 보통 외모에 보통 성적에 가난한 집 아이었으므로. 반전은 그런 은중에게 상연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채워줄 누군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들 때문에 두 사람은 평생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그래서 드라마가 재밌어진다.



미스테리. 상연의 오빠 천상학은 은중의 첫사랑이다. 처음으로 러플 달린 블라우스를 사 입고 은중에게 설렘을 알게 해준 첫사랑. 키 크고 잘생긴 천상학은 다정하기까지 하다. 상학은 은중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알려 준다.


“이건 셔터 스피드를 60에 놓고 찍은 거야. 그 말인 즉슨 이 안에 60분의 1초가 담겨 있다는 뜻이야. 이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근데 사실은 60분의 1초만큼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그리고 은중과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속에 함께 한 1초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한다. 상학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M" 은중과 상연,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녀가 궁금하다. 엄마가 그녀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한 상학이 궁금하다.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리고 그 비밀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상연이, 사진 동아리에서 상학의 애인으로 알려졌던 “M"을 만나고 그 비밀이 풀린다. 그의 연인 ”M"은 상학 바로 그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긴 머리를 한 상학이 벤취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상학의 카메라에 채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상학이 간간히 짓는 미소에 왜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연애와 집착. 시간이 지나고 대학 캠퍼스에서 은중과 상연은 재회한다. 게다가 사진 동아리 모임에서. 김상학을 좋아하는 은중과 상연, 천상학은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천상학에게 받은 상처를 김상학에게 위로 받았다. 절망에 빠져 있던 상연이 용기 내 김상학을 쫓아 대학을 왔을 땐, 이미 상학은 은중의 연인이었다. 상연은 은중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상연에게 은중은 유일한 친구였고 상학은 은중의 연인이었으므로 그들은 늘 함께 했다. 상연은 매일 매일 죽어 갔다. 상처와 고통으로. 하지만 해맑고 착한 은중은 상연의 고통을 눈치 채지 못했다. 천상학의 슬픔을 아는 김상학은, 천상학의 비밀에 상처받았을 상연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한다. 걱정이 돼 상연에게 달려갔던 김상학은, 은중에게 걸려 온 휴대폰의 전원을 끊는다. 그리고 은중은 밤새 죽어 갔다. 상연의 일기와 편지를 뒤지며 자신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은중은 상학의 진심에도 끝내 헤어진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갔던 세 사람은 시간이 흐른 후, 영화 현장에서 만난다. 은중과 상연은 기획자로, 상학은 촬영 감독으로. 은중만 바라보는 상학에게 옛날부터 지금까지 좋아했다고 용기내 고백하는 상연, 상학은 거절한다. 상학 때문에 흔들리던 은중에게 상연은 말한다. 제발 만나지 말아달라고. 은중은 상연에게 집착이라고 쏟아 붓는다. 상연의 이기심을 알지만 상학을 만나지 못한다. 상학이란 이름은 그렇게 두 사람을 평생 쫓아다니며, 고통스럽게 한다.



dignity. 존엄성. 우리나라는 소극적 안락사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 허용한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선택을 존중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이 40이 넘은 어느 날, 상연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이 지낸 은중의 아파트에 쳐들어온다. 그리고는 스위스 조력 사망 동행에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한다. 상연은 마지막에 은중이 퍼부은,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저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은중은 자신이 무심코 상연의 팔을 잡아 당겼을 때, 칼 같은 비명 소리에 놀라지만 장난으로 넘기는 상연 때문에 안심했다. 그런데 상연은 죽어 가고 있었다. 저주를 퍼부어서 힘들었다는 상연의 말에도 아무렇지 않았던 은중은 무너졌다. 끝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상연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자살을 도와 달라는 상연을, 은중은 거절한다. 하지만 은중은 또 상연에게 진다. 상연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은중 밖에 없다고. 결국 두 사람은 스위스로 향한다. 은중과 상연은 스위스의 아름다움을 눈 안에 가득 담는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마지막 날, 상연의 창백한 얼굴과 환한 미소가 대비되어 슬픔이 쏟아진다. 은중과 함께 소리 죽여 오열한다. 토할 것만 같다. 죽음을 앞둔 상연의 표정이 평화롭다. 약물이 상연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상연의 삶이, 멈췄다. 상연은, 혼자가 아니었다. 은중이, 함께 했다.



연기. 김고은이 영화 홍보를 하는 자리에서 눈물이 났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만약 진심으로 은중을 대했다면 아직 은중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고은은떠난 사람은 웃을 수 있지만 남은 사람은 웃을 수도, 울어서도 안 되는 그 마음을 잘 담아낸다. 죽어가는 상연을 보며, 웃어야 하는데, 자꾸 북받치는 눈물을 참아내며 미소 짓는 김고은의 연기는, 우리를 은중의 마음에 닿게 한다. 이번 작품으로 김고은의 연기가 더 깊어진 듯하다. 박지현은 조연에서부터 조금씩 주연의 자리로 성실하게 올라 온 배우다. 작품 전체를 보지 못했지만 이번 작품을 보면서 박지현의 연기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박지연은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상연을, 흔들리는 눈빛과 불행한 얼굴로 잘 표현해 낸다.


“아줌마, 저 나쁜 년인데, 좀 안아주세요.”


이 대사가 상연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말 같다. 박지현은 남을 불행하게 만들지만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불행했던 상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종종 인터뷰에서 말한다. 나쁜 놈인데, 안 나쁜 놈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할지가 과제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박지현은 성공이다. 박지현은 상연을, 나쁜 년인데, 슬프고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평생 불행한 삶을 연민하게 만든다. 박지현은 이 드라마로 완전한 주연 자리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영화 <글로리>에 나오는 악당이라고 상상이 안 될 만큼 김건우는 착하고 건실하며, 상냥하고 다정한 김상학 역에 썩 잘 어울린다. 은중을 대할 때마다 보여주던 진정성 있고 선한 눈빛은 자꾸 김건우를 생각나게 할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주연 배우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천상학 역의 김재원도 조용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은중과 상연>은 은중과 상연 두 사람이 연기하는 연극 무대를 보는 듯했다. 그 만큼 두 사람의 앙상블은 훌륭했다.


대본도 좋았고 연출도 좋았고 연기도 좋았다. 그냥 다, 좋았다. <은중과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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